장맛비 속 어릴적 추억들
며칠 전부터 장마라더니, 어두컴컴한 날씨에 굵은 빗줄기가 바람과 함께 세차게
창문을 두드린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7~8월 행사처럼 내리는 비의 모습은 똑같은데
내 모습은 할머니가 돼 있다
유년시절 주룩주룩 장맛비가 내리면 초가삼간 지붕에서 골을 타고 내리는 곳에 양동이나
항아리를 받쳐놓았다 그래야 안마당 흙이 파이지 않는 다. 대여섯 살의 나는 발가벗고 서서
그 빗줄기를 머리와 몸에 맞으며 즐거워했다.
장마가지면 붉은 고개 너머 과수원에서 물이 내려와 고개를 타고 왠수꿀 논을 거쳐
동네 가운데 도랑으로 흘러내렸다. 물은 오디나무 (뽕나무) 옆을 쓸며 우리 집 울타리를
휘돌아 한길을 지나 우리 바지배미 논으로 들어갔다. 장맛비가 몇 날 며칠을 줄기차게 내리면
우리마당과 방앗간 마당 사이의 흙다리가 떠내려가고 풋 사과가 둥실둥실 떠내려 오며
마당으로 물이 넘쳐 물고기가 파닥거리기도 했다
장마가 소강상태로 들어가면 언니는 돌을 주어다 도랑을 막고 거기에 앉아 빨래를 했다
바지배미에는 다 자란 모가 토사에 파뭍혀 온가족이 나가서 토사를 파내고 모를 일으켜
세우는 작업을 했다. 장맛비 하면 먹는 추억도 빼놓을 수 없다
우산이 귀하니 포대자루를 뒤집어쓰고 감자를 캐러간다. 집에 와 빗물에 헹구워 “달챙이
( 너무 오래 써서 놋숟가락이 반달처럼 돼 날카로움)“숟가락으로 긁어 까서 무쇠 솥에
쪄내는 뽀얀 분이 나는 감자는 너무도 맛있었다. 지금은 비가와도 전화 한통이면 피자나 통닭
무엇이든 배달시켜 먹을 수 있으니 그런 추억이 가당키나 하겠는가.
지금 고향에 가보니 아파트 공사가 한창이다. 한길 가 주변에는 주유소와 동주민 센터가 있다 조상 깨를 지나
방죽과 그 아래 논들은 절대농지로 되어있어 한길건너 바지배미는 아직도 그 자리에서 쌀을 준다.
오라버니는 지금도 내 건너 오래전에 지은 아파트에 살며 자가용에 삽을 싣고 물고를 보러다닌다.
어릴 적 추억이 서린 잿말래 고개, 300 년이 되었다는 팽나무가 있는 조상 깨,
5월 단오날이면 팽나무에 그네를 매고 동네청년들이 씽씽 그네를 탔었지!
삼면이 산으로 둘러싸인 울창한 숲과 밤나무들은 그대로 보존이 되었으면 좋겠다.
개발의 바람을 타고 고향도 내 얼굴만큼이나 변할 것이다
어릴 적 이맘때 상큼한 산딸기 따먹던 그맛, 동무들과 고무줄놀이 하며 놀던 그낭만이 그립다
잿말 래 고개에서 서쪽으로 아득히 보이는 두 봉우리의 쌍봉 산을 바라보며 어른이 되면
그 산이 어디에 있는 지, 꼭 가보야지! 하며 꿈을 키웠다. 작년에 남동생이 나의 소원을
풀어주려 어릴 적 그리던 그 쌍봉산을 다녀왔다고 사진과 함께 수필을 써서 카페에 올렸다
발안도 지나 멀리 조암에 쌍봉산이 있었는데 생각보다 작지만 지자체에서 개발을해놓았다고한다
국민학교 4학년 여름방학때 이모댁이 조암에있어 6촌 오빠형제( 외가댁) 와 4~5십리 되는길을 걸어
가서 일주일정도 머물며 서해 바닷가라서 조개와 게도잡고 일순이라는 이모의 손녀딸을 업어준 기억이있다
나 어릴때 우리 할아버지 사 형제가 모두 한동네에 살아서 육촌들이 엄청 많았다. 넷제 할아버지 자손들인
육촌오빠 형제들은 공부를 뛰어나게 잘해서 대학졸업후 가족들이 모두 미국으로 이민가 잘 살고있다
그 시절엔 버스가 안 다녀 발안 (40리)서 오산까지 중 고등학교를 걸어다녔다
장마가 언제 끝나려는지 오늘은 감자와 호박 부침개나 부쳐 먹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