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권 122호를 열며
욕속부달欲速不達의 의미를 되새기며
장병환(본지 발행인 및 ㈔시와산문문학회 이사장)
“지나간 확실한 것을 믿는 마음으로 확실하게 지나간 것에 기댄다.”
시집 『나는 적극적으로 과거가 된다』의 황혜경 시인의 말이다. 계간 『시와산문』이 30주년 기념 해를 보내며 묵묵히 지나온 그 길에 기대어 또다시 30년을 향해가고 있으니 우리는 지나간 확실한 것을 믿고 있음이 분명하다. 그리고 나는 스승이신 이충이 시인이 확실하게 지나가신 그 길에 기대어 계간 『시와산문』을 꿋꿋이 지키고 계승하고자 한다. 그러나 독자와 작가를 이어주는 문학 미디어의 정신은 눈앞의 작은 이익을 생각하거나 급하게 성과를 내려는 조급한 마음으로는 결코 지킬 수 없을 것이다. 그런 이유에서 나는 욕속부달의 의미를 마음속에 새기며 앞으로 또다시 30년을 향해 오늘에 족한 한 걸음을 떼려 한다.
『시와산문』의 초대 발행인이며 나의 스승인 이충이 시인은 “시詩는 신과의 대화에 필요한 열쇠이며 신의 소리는 귀로 듣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듣는 것이다. 신의 음성은 가난하고 고통받는 사람들의 목소리이며 땅의 소리이다. ‘별’의 소리가 아니고 ‘나무의 마디’들의 목소리이다. 이 소리들이 바로 ‘오늘의 시’이다.”라고 말하곤 하셨다.
그 소리는 때로 우리에게 이방인의 소리와 같을 수도 있다. 그러한 언어의 낯섦을 극복하고 소통하려면 우리는 시인으로서 어떤 시심을 지녀야 할까? 진정성 있는 시인의 정신은 “내가 바라는 것들이 우리가 속한 세상을 조금 더 살기 좋게 하는데 어떤 가치와 의미를 창출할까.”라고 묻는 물음으로부터 출발하할 것이라고 본다. 시詩는 그러한 진정성 있는 물음을 가진 이들에게 다가올 것이다. ‘물음’은 때로 과거를 뒤돌아보는 일이면서 동시에 미래를 예측하는 일이라고 생각해 보면 물음은 황혜경 시인이 말하는 “지나간 확실한 것”임과 동시에 현재와 미래의 확실한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에게 기대어 내일을 향해갈 수 있는 믿음직한 어깨가 되어준다. 그 일상을 놓치지 않는다면 우리의 낯선 시간여행에서 만날 수 있는 많은 것들이 있으리라 생각한다.
이번 제9회 신인문학상 신인들의 작품을 보면서 발행인으로서 매우 뿌듯한 마음을 가질 수 있었다. AI가 예술의 의미를 혼돈混沌케하고, 인문학이 위기를 맞는 현시대의 상황 속에서도 문학의 길을 용기 있게 내딛는 많은 예비 문인을 보았기 때문이다. 특히 해외에서 모국어에 기갈飢渴할 터인데 모든 에너지를 모아 작품을 쓰고 투고한 이들에게 깊은 감명과 찬사를 보낸다.
어느덧 9회를 맞이하면서 필력 있는 작품의 수도 크게 향상되어 심사에 곤욕을 치르는 행복감도 좋지만, 무엇보다 계간 『시와산문』을 통해 한국 문학의 맥을 이어가고자 했던 이충이 시인의 바람이 이루어져 간다는 생각에 발행인으로서 큰 보람을 느낀다. 제9회 『시와산문』 신인문학상 당선자들은 이번 당선을 종점이 아닌 시점으로 삼아 문학적 날을 예리하게 세우고 우리 사회와 인간의 모순과 역접의 삶을 내밀하게 드러내는 문인들로 자리매김하길 기대한다. 진심으로 축하와 박수를 보내며 계간 『시와산문』은 언제나 돌아올 따스한 친정과 같이 한마음으로 응원하고 적극 지원할 것을 약속드린다. 부디 문학적 프론티어 정신을 곧추세워 한국 문학의 새 지평을 열어가길 기원한다.
이번 응모에서 기회를 얻지 못하신 분들도 희망을 잃지 말고, 문학적 열정으로 다시 시작할 수 있길 격려하며, 인연이 닿는다면 언젠가 꼭 인간 삶의 조화로움을 지향하는 문학 전문지 『시와산문』에서 함께 작가의 길을 갈 수 있길 바란다.
함께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를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