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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 수원교구 성루카 호스피스 (정기간행물 '동행' 12월호에서 발췌)
"목숨"
† 찬미예수님! 사랑과 자비가 넘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과 평화가, 후원회 회원 여러분들과 가정에 늘 함께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제가 그를 처음 만난 것은, 남산아래에 위치한 사별가족 모임센터에 미사를 봉헌하러 갔을 때였습니다. 그의 첫인상은 매우 강렬했습니다. 사막한 가운데서 심한 갈증을 느끼면서도, 그가 찾는 것은 "물"이 아니라 … "길"이었다는 것을 후에야 알게 되었습니다. 사막 한 가운데는 길이 없지만 또 어디로 가도 길이 되는 그 곳에서, 그는 길을 찾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그를 다시 만난 것은 대중들 앞에서, 많은 질문에 답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이렇게 시작했습니다.
갑자기 산티에고 순례 길을 떠나게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갑작스런 여행이라 준비도 없이 배낭 하나만 준비해서 떠났습니다. 800Km의 순례 길을 시작하면서, 자신의 배낭이 이 순례 길을 가기에는 많이 무겁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생각을 더듬어보니 공항 출국장에서 재어본 배낭의 무게가 30Kg이라는 것을 알고, 짐을 줄이기 위해서 이것저것을 버리고 비웠다고 했습니다. 저는 그의 이야기가, 갑자기 여행을 떠나야할 정도로, 삶의 무게가 무거웠다는 표현으로 들려왔습니다. 순례를 모두 마치고 다시 배낭을 열러 보았을 때, 그 안에는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짐들이 많은 공간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 짐들은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대비라는 명목 하에, 끼워져 있었던 불필요한 짐이라는 것을 알게 된 그는, 이 짐들을 좀 더 일찍 비우고 버렸다면, 순례길 동안 짐의 무게에 눌리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의 성찰이 이어졌습니다. '우리들의 삶의 여정도 이런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걱정 때문에, 과도한 짐을 지고 살아가는 것 같습니다. 여행을 마쳤을 때 배낭 안의 짐 중에, 중요하고 의미있고 가치 있는 것이 무엇인가... 또 불필요하고 무가치한 것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알 수 있었던 것처럼 … 도착지에서의 결론을 미리 알았더라면, 삶의 짐도 가볍지 않을까 싶은 것입니다. 우리가 죽음을 묵상하고 가정해 보는 것은, 삶을 그렇게 살기 위한 것이 아닐까 싶은 마음에서 … 이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그는 "목숨"이라는 영화를 제작한 이창재 감독입니다. 영화 시사회에 초대 받아 영화를 본 후, 이 감독의 이러저러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영화 제목이 말해 주듯이 "목숨"은 누구에게나 쉽게 놓을 수 없는 삶의 중요한 화두입니다. 특히난 호스피스 현장에서 여명이 얼마 남지 않은 말기 환자들에게 "목숨"은, 어마어마한 무게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더 살고 싶어 하기 때문입니다. 영화 속에는 환자들의 그 진심이 그대로 담겨져 있었습니다. 실제로 호스피스 병원을 찾는 많은 환자들의 경우, 갑작스런 말기 통보를 받고 아무 준비도 없이 입원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마치 갑자기 순례 여행을 떠나야 했던 이 감독과 많이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 감독이 갑자기 꾸려서 짊어진 배낭 안에 이러저러한 물건들이 뒤 섞여 있었듯이, 환자가 병원으로 가지고 들어온 삶의 배낭 안에도, 여러 가지가 뒤섞여 있습니다. 이 감독의 배낭이 순례를 여정 동안 어깨를 짓누르고 무거웠듯이, 환자들의 삶의 배낭도 그 무게감이 어마어마합니다. 그 무거운 삶의 무게를 때로는 환자 홀로 지고 가기도하고, 가족들이 나누어지기도하고 또 저희들이 동행하며 하께 지고 가기도 합니다. 환자들이 지고 온 삶의 배낭을 풀어보면, 그 배낭 속에울산 바위만큼이나 무거운 짐이 있습니다. 바로 "목숨"입니다. 그 어마어마한 무게는 환자와 가족의 일상을 짓누르고 숨통을 조여 옵니다. 누구도 그 무게감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만큼 … 그러다가 어느 날 갑자기 배낭이 가벼워 질 때가 있습니다. 울산 바위만큼이나 무겁던 "목숨"이 새털처럼 가벼워 질 때가 있습니다. 삶이 가벼워지고 밝아지며 환자와 가족 동행하는 모든 이가, 감사하며 기뻐하고 행복할 때가 있습니다. "목숨"보다 더 소중한 것을 찾아내고 깨닫게 된 바로 그때입니다. 영화에 등장한 많은 환자들이 그것을 삶으로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어느 해 저의 기념일에 지인에게 선물을 받았던 일이 있었습니다. 선물 포장를 얼마나 정성스럽고 예쁘게 잘 했는지, 차마 그 포장을 뜯기가 망설여졌습니다. 잠시 포장지를 감상하다가 조심스럽게 포장지를 뜯었습니다. 지인이 준비한 선물을 열어 보았을 때, 그 선물이 저에게 꼭 필요했던 물건이라 얼마나 고맙고 감사했는지 … "목숨"이 귀하고 아름답지만 더 귀하고 아름답고 고귀한 것을 감싸고 있는 포장지와 같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포장을 뜯기 전 까지는 선물의 정체를 모르기 때문에 머뭇거리지만, 포장이 감싸고 있는 선물의 진가를 발견한다면, 포장지는 바람에 날리듯 날아갑니다. "목숨"새털처럼 가벼워지고, "목숨"보다 귀한 것이 있음을 … 영화 속에 등장하는 "큰아버지"불리기를 좋아하셨던 어르신의 말씀이 마음에 새겨집니다. "죽어야 할 사람이, 살아서 다니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죽을 사람입니다. 죽을 사람이 살아가고 있는 것은,"목숨"보다 귀한 '선물", "보물"에 가까이 다가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후원회 회원 여러분, 한 해 동안 베풀어주신 은혜에 두 손을 모아 감사드립니다. 감사하는 마음을 달리 표현할 길이 없어서, 한 편의 영화에 초대합니다. 잠시나마 세상을 떠나는 이들과 함께 하면서 그들이 "목숨"의 장막을 찢고 찾아낸 더 귀한 것들이 무엇이었는지를 함께 생각해 봤으면 합니다. 그때 우리 각자도 자신에게 물어볼 것입니다. 나에게 "목숨"보다 더 귀하고 소중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러한 성찰이 올 한 해를 잘 마무리하고 기쁜 마음으로 새해를 맞이하도록 준비해 주지 않을까 싶습니다. 다시 한 번 더 두 손 모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목숨을 부지하려고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또 몸을 보호하려고 무엇을 입을까 걱정하지 마라."(마태 6:25)
2014년 12월 성루카 호스피스 병원 원장 윤동출 프란치스코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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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의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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