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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군 여행] 강화 나룻길 20코스 , 분오리 돈대와 동막 해수욕장의 광대한 1.800만평의 뻘의 실체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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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군 여행] 강화 나룻길 20코스, 분오리 돈대와 동막 해수욕장의 광대한 1.800만평의 뻘의 실체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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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랑자는 이번에 또 다른 일몰을 보기 위해 동막 해수욕장을 찾아 나섰다. 본시 江華[강화]의 옛 이름은 "고려사지"를 보면
고구려 때 穴口郡[혈구군] 또는 甲比古次[갑비고차]라고 기록되어 있다. 다시 말해서 옛 이름인 갑비고차는 고구려의 지명
'갑구지'를 한자로 음차한 것이다. 갑구 지는 '움푹 들어간 곳의 입구'라는 뜻을 지닌다. ’고차‘는’ 고즈, 고지’로 변하여 곶이
된다. 串[곶]은 우리나라에서만 사용해 온 한자음으로 강, 바다로 돌출한 지역을 말한다. 다시 말해서 ‘갑비’는 고유어 ‘갑’을,
고차는 ‘곶, 곶이’를 표기한 것이다. 이러한 명칭은 현재 강화읍 소속의 갑곶리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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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곶은 갑은 돌 위에 돌을 올려놓은 것을 ‘甲石[갑석]’, 두 배를 ‘갑절’, 겹창을 ‘甲窓[갑창]‘이라 하는 것처럼 둘의 뜻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 이후 신라 경덕왕[35대 왕(742~765)] 때 海口郡[해구군(757년)]으로 고처 불렀으며 원성왕 때[38대, 790
년] 혈구 진을 두어 군사적 요충지가 되었다. 부연 설명을 곁들이자면 穴口[혈구]와 海口[해구]는 모두 입구라는 의미를 지
니고 있어 강화도의 지역적 특색을 잘 드러낸다고 볼 수 있다. 강화도는 고려 태조 23년[940년]에 들어서 江華縣[강화현]
으로 이름을 고치게 된다. 고려 고종[19년 1232]이 몽골 침입을 피해 강화도로 와 도읍을 정하고 강화군으로 고쳐 호를 江
都[강도]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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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은 붉은 색동 옷이다. 핏빛 저 산을 보며 석양에 불붙는 나뭇잎같이 살다 가자. 시간을 초월하는 절정의 아름다움을
가장 깊이 이해할 수 있는 색감! 은 아름다움의 극치를 자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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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4년 조선 太祖[태조·이성계]는 국호를 朝鮮[조선]으로 확정 후 강화도호부 설치하게 된다. 朝鮮[조선]이란 '동방'과 '광
명'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땅이 동쪽에 있어 해 뜨는 곳, 또는 아침의 나라라고도 했다. 1627년 조선 인조[5년(16대)]
때 강화유수부로 승격이 되고 1863년 조선 高宗[고종] 때 강화군으로 개칭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고종이 황제로 즉위
한 뒤 1897년 국호를 ‘大韓帝國[대한제국]’으로 바뀐다. 大韓[대한]은 삼한을 일컫는 다른 말이다.
고종이 1907년 물러나고 대한제국의 제2대 황제이자 조선 제27대 마지막 국왕 純宗[순종:1907~1910년] 즉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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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이 1919년 1월[66세 사망] 하자 그해 3월 1일에 고종의 죽음과 민족자결주의의 확산으로 한반도의 분리독립을 요구
하며 대한제국의 법통을 계승한다고 표방한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거쳐 1919년 4월 13일 드디어 정식으로 大韓民國[대한
민국] 임시정부 수립을 선포했다. 그리고 조선의 마지막 왕 純宗[순종]은 大韓民國[대한민국] 국호가 선포된 뒤 7년 후 19
26년 4월 25일[향년 52세], 창덕궁 흥복헌에서 한 많은 세상을 뒤로하고 떠남으로써 朝鮮[조선]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된다. 이후 강화도는 1973년 강화면을 강화읍으로 승격이 되고 난 이후 1995년 경기도에서 인천광역시로 통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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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고려 때부터 사용한 江華[강화]는 江[강]과 관련된 지명임을 알 수 있다. 지리적으로 강화도는 염하강을 비롯한 한
강, 임진강 예성강 등 여러 강이 흘러드는 곳이다. 그래서 "강 아래의 아랫마을"이라는 의미로 '江下[강하]로 부르다가, '강
아래의 아름다운 고을'이라는 뜻의 빛날 화[華]를 붙여 '江華[강화]'로 고쳐 부르게 되었다.
우리는 역사에서 강화란 지명이 전쟁의 역사 속에 등장하게 된 것은 몽골 침입 때로 배웠다. 몽골 1차 침입 당시 고려는 최
우[최 씨 무신 정권] 집권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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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의 침략에 미처 대비하지 못한 최 씨 무신 정권은 별다른 손을 쓰지 못하고 항복하고 충성을 약속한다.
이를 믿고 몽골 군대는 일부 다루가치만 남겨두고 철군하게 된다. 그러나 최 씨 무신 정권이 진정으로 항복한 것은 아니다.
몽골의 군대가 돌아간 후 그들이 남겨둔 다루가치를 모두 죽이고 곧바로 강화로 수도를 옮기게 되는 사건이 벌어진다. 이
유는 간단했다. 바다가 없는 내륙에서 훈련된 기마병 위주의 몽골군이 쉽사리 강을 건너기 어렵고 남부 지역에서의 租稅
[조세] 收取[수취]가 가능하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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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의 해조음에선 바다의 침묵을 깨우려 동막 갯뻘이 망망대해처럼 펼쳐진 분오리 돈대에 오른다. 갯벌을 조망하기에
좋은 위치 중의 하나.인 동서 남벽이 바다에 면한 천혜의 절벽 요새인 이곳에서는 광활한 강화 갯벌이 한눈에 들어온다. 돈
대의 축 벽에 누우니 아련하게 해조음이 들린다. 물이 들어올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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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때부터 1260년 원종이 개경[송도]으로 환도할 때까지 강화도는 39년간 고려의 수도 역할을 하였다.
고려 조정의 개경 환도 이후는 ‘강화현’이 되었다가 우왕 3년[1377] 강화 부로 승격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강화도를 '강
도'로 불렀다는 기록이 전해지고 있다. 그러던 중 조선 시대 들어와 완전히 현재의 지명인 '강화'로 정착하게 되었다.
물론 조선 시대에도 江華島[강화도]는 지리적으로 매우 중요한 장소였을 뿐만 아니라 조선 역사의 중심에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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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묘 호란과 병자 호란 당시 조선 왕실이 피신했던 곳이었고, 광해군이 영창대군을 유배시켰던 장소도 바로 강화도였다.
이 외에도 임진왜란 이후 조선 왕실이 가장 중요한 도서들을 보관하기 위해 만들었던 외규장각이 들어서기도 하였을 뿐만
아니라 또 신미양요와 병인양요의 현장이기도 하다. 이러한 역사 때문에 강화도를 알면 우리나라 역사의 절반을 먹고 들어
간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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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달 모양의 분오리돈대는 외적의 침입을 감시하기 위해 세운 강화도 내 54개 돈대 중 최남단에 자리 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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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시 역사 이야기의 끝은 없지만 대충 이 정도로 강화의 명칭에 관한 이야기는 끝내고 이제 오늘의 첫 번째 주인공 分五里
墩臺[분오리돈대]로 가보자. 분오리돈대는 저어새가 깃들여 사는 각시바위를 바라보고 있다. 마니산 줄기가 뻗어 내려오
다 바다를 앞에 두고 잠시 숨을 고르다가 조금 더 뻗어나간 위치, 분오 포구와 동막 해수욕장 사이에 바다 쪽으로 툭 튀어
나간 언덕 위에 분오리돈대가 있다. 分五里墩臺[분오리돈대]로 올라가는 길은 오로지 한 곳밖에 없다. 바다와 닿아 있는
삼면은 가파른 벼랑이라 접근할 수 없고, 남아있는 한 면, 즉 산이 뻗어 내려온 쪽에서만 올라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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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것만 봐도 분오리돈대는 원래의 목적에 충실한 돈대라고 볼 수 있겠다. 도로변 유료 주차장에 주차하고 올라가면 되
는데 도로에서 약 5분 정도면 오를 수 있다. 그러나 산길이자 오르막길이기에 휠체어가 오르기는 힘들다. 길을 따라 조금
만 올라가면 돌로 쌓은 성벽이 우뚝하게 서 있는 게 보인다. 약 4m 정도 높이의 성벽이랄까? 적어도 외관으로 보기에는
꽤 높을 정도로 보이며 頑固[완고]하게 사람의 접근을 막는다. 돈대 안으로 들어 가려면 반듯이 墩門[돈문]을 통과하는 길
밖에 없는데. 다행히 가파른 언덕길에 데크 계단을 만들어 놓아 그나마 쉽게 오를 수 있도록 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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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그대로 해조(海潮)의 노래 아닌가. 동해의 바윗돌에 부딪히는 격렬한 굉음에서 바다의 박력을 배운다면 소리 없이
스며드는 서해의 해조음에서는 바다의 침묵을 배운다. 흡사 판소리의 계면조 같은 음률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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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랑자는 서문 격인 돈문을 통해 돈대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밖에서 봤을 때는 성벽이 꽤 높았는데 안에 들어오니 사람 키
정도 높이밖에 되지 않는 곳에 포를 설치할 수 있도록 4개의 포문을 만들어 놓아 돈대에서 아래 갯벌을 내려다보며 포를 쏠
수 있도록 그렇게 만들어 놓았다. 유랑자는 성벽에 올라 사방을 둘러보았다. 탁 트인 조망권이 압권이다. 바람 소리 산 새
소리가 가득한 길, 참으로 태평 스럽다. 고개를 조금만 돌리면 동막 해수욕장도 마니산도 한눈에 다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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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이는 장봉도와 시도, 신도가 눈높이를 조금만 올리면 인천공항이 있는 영종도며 덕적도 영흥도까지 인근의 섬들이 손
에 닿을 듯이 가깝다. 과연 돈대답게 이곳에 서면 해안을 타고 가장 짧은 거리로, 한양으로 올라가려는 모든 배들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강화 나룻길 20길 선상에 있는 분오리돈대는 여타의 돈대들과는 달리 생김새가 독특하다.
대개의 돈대들이 네모 모양이거나 둥근 원형인데 반해 이 돈대는 살찐 초승달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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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돈대에서 바라본 동막 해수욕장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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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시 한국의 총 갯벌 면적의 83%가 서해안 지역에 분포한다. 갯벌에 퇴적된 물질이 진흙이냐, 모래냐에 따라 펄 갯벌과
모래갯벌로 나눈다. 갯벌은 전체적으로 평탄하지만, 몇몇 육지 쪽에서 강이나! 조그만 하천, 담수가 흘러나오거나, 갯벌을
이루는 저질이 점토가 많을 경우 갯골(Tidal Creek)이 발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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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지형지물을 이용하여 돈대를 쌓다 보니 이런 모양이 되었을 것이다. 분오리돈대는 조선 숙종 때 강화 유수 윤 이제
가 병조판서 김석주의 명을 받아 군사 8천 명이 동원되어 단 3일 만에 축조했다. 분오리돈대의 성벽을 조금만 관심을 가져
보면 숙종 시대의 축성 방식을 잘 보여준다. 조선 시대에 쌓은 성곽을 보면 각 시대에 따라 돌을 가공하는 방법에 조금씩 차
이가 있다. 조선 전기의 경우, 가공하지 않은 자연석을 이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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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종 때는 큰 암반에서 돌을 떼어내서 40~120cm 정도 크기로 반듯하게 가공해서 성벽을 쌓았다.
분오리돈대는 숙종 5년에 축조했으니, 성벽을 쌓은 돌 역시 자연석이 아니라 가공한 돌임을 금방 알 수 있다.
본시 돈대란 바다를 통한 외적의 침입을 감시하고 막기 위해 해안가 높은 곳에 만든 요새다. 이러한 형태의 방어진지는 세
계적으로 유일하게도 강화도에만 있는 독특하고 특별한 關防遺蹟[관방유적] 인 돈 대는 강화에 모두 54개가 있지만 현재
는 53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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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갯뻘에는 약 2,169여 종의 생물이 살아가는 다양한 생물종의 보고로 고유종의 천국이기도 하다. 또한 우리
나라 갯뻘에는 국제적 멸종 위기 철새 약 102종의 기착지에 해당하기 때문에 국제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지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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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숙종 5년에 단 80여 일 만에 48개 돈대를 축조했다니 적잖이 놀랄 수밖에…. 돈대 축성에는 어영군 4천2백6십2명과
석공 1천 명, 목수 등 잡부 1천 명 등이 동원됐는데 특히 승군은 무려 8천9백 명이나! 참여했다고 한다. 승군은 40일 만에
여장을 제외한 돈대 작업을 마쳤다, 정말 죽도록 일했던 것 같다. 340여 년 전 조선의 어느 절집에서 징발당해 강제 노역에
처했을 승려의 손으로 만들어진 이 돌덩어리가 자연의 풍화뿐만 아니라 변경의 오욕을 모두 목격했을 것으로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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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로도 몇 개 더 만들어서 강화는 마치 하나의 커다란 城[성]처럼 되었다. 돈 대는 강화를 수호하기 위해 만들었지만, 그
보다는 외적이 바다를 통해 한양으로 들어가는 것을 막을 목적으로 축조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54개 돈대 중 40개에 가
까운 돈대가 강화의 동쪽과 북쪽 해안에 촘촘히 들어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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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이건창 선생이 떠올랐다. 프랑스 등 열강이 외규장각 도서를 약탈해 가는 등 살벌한 침략전쟁을 벌이는 현장을 생
각하면서, 이 풍진 세상을 등지고 강화도 한 모퉁이에서 양명학의 전통을 이으려다 ‘강화학파의 최후’를 맞이하던 그 장면.
바닷가에 집을 짓고 해조음을 벗 삼아 살아가던 선생의 隱然自適[은연자적]하던 삶을 경망스러운 도시민의 삶과 비교하
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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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길을 타고 한양으로 들어갈 수 있는 쪽에 돈대가 더 많은 것으로 봐서 강화도의 돈 대는 한양 수호를 위한 방어선이었던
것임을 알 수 있다. 모든 돈대가 다 중요했지만 그중 몇몇 돈 대는 더 중요했는지 본영인 진무 영에서 직접 관찰했다. 분오
리돈대도 진무 영 관할 아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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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에서 강화로 들어오는 초입에 있는 돈대이니 얼마나 중요했을까?. 그래서 강화도를 수호하기 위해 만든 군사 조직인
鎭撫 營[진무 영] 에서 분오리돈대를 특별 관리했다. 1700년[숙종 26]에 설치하여 강화도에 본영을 두고 서울의 관문을 지
키게 했다. 1779년[정조 3]에는 통어영과 합쳤다가 1789년에 다시 분리했고, 1887년[고종 24] 심영으로 개칭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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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우리나라에서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곳은 2021년 7월 26일 중국 푸저우에서 개최된 제44차 세계유산
위원회에는 충남 서천군 갯벌, 전북 고창군 갯벌, 전남 신안군 갯벌, 전남 보성군-순천시 갯벌의 4곳이며, 이 4곳은 모두
람사르 습지에도 등재됐다는 사실이다. 그만큼 우리나라의 갯뻘은 세계적으로도 명성을 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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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무 영을 관리하는 관리는 처음엔 종2품 아문 이었으나, 1866년 병인양요 직후 흥선대원군이 진무 영을 강화하여 강화유
수로 하여금 진무사 및 삼도수군통제사를 겸하게 하여 진무 영의 지위를 정2품 아문으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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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무 영의 관원으로는 강화유수가 겸임하는 종2품의 진무사 1명[고종조 이후에는 정2품]을 비롯하여 중군[정3품] 1명, 진
영장[정3품] 5명, 종사관[경력이 겸임] 1명, 천총 4명, 파총 10명, 기패관 71명, 군관 15명이 있었다. 진무 영의 병력은 포
군을 중심으로 종전에 경기 수영의 각진 소속 약 3,000명이 소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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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월 말 한국의 갯벌 2단계 세계유산 확대 등재 신청서를 유네스코 세계유산센터에 제출했다. 지역은 충남 서산
갯벌과 전남 무안·고흥·여수 갯뻘이 신청 대상이 됐다. 앞으로 더 등재를 시도하려는 지역이 있는데 인천광역시의 강화, 영
종, 송도 인근 갯뻘을 등재 시도 중이다. 다만 다수의 지역 주민이 반대 중이고 강화 갯벌의 경우 이미 지역 정치권과 주민
들의 반대로 추진이 무산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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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랑자는 이제 분오리돈대를 둘러보고 돈대에서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동막 해수욕장으로 발길을 돌린다. 강화 나룻길 20
길 선상에 놓여있는 동박 해수욕장은 25년 전인가부터 시작해서 그동안 서너 번 정도는 들렀었던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은빛 모래사장과 맞닿아있는 솔숲에는 함민복 시인의 시비가 있다. 대개의 시비들이 수직으로 세워진 것과 달리 함민복 시
인의 시비는 수평으로 누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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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박 해변의 갯벌은 수평이다. 서해에 드넓게 펼쳐진 갯벌과 하늘은 모두 높낮이가 없이 수평선과 지평선을 그리는 곳이다.
세상은 자꾸만 높게 쌓아 올리며 나를 드러내는 데 반해 갯벌에서는 그런 게 아무런 의미가 없다. 딱딱한 문명과 물렁물렁
한 갯벌, 그리고 하늘 금이 있는 곳에 해변을 찾는 사람들의 마음 또한 맞닿아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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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렁물렁한 갯벌은 그 모든 것을 품어준다. 더러워 보이지만 더럽지 않은 갯벌, 더러움을 정화해 주는 갯벌이다. 함민복 시
인의 수평으로 누워있는 시비는 이런 것을 말하려고 하는 듯이 보였다. 함민복의 시비에 새겨져 있는 시를 읽어 보았다.
'딱딱하게 발기만 하는 문명에게' 전하는 시인의 고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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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반죽 뻘은 큰 말씀이다/ 쉽게 만들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물컹물컹한 말씀이다/ 수천 수만 년 밤낮으로/ 조금 무
쉬 한물 두 물사리/ 소금물 다시 잡으며/ 반죽을 개고 또 개는/ 무엇을 만드는 법을 보여주는 게 아니라/ 함부로 만들지 않
는 법을 펼쳐 보여주는/ 물컹물컹 깊은 말씀이다" ['딱딱하게 발기만 하는 문명에게'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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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는 색깔 공해의 시대이다. 너무 많은 색깔 속에 묻혀 살고 있다. 과거 자연에서는 볼 수 없었던 색들로 인해 눈이 혼
란스럽고 또 어지러울 정도이다. 이러한 색깔의 공해는 남과 다르게 자신만을 드러내려는 욕구에서 비롯된다. 隱遁者[은
둔자] 들이여 어지러운 세상 모두를 잊을 수 있는 곳 동막 해변 갯벌로 가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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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랑자는 함민복 시인의 시를 읽고 물이 빠진 갯벌을 바라봤다. 직선거리로 4km[1천8백만 평]나 되는 어마무시한 뻘밭이
끝없이 펼쳐져 입이 딱 벌어질 정도이다. 괭이갈매기들이 노니는 강화도 특유의 푸근하고 질펀한 바다 와 갯벌 풍경을 볼
수 있는 곳, 갈매기를 비롯한 새들이 갯벌 여기저기에 앉아 먹이를 찾고 있는 풍경 또한 아름답다. 뻘밭엔 갈매기들만 있을
까? 밀물과 썰물이 드나들던 그 자리엔 조개와 게들의 향연도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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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오가는 은밀한 사랑 이야기는 빠르면서도 부드럽고 감성적이다. 분명 도시에선 보기 힘든 풍경들이다. 물 빠진 자
리엔 조개 캐는 아낙들과 가을임에도 불구하고 몇몇 캠핑족, 맨발 걷기 운동과 갯벌 놀이 하러 온 사람들의 여유로움이 꽤
낭만적이다. 동막 해변은 너무나도 잘 알려진 곳인 만큼 포근한 매력은 숨길 수가 없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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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권 시민들이여 덴마크 독일 네덜란드에 인접한 세계적 해안 습지인 와덴 해의 갯벌은 탐방객들도 함부로 밟지 못하
게 하는데, 우리 갯벌의 현주소는 어디쯤 와있는 것일까. 와덴 해의 갯벌 국립공원은 아예 입장료까지 받는데, 갯벌에 들어
간 사람들에게 돈까지 받는다면 한국인들은 어떤 태도를 보일까? 그러나 우리는 모든 게 공짜이다. 자연을 지켜야 하는 이
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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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은 이들뿐만 아니다. 천연기념물 205호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는 저어새다. 한때 전 세계에 5천 마리 정도밖에 확인
되지 않아 세계적인 멸종 위기종이었지만 개체 수를 늘리기 위한 꾸준한 노력 덕분에 지금은 우리나라에서 2천 마리 이상
서식하고 있는 게 확인되었다. 강화군에서도 저어새를 보호하기 위해 여러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저어새는 강화군의 郡
鳥[군조] 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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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오리돈대 앞 각시바위는 천연기념물인 저어새가 알을 낳아 새끼를 키우는 곳이다. 최근에 모니터링 한 결과에 의하면 각
씨 바위에서 약 60쌍 정도가 번식한 것으로 확인되었다고 한다. 정부에서는 분오 마을을 저어새 생태마을로 선정한 이유
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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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잡한 물때를 쉽게 알 수 있도록 하려는 노력은 고려시대 이규보가 지은 ‘축일조석시(逐日潮汐詩)’라는 시가 있다. ‘초
사흘은 토끼 때요 다음 사흘은 용 때이고(三兎三龍水)’로 시작되는 민요풍의 노래이다. 음력 초삼일까지는 토끼 때인 6시
전후에 물이 최대로 밀고, 초엿새까지는 용 때인 8시 전후에 만조가 된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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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 희귀조인 저어새를 만날 수 있는 분오리돈대다. 분오리돈대에 올라 저어새가 깃들여 사는 각시바위도 바라보고 동
막 해수욕장 소나무 숲에 있는 함민복 시인의 시비도 찾아보자. 물렁물렁한 갯벌을 보며 수직에서 수평으로 마음을 내려놓
고 건강을 위해 맨발로 해변을 걸어보자. 혹시 맨발 걷기 운동을 아는가? ‘어싱[Earthing, 접지]’은 땅[Earth]과 진행형[ing]
의 합성어로 맨발을 접촉해 지구의 에너지를 받아들이는 행동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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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적인 방법이 맨발 걷기다. 몸속 정전기는 땅으로 내보내고, 땅의 음이온을 신체로 받아들이는 것. 수분이 있는 흙길이
나 바닷가 모래 해변에서 걸으면 어싱 효과가 높아진다고 해서 ‘슈퍼 어싱’이라 부른다.
양말을 훌러덩 벗어 던지면 어디든 슈퍼 어싱이 가능하지만, 동박 해변에서 갯뻘과 더불어 은빛 모래를 밟으며 걷는 운동
은 건강에 더욱 좋다. 짭조름한 갯내음을 맡으며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광활하게 펼쳐진 1천8백만여 평의 갯벌이 시야를 가
득 채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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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보는 고려의 피난 수도 강화도에서 벼슬살이하면서 물때의 중요성을 깨닫고 이 노래를 지었던 것으로 보인다. 조선
시대에 들어 토정 이지함은 이규보의 시를 바탕으로 김포 조강진에서 물 높이를 재는 수표를 설치하고 바다를 직접 관찰한
뒤에 더 정교한 ‘조강 물 참 표’를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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썰물 때면 1천8백만여 평의 거대한 뻘이 속살을 드러내는 이곳! 동막리 갯벌은 세계 4대 갯벌 중 하나로 꼽힌다. 게, 바지
락, 주꾸미, 낙지, 조류 등 수많은 생물을 직접 보고 만질 수 있는 동막리 갯벌은 생태체험의 산교육장이기도 하다. 시원한
갯바람을 맞으며 확 트인 갯벌 풍경을 바라보니 일상의 피곤과 찌든 때가 말끔히 씻겨 나갔다. 동막 해수욕장은 맛집들과
카페, 모텔 등 위락시설과 편의 시설들이 잘 갖추어져 있어 하루를 즐기기엔 전혀 손색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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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막리 갯벌을 뒤로하고 붉은 해가 저문다. 황홀할 정도로 아름다운 수채화 같은 그림이 시시각각 자연의 화폭에 담아낸
다. 갈매기들도 무리 지어 뒤를 따른다. 해안선을 따라 펼쳐지는 해변의 비경과 고즈넉한 분위기 신선한 해산물이 어우러
진 동막 해변은 이곳을 찾는 이들에게 다채로운 경험을 선사하는 가볼 만한 동막 해수욕장이다. 가을이 익어가는 소리를
들으며 걷는 소나무 숲길은 걷는 이에게 고요함과 평온함을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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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민복의 시비에 새겨져 있는 시를 읽어 보았다.
*'딱딱하게 발기만 하는 문명에게'
"거대한 반죽 뻘은 큰 말씀이다/ 쉽게 만들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물컹물컹한 말씀이다/ 수천 수만 년 밤낮으로/ 조금 무
쉬 한물 두 물사리/ 소금물 다시 잡으며/ 반죽을 개고 또 개는/ 무엇을 만드는 법을 보여주는 게 아니라/ 함부로 만들지 않
는 법을 펼쳐 보여주는/ 물컹물컹 깊은 말씀이다" ['딱딱하게 발기만 하는 문명에게'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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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해 질 녘 붉게 물드는 바다와 어우러진 로맨틱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풍경은 그야말로 황홀을 넘어서 경이롭다. 사랑
하는 이와 해안선을 따라 걸으며 자연의 웅장함을 감상하기에 너무나 좋기 때문이다. 또한 3층 카페 창가에 앉으면 앞 솔
숲과 갯뻘엔 아름다운 붉은빛 노을이 펼쳐지고, 뒤편으로는 나지막한 산자락의 가을 풍경이 더없이 아름답다.
황금빛 낙조와 푸른 바다와 흑백의 갯뻘과 어우러진 서해의 풍경 속에서 사랑하는 가족, 친구, 연인과 함께 특별한 추억을
담아 내는데는 전혀 손색이 없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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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지 모르겠지만 '지붕 없는 박물관'이라 불리는 강화도에서 여름 피서철이면 빼놓을 수 없는 곳이 동막 해수욕장이다.
동막 해수욕장은 예전에는 군사지역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관광지가 되었고 캠핑도 할 수 있는 곳으로 탈바꿈되었다.
동막 해변은 강화에서 유일하게 백사장과 울창한 소나무 숲으로 둘러싸여 있는 천혜의 자연경관을 자랑한다. 이 때문에 피
서철이면 가족 단위의 여름 휴양지로 인기가 높다. 밀물 때는 해수욕을 즐기고 썰물 때는 검은 개흙을 쓰고 기어가는 칠게
와 가무락 등 갯벌에 사는 갖가지 생물들을 관찰할 수 있다. 가을철에는 망둥어 낚시도 가능하다. 특히 이곳에서는 항공기
가 뜨고 내리는 인천국제공항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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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오늘 하루를 마무리 하는 시간이다. 어둠이 오기 전에 마지막 숨을 붙잡고 은.금빛 노을은 바닷물에 스며든다.
유랑자는 종일 땀내 나는 주홍빛 여장을 풀어 놓으며 오늘 하루를 마무리한다. 바닷바람도 해무의 음모도 그려내는 수채화
의 봇을 막지는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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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겋게 햇살을 뿌려 놓은 바다, 그 아름다운 서녘 하늘의 붉은 노을의 황홀함이 극치가 서서히 서산에 기운다. 어쩌면 마지
막 숨을 고르는 서해 하늘의 저녁 빛과 바닷물에 투영된 노을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 하늘 끝 저편 노을이 빛을
다 하기 전 유랑자는 마지막 장면을 카메라 앵글에 너를 담아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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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오리돈대 찾아가기
- 주 소: 인천광역시 강화군 화도면 사기리 산185-2
- 별 칭 : 칠오지돈대
- 입 지 : 분오리 곶의 구릉 정상부에 위치
- 축조 시기 : 1679년(숙종5)
- 규 모 : 둘레 - 113m, 잔존 성벽 높이- 3.6m
- 형 태 : 초승달 모양
- 문화재 지정여부 : 인천 유형 문화유산 제36호
- 시설 : 문 1개, 포좌 4개
- 그 외 : 갈곶 돈대와 1645보(1970m), 송곳 돈대와 420보(550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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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막 해수욕장 찾아가기
-주 소: 인천 강화군 화도면 동막리 7-3
-문의처: 032-937-4445
-입장료/요금: 주차장 (2천원), 샤워장 탈의장 (어른 3,000원, 어린이 2,000원, 온수제공),
소나무밭 야영구역 (1시간당 1,500원, 1박 15,000원 등) 사용료 부과
-주요시설: 야영장, 샤워장 및 탈의장, 화장실 등
※야영장
-운영기간: 2025-07-26 ~ 2025-11-23 (121일 동안 한시적 운영)
-사용료 1박 2일 기준 1개 야영 구역 15,000원 / 시간당 1,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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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cafe.daum.net/b2345/9toB/23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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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여행 가이드
*관광 안내소: 032-932-2302.
*강화군청 문화 관광과: 032-930-3568
*관광 통역안내: 1330(24시간 운영)
*한옥관광 안내소: 032)932-5464
*터미널 안내소: 032)934-55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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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군 여행 정보는 여기에서 확인 요.
https://www.ganghwa.go.kr/open_content/tou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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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8경
#제1경 전등사/. #제2경 보문사/. #제3경 연미정/. #제4경 갑곶돈대/.
#제5경 마니산/. #제6경 광성보/. #제7경 초지진/. #제8경 적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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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성곽길, 강화 나들길 도보 여행 시 유의 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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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전에 코스를 숙지 후, 시간과 거리를 감안한 자신의 체력에 맞는 여행을 하십시오.
*여러 사람과 함께 여행하며, 위급 시 119나 소리를 내어 주변에 알리도록 합니다.
*해안제방 길에서 밀물과 썰물 및 군사 보호지역 통행시간을 고려하여 여행하십시오.
*해안가 근처에는 폭발물 등의 위험물이 있을 수 있으니 주의하시기를 바랍니다.
*강화 나들길 여행시간은 (하절기 09:00~18:00, 동절기 09:00~17:00)입니다.
*코스 중에는 역사·문화 유적지가 많으니 훼손하지 않도록 유의하시기를 바랍니다.
*여행 중에 주민의 사생활 공간을 침해할 수 있으니 조심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환경을 위한 일회용품 사용을 자제하시고, 쓰레기는 반드시 회수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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