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정한아 추천
시 는 논리가 아니라 은유다. ‘이러한 이유에서 좋다’고 말하기 어려운 장르. 파블로 네루다의 시집을 읽을 때, 나는 내 몸이 이 세계와 함께 들썩이는 느낌을 받았다. 시집을 펼칠 땐 미술관에 간다고 생각해보자. 작가의 의도를 알지 못해도 색채와 형태의 느낌만으로도 감동을 받을 수 있는 것처럼, 지식이 없어도 시가 주는 황홀감을 느낄 수 있다. ‘의도가 뭘까’ 생각하지 말고, ‘내가 어떻게 느끼고 있는지’에만 집중해보라. 좋은 문장을 쓰기 위한 준비 운동이라 할 수 있는 ‘감각 깨우기’에 도움이 될 것이다.
2 <우연의 음악> - 폴 오스터
좋 은 글을 위한 딱 하나의 조건을 이야기하라면 ‘솔직함’을 꼽겠다. 폴 오스터의 책을 읽을 때 그가 매우 고민해서 한 땀 한 땀 글을 쓴단 인상을 받은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솔직하게 자기가 하려는 이야기를 향해 직구를 던지는 느낌. 그래서 좋다. <우연의 음악>은 습작 시절 모델이 된 작품이기도 하다. 흥미진진한 스토리와 철학적 주제의식을 동시에 지니고 있어 맛과 영양을 모두 챙긴 밥상처럼 든든하다.
3 <먼 북소리> - 무라카미 하루키
요 즘 쏟아져 나오는 수많은 여행 에세이 중 이 책처럼 만족을 준 작품이 없다. 에세이는 일상적인 이야기를 담는 게 목적인 글이다. 좋은 에세이는 과장하지 않는다. 하루키 역시 꾸밈없는 말투로 자연스럽게 여행지에서의 일상을 중계한다. 장편소설을 쓰며 여행하는 중간중간 글쓰기의 기쁨, 괴로움을 표현한 구절이 곳곳에서 발견된다. 좋은 글을 쓰고 싶단 욕망이 있다면, 그런 구절을 읽어보는 것만으로도 도움이 될 것이다.
4 <마담 보봐리> - 귀스타브 플로베르
나 에게 ‘딱 한 명’의 작가를 꼽으라 하면 플로베르다. 그 이전 시대에는 문장의 스타일에 대한 관심이 전혀 없었다. 그가 20년간 단어와 투쟁하며 내용(이야기)과 형식(문체)이 완벽하게 조화를 이룬 <마담 보봐리>를 써낸 이후에야 문체의 중요성이 부각됐다. 자신만의 문체를 갖는 건 좋은 문장을 위한 큰 무기를 가진 것과 같다. 그러나 연습을 많이 하지 않고 섣불리 문체에만 신경 쓰는 건 더 위험하다. 개인적으론 내 글의 색깔을 정확히 알기 위해, 다른 사람들의 감상을 많이 들어보려고 노력했다.
5 <풍금이 있던 자리> - 신경숙
보 석 같은 문체를 흠모해 유일하게 필사해본 작품. 어떤 문장을 보고 ‘갖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 내 것으로 만드는 가장 빠른 길은 ‘필사’를 해보는 것이다. 만약 내가 어떤 이야기를 쓰고 싶은지 떠오르지 않고 막막한 기분이 든다면 신경숙, 은희경과 같은 1990년대 한국 여성 작가의 작품을 읽어볼 것을 권한다. 자신의 내면을 관찰하고 그것을 표현하는 법에 대해 배울 수 있다.
6 <반 고흐 영혼의 편지> - 반 고흐
고 흐가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글을 묶은 책. 절망 속에서도 사랑과 아름다움에 대한 열망을 놓지 않는 예술가의 영혼을 엿볼 수 있다. 다시 일어설 용기를 얻고 싶을 때 난 이 책을 펼치게 된다. 글에 관한 전문가가 아닌, 화가 고흐의 편지글이 그토록 감동적인 이유는 솔직함 때문이다. 가난에 고통 받는 상황이나 사랑에 달뜬 마음까지 모두 과장 없이 이야기한다. 솔직하고 자연스러워야 자신의 내면을 보여주는 글을 쓸 수 있다. 그리고 그런 글을 읽으면 글쓴이의 영혼을 가까이 느낄 수 있다. 그런 게 좋은 글이다.
7 <시간의 역사> - 스티븐 호킹
단 어의 폭을 넓히기 위해 인문서, 사회과학서, 예술서적을 고루 읽는다. 단어는 곧 ‘개념’인데, 내면의 이야기를 다룬 문학서적만 읽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좁은 틀에 갇힐 수 있다. <시간의 역사>는 모든 과학서의 기본이고, 스티븐 호킹이 재기발랄하게 글을 써서 재미도 있다. 난 이 책을 읽고 물리학이 얼마나 아름다움에 가까이 가려는 학문인지 알게 됐다. 전문 서적을 읽다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사전을 찾아보기보단 맥락 안에서 ‘이런 뜻이겠구나’ 유추하고 상상하는 버릇이 있다. 그게 오히려 사고력을 풍부하게 해주는 것 같다.기획 최혜진, 백세라 | 포토그래퍼 박상현 | 쎄씨
- 정한아
- 언론사 입사 시험에 번번이 낙방하는 백수 이야기를 그린 소설, <달의 바다>의 작가. 이 작품으로 조경란, 김영하, 박현욱, 박민규 등을 배출한 ‘문학동네 작가상’의 열두 번째 수상 작가가 되었다.기획 최혜진, 백세라 | 쎄씨
라디오 작가 김동영 추천
기 성세대의 질서를 거부하는 두 청년의 여행을 기록한 소설. 이 작품은 1950~60년대 미국의 히피 운동을 이끈 ‘비트 세대’의 성서로 받아들여졌다. 재즈의 즉흥 연주처럼 읊조리듯 써내려간 잭 케루악의 글은 탄탄한 구성과 거리가 멀고 가슴을 철렁 내려앉게 만드는 문장도 없다. 하지만 그의 문장에는 ‘동시대성’이라는 것이 있다. 아무리 문장이 좋고 스토리가 탄탄해도 사람들이 공감할 수 없는 뜬구름 잡는 이야기를 하는 건 좋은 글이 아니다. <길 위에서>를 읽으며 여러 가지 사회현상을 글 속에 녹여내는 태도와 방법을 배웠다.
2 <팩토텀> - 찰스 부코와스키
미 국 대중문화계의 낙오자, 찰스 부코와스키는 패배자라고 치부되는 인생 이야기만 쓴다. 그것도 참 거북하고 뒤틀린 표현들로. 살아생전 어디에서도 환영 받지 못했지만 그의 책을 읽으면 가슴 한구석이 따끔거린다. 잔혹하고 냉정한 현실 속에 살고 있는 게 진짜 우리들의 이야기니까. 따뜻하고 아름답게 읽히는 문장만 쓰고 싶어서, 없는 감수성만 짜내는 내게 멋 부리지 않고 솔직하게 쓰는 문장의 힘에 대해 알려준 책이다.
3 <기나긴 이별> - 레이먼드 챈들러
무 라카미 하루키가 에세이에서 여러 번 언급해 뒤늦게 국내에 소개된 작가. 그의 문장은 뜨거운 햇살처럼 따갑고 봄날 아스팔트 위에 피어오르는 아지랑이처럼 아찔하다. 미국에는 그의 소설 속에 늘 등장하는 주인공 ‘필립 말로우’의 어록만 모아놓은 책이 있을 정도다. 표현력을 기르고 싶다면 ‘감정 단어장’을 만들어보길 권한다. 노트에 ‘슬프다’라는 단어를 적어두고, 그와 관련된 단어, 그 감정을 떠올리게 하는 물건 등 연상되는 표현들을 분류해보는 것. 나는 간혹 그 단어장을 펼쳐두고 퍼즐을 맞추듯 글을 쓴다.
4 <백 년 동안의 고독> - 가브리엘 G. 마르케스
나 의 독서 인생은 <백 년 동안의 고독>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한차례 중도포기하고, 수능을 마치고 6개월에 걸쳐 읽어낸 책. 치밀하고 복잡한 명작들은 책상에 앉아 손가락으로 한 줄 한 줄 짚으며 읽는다. 이 책도 노트를 펼쳐두고 등장인물 관계도를 만들면서 읽었다. 그렇게 읽고 나니 ‘좋은 책’과 ‘내게 맞는 책’ ‘그저 그런 책’을 골라내는 안목이 생겼다. 짧은 글만 선호하던 내게 지독히 긴 문장과 이야기가 주는 매력과 동경을 선사하던 책.
5 <양을 쫓는 모험> - 무라카미 하루키
유 명하다 못해 이제는 식상한 무라카미 하루키. 그러나 그의 영향을 부인할 순 없다. 짧은 문장, 리드미컬한 단어 그리고 군더더기 없는 표현은 글이라기보다는 한 편의 유행가사 같다. 나는 잠이 오지 않는 밤에는 하루키의 책을 아무 페이지나 펼쳐두고 컴퓨터에 한 줄 한 줄 옮긴다. 그리고 그 안에 있는 단어를 내가 쓰고 싶은 단어로 대체해보는 놀이를 한다. 긴 문장은 중간중간 쪼개어 문장의 설계를 바꿔보는 놀이도 종종 한다. 좋아하는 작가의 문장을 분해해 새롭게 써보는 것도 글쓰기에 재미를 붙일 수 있는 방법이다.
6 < H2 > - 아다치 미츠루
일 본의 대표적인 학원 스포츠 만화. 야구 만화이긴 하지만 주인공인 소년, 소녀가 어른으로 변해가는 과정을 그린 성장 만화이기도 하다. “다만 내 사춘기가 일 년 반 늦었어”와 같이 만화적이지만 유치하지 않은, 허를 찌르는 대사가 많아 노랫말을 쓸 때 인용한다. 노래가사도 문장력 훈련에 꽤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다. 한국 가사 말고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하는 외국 노래가사들을 보면서 단어와 단어를 보고, 나름대로 연상을 펼쳐 하나의 스토리로 만들어보는 습관이 있다.
7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 더글라스 애덤스
경 험하지 않은 걸, 보지 못한 걸 마치 실제로 경험하고 본 것처럼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거짓말쟁이 더글라스 애덤스. 책을 읽는 내내 그의 재주를 질투했다. 그리고 나도 그처럼 거짓말쟁이가 되겠다고 수백 번 다짐했다. 상상력을 발휘해야 하는 순간, 아무 생각도 나지 않고 제자리만 맴돌 때면 이 책을 꺼내보게 된다. 어떤 식으로 이야기를 꾸려가는지 커닝한다. 자유로운 상상을 위한 참고서.기획 최혜진, 백세라 | 포토그래퍼 박상현 | 쎄씨
- 김동영
- 음반사 ‘문 라이즈’에서 일하며 델리 스파이스, 이한철, 마이 앤트 메리 등 여러 뮤지션의 곡을 작사했다. MBC FM4U <뮤직 스트리트> <세상을 여는 아침>을 거쳐 현재는 <이소라의 오후의 발견>에서 일한다. 서른 살의 미국 여행기, <너도 떠나보면 나를 알게 될 거야>의 저자.기획 최혜진, 백세라 | 쎄씨
팝 칼럼니스트 김태훈 추천
글 을 쓸 때 신문 기사처럼 사실을 전달하는 글을 써야 할 때도 있다. 하지만 소설은 다르다. 상상력이 없다면 재미있는 글이 나오지 않을뿐더러 이는 작가로서 치명적 결함이다. 세상의 모든 냄새를 맡을 수 있고, 자신에게선 아무 냄새도 나지 않는 아이. 그 단 한 줄의 아이디어만으로 수백 페이지가 넘는 장편을 만들어 내는 쥐스킨트의 상상력의 극치를 보여주는 소설이다.
2 <인간 실격> - 다자이 오사무
글 이란 내면의 고백이며, 그 투쟁의 기록이다. 글 전체에 감성이 많이 들어가 있다는 느낌이다. 굴곡 많던 작가의 인생이 겹쳐 문장 속에서 그의 아픔이 드러나는 것 같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감정을 읽는 사람에게 강요하지 않고 무심한 듯 던진다. 생각의 몫은 독자에게 주기 때문에 생각을 풍부하게 하는 데 도움을 준다.
3 <달과 소년병> - 최인훈
소 설의 글은 영화와 연극의 글과는 다르다. 영화는 주로 등장인물의 대사에 사건의 실마리를 담지만 소설은 그 외에도 주변 사물과 상황에 대한 묘사를 이용해 주인공의 심정과 줄거리를 들려줄 수 있다. <달과 소년병>은 등장인물의 말이 아닌 3인칭 시점의 담담한 묘사만으로 그 내면을 소름끼치도록 섬세하고 적나라하게 설명해주는 작품으로, 글이 지닌 위대함이 느껴진다.
4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 무라카미 하루키
‘ 많은 사람이 이것도 소설이라면 나도 쓰겠다고 했다. 그러나 그들은 쓰지 않았고, 나는 썼다.’ 언제나 써야 할 글 앞에서 무대 공포증과도 같은 울렁증을 경험할 때마다 떠올리는 말이다. 하루키 글의 가장 큰 특징은 ‘건조함’이다. 가끔 소설을 읽으면서 그 인물에 빠져들기보다 작가의 개인적 세계관과 계속 싸우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반면 작가의 감성이나 시선이 철저히 배제된 글들을 읽으면 오히려 글에 100% 빠져들 수 있다. 하루키 소설이 그렇다. 소설은 작가가 배제되고 인물이 전면에 나서야 한다는 나의 글쓰기 철학과 닮아 있다.
5 <우주로부터의 귀환>- 다치바나 다케시
다 치바나 다케시는 사유하는 작가다. 이 책은 내가 글에 대한 철학을 세울 수 있도록 도움을 준 책이다. 똑같은 현상을 보더라도 한 겹 더 깊이 들어가 그 이면을 볼 수 있는 사유의 깊이가 뛰어난 작가와 그렇지 않은 작가는 차이가 있다. 일차적 웅변처럼 주장하기보다 무언가 숨기는 것 같은 느낌이지만 파고 들어가면 작가가 말하는 바가 확실한 그의 글을 좋아한다.
6 <관촌수필> - 이문구
설 명이 필요 없는 대가의 글이란 무엇인지를 책을 잡은 지 단 몇 분이면 알 수 있는 걸작이다. 우선 풍부한 어휘가 놀랍다. 실제로 잘 쓰지 않는 단어지만 기억하고 있다가 적절한 순간에 활용하면 좋다. 다양한 단어를 쓰면 문장이 풍부해 보이는 것은 당연하다. 주의할 점은, 문장 사이사이 반복적 비유를 나열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딱 한마디 던져주면 글자를 아끼면서도 자신이 말하고 싶은 바를 충분히 전할 수 있다. 두껍고 오래된 책이지만 소설가가 마치 내레이션을 통해 옆에서 읽어주듯 흘러가는 이야기는 자연스러운 흐름의 글이란 어떻게 쓰는가를 알게 해준다.기획 최혜진, 백세라 | 포토그래퍼 박상현 | 쎄씨
- 김태훈
- 음악잡지 기자를 거쳐 현재 조선일보, 경향신문, 무비위크 등 여러 매체에 음악과 사랑에 대한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저서에 <내일도 나를 사랑할 건가요>가 있다.기획 최혜진, 백세라 | 쎄씨

첫댓글 읽어본 책이 하나도 없구나...ㅠㅡ 반성해야지
역시 하루키옹이 짱이군.ㅋㅋ 여기서 하루키꺼 빼고는 하나도 읽어본 책이 없다니.ㅜ.ㅜ
좋은 글 감사합니다
시발 하루키는 다껴있네
좋은 글이군... 훌천에서 보기 드문 좋은 펌글이다.
칭찬해 줘서 고맙다 ㅋ 우연히 발견해서 너무 좋은 글이라 퍼 옴 ㅋ
H2 깜놀했다.......훌리들 H2 꼭 읽어보도록
아 이거 호프로 가저갈라 했는데 지존설경이 스크랩금지해났네
복사 가능하게 해 놨으니 마우스로 긁어 가렴^^
제가 먼저 굽신굽신 ㅇ_ㅇㅋ
관촌수필 문제풀때 졸라 미치겠던데
2222관촌수필 존나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