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서 한 남자가 걸어왔다. 가까이서 보니 다름 아닌 개그맨 양배추(26)였다. 지난해 많은 인기를 끌었던 KBS 2TV ‘웃음충전소’의 ‘타짱’에서 보여줬던 넉넉한 뱃살은 온데간데없었다. 그가 먼저 인사를 건네지 았다면, 모르고 지나칠 만큼 날씬해진 모습이었다. “멋있어졌다”는 기자의 말에 “요즘 돌아다녀도 사람들이 못 알아본다”며 부끄러워했다.
“어제는 한 아주머니가 그러더라고요. 기분 나쁘게 듣지 말라면서 개그맨 양배추를 닮았다는 거예요. 한참을 웃었죠. 사실 다이어트를 하고 나서 ‘멋있어졌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어요. 전 제가 ‘멋있다’는 말을 듣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니까요. 솔직히 말하면 요즘은 정말 거울 볼 맛이 나요. 옷가게에서는 허리 사이즈를 일부러 크게 말하기도 하고요(웃음).”
38인치가 넘던 허리 사이즈는 32인치로 줄어 예전에 입던 바지들은 커서 못 입을 정도. 다이어트 전에는 맞는 바지가 없어 협찬을 못 받았는데, 요즘은 웬만한 건 다 맞아서 코디네이터들이 좋아한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아닌 게 아니라 양배추는 지난 1월 4일부터 3월 14일까지 두 달여 동안 96kg이던 몸무게를 76kg으로 줄였다.
잦은 술자리와 야식 때문에 한때 몸무게가 96kg까지 나갔던 양배추. 혹독한 다이어트에 돌입한 결과 두 달 만에 20kg을 감량했다.기획 김은영 | 포토그래퍼 임효진 | 여성중앙
꼬박 세 시간 동안 걷고 뛰기
“원래 몸을 움직이는 걸 싫어하는 편이라 헬스를 할 생각은 아예 접었어요. 대신 주변에서 할 수 있는 운동을 찾았죠. 저녁에 돌아오면, 한 바퀴가 60m쯤 되는 오피스텔 주차장을 30바퀴씩 돌았어요. 그리고 줄넘기 1500번을 하고, 지하 2층에서 제가 사는 15층까지 걸어 올라갔죠. 자기 전에는 윗몸 일으키기 100번으로 마무리를 하고요.”
처음에는 5층까지만 올라가도 다리가 후들거리고 숨을 못 쉴 정도로 힘들었지만, 며칠이 지나자 10층, 15층을 올라가도 거뜬해졌다. 꼬박 세 시간이 걸리는 운동을 하루도 빠짐없이 하다 보니, 나중에는 그 시간만 되면 몸이 근질거렸다. 규칙적인 운동과 함께 음식 조절도 했지만, 하루 세 끼는 반드시 챙겨 먹었다. 대신 먹는 양을 정확히 반으로 줄이는 이른바 ‘반식 다이어트’를 택했다.
“밥 한 공기가 나오면 반을 덜고 나머지만 먹었어요. 먹는 방법이 독특해요. 밥 한 숟가락 입에 넣고 숟가락 내려놓고, 반찬 집어 먹고 다시 젓가락 내려놓고. 그런 다음 두 손을 다 내리고, 음식을 30번씩 씹고 나서 다시 먹었어요. 그리고 밥 먹다가 중간에 괜히 화장실을 다녀왔죠. 그러면 밥 먹는 시간이 최소 30분은 걸려서 조금만 먹어도 포만감이 생기더라고요.”
저녁 6시 이후에는 아무것도 먹지 않는다는 원칙을 세우고, 입에 달고 살던 과자나 커피 등 살찌기 쉬운 음식도 피했다. 하지만 다이어트 하느라 생긴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좋아하는 피자만은 먹기로 했다. 당근과 채찍을 골고루 써가며 맞춤식 다이어트를 했지만, 참기 힘든 순간은 자주 찾아왔다.
“신경이 예민해졌죠. 괜히 주변 사람들에게 짜증도 내고요. 운동을 하고 나면 그때는 기분이 날아갈 듯이 좋은데, 다음 날 또 30바퀴를 뛸 생각을 하니까 정말 미치겠는 거예요. 다행히 후배랑 같이 운동을 해서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할 수 있었죠. 한번은 앞에 있는 육포가 너무 먹고 싶어서 참지 못하고 먹으려는데, 친구가 던진 한마디를 듣고 내려놨어요. ‘남들이 평생 먹을 음식을 넌 이미 먹어 봤으니까 이젠 안 먹어도 된다’고(웃음). 그 뒤로 뭔가 먹고 싶을 때마다 ‘이미 다 먹어 봤으니까 괜찮아’ 하고 스스로 최면을 걸었죠.”
다이어트를 시작한 날부터 주변 사람들에게 적극적으로 도와 달라고 말한 것이 큰 도움이 됐다. 벌금도 걸었지만 한 번도 벌금을 낸 적이 없어 스스로도 대견하단다. 포기하고 싶을 때는 다이어트에 실패했던 경험을 되새겨 봤다. 빨리 살을 빼고 싶은 마음에 운동은 하지 않고 식욕 억제제를 먹거나, 배에 주사를 맞았던 것. 순식간에 9kg이 빠졌지만, 요요현상으로 다시 12kg이 쪘다. 갑자기 살이 찌다 보니 팔, 다리가 자주 저리고, 코도 심하게 고는 등 건강도 눈에 띄게 나빠졌단다.
“더 이상 ‘양배추’가 아니었어요. 예전에는 귀여운 맛이라도 있었는데, 너무 거대해진 거죠. 사적인 자리에서 여자들을 만나면 ‘내 배가 보이면 어떡하지’ ‘나를 뚱뚱하다고 생각하는 건 아닐까’ 하고 자꾸 주눅이 드는 거예요. 한번은 여자 친구한테 배신을 당한 적도 있어요. 1년을 만나던 여자 친구가 갑자기 유학을 간다고 해서 헤어졌는데, 다음 날 제 친구랑 동대문에 있는 걸 본 거예요. 정말 기가 막혔죠.”
낙천적인 성격의 ‘조세호’(양배추의 본명)는 상처를 털어 버릴 수 있었지만, 개그맨 ‘양배추’가 감당해야 할 문제는 생각보다 컸다. 데뷔 때와 달라진 외모 탓에 맡고 싶었던 배역을 놓치기도 했다.
“어떤 드라마에서 캐스팅 제의가 들어와서 찾아갔는데, 감독님이 절 보자마자 ‘생각보다 뚱뚱하시네요’라고 하시더라고요. 예전 프로 사진을 보고 캐릭터와 맞겠다 싶었는데, 실제로 보니까 아니었던 거죠. 연락을 기다렸지만, 결국 오지 않았어요. 그때 ‘아, 이건 아니구나’ 하고 정신이 번쩍 들더라고요.”
다이어트를 하면 몸 개그 캐릭터를 잃는다며 말리는 사람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그는 여태까지 한 번도 지킨 적이 없었던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고 싶었다. 다이어트에 집중할 수 있었던 또 다른 이유는 당시 촬영 중이던 영화 덕분이다. 양배추는 6월에 개봉할 예정인 이범수·김민선 주연의 영화 ‘그들이 온다’에서 연예인을 꿈꾸는 ‘달식이’ 역할을 맡았다. 제작진은 영화 마지막 부분에 시간이 많이 흐른 뒤의 장면이 나오니까 살을 좀 빼는 것이 어떻겠냐고 권유했다. 마침 양배추는 다이어트를 시작했던 터라 흔쾌히 받아들였고 일주일 뒤, 8kg을 뺀 모습으로 나타나 스태프들을 놀라게 했다.기획 강은영 | 포토그래퍼 임효진 | 여성중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