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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도에는 다섯 개의 산이 흡사 의좋은 형제처럼 남북 방향으로 나란히 솟아 있다. 북쪽부터 별립산, 고려산, 혈구산, 진강산, 마니산이 바로 그 다섯 형제다. 이 중에서 마니산은 ‘마리산’으로도 불리는데 가장 으뜸이 되는 산으로, 이름 그대로 머리에 ‘참성단’이라는 거대한 제단을 얹고 있다. 하늘 제사를 올리는 이 제단은 단군이 쌓은 것으로 전해진다. 바로 이 참성단의 존재로 말미암아 마니산은 그보다 높은 산들을 제치고 단박에 명산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다. 바로 옆에 솟은 진강산이 그렇게 잘난 마니산과는 등지고 앉을 수밖에 없었다는 전설 역시 마니산의 범상치 않음을 드러내는 대목이다.
육지의 산과는 달리 강화의 산은 ‘바다의 섬’이자 ‘바다의 산’이기도 하다. 어느 산에 오르든 바다를 볼 수 있어서 좋고, 하루 종일 눈부시게 반짝거리는 개펄과 끊임없이 불어오는 바닷바람에 심심할 틈이 없어서 좋다. 강화 북쪽에서는 아무리 낮은 산이라도 꼭대기에 오르면 강 건너 북한 땅이 보이며, 날씨 좋은 날에는 멀리 아스라하게 솟은 개성 송악산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그리하여 강화의 모든 산은 고려시대 39년간의 천도 이래로 늘 북녘 하늘이 사무치게 그리운 ‘망향의 산’이나 다름없다. 섬과도 같은 산 강화, 산과도 같은 섬 강화. 아마도 이곳의 산들은 까마득한 고인돌시대부터 여기서 태어나 여기서 살다가 뼈를 묻어온 모든 이들은 물론, 현재 이 땅에 터 잡고 사는 모든 이들과도 벌써 한 몸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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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수사에서 마니산 정상과 참성단으로 이어지는 능선길. 아기자기한 암릉과 더불어 바다를 보며 걷는 즐거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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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발 469.4m인 마니산(摩尼山)은 원래 ‘우두머리 산’이라는 뜻의 ‘마리산(摩利山)’ 또는 이를 한자로 풀이한 ‘두악산(頭嶽山)’이라 불렸다. 고대 이래로 이 산 꼭대기에 참성단(塹星壇)이라는 하늘 제사 올리는 제단이 있었다. 오늘날에도 전국체전 성화를 이곳에서 채화하는 등 성스러운 산으로 중시된다. 백두산과 한라산의 중간 지점에 위치한다든지, 전국의 산 가운데서 가장 ‘기(氣)’가 센 곳이라는 설 등 마니산이 지닌 신비로운 매력을 뒷받침하는 이야기들이 후세 사람들에 의해 덧붙여지면서 이 산이 한국 사람들에게 지닌 의미가 점점 더 크고, 영험한 것으로 발전해왔다.
사실 엄밀하게 따지면 백두산과 한라산을 일직선으로 연결했을 때 그 중간 지점은 남양주시 천마산 서릉상의 이름 없는 봉우리가 된다. 마니산을 중심에 두고 양쪽으로 백두산과 한라산까지의 거리를 따져 보았을 때도 마니산은 정확하게 양쪽으로부터 똑같은 거리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한라산 쪽에 더 가깝게 위치한다. 한라산과 백두산으로부터 똑같은 거리에 있는 산은 오히려 마니산 북쪽에 있는 혈구산이라고 봐야 옳은데, 그도 정확한 중간 지점이 아니라 남쪽으로 6km 정도 떨어져 있는 위치다. 지난 2007년 강화군에서 국토지리정보원의 자료를 인용해 혈구산 정상에 그러한 사실을 알리는 정상 표지석을 세우면서, 한라산과 백두산의 중간 지점이 아니라 ‘한반도의 중심, 강화’라고 새겨 넣은 것도 다 이런 연유에서 비롯된다. 이렇게 보면 후세에 덧붙여진 이야기는 사실에 근거했다기보다 단지 마니산의 성스러움을 좀 더 부각시키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음을 알 수 있다.
마니산은 강화 거석문화의 중심지였다
마니산이 백두산과 한라산으로부터 ‘대충 같은 거리’에 위치한다는 사실은-그러한 위치에 있는 유명, 무명의 산이 수십 개는 되겠지만-하여튼 마니산의 격을 단박에 백두산, 한라산과 같은 반열에 올려놓기에 충분하고도 남는다. 게다가 비슷한 위치에 있는 주변의 어느 산도 참성단을 갖고 있지 않으니 마니산이야말로 ‘한반도 중심에 있는 산’이라는 느닷없는 주장이 의심의 여지없이 먹혀들어간다.
‘한반도 중심론’을 떠나서 보았을 때, 강화도 남쪽 끝자락에 솟은 마니산은 그 높이에 걸맞지 않게 북쪽으로 진강산, 혈구산, 고려산, 별립산 등 400m급 산과 더불어 앞바다에 점점이 떠 있는 석도모 해명산이며 낙가산, 상봉산, 교동도 화개산, 서검도, 미법도, 말도, 불음도, 아차도, 주문도 등을 거느리고 있어 가히 제왕의 기품을 지니고 있다. 특히 강화도 들녘을 가로지르는 길이나 바다에서 보면 참성단이 올라앉은 봉우리를 포함해서 정상부 일대의 전체적인 모습이 흡사 향로를 연상케 해 마치 산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제단과도 같다는 인상을 강렬하게 준다.
지금으로부터 4300여 년 전 단군과 그가 거느린 풍백·우사·운사들로서도 바닷가에 솟은 이 거대한 제단을 그냥 지나칠 리 없었던 것. 수천 년 또는 수만 년이라는 시간적 거리에도 불구하고 사람의 눈은 마찬가지라는 사실을 여실히 입증하는 대목이다. 게다가 강화 일대에는 전 세계에 유래가 없는 청동기시대 이래 거석문화 유적인 고인돌군이 있어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되었을 정도이니, 마니산 참성단이야말로 그러한 거석문화의 중심에 있었으며, 역사시대를 거치면서 잘 정제되고 발전된 형태의 유산이라고 봐야 옳다.
참성단 오르는 길은 하늘에 오르는 길
유사 이전의 역사를 포함해서 근현대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유물을 갖고 있는 강화도는 그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박물관이다. 그 중에서도 마니산이 으뜸이니 이 산에 오르는 것이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특히 마니산 북쪽 기슭, 화도면 상방리에서 단군성전을 거쳐 참성단에 이르는 가파른 계단 길은 끝없이 하늘로 향하고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며, 동시에 경외심을 갖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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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니산 암릉. 산꾼들의 도전 의지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리만치 매력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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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꾼들의 등산로로는 적합하지 않지만 마니산을 처음 찾는 이들은 대부분 이 길로 참성단까지 오르기 때문에 일반인에게 각인되는 마니산의 인상이 가히 절대적인 것에 가깝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고대 제사장들도 바로 이 점을 노렸을 터. 조심스럽게 올라가지 않으면 굴러떨어질 것 같은 가파른 돌계단이야말로 두려움과 더불어 상승의 효과를 극대화한 것이니 마니산을 마니산답게 하는 최적의 장치인 것이다. 그러고 보면 산 중턱에 지은 절집의 계단식 가람 배치는 모두 이 고대 거석문화시대의 제단 배치를 적절하게 카피한 것에 불과하다.
참성단이 가지는 또 하나의 특징은 해발 469.4m인 마니산 꼭대기가 아니라 그보다 서쪽으로 1km 가량 떨어져 솟아 있는 465m 높이의 봉우리에 서 있다는 점이다. 참성단을 세움으로써 두 봉우리의 높이가 거의 같아졌거나 아니면 오히려 약간 더 높아질 수도 있으니 참으로 절묘한 배치인 셈이다. 왜냐하면 예로부터 우리 민족은 산꼭대기에 아무것도 설치하지 않았는데 바로 그 자리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신’의 것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따라서 마니산의 경우에도 산 정상을 피해 제단을 쌓되 ‘천제단’이니만큼 그 높이가 신의 자리와 거의 같도록 배려한 점도 눈에 띄는 것이다.
선두포에서 이룩된 조선 최대 규모의 간척사업
상방리가 아니라 정수사 들머리로 해서 참성단에 오른 이는 눈치를 챘겠지만, 삼각산이나 도봉산 암릉만큼 바위 많은 곳이 바로 마니산 암릉길이다. 군데군데 도사리고 있는 매끈한 화강암의 바위 봉우리들은 산꾼들의 도전 의지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할 정도로 매력적이다. 실제로 이곳에서는 돌아서 가는 길을 놔두고 일부러 바윗길만 골라서 다니는 이들이 부쩍 늘어나고 있는 형편이라 서울 근교 산의 암릉 등반 인파를 방불케 한다.
마니산에서는 북쪽으로 능내리며 도장리, 덕포리 일대에 동서로 넓게 펼쳐진 들판이 시원스럽게 보인다. 그런데 그 들녘 한가운데가 바다였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드물다. 숙종 때인 1706년 강화유수 민진원이 앞장서서 길이 약 300m에 달하는 선두포 둑을 쌓아 바다를 막기 전까지는 한가롭게 드나드는 돛단배들이 그 무렵 나온 강화 채색지도에 뚜렷이 나타나 있다. 현재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는 그 지도가 아니더라도 강화가 원래는 양도면을 포함하는 북쪽의 큰 섬 하나와 남쪽 마니산이 솟아 있는 고가도 이 두 개의 섬이었다는 사실은 여러 자료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하여튼 당시로서는 축성 공사를 제외하고는 단군 이래 최대의 토목공사였던 대역사를 진두지휘해서 성공리에 마친 민진원은 1706년 자랑스럽게 어전회의에 나가서 숙종 앞에 낱낱이 보고했다. 이는 따로 <단암주의(丹巖奏議)>라는 보고서로 전하며, 현재 고려대학교 도서관에 희귀본으로 남아 있다. 그런데 이 일을 어찌하랴. 지리과나 국사학과 학생들의 필수 답사 코스였던 선두포둑은 어느 틈에 널찍한 아스팔트로 포장돼 버렸고, 이제는 남쪽 끝자락에 ‘선두포축언시말비’만 덩그러니 자리를 지키고 있을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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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길잡이
마니산은 동서 방향으로 길게 누워 있으며, 남쪽은 가파른 벼랑을 이룬다. 따라서 등산로는 동쪽의 정수사와 함허동천, 서쪽의 선수리, 남쪽의 상방리 세 군데를 들머리로 한다. 일반적으로 교통이 편리한 상방리에서 918계단을 거쳐 참성단에 오르는 길이 최단 코스이기는 하지만 마니산 산행의 진수를 맛보려면 정수사나 함허동천을 들머리로 하여 선수리까지 종주하는 코스가 제격이다. 정수사 물맛도 보고 암릉등반까지 겸할 수 있는데다, 중간에 마니산 정상을 제대로 밟을 수 있기 때문이다. 상방리를 들머리로 잡는다면 단군로로 올랐다가 참성단을 거쳐 마니산 정상까지 간 후 되짚어서 내려오되, 918계단 길을 하산로로 택하면 원점회귀 산행 코스로 괜찮은 편이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경우, 늘 막차 시간을 염두에 두고 들날머리와 산행 코스 및 시간을 조절해야 한다.
※야영장이 있는 함허동천 들머리는 나름대로 장점이 있으나 정수사까지 내려갔다 와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상황에 따라 정수사를 생략하고 나중에 차편을 이용해 방문하는 것도 방법이다.
※918계단은 한 번 오르면 결코 다시 가고 싶지 않은 길이다. 단군로, 참성로 등 대체해서 오를 수 있는 길을 택한다.
※선수리 쪽 길은 하산로로 잡는 게 좋다. 바다를 보면서 걷는 운치도 있고, 운 좋으면 황홀한 낙조와 더불어 산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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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석모도에서 본 마니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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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허동천 관리사무소~정수사(30분) 함허동천 계곡을 따라 올라가서 와폭을 왼쪽으로 끼고 올라가면 바로 갈림길이 나온다. 여기에서 오른쪽은 초피산에서 마니산으로 이어지는 북동릉으로 올라서는 길이다. 정수사는 왼쪽 길을 택한다. 여의치 않으면 여기에서 바로 마니산으로 올라가도 된다. 정수사 가는 길 중간쯤에서 진달래고개를 지난다. 일단 정수사까지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와야 할 고개다.
정수사~진달래고개(15분) 정수사에서는 법당 서쪽에 있는 ‘냉천수’를 꼭 마시도록 한다. 일부러 다리품을 판 보람이 있다. 이 샘 때문에 절 이름이 ‘정수사(精水寺)’가 됐다니 그냥 지나치면 억울하다.
진달래고개~주능선 삼거리(40분) 정수사 주차장 오른쪽 길로 해서 다시 진달래고개까지 가서 이번에는 왼쪽 길을 택한다. 오른쪽 길은 함허동천에서 넘어온 길이다. 여기에서부터는 멋진 암릉길이 시작된다. 자신이 없으면 무조건 돌아가는 길을 택한다. 주능선 삼거리에서는 초피산으로 이어지는 북동릉 길과 만난다.
주능선 삼거리~마니산 정상(5분) 삼거리에서 마니산 정상까지는 로프와 철다리 등이 설치된 바위 지대가 이어지며 마니산 최고의 조망이 사방으로 펼쳐진다. 마니산 정상에는 별도의 표지석 없이 안내판과 삼각점이 있다. 대개는 여기가 마니산 정상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그냥 지나친다.
마니산 정상~참성단(30분) 정상에서 참성단으로 이어지는 능선 길은 바위의 연속이다. 참성단 거의 다간 지점 오른쪽 바위에 글씨가 새겨져 있다. 1716년 강화유수 최석항이 무너져내린 참성단을 수리하고 남긴 ‘참성단중수비’다. 이후 헬기장과 안부를 지나면 참성단에 이른다.
참성단~314봉(50분) 참성단에서는 상방리에서 올라오는 918계단 길과 만난다. 단군로는 참성단 북쪽을 우회해서 선수리 쪽 능선 길을 잡는다. 짤막한 급경사 구간을 내려서 425봉을 지나 암릉 구간을 지나면 좌우 조망이 환상적이다. 300여 계단의 데크 길과 경사 내리막이 이어진다. 315봉 직전 안부에서는 단군성전에서 올라오는 길과 만난다.
314봉~매표소(40분) 315봉에서 소나무와 바위가 어우러진 능선 길을 따르면 314봉에 이른다. 내려가다 바로 약수터 갈림길이 나온다. 마니산 관광지 안내판이 있다. 여기에서는 오른쪽 길을 택한다. 곧장 가는 길은 선수리 쪽으로 내려가는 길이다.
>>대중교통
신촌 터미널에서 마니산행 직행버스가 1시간 간격(06:40~20:00)으로 다닌다. 강화행은 10분 간격(05:40~22:00) 운행. 강화운수 02-324-0611. 영등포역(여의도 방면으로 약 100m) 앞 강화행 시외버스정류장에서는 강화행 완행버스가 10~20분 간격(05:45~22:20)으로 다닌다.(032-934-4343) 강화읍내 터미널(032-934-9811)에서 마니산행 군내버스(첫차 06:10)가 하루 22회, 정수사행 버스(첫차 06:00)가 하루 31회 다닌다.
마니산 국민관광지 부근의 화도 정류장에서 함허동천행 시내버스(선진버스) 1일 7회(06:45, 08:50, 10:30, 14:20, 15:15, 19:00, 20:25) 운행. 화도 정류장 032-937-3645. 선진버스 032-933-6801. 화도택시 032-937-7726.
>>자가 운전
올림픽대로 끝 지점에서 강화·김포 방향 제방도로를 따라 계속 직진, 송전탑이 서 있는 운양 삼거리까지 간다. 대곶·양촌 방향으로 우회전, 초지대교를 건너면 강화도다. 정수사와 함허동천은 초지대교 삼거리에서 좌회전 후 해안도로를 따라서 직진한다. 가천의대를 지나 3.2km 직진하면 길화교 삼거리에 이른다. 여기에서 좌회전하면 선두포둑 위를 지난다. 길화교 삼거리에서 2.4km 직진하면 함허동천 입구를 지나고 다시 0.6km 직진하면 오른쪽으로 정수사 진입로가 나온다. 여기에서 정수사까지는 1.3km다.
상방리는 초지대교를 건넌 후 삼거리에서 우회전한다. 초지진을 지나 84번 지방도 초지삼거리에서 전등사 입구 쪽으로 좌회전한다. 온수사거리가 나오면 좌회전해서 마니산 방향 이정표를 보고 덕포리 쪽으로 향한다. 온수사거리에서 상방리 마니산 국민관광지 주차장까지는 7km 거리다.
>>숙박
화도면 장화리 신선놀이펜션(032-937-6588, www.sinsunnori.com), 마니산산장(032-937-3113), 파인힐모텔(032-937-9317), 함허동천민박(032-937-7878), 이레가든민박(032-939-4451). 강화지역 숙박 정보는 강화군청 홈페이지(www.ganghwa.incheon.kr)에 접속해 ‘살기좋은강화→강화지리정보→지역정보서비스’를 이용하면 업소의 특징, 위치, 가격 등 상세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함허동천에는 4개 지역에 소형 텐트 500동 수용 규모의 야영장이 있다. 이용료(당일/1일 추가 시) : 소형 2,000/1,000원, 중형 3,000/1,500원, 대형 4,000/2,000원. 마니산 국민관광지 관리사무소 032-937-1624, 함허동천 매표소 032-937-4797, 함허동천 시범야영장 관리사무소 032-937-4797.
※마니산 국민관광지 입장료(개인/30인 이상 단체) : 어른 1,500/1,200원, 청소년 800/500원, 어린이 500/300원. 입장 시 인원수에 비례해 쓰레기봉투를 의무적으로 구입해야 한다.
>>먹거리
마니산 아래 화도터미널 맞은편 연안식당(무쇠솥밥집 032-937-1009), 강화읍내 중앙시장 우리옥(032-934-2427). 선수포구 어판장은 전국적으로 유명한 밴댕이촌으로 밴댕이 전문 횟집만 10여 곳이 몰려 있다. 5~7월이 제철이며 밴댕이젓과 새우젓 등을 싸게 살 수 있다. 가까이에 낙조로 유명한 장화리 낙조 조망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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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니산 주변명소
정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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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등사, 보문사와 함께 강화 3대 고찰 중 하나로 마니산 동쪽에 자리잡고 있다. 639년(신라 선덕여왕 8년) 회정선사가 창건 당시 정수사(精修寺)라 했던 것을 1423년(조선 세종 5년) 함허대사가 중창해 법당 서쪽에 맑고 깨끗한 샘이 있는 것을 보고 지금의 이름으로 고쳤다. 법당(보물 161호)의 후면 공포는 건축 당시의 세부 건축 형식을 가장 잘 보여주며, 꽃문살의 독특한 아름다움은 널리 알려져 있다. 1957년 법당을 보수 공사하던 중 1688년(숙종 15년) 수리 당시의 상량문이 발견되어 1423년 중창임을 알 수 있게 되었다. 유서 깊은 가람답게 주위로는 수백 년생 느티나무가 자라고 있다.
참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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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4년 사적 136호로 지정됐다. 상고시대 단군이 쌓았다고 전해진다. 면적은 5.593㎡이며, 상단 방형 한 변의 길이가 1.98m, 하단 원형의 지름 4.5m. 전체 높이는 5m 가량 된다. 자연석을 다듬어 반듯하고 납작하게 만들어 쌓았고, 돌과 돌 사이의 사춤에 아무 접착제도 바르지 않았다. 자연석으로 둥글게 쌓은 하원단과 네모 반듯하게 쌓은 상방단 이중으로 구성하고, 상방단 동쪽 면에는 21개의 돌층계를 설치했다. 1639년(인조 17년)과 1700년(숙종 26년)에 중수했다. 참성단은 훼손을 우려해 평소 공개하지 않으며, 매년 12월 31일과 1월 1일, 10월 3일에 개방한다.
천제암 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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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에서 천제를 지낼 때 사용하는 제기와 제물 등을 준비하던 곳. 정확한 건립 연도는 미상이며, 고려시대에 세워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삼단 석축과 약 70평 면적의 터에 돌기둥 4개가 남아 있으며, 근처 바위에 금표 표지와 우물도 있다. 마니산 관광단지에서 전등사 방향으로 가는 길목의 문곡부락 버스 정류장에서 개울을 거슬러 올라가 상수원보호구역 표지판을 지나 산으로 난 오솔길로 20분쯤 올라간 곳에 있다. 별도의 유적지 안내 표지판은 없다.
전등사
- 창건 연대는 확실치 않으나 고려 왕실의 원찰로서 진종사(眞宗寺)라 불려왔다. 전등사란 명칭은 고려 충렬왕 8년(1282년)에 왕비 정화궁주가 옥등잔을 부처님께 바친 데서 유래한다. 보물 178호인 대웅보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집으로 광해군 13년(1621년)에 지어진 조선 중기 건축물로서는 으뜸이다. 특히 내부의 불단 위에 꾸며진 닫집의 화려정치(華麗精緻)한 아름다움은 건축공예의 극치다. 고종 3년 병인양요 때 프랑스군에 대항해 결사호국의 각오로 전투에 임했던 장병들이 무운을 빌기 위해 대웅보전의 기둥과 벽면에 자신들의 이름을 써놓은 흔적이 지금도 곳곳에 남아 있다. 보물 179호인 약사전을 비롯한 10동의 건물과 11세기 중국 북송 때 만들어진 보물 393호인 범종, 유형문화재 26호인 순무천총양헌수승전비, 지방문화재 7호인 대조루, 실록과 왕실세보(王室世譜)를 보관했던 장사각지와 선원보각지, 전설이 서려 있는 나녀상, 열리지 않는 은행나무, 우는나무 등 많은 고목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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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
>>승용차 (강화 가는 빠른 길)
48번 국도 김포시 구간 피해서 가야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에서 전통적으로 강화로 가는 길은 48번 국도다. 그러나 최근 들어 김포시가 팽창하면서 48번 국도의 김포시 구간을 통과하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이를 피하고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보통 올림픽도로에서 이어지는 78번 한강제방도로를 이용한다. 그러나 제방도로 역시 일산대교가 개통되면서 부분적으로 병목현상이 발생하는 경향이 있어 예전 같지 않다. 도시외곽순환고속도로에서는 김포나들목에서 빠져나와 제방도로를 탈 수 있으며, 강북에서는 자유로 이산포나들목에서 일산대교로 건넌 후 제방도로를 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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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초지대교 야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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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포나들목으로 빠져나올 경우 맨 우측 소형차 전용차선을 택해 80m쯤 직진 후 영사정길로 우회전한다. 대보천을 오른쪽에 끼고 왕복 2차선인 영사로를 1.2km 가면 오른쪽으로 대보천을 건너 농로로 이어지는 갈림길이 나온다. 이 길을 따르면 도시외곽순환도로 김포나들목으로 갈 수 있다. 귀경길에 활용할 만한 지름길이다. 갈림길에서 계속 직진해서 500m쯤 가면 영사정경로당을 지나 영사정 삼거리에 이른다. 여기서 오른쪽 영사대교를 건너서 오는 길은 행주대교 남단에서 이어지는 78번 한강제방도로다. 영사정 삼거리는 신호등이 없기 때문에 양보 운전이 필수다. 계속 직진해서 7.9km 가면 일산대교 밑을 지난다. 여기서 4.2km 직진하면 운양삼거리에 이른다. 왼쪽 길은 356번 지방도로 초지대교를 건너려면 이 길을 택한다. 오른쪽은 하성까지 이어지는 제방도로로 월곶면 소재지를 지나 48번 국도를 타고서 강화대교를 건넌다.
자유로 이산포나들목에서 일산대교를 건넜을 경우, 다리를 건너자마자 오른쪽 차선으로 진입해서 300m 직진 후 오른쪽 갈림길을 택해서 우회전한다. 이 길을 따라서 600m 직진하면 제방도로와 만나는 신항삼거리에 이른다. 강화로 가려면 여기서 좌회전해 운양삼거리까지 직진한다.
운양삼거리에서 356번 지방도를 따라 초지대교까지는 13km, 제방도로를 따라서 강화대교까지는 18.8km다. 제방도로로 갈 경우 운양삼거리에서 7km 가면 하성사거리에 이르는데 여기서 하성면 소재지 쪽으로 우회전하지 말고 직진하는 길을 택해야 2km 정도 단축할 수 있다. 하성사거리에서 7.6km 직진하면 56번 지방도와 만나는 삼거리에 이른다. 여기서 좌회전해서 월곶면 소재지를 지나 1.3km 더 가면 48번 국도와 만난다. 강화대교는 여기서 1km쯤 더 간다.
>>버스
강화터미널(강화운수) 032-934-4363
신촌시외버스터미널 02-324-0611
인천시외버스터미널 032-430-7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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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운행 시간은 계절 등 사정에 따라서 변경될 수 있다.
* 군내버스 시간표는 강화군청 홈페이지(http://www.ganghwa.incheon.kr)에서 다운 받을 수 있다.
>>여객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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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부근 바다에서 밴댕이가 많이 잡히는 철은 대략 5월 초에서 6월 초 사이, 한 달 가량이다. 밴댕이회는 바로 이때가 가장 맛있다. 황산도나 선두포, 선수리 등에 있는 횟집들은 고깃배 이름을 상호로 하고 있는데 싸고 푸짐한 회를 즐길 수 있다.
삼랑성 꽁보리밥·나물뷔페·메밀총떡 (032)937-0397 길상면 온수리
비빔국수 40년 전통의 국수집 (032)933-7337 강화읍 관청리(우리은행 골목)
우리옥 56년 전통의 백반 전문점 (032)934-2427 강화읍 신문리(중앙시장 뒤)
왕자정묵밥집 묵밥·콩비지백반·손두부 (032)933-7807 강화읍 관청리(고려궁지 옆)
알미골 선비탕·인삼영양돌솥밥 (032)934-3962 강화읍 갑곶리
갈비성 강화섬정식 (032)932-7333 강화읍 남산리
초지대교영빈관 장어구이 (032)937-9212 길상면 초지리
서해복집 복어회 (032)933-7515 하점면 창후리
하늘정원 바비큐정식 (032)937-7595 화도면 장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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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우리옥 2 육필박물관 3 왕자정묵밥집 4 초지대교 부근 해수탕과 식당가 5 강화온천스파월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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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안내
역사관 관광안내소 032-932-5464
고인돌 관광안내소 032-933-3624
초지진 관광안내소 032-937-9365 터미널 관광안내소 032-930-3515
외포리 관광안내소 032-934-5565 강화군청 문화관광과 032-930-3625
숙소
강화해수온천장 (032)933-1479,
강화온천스파월드(콘도) (032)937-3300 - http://www.ganghwa-spa.com/
바닷가뜨락팬션 (032)937-7552
별빛가람팬션 (032)932-8585
해넘이팬션 (032)937-2626
인천 명소 시티투어 버스
출발지 : 경인전철 인천역 앞. 종합관광안내소에 있는 강서관광에서 매표한다. 어린이나 청소년은 정상 요금에서 50% 할인.
문 의 : 강서관광(032-772-4000), 인천시 관광진흥과(032-440-4055). 하절기인 4~10월 매주 토·일요일에만 운행한다. A·B 두 개 코스로 나눠 각각 하루 동안 버스를 타고 도는 당일치기 관광 방식이며, 요금은 1만 원이다.
A코스(오전 9시30분~오후 6시30분)
인천역~연미정~화문석박물관~제적봉 안보관광지~부근리 강화지석묘(고인돌)~고려궁지~선원사 터~강화역사관~인삼센터~인천역
B코스(오전 10시~오후 7시)
인천역~초지진~전등사~동막해수욕장~강화갯벌센터~장곶돈대 낙조 조망지~농경문화관~덕진진~광성보~인천역
아름다운 사람들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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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공유의 장 '새로운 삶 인생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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