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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건제의 의미
레위기 5:1-19(구p.150) 찬송 266장 / 사도신경 / 찬송 250장 20220209
오늘도 함께 읽은 이 레위기 5장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를 우리가 함께 나누기를 원합니다.
여러분 레위기의 제사제도는 죄인들이 죄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오늘날의 예배의 원리를 설명한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성도들은 이 레위기의 말씀을 잘 읽지도 않고, 그 의미도 잘 모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바른 예배를 드리기가 쉽지 않은 것입니다.
우리가 많이 보는 신약 성경에는 예배에 대한 제사한 내용을 기록해 놓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이 레위기 율법에 다 설명해 놓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레위기의 제사제도를 통해 예배의 원리를 잘 알아야 바른 예배를 드릴 수 있고, 바른 은혜를 받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오늘도 레위기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죄인들에게 베푸시는 은혜의 방법들을 잘 듣고 잘 배우시기를 바랍니다.
이 레위기 5장에는 다섯 가지 제사제도 중에 속건제에 대한 규례를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이 속건제는 레위기 4장에 나오는 속죄제와 함께 회개를 상징하는 제사입니다.
속건제라는 말은 “속할 속자에 허물 건 자를 써서, 허물을 사하기 위해 값을 지불하는 제사” 라는 뜻입니다.
이 속건제도 속죄제와 같이 죄를 속하기 위한 제사로서 회개를 의미합니다.
그런데 이 속죄제와 속건제가 다른 것이 있다면 이 속건제는 주로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지은 죄를 속하는 제사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 죄를 지은 것은 그 계명을 어기거나 말씀을 어긴 죄를 하나님께 자백하고, 회개하면서 제물을 드려 속죄하면 됩니다.
그러나 사람들에게 피해를 입힌 것은 하나님께 회개도 해야 되겠지만 그 당사자를 찾아가서 용서를 구해야 하고 또 물적인 피해를 입혔다면 갚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속건제의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이 속건제는 주로 이웃에 대한 죄를 회개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또 부지중에 지은 죄, 모르고 지은 죄, 실수로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입혔을 때 당사자를 찾아가서 서로 대화를 통해 죄를 고백하고 다 회개해야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하나님께서는 그 죄를 용서하시고 회복의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레위기 5장을 보시면, 4장과 연결 되어 지면서, 1절 말씀에 보시면 “만일 누구든지 저주하는 소리를 듣고서도 증인이 되어 그가 본 것이나 알고 있는 것을 알리지 아니하면 그는 자기의 죄를 져야 할 것이요 그 허물이 그에게로 돌아갈 것이며”라고 말씀을 합니다.
말을 참 어렵게 번역을 해 놓았지만, 이 말은 “법정에서 내가 증인이 되었을 때 위증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다른 사람의 죄를 알았다면 손해가 되거나 불이익을 당해도 바르게 말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떤 이유에서든지 바른 말을 하지 않으면 그것이 다른 사람에게 죄를 짓는 것이다! 라고 말씀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2절 말씀에 “만일 누구든지 부정한 것들 곧 부정한 들짐승의 사체나 부정한 가축의 사체나 부정한 곤충의 사체를 만졌으면 부지중이라고 할지라도 그 몸이 더러워져서 허물이 있을 것이요”라고 말씀을 합니다.
여러분 이 말은 율법에 부정한 것이라고 규정한 것들 즉 짐승의 사체를 만지거나 접촉을 하게 되면 부정해져서 하나님께 나올 수 없고, 또 그 부정을 제거하기 전에는 은혜를 받지 못하는 상태가 됩니다.
여러분 이런 상태에서 내가 모르고 다른 사람과 접촉을 하게 되면, 다른 사람을 부정하게 만드는 그런 죄를 짓게 되는 것입니다.
만약 내가 모르고 이런 부정한 자가 되었다 할지라도 그것을 깨닫게 되어지면 이것이 다른 사람에게 죄가 된다는 것입니다.
또 4절 말씀에는 “만일 누구든지 입술로 맹세하여 악한 일이든지 선한 일이든지 하리라고 함부로 말하면 그 사람이 함부로 말하여 맹세한 것이 무엇이든지 그가 깨닫지 못하다가 그것을 깨닫게 되었을 때에는 그 중 하나에 그에게 허물이 있을 것이니”라고 말씀을 합니다.
여러분 이것은 경솔한 맹세에 대한 죄를 말합니다.
내가 지키지도 못할 약속을 너무 쉽게 함부로 말해서 그 약속을 어기거나 지키지 못하면 그것도 다른 사람에게 죄가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런 세가지 경우에 우리가 그냥 모르고 지나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이것이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다 죄가 된다는 것입니다.
이 죄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여러분 이 것 때문에 마음이 상하고, 또 상처가 되고, 사이가 멀어지고 공동체 속에 화평이 깨어지는 그런 원인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사소한 것이라도 다른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죄가 드러나게 되면, 깨달아지면, 자백하고 속죄제물을 받치게 되는데 여러분 이것이 속건제라고 말씀을 합니다.
그래서 5절 말씀을 잘 보시면
“이 중 하나에 허물이 있을 때에 아무 일에 잘못하였노라 자복하고 / 그 잘못으로 말미암아 여호와께 속죄제(속건제)를 드리되 양 떼의 암컷 어린 양이나 염소를 끌어다가 속죄제를 드릴 것이요 제사장은 그의 허물을 위하여 속죄할지니라”라고 말씀을 합니다.
여러분 여기 잘 보시면 먼저 자기 허물, 이 죄에 대해서 “아무 일에 잘못하였 노라 자복하고” 자기 죄의 고백을 하고 서로 관계를 회복하라! 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나와 속제의 제물을 받치라! 고 말씀을 합니다.
그런데 여기 잘 보시면 “속죄제”라고 기록을 하고 있는데 사실은 원문에 보면 “속건제”라고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이 말은 “속죄제나 속건제는 같은 의미가 있다”는 뜻입니다.
그 범위와 대상이 다를 뿐이지 사실은 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죄를 지었든 또 사람들에게 죄를 지었던 다 같이 하나님 앞에 죄를 지은 것입니다. 그것을 굳이 구별하자면 속죄제와 속건제라고 말할 수 있지만 죄가 드러났을 때 제물을 받치고 회개하는 것은 똑 같은 것입니다.
그리고 만약 죄를 지은 사람이 어린양이나 염소를 살 돈이 없을 만큼 가난한 사람이면 어떻게 하느냐?
여러분 7절 말씀에 보시면 “산비둘기나 집비둘기 새끼 두 마리를 사서 여호와께 제물로 바치라”라고 말씀을 합니다.
여러분 이 말은 아무리 가난해도 병아리 한 마리 살 돈은 있다는 겁니다. 그러므로 가난한 자도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런 비둘기 새끼를 살 돈도 없는 사람이 있다면 어떻게 하느냐?
여러분 11절 말씀에 보시면 “집에 있는 곡식을 가지고 나와서 제물로 바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누구든지, 부자나 가난한 사람이나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허물이 있고 죄가 있으면 자백하고 하나님께 나와 속죄의 제물을 받치게 될 때 모든 관계 속에서 화평의 복이 임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을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속건제의 정신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 사람의 마음을 상하게 한 것 뿐만 아니라 물건의 피해를 입혔을 때 그것을 배상을 해 주어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물건이든지, 사람의 물건이든지 그 피해를 입혔을 경우에도 속건제를 드리라고 말씀을 합니다.
여러분 15절 말씀에 보시면, 하나님의 물건, 성물에 피해를 입혔을 경우에 1/5을 더해서 보상하고 속건제를 드려야 합니다.
여러분 16절 말씀에 보시면
“성물에 대한 잘못을 보상하되 그것에 오분의 일을 더하여 제사장에게 줄 것이요 제사장은 그 속건제의 숫양으로 그를 위하여 속죄한즉 그가 사함을 받으리라”라고 말씀을 합니다.
여러분 이 하나님의 성물이라는 것은 하나님께 구별하여 드려야 할 예물들을 말합니다.
십일조라든지 첫 열매라든지 하나님께 드리기로 작정한 감사의 이런 예물들을 내가 먹거나 쓰게 되면 그것은 성물을 범한 죄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것의 1/5을 더해서 갚고 속죄의 제물을 드려야 합니다. 이것이 속건제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것을 구별할 때 하나님께서 그 믿음을 보시고 부족하지 않도록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만약 이것을 구별하지 않고 하나님의 것을 내 것처럼 써버리면 하나님께서 알아서 가져가 버리십니다. 그러니까 복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늘 힘들다 모자란다 하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말씀대로 순종하는 자들은 절대로 부족함이 없는 그런 삶을 살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17절 말씀에 “부지중에 죄를 지었을 때, 모르고 죄를 지었을 때”
“만일 누구든지 여호와의 계명 중 하나를 부지중에 범하여도 허물이라 벌을 당할 것이니”라고 말씀을 합니다.
여러분 이 부지중에라는 말은 “모르고 실수로 죄를 지었을 때”라는 말입니다.
여러분 실수로 여호와의 계명을 어겨서 다른 사람에게 손해를 끼쳤다가 나중에 그것을 알게 되면, 그것도 죄가 되기 때문에 속죄의 제물을 드려 속하라고 말씀을 합니다.
그래서 18절 말씀에 보시면
“그는 네가 지정한 가치대로 양 떼 중에 흠 없는 숫 양을 속건제물로 제사장에게 가져갈 것이요 제사장은 그가 부지중에 범죄한 허물을 위하여 속죄한즉 그가 사함을 받으리라”라고 말씀을 합니다.
여러분 모르고 지은 죄가 다른 사람에게 피해가 되었을 때 모르면 할 수 없지만 하나님께서 알게 하셨을 때는요, 반드시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야 서로의 관계가 회복이 되어 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6장에는 사람에게 물건의 피해를 입혔을 때 반드시 보상을 해 주어야 합니다.
여러분 6:2-5절까지 말씀을 잘 보시면
“누구든지 여호와께 신실하지 못하여(불성실서) 범죄하되 곧 이웃이 맡긴 물건이나 전당물을(담보물) 속이거나(거짓말로) 도둑질(강탈)하거나 착취(압박) 하고도 사실을 부인하거나(거짓말) / 남의 잃은 물건을 줍고도 사실을 부인 하여(거짓말하여) 거짓 맹세하는 등 사람이 이 모든 일 중의 하나라도 행하여 범죄하면 / 이는 죄를 범하였고 죄가 있는 자니 그 훔친 것이나 착취한 것이나 맡은 것이나 잃은 물건을 주운 것이나 / 그 거짓 맹세한 모든 물건을 돌려 보내되 곧 그 본래 물건에 오분의 일을 더하여 돌려보낼 것이니 그 죄가 드러 나는 날에 그 임자에게 줄 것이요” 라고 말씀을 합니다.
여러분 이 말씀은요, 여호와께 신실하지 못한 자, 즉 불성실 한자, 믿음이 없는 자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물질이나 물건의 피해를 주는 죄”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맡긴 물건, 전당물을 가지거나, 속여서 빼앗거나, 아예 대놓고 도둑질하거나 또 힘으로 착취해서 빼앗거나, 또는 남이 잃어 버린 물건을 줍고도 부인하고 거짓말해서 가진 것” 이 모든 것이 욕심에서 나온 죄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4절 말씀에 보시면,
“훔친 것(몰래 빼앗는 것), 착취한 것(힘으로 빼앗는 것), 맡은 것이나 잃은 물건을 주운 것(내 것이 아닌데 내 것처럼 가지려고 하는 것), 거짓으로 빼앗은 것(남을 속인 것)” 이 모든 것이 다 이웃에 대한 죄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이런 것들이 죄라는 것이 깨달아지면 중요한 것은 “다 돌려 보내라! 그것도 1/5을 더해서 배상해 주어라, 원상복귀하라”는 것입니다.
참 쉽지 않는 일입니다. 내 욕심이나 자존심을 내려놓고 이 말씀을 믿는 믿음으로 순종해야 하는 겁니다.
그런데 이렇게 바른 속건제를 드리게 된다면“내가 죄에서 놓임을 받게 되고, 또 이웃과의 관계 속에서 회복하고 화평하게 되는 복을 받게 된다” 고 말씀을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렇게 속건제는 속죄제 보다 그 범위가 훨씬 넓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 앞에 죄를 지은 것이나 사람에게 죄를 지은 것이나 하나님의 물건이나 사람의 물건에 피해를 입혔을 때나 부지중에 모르고 지은 죄가 있을 때 다 하나님께 나와 자백을 하고 회개할 때 그 죄에서 놓임을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삶의 모든 부분에서 죄가 드러날 때 이 속건제를 드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죄인들에게 이런 속제죄나 속건제를 말씀하시는 이유는, 누구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어길 수 있고, 사람들에게 죄를 지을 수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이런 제사제도를 통해, 죄를 속할 수 있는 방법을 우리들에게 가르쳐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말씀의 의미를 알아듣고 우리 삶 속에서 이 속죄제와 속건제를 바르게 행하게 되면,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시켜 주시고, 또 사람들 간에 관계 속에서도 화평의 복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성도는 죄악 된 세상 속에서도 하나님 앞에서는 은혜를 누리고, 또 사람들 속에서는 평화의 복을 받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게 쉽지가 않습니다. 그래서 이 말씀이 이루어지도록 우리가 기도를 해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게 진짜 성도가 해야 될 기도 입니다.
그래서 신약성경에 보시면 예수님께서 이 속건제를 말씀을 하십니다.
여러분 마태복음 5:23절 말씀에 보시면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라고 말씀을 합니다.
여러분 예물을 드리러 갈 때, 예배를 드리러 갈 때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생각이 나거든, 하나님께서 깨닫게 하면” 그 예물을 두고 먼저 “형제와 화목 하라, 속건제를 드리라”고 말씀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 믿음과 그 삶 위에 복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만약 이렇게 하지 않으면 우리의 예배도 그냥 내 욕심으로 모이는 예배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배를 드리러 나올 때 먼저 남편과 아내가 화목해야 하고, 또 부모와 자녀가 화목해야 하고, 또 내 이웃과 화목해야 하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세상 사람들과도 화목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바로 예배의 자세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드리는 이 예배 가운데 하나님과의 관계회복과 가족과 이웃과의 관계회복을 통해 진정한 평화를 누리는 자들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세상 속에는 진정한 평안이 없습니다.
누군가 내가 이겨야 하고, 누군가의 경쟁에서 앞서가야 인정을 받고 또 많은 것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내가 이익이 있을 때만 사랑을 베풀고, 내 유익을 위해서 내가 서비스도 하고 친절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실은 평안을 누리기보다는 스트레스를 더 받게 되는 겁니다.
여러분 세상에서는 자기의 유익을 위해 도움이 되는 사람에게만 잘 해주고 잘 지냅니다. 내 마음에 안 들면 쳐다 보지도 않습니다. 왕따를 시켜 버립니다.
그러나 성도는 그렇지 않습니다. 모든 사람들에게 유익을 주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모든 사람과 화목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내가 교회에서 내게 잘해 주는 사람과만 잘 지내고 유익이 되지 않는 사람에게 상처를 준다면, 그 사람은 진정한 복을 받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이 레위기 말씀을 통해 속건제의 정신을 바로 깨달아서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속에서 바른 회개의 삶을 살고 바른 예배를 드릴 때 평화의 복을 받아 누리는 그런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우리가 레위기 5장까지 다섯 가지 제사제도를 살펴 보았는데요,
이 제사제도의 의미를 우리가 잘 파악을 해야 합니다.
여러분 이 레위기의 제사제도는 사실 이 땅에 사는 하나님을 믿는 성도로서 세상에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구별되는 가장 좋은 방법이 바로 예배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이 예배는 내가 뭔가 드려서 받아내는 것이 아니라, 내가 열정으로 나아가서 하나님께 잘 보이는 것이 아니라 예배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세상 속에서 구별하는 방법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레위기의 제사제도는 오늘 우리가 하나님께 드릴 예배의 정신이 무엇인지를 설명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예배를 통해서 죄의 문제를 해결하고 죄에서 구별될 때 그 사람을 구별된 사람, 거룩한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 거룩함을 통해 우리가 세상사람과 다르다는 것을 보여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신약 성경에 보면 사도 바울이 우리가 드릴 예배가 무엇인가? 해석을 해 놓았습니다.
여러분 바울이 말하는 예배의 정의를 한번 보겠습니다.
로마서 12:1-3절까지 말씀을 한번 찾아 보시기를 바랍니다. 바울의 말을 한번 들어 보겠습니다. 바울이 말하는 예배가 무엇인지를 한번 찾아 보겠습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라고 말씀을 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드리는 영적인 예배는
이 세대를 본받지 않고,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한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며 살아가는 삶을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려라! 삶으로 살아라! 그렇게 말씀을 하는 겁니다.
어떻게 보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진정한 예배는
예배당에 앉아서 거룩한 모습을 엎드리는 것보다 내가 살아가는 일주일의 삶 가운데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기억하면서 세상 사람들 앞에서 거룩하게 살아가는 삶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예배 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레위기에 기록된 다섯 가지 제사제도를 통해 우리가 드릴 예배가 어떤 것인가? 그 예배의 정신을 깨달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번제와 소제정신으로, 나 자신이 하나님께 다 드려지는 헌신의 삶을 살고
화목제의 정신으로, 내게 주신 은혜와 은사를 서로 나눠주고 사랑을 베풀고 살아가며,
또 속죄제와 속건제의 정신으로, 하나님 앞에 회개의 삶, 겸손의 삶, 내 이웃들에게 화목하고 화평하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는 삶을 살아감으로 이 땅에서도 천국의 모습을 경험하며 살아가는 그런 성도가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런 제사제도의 형식자체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때문에 없어졌지만, 이 예배의 의미나 이 예배정신은 오늘 우리가 드리는 이 예배를 통해 그대로 전달 되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도 이 바른 예배를 통해 하나님 앞에 구별 되이 살아갈 때 하나님이 주시는 이 평화의 복을 받아 누림으로 일평생 행복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의 이런 영적인 삶의 모습이 되실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주기도문
합심기도
1. 오늘도 우리가 이 레위기 말씀대로 예배의 삶을 살 때 여육의 복을 받게 하옵소서.
2. 나라와 민족과 섬기는 교회와 가정을 위해 우리 자녀들을 위해서
3. 개인의 기도제목을 따라 기도하시고 또 오늘 하루 삶을 시작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첫댓글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