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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홍성역은 지금보다 약간 더 읍내 쪽에 붙어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읍내가 커져 시가지가 확장되면서 1967년 현재의 위치로 이설하고 역사를 새로 짓게 된 것이다.
대부분 단선철도 장항선은 2006년 온양온천역 구내 이전 전까지는 전혀 이설이 되지 않은 줄 알지만,
사실 장항선 선형개량의 최초 희생양은 '홍성역'이었다.
다만 그 구간이 너무나 짧고, 세월이 흘러 선로가 노후화 되었기 때문에 티가 전혀 나지 않는 것일 뿐이다.
시가지의 확장으로 지금의 위치로 옮겨졌다고는 하지만 이설 이후로 별다른 진전이 없었던 것 같다.
홍성읍내는 '읍'이 아닌 '시'의 분위기가 물씬 풍겨질 정도로 상당히 발전되어 있지만,
정작 홍성역에 내려서 본 홍성읍의 모습은 시골 그 자체다.
중심가와는 버스정류장으로 약 3정거장 차이가 나는데다 이설 이후 역 앞엔 별다른 발전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나마 홍성터미널과 홍성장례식장이 역 앞으로 옮겨왔기에 읍내의 분위기가 조금이라도 느껴지는 것이다.
홍성역과 홍성터미널은 걸어서 가도 전혀 문제가 없을 정도로 아주 가깝다.
역과 터미널이 가까운 것이 여기에선 더욱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데,
바로 태안, 서산, 청양 등 주변 지역으로 들어가는 입구이기 때문이다.
홍성터미널에선 홍성과 전혀 관계없는 해미읍성, 덕산온천, 수덕사, 청양읍내를 시내버스로 이동할 수 있으며,
서해안의 최고 관광지인 태안, 서산, 그리고 청양고추로 유명한 청양으로도 시외버스가 수시로 운행한다.
그래서 홍성역까지 열차를 타고 내려와 버스로 환승하는 승객들이 정말 많다.
이 곳에선 역과 터미널이 '경쟁관계'가 아닌 하나의 '공생관계'인 셈이다.
겉은 매력이라곤 눈꼽만큼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밋밋하지만,
속은 향토적 느낌이 곳곳에 배어나는 매력 덩어리이다.
역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서예와 한국화들이 분위기를 압도하기 시작한다.
홍성역을 방문하는 것은 이번이 벌써 세 번째인데,
열차를 이용하기 위해 잠시 들리기만 했었던 곳을 샅샅이 보게 되니,
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매력들이 심금을 파고든다.
장항선 역 방문을 위해 잠시 방문하고, 또는 정읍의 할머니 댁으로 내려가기 위해 자주 지나갔던 홍성.
그렇기에 나에게는 무척 익숙한 고장이었지만 그저 광천 젓갈, 안면도의 관문 정도로만 인식되고 있었다.
하지만 네 번째로 방문한 홍성은 그 전의 홍성과는 전혀 다른 곳이었다.
비록 유물 사이에 끼인 시간표처럼 옥의 티가 약간은 있을지 몰라도.
사실 이번 방문 전까지만 해도 홍성은 나에겐 별 특징이 없는 그저 그런 충남 서해안의 조그만 고장에 불과했었다.
하지만 최영 장군, 성삼문, 한용운, 김좌진 등 나라를 위해 헌신했던 위인 분들이 모두 홍성 출신이고,
한 때 충남 일부 지역을 총체적으로 관할했던 '홍주성' 또한 홍성의 자랑스런 유적이다.
경주처럼 역사의 흔적을 멋지게 내뿜는 것이 아닌,
자신의 모습을 당당하게 드러내지 않고 시나브로하게 솔솔 뿜어내는 고장이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멋있다.
'지나친 절제' 덕분에 상당히 답답하기도 구석도 있긴 하지만,
경주처럼 모든 것을 드러내는 '지나친 당당함'으로 인해 온통 황폐화되는 것보다는 나은 것 같다.
홍성역도 홍성의 역사와 같이 흘러간다.
세월에 따라 모습이 점층적으로 바뀌어가며, 홍성역의 역할 또한 바뀌어간다.
그리고는 '두 번째 변화'에 적응할 준비를 서서히 해 나가고 있다.
이미 올해 말이면 홍성역이 동쪽으로 500m 정도 이설될 예정이다.
그렇게 되면 지금의 모습도 전혀 볼 수 없게 된다.
홍성역으로 통하는 길이 지금의 홍성역사 부근을 관통하는 덕에 흔적조차 없이 사라질 것이다.
현재 공사하는 구조를 살펴보면 올해 안으로 완전한 개통은 불가능하지만,
올해 안으로 완전한 이설은 가능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홍성역에서 내린 사람들 또한 역을 빠져나와 바로 버스로 갈아탈 수가 없게 된다.
광장 도로를 따라 한참을 걸어들어가야 갈아탈 수가 있게 된다.
먼 훗날 이 자리가 개발되어 높은 건물들로 가득 차게 되는 날이 오지 않는 이상,
당분간 이설 직후의 홍성역은 모든 이들이 좀처럼 적응하기 힘들 것 같다.
지금의 장항역, 군산역에 사람들이 적응을 하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다.
빛바랜 7량 정지 표시판과 누런 먼지를 뒤집어쓴 승강장, 출발을 기다리는 디젤기관차...
장항선 이용객 3위를 달리고 있는 역이지만 마치 간이역을 연상시키는 한산한 풍경이다.
이미 온양온천역과 대천역이 개량화의 물결로 심한 몸살을 앓고 있는 것과는 달리,
홍성역은 아직까지 그런 몸살을 앓지 않아 참 다행이다.
저 무궁화는 누구를 위해 달려가고 있는 것일까,
저 무궁화는 어디로 향해 달려가고 있는 것일까,
저 무궁화는 무엇을 바라보며 달려가고 있는 것일까.
보면 볼 수록 매력이 넘치는 철도, 장항선.
하지만 정작 저 끄트머리는 삭막하기만 한 거대역 익산역이라니...
벌써 그렇게 변해버렸다는 것이 도저히 믿겨지지 않는다.
이렇게 평화롭고 한산한 풍경의 끝을 삭막한 거대철도가 장식한다는 것이.
열차가 떠나고 난 직후의 홍성역은 한적한 간이역의 모습 그 자체다.
아무리 장항선에서 가장 잘 나가는 주요역이라 할 지라도,
열차가 떠나가면 순식간에 간이역과 같은 분위기로 바뀌어 버린다.
장항선이 인기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는 것은 아닐까.
수많은 사람들이 장항선을 한 번 찾으면 특유의 매력에 푹 빠져버리고는 한다.
그리고는 꼭 한 번 다시 찾아오고야 만다.
어딜 가도 한적한 여유가 느껴지는 장항선.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이 마법처럼 푹 빠져버리는게 아닐까 싶다.
이런 풍경만 보고선 장항선의 3대역에 속하는 역이라고 어느 누가 믿을까?
바로 앞의 고가도로와 그보다 더 들어가서 존재하는 시멘트 공장이 위압감을 주긴 하지만,
저 정도로는 장항선 특유의 분위기를 절대로 헤치지 못한다.
장항선 최대의 매력은 주변의 삭막한 것들을 자연스럽게 유화시킨다는데에 있는 것 같다.
하지만 그런 매력들이 서서히 여지없이 무너져 내려간다.
이미 천안~예산, 주포~남포구간의 역들은 그 매력을 완전히 버려버렸으며,
나머지 구간의 상당수도 특유의 매력을 하나 둘 씩 놓아가고 있다.
홍성역도 예외는 아니라서, 홍성역 뒷편에선 장항선을 개량하는 직선화 공사가 한창 진행중이다.
이미 작년 말에 1차적으로 개통한 구간만 봐도 알 수 있듯이,
기존선에서 느껴졌던 특유의 분위기는 '신선 장항선'에선 눈을 씻고 찾아봐도 느낄 수가 없다.
홍성역사 정면을 쳐다보면 바로 이런 삭막한 풍경이 펼쳐진다.
저 앞에 차들이 주차되어있고 컨테이너박스가 놓여진 공간이 차후 홍성 신역사가 들어설 공간이다.
그리고 그 앞의 일자형 노반은 홍성역을 연결하는 역 광장과 입구의 역할을 할 공간이다.
올해 말에 개통되기나 할까 싶을 정도로 공정률이 상당히 낮긴 하지만,
순식간에 역 시설물을 만들어냈던 전력으로 봐서는
올해 말 완전개통은 힘들더라도 부분개통은 충분히 이뤄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과거와 현재가 함께 공존하는 고장, 홍성.
빛바랜 아기자기한 비료창고와 깔끔하고 웅대한 장례식장처럼,
홍성역의 과거와 미래도 저들처럼 완전히 대비될 것이다.
기존의 매력들은 모두 '직선화'라는 미명 아래 모두 내팽개쳐지고,
속도만을 추구하는 전형적인 신형철도역으로 탈바꿈할 것이다.
그렇게 변화를 하기 직전의 과도기 상황에서 과거를 향한 마지막 발걸음을 한 발자국 띄워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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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홍성역 수요는 혜전대학,청운대학교 학생이 거의 차지한다고 생각 합니다.
잘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