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는 어떻게 한국인의 애송시가 됐나
[뉴스 라이브러리속의 모던 경성]푸시킨의 ‘앨범詩’…
1940년 전후 일어판에서 번역돼 1960년대~1970년대 대유행
김기철 학술전문기자
입력 2022.04.30
2013년 11월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 앞에 들어선 푸시킨 동상. 러시아작가동맹이 증정했다.
동상 아래엔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가 새겨져있다./김기철기자
푸시킨의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는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서양시1위가 아닐까 싶다. 네이버 검색창에 ‘삶이’를 입력하면,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가 자동완성어 1위로 뜬다. 윤동주 ‘서시’(序詩), 김소월 ‘진달래꽃’처럼 많은 이들이 첫 구절을 쉽게 떠올릴 수 있는 유일한 서양시다.국립중앙도서관 홈페이지를 검색하면, 이 시를 제목으로 딴 푸시킨 번역시집만 10권이 훌쩍 넘는다. 같은 제목의 에세이집과 소설도 여러권이다.너무 친숙하다 보니, 서양의 유명 격언처럼 들릴 정도다.
서울 소공동 푸시킨 동상 아래 새겨진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소공동 푸시킨 동상에도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19세기 초 러시아 시인이 쓴 2연짜리 이 짧은 구절이 200년 뒤 한국에서 여전히 인기를 누리는 까닭은 뭘까. ‘국민작가’ 푸시킨의 시를 줄줄 외우는 러시아인이 수두룩하지만,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는 모르는 이들이 뜻밖에 많다고 한다. 실제로 이 시는 푸시킨의 대표작은 아니다. 20세기초 한국에 러시아 문학이 들어오는 경로였던 일본은 물론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가 우리만큼 인기를 누리는 곳은 없다.
2013년 11월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 앞에 세워진 푸시킨 동상 뒤에도 이 시가 새겨져 있을 정도다. 러시아 작가동맹이 증정한 이 동상에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가 새겨진 것은 우리 요구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우에다 스스무의 ‘푸시킨 詩抄’
이 시가 알려진 시기와 내력은 분명치 않다. 학계에선 우에다 스스무(上田 進·1907~1947)의 ‘푸슈킨시초(詩抄)’(1936)가 소개된 1940년 전후로 본다. 우에다는 와세다대 재학중 일본프롤레타리아작가동맹에서 활약한 인물이다. 박형규(91) 전 고려대 노문과 교수의 기억에 따르면, 1930년대 말 1940년대초쯤부터 일본어시집에서 중역한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가 애송시로 등장했다고 한다. 우리말 첫 번역본은 1950년 나온 ‘푸시킨시집’(세종문화사, 조영희 옮김)으로 알려져있다.
◇첫 러시아 원전 번역자는 백석?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의 첫번째 러시아 원전 번역자는 백석이라는 주장이 나온 적있다. 2012년 ‘백석 번역시 전집’을 낸 송준이 한 얘기다.백석이 다닌 일본 동경의 아오야마가쿠인(靑山學院) 후배이자 조선일보 논설위원을 지낸 고정훈의 생전 증언을 토대로 한 것이었다.(푸슈킨 시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첫 러시아어 원전 번역은 시인 백석, 조선일보 2012년 12월17일) 6·25 전쟁 당시 국군장교로 참전한 고정훈은 1950년 10월 평양에서 백석을 만났다. 백석은 그에게 이 시를 러시아로 수백번 암송한 끝에 우리 말로 번역했다고 얘기했다는 것이다. 학계에서도 “가능성이 있다”는 반응이 나왔다. 하지만 백석이 1949년 북한에서 펴낸 ‘푸시킨 시집’엔 이 시가 없어 여전히 논란거리다.
푸시킨 서거 100주년을 맞아 제작한 조선일보 1937년 2월13일 지면.
러시아 문학전문가 함대훈이 푸시킨의 생애와 예술'을 정리했고 동경 유학생 한식이 러시아문학사에서
푸시킨의 위상을 평가하는 글을 기고했다. 지면 3분의 2를 푸시킨 100년제에 할애했다.
◇푸시킨 시 번역한 이선근
푸시킨은 일제때 톨스토이나 도스도옙스키, 투르게네프, 체홉에 비해선 덜 알려졌다. 시도 그렇지만 ‘대위의 딸’같은 소설은 해방 후에야 우리말로 번역됐을 정도다. 푸시킨의 시가 국내에 소개된 것은 1922년 ‘계명’지에 번역된 ‘집시’라는 서사시다. 1926년 창간된 ‘해외문학’에 일본서 공부한 이선근, 함대훈, 김온 등이 러시아 문학을 본격적으로 소개하면서 푸시킨 시와 작품도 차츰 알려졌다. 와세다대 사학과에 다닌 이선근은 푸시킨 시 6편을 번역하기도 하고, 푸시킨의 생애에 관한 글을 쓰기도 했다.
◇푸시킨 100년祭
1937년은 푸시킨 서거 100주기였다. 당시 신문, 잡지는 1920년대부터 서구를 본따 100년 단위로 인물·사건을 기념하는 ‘백년제’(百年祭)를 본격적으로 보도하기 시작했다.(’모던 경성: 吾人은 자유의 神을 눈물로 조문한다’ 나폴레옹 100주기 열풍’참조) 도스토옙스키 탄생 100년(1921) 톨스토이 탄생100년(1928) 입센탄생 100년(1928),에밀 졸라 탄생100년(1940)은 물론 헤겔 서거 100년(1931) 괴테 서거100년(1932)을 기념했다. ‘백년제’는 근대 문명을 앞서 일군 서구를 학습하는 기회였다.
‘푸시킨의 문학사적 지위를 말하자면 그는 첫째 위(僞)고전주의를 지양하고 낭만주의를 거쳐 정당한 의미에 있어서의 러시아 리얼리즘의 기초를 확립하였으며 18세기부터 19세기 초두까지 서구라파 문학의 모방에 지나지못하던 문학을 국민성의 파악 탐구를 거듭하여 러시아 생활, 러시아 정신의 정당한 대변자의 표현으로써 러시아문학의 독립성을 획득케하였으며....’(‘러시아 文學史上의 푸시킨의 지위와 업적’, 조선일보 1937년2월13일) 러시아문학 연구자이자 당시 조선일보 출판기자였던 함대훈도 ‘露문학의 시조 푸ㅡ쉬킨의 생애와 예술’을 같은 지면에 게재했다. 한 페이지 3분의 2정도가 푸시킨 100년제 기획이었다.100년제는 ‘러시아 문호(文豪)’ 푸시킨의 위상을 각인시켜주는 계기가 됐다.
◇자취방, 공단 벌집에 걸린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는 일제 말기와 해방 전후에 유행한 데 이어 1960~1970년대 산업화시대에 최고 인기를 누렸다. 러시아문학 전공자 이항재 단국대교수는 ‘1960년대 초에 허름한 이발소의 벽에 걸린 액자 속에서 이 시를 처음 읽었다’고 회고했다. ‘당시 이 시는 밀레의 ‘저녁종’이나 평화롭게 풀을 뜯고 있는 양들을 배경으로 뒤틀린 액자 속에 넣어져 이발소, 중국집, 허름한 농가의 마루벽에 약방의 감초처럼 달려있었다.’
학생들의 자취방 책상 앞은 물론 고향 떠나 대도시 공단에서 고된 하루를 이어가던 수많은 공장 노동자들의 벌집방에도 푸시킨의 시가 경구(警句)처럼 걸려있었다.힘겨운 현실을 견디게 하고 희망을 약속하는 한줄기 빛이었다.
◇'삶이 나를 속인다해도 나는 이발소에 간다’
‘삶이 나를 속일지라도 아니 삶이 나를 속인다해도/나는 이발소에 간다.’
곽효환 시인이 2014년 낸 시집 ‘슬픔의 뼈대’에 실린 ‘이발소 그림’은 푸시킨 시를 빌려 시작한다. ‘성자께서 열두 제자와 나누는 최후의 만찬/’오늘도 무사히’를 간절히 비는 어린 소녀의 경건한 얼굴’이 그려진 이발소 그림을 ‘누가 싸구려 통속이라 했을까’라고 항변한다. ‘어떤 삶이 고단한 당신을 속였을까/하여 우울하고 슬퍼하고 노여웠는가’라며 푸시킨을 재차 등장시킨다. 이발소 그림은 푸시킨의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와 함께 고단한 서민들을 위로하는 예술이었다. 그리하여 시인은 이발소를 ‘내 첫번째 미술관’이라고 당당하게 선언한다.
◇'내 영혼 바람되어’ 김효근 가곡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인기 가곡 ‘내 영혼 바람되어’를 쓴 작곡가 김효근은 2015년 이 시를 가곡으로 만들었다. 팝페라가수가 이 노래를 실은 음반까지 취입했다. 이 시의 위력은 현재진행형이다. 빈곤의 시대는 지나갔지만 푸시킨 시가 주는 울림은 여전히 유효하기 때문이다. 다시 한번 읽어본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슬퍼하거나 노여워말라/슬픔의 날 참고 견디면/기쁨의 날 찾아오리라//
마음은 미래에 살고/현재는 괴로운 법/모든 것이 순간이고 모든 것이 지나가리니/지나간 모든 것은 아름다우리.’(김진영 연세대 교수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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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희
2022.04.30 06:57:02
문학적 가치가 높다기보다는 잠언시적 성격이 강하지요. 생은 늘 고달픈 법입니다. 아무리 지위가 높아도 아무리 돈이 많아도 아무리 학문을 닦아 최고의 지성이 되더라도 삶은 인간에게 힘든 굴레입니다. 이 시는 그런 숙명을 짊어지고 사는 인간에게 꿈과 희망을 선사합니다. 힘든 오늘을 견뎌내면 밝은 내일이 찾아온다는 가르침을 함축적인 시적 표현으로 명쾌하게 전달합니다. 그러니 일제의 탄압, 6.25 전쟁 그리고 산업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겪은 고된 삶 속에서 이 시가 국민들 마음을 울린 거지요. 나 역시 이 시를 좋아합니다. 밀레의 이삭줍기나 어린 양떼들이 한가롭게 풀을 뜯는 그림을 배경으로 적혀있는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비록 이발소에 걸려있더라고 루브르 박물관에 걸려있는 명작 이상의 감동을 선사하지 않습니까? 개인적으로는 김기철 기자의 번역보다는 동상 밑에 새겨진 번역이 더 입에 감깁니다. 러시아어를 모르는 내 입장에서 어느 것이 원문에 충실한 번역인지를 모르겠습니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