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봉능선과 문수봉에서 바라본 백운대 풍경-
북한산(北漢山)<10.26 大韓民國 서울의 주산(主山)을 찾아서> 제2021064055호 2021-10-26(화)
◆자리한 곳 : 서울 도봉, 은평, 종로구, 경기 고양시 ◆지나온 길 : 독바위역-정진지킴터-족두리봉-향로봉-사모바위-승가봉-청수동암문-문수봉-대남문-구기분소-구기동(원조할머니두부) ◆거리및시간: 5시간 40분(09:05~14:45) ※ 도상거리 : 약10.0km ◆함께한 이 : 선배 2분(오인균 선배, 이성직 선배, 그리고 계백) ◆산행 날씨 : 맑음 가스 많음 <해 뜸 06:51 해 짐 17:41 ‘최저 8도, 최고 18도>
역사적으로 매우 의미 있는 10월 26일의 수도의 진산 북한산행 기억이 어긋나지 않았다면 한 달 전쯤으로 생각되는 어느 날 ‘오인균’선배님께서 전화로 날짜는 다음 달 26일(화) 북한산행 코스는 서부능선으로 잡으시며 지나간 말처럼 좋은날이라고 예언하듯 말끝을 흐렸는데 그때는 몰랐는데 지나고 보니 정말이지 신통하게 적중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날씨는 약간의 가스로 조망이 시원하지는 않았으나, 춥지도 덥지도 않아 산행하기에 매우 적합한 날씨다. 마음은 늘 함께하면서도 거리두기 때문에 자주 뵙지 못하다 오랜만에 북한산행 위해 만났는데 산행보다는 들머리에서부터 밀렸던 생활속 이야기 보따리가 열렸으니 끝나지 않았는데 어느덧 북한산성 대남문에 이르러렀다. 양지바르고 바람을 막아주어 아늑한 곳에 자리잡고 한잔의 막걸리로 시장을 달래고 있는데 어디서 왔는지 나비 한마리가 나타났다. 최대한 불상한 표정으로 우리들 곁으로 다가선 길고양이 한마리가 먹을 것을 달라고 귀엽게 애걸한다. 유기고양이에게 먹이를 주는 행위는 자제해야 하지만 측은한 마음 때문에 호빵 하나를 던져주고 하산을 서두른다.
-비봉능선 첫 봉우리(족두리봉)에서 올라 바라본 풍경들-
10월 26일 주요한 <오늘의 역사>를 4가지로 정리해 본다.
① 1909년 10월 26일 안중근 의사, 이토 히로부미 저격 안중근의사가 조선 침략에 앞장선 일본의 최고실력자(정치)인 이토 히로부미를 만주하얼빈에서 사살했다. 조용한 아침의 나라 조선을 무력을 동원 강제로 을사조약을 맺고 한국의 초대통감을 지낸 뒤 일본으로 돌아가 추밀원의장, 침략의 우두머리 이토 히로부미를 없애고 일본침략정책을 세계에 알릴 역사적인 순간 1909년 10월 26일, 안중근은 하얼빈역사 찻집에서 차를 마시며 열차가 도착하기를 기다렸다. 오전 9시 열차가 하얼빈역에 들어왔고 러시아재무대신 코코프체프와 일본총영사의 안내를 받으며 이토 히로부미가 기차에서 내려, 러시아군의장대를 사열한 뒤 환영객들로부터 인사를 받을 때 권총을 꺼내 3발을 쏘았고 이토 히로부미는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저격을 당한 이토는 30여 분 뒤 사망했다. 안중근의사는 러시아말로 "코레아 우라(대한 독립 만세)"를 외치며 러시아 헌병들에게 순순히 체포됐다. 1910년 3월 26일, 31살의 나이로, 사형 선고를 받고 중국 뤼순 감옥에서 순국했다.
-향로봉으로 가는 길목 조망바위에서 바라본 족두리봉-
② 1979년 10월 26일, 10·26사태 정보부장 대통령 저격 1979년 10월 26일 밤 7시 40분경 서울 종로구 궁정동 중앙정보부 안가(安家) 술자리에서 중앙정보부 부장 김재규가 유신독재의 심장인 대통령박정희를 암살하고 경호실장 차지철을 권총으로 살해하며 집권층 내부의 갈등을 표출시켰다. 1972년 유신 체제가 시작된 이후, 1970년대 후반에 그 동안의 정치적·경제적 모순들이 폭발하기 시작했다. 중화학 공업에 대한 무리한 투자로 경제가 악화되었고, 대외적으로는 1인 장기 집권의 강압 통치로 한국의 인권 상황에 대한 개선을 종용한 미국 카터 행정부와의 갈등이 정치적 위기를 가중시켰다. 이러한 상황에서 1979년 10월 부산과 마산에서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일어나자 이를 진압하기 위해 두 지역에 각각 계엄령과 위수령이 발동되었다. 이 부마사태의 처리 문제에서 차지철의 강경 노선이 채택되자 진퇴 위기에 몰린 김재규가 대통령과 차지철을 살해했다.
-향로봉 정상에서 만난 풍경들-
③ 2021년 10월26일 노태우 전 대통령께서 향년 89세 별세한 날이다. 노태우 전 대통령께서 오래전부터 희귀병인 소뇌위축증을 앓아 병상생활을 하고 있다는 보도는 이미 접했으므로 별세소식이 새삼스럽지는 않으나, 42년전 박정희 전 대통령 별세와 같은 날이라니 우연의 일치일까? 아니면 어떤 특별한 의미가 담겨 있을까??? 아무튼 전직 대통령 두 분께서 같은 날 유명을 달리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리 흔치 않은 우연이며, 박정희 전 대통령이 피살되 혼란한 시간을 틈타 국민의 생명과 국토를 지켜야 할 군인의 신분으로 12·12 군사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장악한 군인 대통령이라는 점에서도 기묘한 인연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노태우씨는 정두환씨와는 다르게 직접선거를 통해 국민의 선택을를 받아 대통령에 당선됐었으나, 퇴임 후 12·12 쿠데타, 5.18 광주민주화운동 강제진압 그리고 비자금 수천억원 조성 등의 죄목으로 징역 17년형을 선고받아 복역했고, 국가원수 예우도 박탈당했다가 김영삼 전 대통령의 특별사면 조치로 1997년 석방됐다.
-승가봉에서 바라본 문수봉 풍경, 북한산의 통천문-
④ 문재인 대통령-이재명 민주당 대통령 후보 청와대 첫 회동, 앞에서 논했던 10월 26일은 나열한 대로 1909년엔 안중근 의사가 일본의 이토 히로부미 저격했고, 1979년은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이 박정희 대통령을 암살한 날이고, 2021년 당일은 12.12 쿠데타주역 노태우 대통령이 별세해 분위기가 무거운 날이라 길함보다는 흉함이 많은 날이란 생각인데, 많고도 많은 날에서 왜 하필이면 10월 26일이었으며 누가 먼저 만나자했을까? 청와대인가 후보측일까? 택일을 잘 한 것일까? 아니면, 잘 못한 것일까? 아리송하기만 하다.
-문수봉에서 돌아본 지나온 능선, 대남문, 구기동삼거리-
힘든 산행보다는 뒤풀이가 언제나 기다려지고 즐겁다. 북한산국립공원 구기분소에서 산행을 마감하려 하는데 조금 전까지 잘 오시던 오인균 선배께서 뒤처져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안전펜스에 기대고 서서 기다렸다 만났는데 조금 전과는 선배님 모습이 어딘지 모르게 달라 보였다. 오선배께서 갑자기 몸이 말을 듣지 않으며 바로서지 못하고 자세가 틀어졌다는 말씀에 걱정하는 마음이 앞서 불안한 심경으로 구기동 삼거리로 이동한다. 점심시간은 이미 지났고 오후 새참(15시가 가깝다)시간이다. 오랜시간 전통을 시켜온 맛집 원조할머니 두부집을 찾았다. 선배님들을 대접하겠다는 생각으로 시장해서 인지, 식탐 때문인지 판단이 어렵지만, 욕심껏(돼지보쌈, 두부김치, 도토리묵)을 안주로 주문하고, 술(소주1병과 막걸리 4병)을 시켜 깨끗하게 비웠다. 나의 나와바리에 모신 선배님들 대접은 단연한 일인데, 오선배께서 먼저 계산하셨으니 어쩌겠는가? 오인균 선배님 잘 먹었다. 진심으로 감사드리고, 다음엔 제 차례임을 공지한다. 귀가길에 노태우 전 대통령 별세소식을 접했는데 까닭 없이 가슴이 답답하기만 하다. 10월 26일, 오늘의 역사를 살펴보면 20세기에 매우 특별한 사건사고가 많았던 날이라 생각되어 귀가해 오늘의 역사를 페이지를 열심히 뒤적거린다. -끝-.
~오라는 곳도 불러준 이도 없지만 찾아가 안기면 언제나 포근하기만 한 山을 찾아서 ~
2021-11-02 계백 (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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