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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군 여행] 강화나들길 7코스, 북일곶 돈대 와 장화리 일몰 조망 그리고 장곶 돈대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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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군 여행] 강화나들길 7코스, 북일곶 돈대 와 장화리 일몰 조망 그리고 장곶 돈대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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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서서히 저무는 노을처럼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간!. 바야흐로 가을은 겨울의 12월을 바라보며 날갯짓하는 시절이다.
유랑자는 오늘도 유랑의 길을 걷는다. 장화리의 낙조를 보기 위해 가는 길이긴 하지만 하늘은 우중충 구름이 덮고 있다. 다
행히 일기예보 상 일몰은 볼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에 시간을 보내기 위해 먼저 북일곶돈대를 찾아 길을 나섰다. 북일곶돈
대는 강화 나룻길 7코스로 장화리의 해넘이 전망대를 지나 산으로 들어서야 한다. 물론 차량 때문이라도 되돌아오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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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계단 오르기 전에 유랑자를 반기는 것은 초서로 쓴 7언 율시 두 구가 눈길을 끈다. 그야말로 一筆揮之[일필휘지]로 단
숨에 휘갈겨진 필력으로 보아 예사 사람이 쓴 것 같지는 않다.
鴻雁偶成文字去[홍안우성문자거] 鷺鶿自作畫圖飛[로자자작화도비] 기러기는 우연히 문자를 이루며 날고 해오라기는 스
스로 그림을 그리며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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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일곶돈대의 규모는 남북 28.7m, 동서 32.2m, 둘레 122m다. 성벽은 40~60cm 내외의 크기로 잘 다듬은 화강암을
이용해 퇴물림 방식으로 쌓아 올렸다. 성벽의 안쪽과 바깥쪽은 큰 돌로 쌓고 그사이는 흙과 잡석을 채워 넣는 협축 방식으
로 쌓았다. 현재 남아 있는 성벽의 높이는 3.5m 내외이며 그 위에 설치한 40개의 성가퀴(여장)는 허물어지고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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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시문은 고려시대 백운거사 이규보 선생의 甘露寺[감로사]에 나온 7언 율시로 詩句[시구] 중 제6구와 7구를 가져
온 것으로 2009년 2월 장화리 마을 회관에서 개최한 목원 서예 전시회에 출품작이다. 우리나라 書團[서단]의 한 중견 여
류작가인 木園 韓星順[목원 한성순:1940~] 이란 작가가 초서로 된 이규보 선생의 한시 중 두 구를 옮겨 쓴 작품이라고 설
명한다. 한 성순은 국전 초대 작가로서 후진 양성과 국제교류전 등 활발한 작품활동을 하는 한국 서단을 대표하는 중진 여
류작가로 알려져 있다. 작가의 원본은 마을 회관 회의실에 소장되어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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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여주 출신인 이규보[1169~1241] 선생은 몽골이 고려를 침략하자 高宗[고종 19년(1232년)]과 함께 강화도에 들어
와 74세[고종 28]로 이 섬에서 생을 마쳤다. 한편, 세월이 흐르고 흘러 한국 書團[서단]을 대표하는 중견 여류작가 한성순
도 강화도를 자주 찾게 되었나! 보다. 자연스럽게도 이규보 선생의 시를 접했을 것이다. 참~ 시와 인연이라 질기고도 묘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러기는 문자를 이루고, 해오라기는 그림을 그리며 난다는 표현이 기가 막힐 정도로 절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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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에 북일곶돈대에 대한 발굴 조사가 진행되었다. 그때 돈대 내부에서 온돌과 구들을 갖춘 건물터가 확인되었다.
돈사(墩舍)로 추정되는 이 건물터는 돈대에서 숙직하는 병사가 있었음을 알려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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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이규보 선생다운 감성적이고도 예술적인 시문이다. 아무튼 두 구중 自作[자작] 손수 짓거나 만든 작품 같은 鷺鶿自
作畫圖飛[로자자작화도비] 그림을 그리며 나는 해오라기 풍광이 더 멋있을 듯싶다. 시구 중 해오라기는 없지만 그러나 시
를 음미하며 갯가에서 새 떼의 날갯짓을 바라보는 재미가 제법 쏠쏠하다. 기왕지사 나온 시문이니 백운거사 이규보 선생의
원작을 한번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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白雲 李奎報[백운 이규보(1168~1241, 甘露寺[감로사]
金碧樓臺似翥翬[금벽루대사저휘] 아름다운 누대의 추녀 꿩이 날개 편 듯
靑山環遶水重圍[청산환요수중위] 푸른 산, 맑은 물이 겹겹이 감돈다.
霜華炤日添秋露[상화소일첨추로] 서리에 해 비치니 가을 이슬 더하고
海氣干雲散夕霏[해기간운산석비] 바다 기운 구름 찌르니 저녁 비 흩어진다.
*鴻雁偶成文字去[홍안우성문자거] 기러기는 우연히 문자 이루며 날고
*鷺鶿自作畫圖飛[로자자작화도비] 해오라기는 스스로 그림을 그리며 난다.
微風不起江加鏡[미풍불기강가경] 실바람도 일지 않아 강물 거울 같은데
路上行人對影歸[로상행인대영귀] 길 위의 행인은 물에 비친 그림자 보며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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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일곶돈대를 축성할 때(숙종 5년, 1679년)는 사람이 잠을 잘 수 있는 건물은 만들지 않았다. 숙종 9년(1683)에 돈대
안에 墩[돈] 사를 만들어 병졸이 수직을 하며 지킬 수 있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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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대 가는 길은 제법 가파른 오르막에 타이어로 층층이 계단을 만들어 놓았다. 오르는 길에 유랑자도 백운 선생의 마지막
구를 차운해 본다. 路上行人對影歸[로상행인대영귀]=路上[로상]의 行人[행인]이 影[영]을 對[대]하여 歸[귀]하네, 길 위의
행인 자기 그림자를 마주 보며 가네. 유랑자는 낮달에 비친 그림자 보며 걷는다, 숲으로 이어진 오르막길을 다 오르자 인적
없는 조붓한 산 능선길로 이어진다. 인적도 없다, 길 한켠으로는 멧돼지로 보이는 짐승이 땅을 헤집어 놓은 흔적들이 조금
은 신경이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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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랑자는 어디쯤 에 돈대가 있는 걸까. 한참을 가도 돈대가 보이지 않는다. 입구에 이정표에는 '북일곶돈대는 1.2km로 되
어 있었는데 혼자여서일까? 두려움일까? 멀게만 그리고 지루하게만 느껴지는 강화 나들길 7코스 선상에 있는 돈대!. 이름
에 串[곶]이 들어간 걸로 봐서 바다 쪽으로 툭 튀어 나간 쪽에 돈대가 위치해 있을 것 같은데, 보이지 않는다. 그런 생각을
할 즈음에 우뚝하니 성채가 하나 나타났다. '북일곶돈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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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히 2025년 11월 현재 총 54개 돈대중 현재 보존하고 있는 돈대는 21개와 군시설로 이용하고 있거나 군 시설 내에
있는 돈대가 8개 이고 멸실된 돈대가 25개이다. 또한 2025년 11월 현재 인천시 지정 문화유산 또는 사적으로 지정된 곳은
광성보, 초지진, 덕진진, 용진진, 갑곶돈대, 굴암돈대 등 18개소로 확인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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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一串墩臺[북일곶돈대]'는 강화군 화도면 장화리 산 361에 위치하고 있다. 둘레가 122m에 달하며 한 변의 길이는 대략
30m인 이 돈 대는 네모반듯한 모양새를 하고 있다. 둥근 모양의 돈대가 四圍[사위]를 경계하기에 합리적이라면 네모난 형
태의 돈 대는 四方[사방]을 나눠 경계하기에 좋다. 북일곶돈대는 동서남북 사방을 나눠서 경계하기에 좋은 네모난 형태다.
강화 돈대의 평면 형태는 크게 방형[정방형, 장방형], 원형[원형, 타원형], 반월형의 3가지로 분류된다. 방형[네모난 형태]은
모두 26개소이며 원형은 총 11개소, 반월형은 3개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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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태를 알 수 없을 정도로 원형이 훼손된 경우가 총 13개소이며 특이하게 앞서 소개한 초승달 형태의 돈대도 하나 있다.
방형 돈대 다음에 원형 돈대가 있고 또 그 다음에 반월형 돈대가 있다. 어찌 보면 네모난 형태와 둥근 형태의 돈대를 번갈
아 가며 축성한 것도 같다. 이렇게 교차해서 돈대를 축조한 것은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지다는 '天圓地方[천원지방]'의
사상을 적용한 것처럼 읽힌다. 즉 하늘과 땅의 형상에 대한 옛사람들의 생각을 나타내는 말이다. 혹시 천원지방의 사상을
담았을까? 본시 天圓地方[천원지방]이란 하늘과 땅의 형상에 대한 동아시아의 기본 세계관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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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도의 54개 돈대들은 5개의 진과 7개의 보 그리고 진무 영의 관할 아래 있었는데 각각의 진과 보에는 약 4개소 정도
의 돈대가 소속되어 있었다. 진과 보에 소속된 돈 대는 장수가 看檢[간검. 두루 살피어 검사] 하며 別將[별장. 조선시대 장
교] 2명과 군졸 3명이 돌아가며 수직 했고, 군졸 1명이 墩[돈] 사에서 살면서 돈대를 맡아 지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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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은 춘하추동 사계절을 순환하며 둥글게 돌고, 지상의 모든 만물은 동서남북 방위를 갖고 존재한다는 사상을 돈대가 담
고 있는 것은 아닌가도 싶다. 그러고 보면 강화도 돈대들을 단순히 땅 모양새만을 본떠서 돈대를 축조했다고 여기기에는 강
화도 돈대들의 모양새나 배치가 가볍지만은 않다는 생각이 북일곶돈대를 보면서 들었다. 북일곶돈대 성벽 위에 올라서면
사방이 훤히 다 보인다. 과연 돈대가 들어서기에 최적지라 할 수 있겠다. 새삼 처자식이 없다고 징벌 된 죄 없는 옛 승병들
의 노고에 가슴이 뭉클하다. 당시 강화도 해안을 따라 54개의 돈대를 만들었는데 그 모두가 바다를 관측하고 경계하기에
최적지들이다. 북일곶돈대는 장화리 일몰 조망지에서 1㎞ 정도 숲길을 걸어야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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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길 입구 주차장엔 주차 공간도 좁아서 승용차 너덧 대 겨우 댈 수 있는 정도여서 조금은 불편하다. 그래도 불편함을 감수
할 만한 가치가 있다. 그러나 장화리 일몰 주차장은 도로변에 별도로 마련되어 있어 충분하다. 되도록 평일에 가는 게 덜
복잡하고 편안하게 일몰을 즐길 수 있다.
참고로 강화도가 서해안에 있다 보니, 일몰 광경 볼만한 데가 여러 곳에 있다. 어느 곳이든 다 좋긴 하지만 그러나 굳이 유
명한 곳을 찾는다면 고려산 적석사 낙조봉이고 또 화도면 장화리라 할 수 있겠다. 찾는 이들이 많아지자, 적석사에서 낙조
대를 설치했고, 강화군은 ‘ 장화리 일몰 조망지’를 조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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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일곶돈대(北一串墩臺)는 인천광역시 강화군 화도면 장화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돈대이다. 1999년 3월 29일 인천광
역시의 기념물 제41호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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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화리 낙조 전망대
본시 사람이란 잘났건 못났건 모두가 힘든 삶을 보낸다. 왜냐하면 태어난 것 자체부터가 고통 속에서 많은 업을 안고 태어
나기 때문이다. 어머니의 좁은 뱃속에서 열 달을 견디어 내야하고 태어날 땐 좁은 자궁으로 태어나는 힘들고 어려운 고통
이 동반되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고로 태생부터가 고난의 시작인 셈이다. 이를테면 삶의 역사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태어난 인간들은 성장해 가면서 더 험난한 삶을 긴 시간 동안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가시밭길 주렁주렁 열리는
고난과 미움과. 허영과 욕심, 때문에 원 없이 울다가 웃다가 힘겹게 살다 갈 소풍 길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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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더 낫다는 말이 빈말이 안 되게끔 스스로 피나도록 채찍질하며 고통을 忍耐[인내] 하고 모
든 喜怒哀樂[희로애락]을 堪耐[감내] 해야 할 삶이기에 업보라고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인생이 뭔지 좀 알만하면 삶과 인생
이 그리고 육신과 정신까지 어느덧 서산에 떨어지는 노을처럼 물들어 간다는 것이 아마도 생의 낙조인 줄 몰랐을 것이다.
그렇다면 처절하게 살아왔던 삶이 후회되고 속상하지 않나요?. 그러나 태어난 것만으로도 감사할 줄 알아야 한다. 좋은 세
상 구경도 하고 사랑도 하고 씨 뿌리며 세상의 온갖 산해진미를 맛보았으니 그만하면 보상을 다 받은 것으로 알고 지는 해
처럼 조용히 가면 되지 않나!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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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화리 해넘이 전망대에서 1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북일곶돈대'가 있다. 북일곶돈대까지 가는 길은 강화 나들길 7
코스이기도 하다. 북일곶 돈대에서 바라보는 일몰 또한 장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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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을 세월이라 하고 인생이라 하고 會者定離 去者必返[회자정리 거자필반] 이라고 하는 것이다. 즉 만나는 사람은 헤어
짐이 정해져 있고, 떠난 사람은 반드시 돌아온다는 뜻이다. 自然[자연]에서 自然[자연]으로 말이다. 불가에서 會者定離 去
者必返[회자정리 거자필반] 이 두 구절은 함께 쓰는 이유는 세상일의 덧없음이나 輪廻[윤회] 의 순환을 나타내는 말로 자주
쓰인다. 그러나 死者[사자]는 다시 돌아온다는 것은 語不成說[어불성설] 이지만 2세가 되어 돌아온다는 것이니 去者必返
[거자필반] 이라 하는 것이다. 나를 닮은 種子[종자] 즉 씨가 있잖은가? 유랑자의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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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두절미하고 힘들었고 그리고 風塵[풍진] 세상 고된 삶이었지만 그래도 유랑자는 묵묵히 버티며 잘 살아냈다.
한해 한해를 보내면서 이제 나 또한 서산에 지는 노을처럼 노년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도 싶다. 그 노을의 끝자락,
유랑자는 강화도 남쪽 끝으로 달려가 기다려 본다. 그 섬, 그 바닷가엔 햇살보다 아름다운 노을이 내리기 때문이다. 그 빛
은 내일 태양으로 더 찬란히 떠오를 것이다. 강화도 화도면 장화리 '해넘이 마을'. 바다와 땅, 삶이 만나 빚어낸 길 위에서
노을과 더불어 바로 나 자신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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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군 화도면 장화리는 해넘이로 유명한 동네다. 서해안 어디고 간에 해넘이가 예쁘지 않을까마는 강화도의 서쪽 해안
은 일몰이 특히 더 아름답다. 그중에서도 장화리는 특별히 더 아름다워서 강화군에서는 장화리 해안에 일몰전망대를 설치
해 두고 해 지는 풍경을 감상할 수 있도록 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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落照[낙조]와 나 流浪者[유랑자]! 이곳엔 매일 때로는 황혼 무렵 물이 들고난 자리를 찾아본다. 갯벌에 박혀 있던 어선 몇
척이 몸을 뒤척거린다. 태초부터 뻘밭과 짠물, 인간은 그런 식으로 서로 공존해 왔을 터이다. 강화 화도면 분오리돈대에 오
르시라. 永劫[영겁]의 시간 동안 한결같이 그 자리를 지켜온 四方[사방] 십 리 1.800만여 평의 갯벌이 그대 품에 안길 것이
다. 그리고 해 질 녘 장화리로 가 보시라, 아니 서쪽 어느 돈대든 올라 보면 각각의 형상에 따라 서해가 내어주는 수채화 같
은 한 폭의 그림이 화폭에 그려지고 또 담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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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탄처럼 유랑자는 거대한 뻘밭 풍경에 압도된다. 특히 뻘밭으로 지는 낙조가 일품이다. 우리나라에서 長花里[장화리]라
는 마을이 세 곳이 있다. 하나는 충남 논산 채운면 장화리가 있고, 또 전남 담양 창평면 장화리가 있고 오늘 유랑자가 방문
한 인천시 강화도 화도면 長花里[장화리]가 있다. 그중 강화도 장화리가 낙조마을로 유명하다. 장화리의 낙조는 유난히 색
채가 곱고 짙은 게 특징이다. 낙조로 유명한 "장화리"는 안면도, 변산반도와 더불어 서해안 3대 낙조 조망지로 손꼽히는 곳
이다. 그래서일까 낙조의 유명세에 얼마 전부터 장화리&‘낙조마을’이라는 이름까지 붙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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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화리는 2022년 상당한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인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촬영지로 낙조와 일몰이 아름답기로 소문
난 장소이다. 영우와 준호가 아름다운 일몰을 함께 감상하던 강화도 장화리 일몰 조망지가 포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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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미국의 ‘허먼 멜빌’이란 작가를 아시나요?
"내 이름은 이쉬마엘이다. 내 입가에 우울한 빛이 떠돌 때, 관을 쌓아두는 창고 앞에서 저절로 발길이 멈춰질 때, 즉 내 영
혼에 축축하게 가랑비 오면 나는 빨리 바다로 가야 한다는 것을 안다"
이 구절은 19세기 미국 작가 '허먼 멜빌'(1819-1891)이 쓴 유명한 소설 ‘모비딕’[백경(번역)]의 시작 부분이다. 11월이 오
면 포경선의 유일한 생존자 이슈멜이 고래와 목숨을 건 싸움을 회상 형식으로 쓴 작품으로 '모비딕'이라는 거대하고 횡포
한 흰고래에게 한쪽 다리를 잃은 에이 헙 선장은 동료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피쿼드호를 타고 난타 스케트 항을 출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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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이면 거친 바다를 항해하는 에이 헙 선장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고 서해 육지의 바다로 낙조를 보러 떠나야 한다는 것
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는 말을 하려는 것이다. 그곳이 바로 화도면 장화리이기 때문이다.
이곳은 천연기념물이고 세계 자연 기금과 아시아 습지 보호 협약 목록에 올라와 있을 정도의 광활한 갯벌은 그 자체만으로
도 감동이다. 뻘밭을 붉게 불태우는 노을 풍경화는 보지 않고서는 설명할 도리가 없을 정도로 장관이요 황홀, 신비 그 자체
이다. 그러니 연인들의 데이트코스로 사랑받고 있는 것은 당연지사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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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물 때는 잔잔한 바닷물을, 썰물 때는 드넓은 갯벌을 볼 수 있는 장화리는 보는 이의 마음마저 붉은색으로 물들이는 낙
조의 명소로. 바로 앞의 작은 섬들과 그 사이로 저무는 태양이 절묘하게 어우러지며 마치 사자가 해를 물고 있는 듯 장관을
연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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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계절이나 마찬가지지만 특히 한 해가 저물어갈 무렵 강화도 드라이브 여행의 백미는 정수사 남쪽의 분오리돈대에서
동막해수욕장과 여차리를 거쳐 장화리로 이어지는 남단의 해안도로라 할 수 있다. 해 질 녘 이 해안도로를 달리다. 보면 어
디서나! 붉고 아름다운 낙조를 감상할 수 있다. 해안도로 곳곳이 낙조 감상 포인트라 할 수 있지만, 그중에서도 화도면 장
화리의 해양환경 수련원 근처 바닷가 풍광이 좋다. 날이 맑을 때는 관광객과 사진작가들이 진을 치고 일몰을 기다린다. 복
잡할 땐 북일곶 돈대나 오늘 유랑자처럼 장산곶 돈대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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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랑자의 이야기이지만 강화도를 당일로 둘러볼 땐 오전엔 섬 북부, 오후엔 남부를 둘러볼 수 있게끔 일정을 짜는 게 좋다.
그래야 해 질 무렵에 동막리~여차리~장곶돈대를 잇는 해안도로를 달리면서 일몰을 감상할 수 있다. 11월은 17:30분이고
12월은 17:10분이다. 참고로 1월은 17:26분./ 2월은 17:57분./ 3월 18:27분이다. 물론 일몰 20여 분 전 도착이 좋다.
장화리는 강화 나들길 7코스 선상에 놓여있는 마을로 멋진 일몰과 갯벌을 포함한 바다를 감싸는 부드럽고 서해 와 어우러
진 멋진 풍경을 볼 수 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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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0년 김구가 탈옥 후 숨을 고르던 천석꾼 마을! 장화리 '유완무의 제자인 강화 장곶에 있는 주윤호 진사를 찾아갔다.
주 진사는 백동전 4,000냥을 유 씨에게 보냈는데, 나는 그것을 온몸에 돌려 감고 서울로 왔다. 주 진사의 집은 해변이었으
므로 11월인데도 아직 감나무에 감이 달려 있었다. 또한 해산물이 풍족해 몇 날을 잘 지내고 왔다.' - 김구 <백범일지> 중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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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 장화리는 마을이 해변으로 길게 형성되었고 서쪽으로 산이 길게 뻗어 串[곶]을 이루고 있어 곶의 길이가 길다 하여
'긴 곳'으로 불리던 이곳은 한자어로 옮겨지며 長串[장곶]이 된다. 장곶은 곧 長串洞[장곶동]이라 불렀다. 장곶은 또 '長花
里[장화리]'로 이름이 바뀌었다. '꽃'의 옛 어원도 '곶'이니 장곶의 串[곶]이 꽃을 뜻하는 花[화]로 바뀌었고 1914년 행정구
역 개편 때 길다는 뜻의 長[장]자와 串[곶]을 花[화]로 바꾸어 장화리로 개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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江上偶吟[강상우음] – 白雲居士[백운거사] 李奎報[이규보] 선생의 한시 하수 더 소개해 본다.
- 강 가에서 우연히 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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滾滾長江流向東[곤곤장강류향동] : 쉴 새 없이 흐르는 강동으로 향하듯이
古今來往亦何窮[고금래왕역하궁] : 오가는 세월도 끝이 없을 테지
商船截破寒濤碧[상선절파한도벽] : 상선은 푸른 물결 가르며 지나가고
漁笛吹殘落照紅[어적취잔락조홍] : 어적이 울리는 곳엔 석양이 붉다.
鷺格斗高菰岸上[로격두고고안상] : 줄풀 핀 언덕에 해오라기 높이 날고
雁謀都寄稻畦中[안모도기도휴중] : 벼 익은 논두렁엔 기러기 모여드네!
嚴陵舊迹無人繼[엄릉구적무인계] : 엄 자릉의 옛 자취 잇는 이 없어
終抱煙波作釣翁[종포연파작조옹] : 결국 강호에서 어부가 되려 하네
동국이상국전집 제1권 에 나오는 시문이다. 古律詩[고율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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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나들길 7코스 "낙조 보러 가는 길"의 핵심 포인트는 장화리이다. 만조의 출렁이는 바닷물에 비추는 낙조도 멋있지
만, 갯벌의 흙바닥과 그 사이 도랑(갯골)의 거울 같은 반사 빛도 참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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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곶돈대 찾아가기
평일 아침인데도 불구하고 나를 포함해서 벌써 차들이 강화로 물밀듯이 들어간다. 마치 오늘이 강화도 장날인 것처럼 그렇
게 다리를 건넌 차들은 뿔뿔이 흩어지는데, 다리 위로 또 다른 차들이 밀려온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찾는 데도 강화도는
아무렇지 않다. 사람과 차량으로 몸살을 앓을 만도 하건만 강화는 대인배처럼 넉넉하게 다 품어준다. 유랑자는 오늘 장곶
돈대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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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붕 없는 박물관’으로 알려진 인천 강화도의 대표 역사 문화유산은 墩臺[돈대] 할 수 있을 것이다. 돈대 이야기만 나오면
누차 이야기를 하지만 하나의 섬 둘레를 마치 별자리처럼 아우른 성채는 세계에서 유일하다. 장곶돈대는 마니산의 서쪽 줄
기가 서북쪽으로 방향을 틀어 작상봉[254.6m]을 이루고 거기서 서북쪽으로 해안의 돌출 부분인 장곶까지 완만하게 뻗어
내려온 지형의 정상에 있다. 참고로 포항의 호미곶과 울산의 간절곶 그리고 황해도의 장산곶 등이 우리나라에서 대표적인
'곶'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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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시 돈대를 설치할 때는 주어진 지형을 최대한 이용하여 설치하기 때문에 지형에 따라 크게 곶형(串形), 산사면형(山
斜面形), 산정형(山頂形), 평지형(平地形) 등으로 분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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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곶 돈대는 성문이 있는 북동쪽을 제외하고 북측부터 서측, 남측 모두 해안과 접해있다. 돈대 주변은 급경사이지만, 돈대
가 들어선 곳은 대체로 평탄하게 하여 조성하였다. 곶의 길이가 길어 長串[장곶]이라고 불렀으며, 이에 따른 돈대의 별칭
으로 ‘긴곶 돈대’라는 별칭이 붙었다. 강화 돈 대는 한강을 타고 올라오는 모든 배들을 감시하고 방어한다, 수도 한양을 지
키기 위한 외세 침입에 맞선 최일선 군사 방어 기지의 역할을 했다. 또 당대 최고의 축성술과 고유한 군사전략으로 세운 호
국의 징표이자 예술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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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로 쌓은 돈대의 안팎은 자연 친화적인 조선의 감성과 미학이 스며 있다. 장곶 돈 대는 조선 숙종 5년[1679]에 축조되었
으며, 성벽의 높이는 2.1m~3.5m로 내부 지름은 31m인 원형 구조로 이루어져 있으며 인천광역시 기념물 제19호로 지정
되어 있다. 장곶돈대는 현재 강화도의 돈대 중에서 비교적 원형을 잘 보존하고 있는 돈대이다. 1993년 성벽 보수, 2018년
~2019년 보수 정비 공사가 진행되어 현재 유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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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대의 형태는 지형의 영향을 받아 방형(方形), 원형(圓形), 부정형(不定形) 등으로 축조하는데, 강화에 설치된 54개
돈대 중 절반가량은 바다 쪽으로 돌출된 지형인 '곶'에 설치되었고, 대부분 방형 또는 원형의 형태를 이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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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대는 평면 형태는 원형이며, 북동 측에 평거식 문 1개가 있다. 포좌는 북측에서 반시계 방향으로 서측을 거쳐 남측까지
해안으로 접한 곳에 4개가 설치되어 있다. 포좌 내부 왼쪽에 뚫린 공간은, 耳房[이방]으로 불리며 포탄 등을 수납하였던 공
간으로 보인다. 이방은 대체로 강화 서쪽 지역의 돈대들에서 집중적으로 확인된다. 이는 아무래도 궁지[강화 산성]에서 거
리가 있다 보니 유사시에 미리 탄환을 확보하기 위한 조치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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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도 돈대의 배치도를 보면 주로 강화도의 동쪽인 왕궁이 있는 산성 위주로 많이 배치되어 있으며 탄환은 궁에서 먼 거
리인 서쪽으로 많이 배치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작 지키고 보존하여야 할 주체인 인천 시민들은 역
사적 의미와 가치와 의미에 대해서 주목하는 이들은 드물다. 사실 대다수 시민들에겐 ‘墩臺[돈대]’라는 이름조차 낯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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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곶돈대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바다 쪽으로 돌출된 지형인 '곶'에 설치되어 해안 관측에 쉽고, 적의 공격을 방어하기
에 유리한 곳에 위치해 있다. 현재도 해병대가 주둔하여 해안을 경비하는 것을 보면 예나 지금이나 전략적·군사적으로 중
요한 지역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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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정이 이렇다 보니 강화도 돈 대는 제대로 역사 문화유산으로서 보존, 관리조차 이뤄지지 않으면서 폐허로 전락하고 있다.
강화도의 진과 보는 해안 경계부대로 군사를 가지고 있었고, 진에는 제물진, 월곶진, 초지진, 덕진진, 용진진 등 5진이고,
보는 승천보, 철곶보, 인화보, 정포보, 장곶보, 선두보, 광성보 등 7보를 말한다. 보편적으로 진과 보에서는 주로 3~5개 정
도의 돈대를 관할 했는데 강화도에 돈 대는 월곶돈대, 망해 돈대, 장곶돈대, 오두돈대 등 총 54개 돈대가 설치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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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54개 돈대가 다 복원 되어 있는 것은 아니고 절반 정도는 남아 있고, 아직 까지 멸실된 돈대와 진, 보 등을 꾸준히
복원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데 문제는 백과사전. 신문기사, 하다못해 강화 군청 까지도 기본 말들이 달라 서 아예 유랑자가 국가 기록 유산청과 강화군 시설관리과에 정확히 문의한 결과 받은 자료는 2025년 11월 현재 총 54개 돈대중 현재 보존하고 있는 돈대는 21개와 군시설로 이용하고 있거나 군 시설 내에 있는 돈대가 8개 이고 멸실된 돈대가 25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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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곶 돈대는 비교적 많이 알려진 돈대는 아니지만, 돈대에서는 거침없이 바다를 볼 수 있기 때문에 숨겨진 일몰 조망지
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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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2025년 11월 현재 인천시 지정 문화유산 또는 사적으로 지정된 곳은 광성보, 초지진, 덕진진, 용진진, 갑곶돈대, 굴암
돈대 등 18개소로 확인 되었다. 아무튼 墩臺[돈대]'는 가장 작은 규모의 방어시설로, 해안가를 따라 보통 1.5~3km 간격으
로 설치된 적의 감시 초소로 포좌가 있는 포대 시설이 함께한다. 강화도 전체 해안선을 따라 돈대들이 설치됐으며, 이들은
3~5개씩을 단위로 12개 鎭.堡[진.보]에 편성되어 해양 경계와 방어를 담당하는 중요한 군사시설로 기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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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곶돈대는 북일곶돈대 서쪽 1,500m, 검안 돈대 동쪽 1,500m에 위치하고 있다. 원래 장곶돈대 위에는 벽돌로 된 여장이
90㎝ 간격으로 돌려 있었으나 지금은 남아 있지 않다. 7개 보 중 장곶보에 속한 돈대는 미루지돈대, 북일곶돈대, 장곶돈대
선수돈대를 관장한 돈대였으며 이 중 장곶돈대가 본영 역할을 했다. 長串墩臺[장곶돈대]는 인천시 강화군 화도면 장화리
에 있는 돈대다. 장곶돈대는 이름에 벌써 바다. 쪽으로 길게 뻗어나간 곳이라는 뜻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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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군 참고자료
▶장곶돈대는 지름이 31.1m에 달하는 둥근 원형의 돈대다. 돈대의 둘레는 128m이며 성벽의 높이는 3.2m 내외이다. 돈
대 바닥의 기단을 포함하여 포좌의 윗부분에 덮어 얹은 개석(蓋石)까지 거의 원형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다만 몸을 숨겨
적을 공격할 수 있도록 성 위에 낮게 덧쌓은 담인 여장(女牆)은 흔적만 남아 있을 뿐 현재는 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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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오개혁(고종 31년, 1891) 때 돈 대는 진무 영과 함께 혁파(革罷)된다. 그 후 방치되어 허물어지고 훼손되었다. 돈대의
석재들은 민가의 담장이나 제방 둑을 쌓는 데 이용되어 점차 사라져갔다. 장곶돈대는 그런 훼손의 과정을 덜 겪었다. 민가
와 멀리 떨어져 있었던 덕분에 보존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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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곶돈대는 1993년에 부분 보수를 하고 2018년에서 2019년에 걸쳐 보수 정비 공사를 했다. 허물어진 성벽을 보수할
때 외부에서 새 돌을 가져오지 않고 돈대 현장에 있는 석재를 그대로 사용했다. 그 덕분에 옛날 돌과 현대의 돌이 섞여 있
는 부조화스런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장곶돈대는 원형을 잘 간직하여 고졸한 옛 맛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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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串[곶]'에 들어선 감시 초소, 강화도에는 지명에 크고 작은 '串[곶]'이 들어간 곳이 더러 있다. 강화대교가 있는 '갑곶'을
비롯해서 북한의 황해도 개풍군을 마주 보고 있는 '월곶' 등이 있다. 돈대 이름에도 곶이 들어간 게 있다. 미고 돈대며 장곶
돈대 또 북일 곶과 송곶, 갈곶, 구등곶, 월곶돈대가 바로 그곳이다. 모든 돈대들의 위치를 보면 시야 확보가 잘 되는 바닷가
의 언덕이나 바다와 맞닿아 있는 산의 끝자락에 위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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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대가 감시 초소임을 생각해 볼 때 바다 쪽으로 툭 튀어 나간 '곶'에 돈대가 들어서는 건 너무나 당연할 것이다.
특히 조선의 숙종은 강화도를 요새화했다. 두 번의 胡亂[호란]을 겪으면서 보장처의 필요성을 절감했던 조정에서는 강화
도에 돈대를 쌓기로 했다. 어영군[왕 호위군] 4천3백여 명과 승병[승려군] 8천여 명 그리고 석공 1.000 명을 동원해서 80
여 일 만에 48개의 돈대를 쌓았다. 강화도는 그 자체로 이미 큰 성이나 마찬가지이지만 해안가에 일정 거리를 두고 소규모
성곽인 돈대를 쌓아 방비를 더 튼튼히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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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곶돈대에서 일몰을 바라보는 풍광 역시 굿이다.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한결 순해진 해가 천천히 바다를 향해 내려온다.
돈대 성벽에 올라서서 바라보던 사람들은 말을 잊었다. 고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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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 일몰은 인위적인 멋을 더하지 않고 자연이 만들어낸 자연 그대로의 멋진 풍경은 이루 말할 수 없는 큰 감동으로 가
슴 깊은 곳에 남곤 한다. 따라서 해마다 많은 여행객들이 지친 몸과 마음을 다잡으려 도심을 떠나 자연 속으로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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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적이긴 하지만, 이 돈대들은 오늘날에 와서는 串[곶] 이 '꽃'이 된 것이다. '긴 곳 돈대'로도 불리었던 장곶돈대는 강화
도 서쪽 해안과 석모도 동쪽 해안 사이를 흐르는 '席毛水路[석모수로]'의 초입에 있다. 오늘날 석 모 수로에는 조력댐이 2
개가 있다. 석모 수로는 조선시대 삼남[충청도, 전라도, 경상도] 에서 한양으로 올라오는 해로의 길목 중 하나인데, 강화도
남쪽 해안에 비해 수심이 깊어 썰물 때도 배를 띄울 수 있었다. 그로 인해 浦口[포구]가 발달했고 그 주변에 돈대가 배치되
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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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곶돈대 역시 강화도의 다른 돈대와 마찬가지로 숙종 5년[1679]에 강화유수 윤 이제가 해안 방어를 위해 함경도와 황해
도, 강원도 등 3도의 승군 8,000여 명과 어영군 4,300여 명을 동원해 80일 동안 쌓은 48개의 돈대 중 하나이다.
숙종때 쌓은 48개 돈대 이후로도 6개의 돈대를 더 쌓았으니 숙종 44년[1718]에 빙현 돈대를 비롯해서, 경종 1년[1720]에
는 초루돈대를 축조했다. 영조 때도 돈대를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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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중에서도 낙조는 저녁 해의 붉은 노을빛을 뽐내며 해면이 점차 하강하는 사이에서 붉게 빛나는 멋진 풍경을 자아내는
것으로 유명하다. 특히 이맘때쯤이면 더욱 장관을 이뤄 해마다 낙조 여행을 준비하는 이들로 붐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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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돈대[영조 2년, 1726]보 와 제승돈대[영조 15년, 1739]가 그것이다. 이후 광성보에 용두돈대를 하나 더 만들었으나,
1개의 향방은 묘연하다. 이로써 강화도의 돈 대는 모두 54개가 완성된다. 이제부터 기다림의 시간이 시작된다. 2시간여,
오늘 일몰을 볼 수 있을까? 유랑자는 성벽 위에 서서 해 질 때를 기다린다. 거침없이 내달렸던 해가 종점을 향해 가며 마지
막 숨을 고른다. 해는 천천히 바다를 붉게 물들이며 수형선을 향해 내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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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랑자는 강화도 서쪽 바닷가 돈대에서 지는 해를 배웅한다. 일 년 365일 해는 늘 뜨고 지지만 오늘의 해는 유별나게도 붉
다. 구름도 흘러가고 강물도 흘러가고, 갯바람도 흘러간다. 생각도 흘러가고, 마음도 흘러가고, 시간도 흘러간다. 고로 인
생도 흘러간다. 그나마 다행히도 고여 썩지 않고 인생사 喜怒哀樂[희로애락] 의 모든 일들이 고이지 않고 흘러가니 얼마나
다행이요, 또한 고마운 일인가? 유랑자는 자연이 베풀어진 환상에 대한 고마움과 기꺼운 마음을 가슴에 담고 숙소로 발길
을 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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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일곶돈대(北一串墩臺) 찾아가기
-조 소: 인천광역시 강화군 화도면 장화1리 1209 (장화리 산361)
-별 칭: 뒤꾸지돈대
-축조 시기: 1679년(숙종5)
-규 모: 너비 - 동서 32.2m, 남북 28.7m. 둘레 - 122m. 잔존 성벽 높이 - 3.5m 내외
-형 태: 방형(네모 모양)
-지정사항: 인천광역시 기념물 제41호
-시 설: 문 1개, 포좌 4개, 건물지 1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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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화리 찾아가기
-인천 강화군 화도면 장화리 1408
-24시간 개방
-입장료 없음
-대중교통 접근은 가능하나 비추천
-주차장 무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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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곶돈대 찾아가기
주 소: 인천광역시 강화군 화도면 장화리 113
-인천 기념물 19호
-입장료 없음
-주차장 무료(돈대 입구에 차량 4대 주차가능)
-별 칭: 긴곶 돈대
-2018년~2019년 보수 정비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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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cafe.daum.net/b2345/9toB/23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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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여행 가이드
*관광 안내소: 032-932-2302.
*강화군청 문화 관광과: 032-930-3568
*관광 통역안내: 1330(24시간 운영)
*한옥관광 안내소: 032)932-5464
*터미널 안내소: 032)934-55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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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군 여행 정보는 여기에서 확인 요.
https://www.ganghwa.go.kr/open_content/tou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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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8경
#제1경 전등사/. #제2경 보문사/. #제3경 연미정/. #제4경 갑곶돈대/.
#제5경 마니산/. #제6경 광성보/. #제7경 초지진/. #제8경 적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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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성곽길, 강화 나들길 도보 여행 시 유의 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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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전에 코스를 숙지 후, 시간과 거리를 감안한 자신의 체력에 맞는 여행을 하십시오.
*여러 사람과 함께 여행하며, 위급 시 119나 소리를 내어 주변에 알리도록 합니다.
*해안제방 길에서 밀물과 썰물 및 군사 보호지역 통행시간을 고려하여 여행하십시오.
*해안가 근처에는 폭발물 등의 위험물이 있을 수 있으니 주의하시기를 바랍니다.
*강화 나들길 여행시간은 (하절기 09:00~18:00, 동절기 09:00~17:00)입니다.
*코스 중에는 역사·문화 유적지가 많으니 훼손하지 않도록 유의하시기를 바랍니다.
*여행 중에 주민의 사생활 공간을 침해할 수 있으니 조심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환경을 위한 일회용품 사용을 자제하시고, 쓰레기는 반드시 회수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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