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두 갈래 길'
* 걷지 않았던 길(The Road Not Taken)
노란 숲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네.
두 길을 갈 수는 없기에
한 여행객으로 오랫동안 망서렸네.
길 아래로 보이는 것까지
잡풀로 굽어진 곳까지 살피면서
그래도 괜찮은 듯한 다른 길을 갔지
아마도 잘 선택한 것 같다고 자부하면서
그 길은 길들여지지 않아서 풀이 있었지
지나가는 길은 다 그럴 것 이라고
두 길들이 길 나긴 다 비슷하였어
그 아침에 두 길에는 똑같이
낙엽으로 덮혀져서 길 자욱은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난 처음 길은 나중에 가기로 했지
그러면 그 길이 어떻게 인도 할 것을 알면서
내가 과연 여기 돌아올지 의심하면서도,
나는 한숨 쉬며 이렇게 말하고 있겠지
먼 훗날 여러 해가 지나서 어디엔가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는데,
나는
사람들이 별로 걷지 않는 다른 길을 택하였지
그로 인해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로버트 프로스트(Robert Frost)/ 미국시인>
이 시는 우리가 하나만 선택해야 할 당면한 기로에 서있는 오늘의 현실적인 '망설임'을 표현하고 있다.
인생의 여정에서 두가지의 갈림 길은 누구에게나 놓여 져 있다.
‘어느 길로 가야할 것인가’ 란 질문은 제일 먼저 대두되는 현실의 삶과 미래를 지향하는
크리스챤의 믿음의 자세를 엿보며 '어찌 할지'를 망설이게 만든다.
한 개인의 사리를 깨닫게 하는 신앙의 자세를 가늠하여 본다.
왜냐하면 이것은 운명적 이여서 ‘사느냐 죽느냐 ‘의 차원에서 던져진 숙제이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는 현실의 삶을 결정해야하는 책임을 주어진 두가지 중에서 하나만을 선택해야하는 처지에 맞닿게 된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니라(마태 7:13-14).
많은 사람들이 편하게 오가는 넓은 길과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은 좁은 길을 나타내 주는 천로역정의 교훈을 알려준다.
한 길을 선택하면 그 길이 인도하는 대로 따라가야 하는 필연임을 명확하게 제시한다.
그러기에 오늘의 선택은 되돌릴 수 없는 가늠쇠의 셋업으로 이해하여야 할 것이다.
사도 바울은 이러한 상황에서 올바른 선택의 '키'를 우리에게 던져준다.
‘나는 날마다 죽노라‘ (고전15:31) 라고 매일 반복하면서 예수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제자의 삶을 선언한다.
이러한 오늘의 '죽음'은 결국 미래의 '생명'으로 이어지는 마지막 선택임을 밝혀준다.
육신의 삶이 매일죽음으로 만이 영생의 삶이 주어진다는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를 확언 하는 것이다.
이것이 복음이다.
시인 포레스트는 좁은 길을 선택하여 후회없는 인생의 역정을 드러내는 것같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요 14:6)
어느 평론가의 해설이다.
한번 선택한 길의 행보를 살피면서 과거를 돌아보고 '만약에' 다른 길을 택하였다면 하는
후회와 원망을 겨누어 보려는 의미는 담고 있지 않다.
지나온 길의 행적이 좋았던지 나빳던지의 문제를 논하여 현실을 타협하려는 것도 물론 아니다.
지금 걷고 있는 결과의 귀추는 자신에게 있음을 상기 시키고 있다.
[카스다/전용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