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오는 날은...
비가 오지 않는 날보다
몇배쯤 더 시간이 축축하다.
시간이 비를 맞은 것도 아닌데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온통 젖은 채
뚜둑뚜둑 온 몸에서 물기를 흘린다.
잔뜩 습기 머금은 시간에서
스멀거리며 하얗게 피어나는...
물안개같은 곰팡이를 털어내면
시간은 달팽이보다 느린 걸음으로
오던 길을 거슬러 과거로 향하고 있다.
오늘의 과거인 어제, 혹은 엊그제들...
여름날 오후의 나른한 그림자처럼
정지된 듯 느릿느릿 과거로 향하다가
우연히 떠오르는, 혹은 의도된
어느 한시점에서 잠시 등을 펴고
한곳에다 시선을 고정시킨다.
아마도 내 그리움이 머물러 있는 곳.
지나간 시간이라 하여
모두 다 추억이 되는 것은 아니다.
추억으로 건져지지 못한 것들은
잔챙이 씨어들처럼 놓여지거나
감기끝의 후유증처럼 시름시름 잊혀지거나
원치않는 잉태들처럼 쉽게 버려진다.
추억으로 떠오르는 것들은...
대체적으로 지독했던 것들이다.
지독히 아팠거나 지독히 슬펐거나
지독히 힘들었거나 지독히 사랑했거나...
'지독히 즐거웠다'라고는 표현되지 않듯이
기쁨보다는 슬픔이나 아픈 기억이 더 많다.
내 과거 속의 슬픔과 아픈 시간들을
마른 빨래처럼 한 장 한 장 개키다보면
아마도 내 몸집보다 더 큰 부피가 되리라.
슬픔이 많아서 쓸쓸한 눈망울이 되었는지
쓸쓸한 눈망울을 지녀 유달리 슬픔이 많은지 내겐
언제나 같이 나눌 기쁨보단 혼자 견디는 상처가 더 많다.
혼돈, 시간개념을 상실한 나비효과 속에서
꿈인 듯 현실인 듯 어수선한 기억들이 뒤섞인다.
빛과 어둠의 틈새에 갖혀 탈출구를 잃어버리거나
무작정 하늘을 보고 걷다가 어느 별에 머물러
이따금씩 발에 채이는 별 부스러기를
손바닥에 올려놓고 후우 불어보기도 하는 꿈...
지구상에 잔존하는 몇 안되는 야생낙타가
긴 목을 빼고 울음우는 황하의 사막을 건너서
이리저리 떠도는 바람의 이야기를 들으며 잠을 깬
추억이 오던 길을 되돌아 느릿느릿 회항하다가
어느 낯선 행성에서 또다시 잠시 멈추어 선다.
다시는 돌아가지 않을 것 같았던 쓸쓸한 행로...
흔적이란...차마 버리지못하는 미련같은 것일까.
떠나려 마음을 꾸릴 땐 흔적조차 다 거두었는데
좌초의 기억밖에 없는 그 행성의 무엇에 미련남아
내 잃어버린 시간의 발목을 잡아끄는 것일까.
아주 잠깐 낯설었던 시간들, 내 무모한 몸짓들이
오래된 풍경화 속 한 그루 버드나무로 서 있는...
버드나무 가지 끝에 위태롭게 걸려있던 달,
제 그림자비친 연못에 훌쩍 뛰어내려
푸른 물빛으로 결결이 부서지던 날...
다시는 그 누구에게도 마음을 열지 않으리라
헛된 맹세가 저 혼자서 서럽게 울어도
나는 끝내 그 달의 시신을 건져주지 못했다.
대신 나를 스쳐간 푸르고 붉은 시간들이
내게 아무 것도 남기지 않기를 바랬다.
나를 투명하게 통과하여 그저 봄날의 꿈처럼
잠시 머물렀던 삶의 체적으로 흘러가기를 바랬다.
이 지상에 아무 것으로도 흔적남지 않는다는
것이야말로 그 얼마나 아름다운 소멸인가.
이름없는 그리움을 버리고자 내 안에
완강히 자리한 너를 차가운 거리로 내몰던
그날도 오늘처럼 비가 왔었던 것일까.
그래서 비만 오면 너는 언제나
알싸한 아픔으로 되살아나는 것일까.
비보다 먼저 푸른 일렁임으로 다가오는 것일까.
소망하여도 끝내 이루어지지 못하고
절망하여도 끝내 지워지지 못하는 상념들이
끝내 마르지 않을 눈물처럼 고여있는 것일까.
아직도 아물지 못한 상처의 갈피를 들추어
칸칸이 소금을 절여넣기라도 한 듯 비오는 날이면
간신히 잊어가던 이름을 이처럼 다시 불러내는 것일까...
[하늬구름의 세월 STUDIO]
첫댓글 하늬님의 비의연가~~끊임없이 솟아나는 샘물 같아요.
아직도 아물지 못한 상처의 갈피를 들추어 칸칸이 소금을 절여 넣듯 비오는 날이면...~~~~~ ㅠ.ㅠ
마음아파요 이제는 이쁜 사랑이야기만 올려주세요 지금나 고있니 아니 두눈에 이슬이 이슬이 쇠주이슬 말고요 행님아 언제 올꺼여요
이번주엔 아우님 피정갔다가 일정이 잡혀 잇다면서 그럼 언제 올라 가지 다음주엔 우리 막노동 해야잔아용...스케즐 뽐아 보샴...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