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하지 말자 윤수민!
이게 요 며칠동안 내가 내린 결론이다.
목요일날 수업 일지를 일요일 밤에서야 쓰다니.. 변명의 여지가 없다. 그렇지만 또 한편으로는 목요일 수업부터 지금까지 계속 나는 일지를 멈추지 않고 쓰고 있었다.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그리고나서 내린 해결책은 저 위에 적힌 문장이었다. '답'은 아닐지 모르겠으나 지금 내가 해야하는 수많은 것들 중에서 가장 0순위를 뽑자면 '잘 하지 않는 것'이 현재의 내게 필요하다고 느꼈다.
•
<꼬꼬무> 시즌 2, 4화: 4000일간의 추적- 여대생 공기총 살인사건
사실 나는 작품을 볼 때 편식을 한다. 슬프거나 가슴 아픈 실화 바탕의 작품을 잘 못보겠다. 그런 작품을 보게 되면 한동안 우울감에 휩싸이고 악몽도 자주 꾼다. 그렇기 때문에 한번 보게 될 땐 큰 맘을 먹고 봐야한다. 음식은 편식을 안하면서, 배우를 한다는 사람이 작품을 편식한다니.
그래서 학준쌤께서 이번 숙제를 내주셨을 땐, 겁이 났다. 같은 여성으로서, 비슷한 나이대로서, 너무나도 지금의 나와 닮아있는 점이 많은 한 존재가 잔인하게 살해당한 사건. 정말 이해할 수도 이해하기도 싫은 이유로 죽음을 맞이한 사람의 이야기. 문득 겁이 났다. 누군가의 마음을 헤아린다는 건, 어쩌면 즐거움보다도 아픔을 더 많이 겪는 일이겠구나 하고.
두 장면을 두고 고민했었다. 오빠 분이 눈물을 보이시던 마지막 장면과 어머니를 떠올리시던 장면. 결국 나는 강하고 멋진 분이셨던 어머니가 딸을 잃고 나서 죽은 목숨처럼 '그냥, 그냥' 사셨고 그건 아버지도 저도 살릴 수가 없던 것이라고 담담히 이야기하시던 장면을 골랐다.
눈물을 흘리는 장면을 하게 되었을 때, 내가 눈물-이라는 감정 표현-에만 집중해서 자칫 중요한 것들을 놓칠까봐, 조금 더 솔직하게 이야기하자면 아직은 아닌 것 같다는 도망의 마음으로 선택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단순히 회피로서 장면을 선택한 건 아니었다. 어머니에 대해 이야기하시던 오빠 분의 '담담함'을 감히 헤아려보고 싶은 마음이 분명 있었다. 나는 생각만 해도 눈물이 가득 고이는 그 말들을 담담하게 꺼내기까지의 그 과정이 얼마나 아프셨을까. 그건 무뎌지고 무감각해진 담담함이 절대 아닌데. 무엇일까? "그냥" 이라는 말에 담겨있는 것들은 얼마나 클까. 이 질문들이 늘어져만갔다.
•
연습을 열심히 하지 못한 탓에 발표할 때는 온전히 집중하지 못했다. 그리고 자꾸 '이게 아닌데' 하는 생각과 싸우며 말을 뱉었다.
너무도 신기하게도, 어쩌면 당연하게도 학준쌤은 알아보셨다. 내 마음을 꿰뚫어보시는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매번. 지금 너에겐 '정답'을 찾고자 하는 마음이 있는 것 같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그 사람의 마음을 '헤아려보는 것'과 '가지는 것'은 다르다는 말씀과 함께. 정말 머리가 둥 울렸다. 인간의 마음이란 단순하지 않다. 아쉬운 상황이라고 할지라도 슬픔만 가지고 있는게 아니라 망설임과 분노와 미안함, 그런데 또 희망이 한꺼번에 뒤섞여있는게 인간이고, 그래서 연기가 쉽지 않은 것이라고 선생님은 예시를 들어서 설명해주셨다. 그래, 나는 오빠 분의 마음을 가지려고 했다. (이것이야말로 정말 '감히' 다.) 그렇기에 무언가 답이 있는 것처럼 찾고 찾아서 헤매기만 했다.
그래서 아직 나의 연기는 '발표'와 '표현' 에만 치중되어있다고 말씀하셨다. 정답을 찾아야 한다, 잘해야 한다, 어떻게 보여져야 한다. 일지를 쓰는 것에 있어서도 "일지를 쓰는데 무슨 큰 마음까지 먹어야 할까?"라는 질문을 내게 던지셨다. '일지'와 '일기'는 다르다고 말이다.
일지는 그날그날의 기록, 나의 상태와 상황, 문제를 파악하고 이에 대한 해결방안과 앞으로의 방향을 탐색하는 것. 그리고 실행에 옮기는 것. 이로써 자기객관화를 가능케 하는 것이 일지의 역할이다. 그런데 나는 왜 일지를 쓰는데 이다지도 오랜 시간과 굳은 다짐을 필요로 하는 걸까?
"수민이는 본인이 너무 커서 자꾸 본인 스스로를 잡아당긴다"는 선생님의 말씀에 끝내 무너졌던 것 같다. 계단을 한칸한칸을 밟아올라가는 것이 배움의 과정이라면. 첫번째 계단과 두번째 계단을 올라간 뒤 다음 계단인 세번째 계단을 가리키시며 뒤를 돌아보면 수민이는 이미 바닥으로 내려가있다고. 그리고 다시 첫번째, 두번째, 세번째까지 올라와서 다음 네번째 계단을 설명하시면 수민이는 또 다시 바닥으로 내려가있다는 이야기. 내 안에 내가 너무 커서 다른 사람들의 칭찬과 피드백이 잘 들리지 않고, 자꾸만 정답을 찾으려고 한다고.
"그런데 완벽은 없어."
"남이 아니라 나를 위해서 주체적으로 하는 거야."
선생님이 말하시는 나에 대한 설명들이 나는 지금껏 한번도 해보지 못한 생각들이라 너무나도 생경하고 낯선데, 이상하게도 아니에요 라는 부정의 마음이 튀어나오지 않았던 건 너무나도 맞는 말들이라서 그랬다. 그제서야 풀리지 않았던 퍼즐들이 들어맞춰져서 다 설명이 되는 느낌이었다. 내가 연습을 할 때 열번을 해도 제대로 한 것 같은 생각이 안 드는 것과 발표를 시작할 때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것. 연기를 하는 내내 몰입이 안되고 이런저런 마음이 자꾸 부딪히는 것. 일지를 쓰려고 자리에 앉아서 단어 하나하나를 고심하는 것들 전부 다. 이래서 그랬던 거다.
"진희가 다시 왔을 때 네가 얼마나 늘었을까? 라는 기대를 할거야." 라는 선생님의 말씀에 바로 "헉 그럼 안되는데! 실망할텐데..!" 라는 말이 먼저 튀어나가는 나를 보며 확실하게 느꼈다. 아, 나는 '잘' 해야 한다는 생각만 하고 있구나. 내가 나를 이토록 모르고 있었다니. 선생님의 말씀들을 꾹꾹 머릿속에 눌러담으면서 수업내내 눈물을 열심히 참아냈다.
그 여느때보다 하얘지고 멍해졌던 수업이었다.
•
지금 나에게 가장 부족한 것은 나를 아는 것이다. 내가 나를 모르는데 어떻게 남을 알겠어. 게다가 그런 상태로 연기는 또 어떻게 하겠어. 나를 알기 위해서는 나를 꾸미기 위해 뒤덮고 있는 것들부터 벗겨내야 한다. 외면이 아닌 내면을 파고들자던 학준쌤의 말씀처럼 말이다. 그러려면 '잘'하려고 하는 게 아니라 '그냥' 해봐야 진짜 나를 알 수 있을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잘' 하려고 하다보면 화려한 거짓부렁만 늘뿐이다. 그러자 문득 학준쌤께서 3월부터 계속 강조하시던 '여기선 깨지고 부서지더라도 다 해보자'는 말씀이 처음, 제대로 이해가 갔다. 부끄럽게도 지난 수업 일지 제목이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남을 위해서' 인 걸 떠올려버렸다. 진짜 바보.
잘 보이려고 하지 말자. 잘 하지 말아버리자.
3월 그리고 11월 말에 비로소 다시 시작하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