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조명
산다는 것
조광자
느릿느릿 되새김질하는 강
가는지 오는지 깊은 속을 보이지 않는다
밀림 한 가운데서
사자에게 먹히고 있는 새끼를 바라보는
어미의 눈이 저랬다
온통, 검푸른 동공뿐이었다
칼과 숫돌 사이
벼리고 깎아서
서로에게 필요한 연장이 만들어지듯
무딘 칼날은 숫돌을 깎아내리고서야
날을 세우고 시퍼런 위엄을 갖춘다
거품을 물고 흘러내리는
예리한 눈빛
상처를 파헤치듯 돌아눕는
싸늘한 금속의 차가움이여
서로에게 익숙해질수록
제 몸을 깎아 완벽한 짝으로 태어나는
칼과 숫돌 사이처럼
무뎌지고 뭉텅한 마음을 벼리고 산다
휘어지다
평생을 뒤척이며 허리가 뒤틀렸다
꼬인 근육이 견디는 통증이 깊어지면
옹이 진 마음도 같이 자란다
꼿꼿하게 세우지 못한 허리에
누군가는 손을 얹고
더러는 비웃고 지나쳤을 그 길
기꺼이 고개를 숙이거나
에돌아가야 하는 기울어진 허방에
왜, 굵은 성깔의 가지하나 키우지 못했는지
한 줌의 주먹도 스스로 내지르지 못했는지
그 마음 순하게 풀다 보면
해마다 푸름이 더해진다고
우듬지도 무성하여 바람막이가 된다고
짓무른 눈가를 문지르며 바라보시던 어머니
그 말씀이 썩어서 거름이 되도록
여름 한 철 자갈밭에 묻혀 산다
갈라진 맨발을 딛고 일어선 바람이 산을 넘어가는 소리
허물어진 마음이 봉긋해지도록 다독이는 소리
비탈진 길에 휘어진 소나무 한그루
그만 쉬었다 가라고 구부러진 허리를 내민다
차마 앉을 수가 없어 돌아서 간다
식물의 감정
한 철 보기엔 꽃이 좋아
플라스틱 화분에 담긴 작은 앵초 꽃을 사 왔다
좁은 집에 전족을 딛고 선 어린 신부
피우지 못한 겨울이 젖꼭지처럼 말라붙었다
병원에서 식물로 살아가는 그녀도 미라가 되어간다
움푹한, 늙은 코끼리 눈처럼
천천히 돌아 흘러내리는 몇 방울 눈물
캡슐에 저장된 부분의 기억이 떨어져 벽을 타고 올라온다
식물의 감정은 눈 속에서 피어나 내 가슴에도 떨어진다
말라버린 가지를 잘라 주면 고인 말 속에 피가 돌아 나올까
입을 버리고 고무호스가 대신 먹고 있는
소화되지 못한 감정이 쿨렁, 기침을 한다
수치심을 묶어버린 손이 힘겹게 버둥거리자
침대에 묶인 뿌리가 서서히 젖는다
한 줌 물과 햇살에 매달려 살아가고 있는 저것들
차마 버릴 수가 없어 가슴에 걸어두고 산다
틀
허리를 구부리고 자전거 페달을 밟는 남자
핸들을 잡고 체인을 돌리는 근육으로
엉덩이는 안장에서 삼인 분의 중심을 잡아야 한다
퇴화된 꼬리뼈를 옷 속에 숨기고
먼지가 날리는 길을 힘겹게 끌고 가는
남자의 슈트 자락 모서리를 꼭 쥔 여자
ㅡ앞만보고달리는자전거에매달려가는롤러스케이트의여자
품에안긴아기의때묻지않은눈동자
자전거를 따라 빠르게 회전하는 롤러스케이트
그녀의 머리에 새가 돋아나 먼 허공을 응시하고 있다
바퀴의 중심축을 벗어나 날고 싶은 새
길에는 날개가 없다
액자 속으로 들어간 가족은 더 이상 자라지 않는다
이석증
새우잠으로 돌아눕는 밤
밤의 한 귀퉁이가 기울어지고
어지럼증이 잠을 넘어뜨렸다
바닥이 일렁거리고 천장이 나선형으로 빙빙 돌았다
귓속의 달팽이 한 마리
제집에서 떨어져 나와 길을 헤매고 있으니
세상이 함께 돈다고
이비인후과 의사가 말했다
당신의 변연계와 나의 변연계가 공명하지 못해
감정의 깊이가 어긋난 탓이라고
나를 받쳐 줄 바닥이 보이지 않는다고
빙글빙글 도는 생각을 제자리에 돌려 달라고
고글을 쓰고 간신히 침대에 누웠다
귀에 거슬린다고
중심을 잡아 줄 돌을 뽑아 내던져
눈앞에 출렁이는 빈자리가 아프다고
지난날, 내가 한 일을 자세히 보라며
머리채를 잡고 이리저리 흔든다
한 쪽으로 쏠린 눈동자
당신의 심중을 한동안 오독했다
영성 수행으로서의 시 쓰기,
짧은 시가 주는 긴 여운
젊은 시절 나는 대부분의 시간을 가정과 사회에 불화를 일으키며 좌절과 고통으로 보냈다. 남루한 현실에서 도피하려는 방어기제로, 초현실적이고 비물질적인 영성의 세계로 관심을 돌렸다. 나의 존재를 영적인 우월감과 종교의 교리에서 찾으려고 애썼다. 그 길만이 태생에서 비롯된 근본적인 열등감과 고달픈 가정의 굴레에서 나를 구원해 줄 것이라고 믿고 싶었다. 그런 나의 신념에 확신을 얻으려는 듯 명상을 배우고 비슷한 성향을 가진 사람들끼리 모임을 가졌다.
보이지 않는 에너지의 세계가 있고 내가 처한 지금의 현실도 나의 의식 수준이 만든 창조물이라고 한다. 기성 종교와 뉴에이지 영성에서 말하는 보편적인 가르침인 것 같다. 이 부조리한 현상도 내가 불러온 인과의 결과라면 오직 수행만이 방편이고 최선일까. ‘오직, 내 탓이오,’ 하면 마음이 편안해질까.
숙명론적인 인생관을 갖게 되면서 외부에서 보기에 나는 충실한 생활인이 되었다. 하지만 생업에 몰두해야 하는 삶은 늘 악몽을 꾸는 것 같이 정신이 아득했고, 겉돌았다. 나는 누구이고 왜 여기에 있어야 하는지, 내면의 불편한 목소리가 끈질기게 속삭였다. 답이 없는 간절한 중얼거림이 화두가 되어 두서없이 낙서를 하며 절망했다. 그때의 낙서가 시의 형식을 갖추어 시인이라는 과분한 이름을 얻게 되었다.
문학이 세상의 진리를 다 보여 주는 건 아니지만 문학이야말로 우리의 가장 가까운 곳에서 삶의 심연을 밝혀 줄 지형도라고 믿는다. 체계적인 배움이 모자라 사물이 전하는 메시지를 적확的確한 자리에 옮겨 적는 언어 구사가 어렵다. 하지만, 현실과 가상의 세계 저 너머의 신비까지…
언젠가는 어렴풋이 알아차릴 수도 있는 마음의 눈을 밝히는 수행을 게을리하지 않을 것이다.
밖에서 보다
생각 밖에서 생각을 보고
가족 밖에서 가족을 보고
도시 밖에서 도시를 보고
지구 밖에서 지구를 본다
개미의 아우성이 코끼리의 고막을 찢고
나비의 날갯짓이 태풍을 불러오고
꽃의 태동이 생명의 근원이 된다
까마득한,
광년 전에 빛났던 저 별빛
이곳, 지구에서 마주치니
안드로메다 성운이 고향이라고
잊었던 기억 되살아난다
시 창작의 기본도 모르면서 쓴 초기 시이다. 막막한 현실에 대한 질문의 연속이었다. 이 길의 끝에서 밖이라는 인식의 상위자아를 대면할 수 있는 깨달음, 이 원초적이고 근원적인 갈망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시를 궁구한 세월이 벌써 이십여 년이 지났다. 갈수록 시의 깊이를 헤아릴 수가 없어 무척 당혹스럽다. 하지만 난해한 산문시 보다 정제된 언어가 돋보이는 간결한 시가 오랫동안 가슴에 남는다, 여백이 없는 시는 왠지 숨이 막혀 오는 것 같이 답답하다. 일부는 현대시의 시류에 벗어난 뒤떨어진 발상이라고 할지 모르지만, 각자의 지향점이 다를 뿐 틀리지는 않을 것이다.
나의 내면에 숨어 있는 상처 받고 자라지 못한 아이, 그 아이를 시 속으로 불러내 주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된다. 그러고도 남는 향기가 있다면 누군가의 숨결에 가닿기를 조심스레 소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