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 서효인
지난 주말에는 동네 정육점에서 돼지고기 두 근을 떼서 먹었다 수육용이요 비계는 싫어요 했을 뿐인데 돌인지 고기인지 알 수 없는 돼지가 몸을 털었다 이번 주말에는 기차를 타고 진주에 갔다 옆자리에는 지난번 그 정육점 주인이 탄 것 같은데 그때 감히 따지지 못했던 고객으로서의 품위와 권리 같은 것이 떠올라 백정처럼 분해지는 것이다 진주에 도착할 때까지 분한 마음으로 졸다가 창밖을 보다가 그러다 말았다 왜 질긴 돼지고기를 성토하지 못한단 말인가 졸리지도 않으면서 눈꺼풀을 닫은 채 진주에 닿았다 작년 여름에는 다니는 회사에서 누가 노조를 만들다 보기 좋게 실패했다 돼지고기에 술추렴하며 몸을 털었다 진주에 도착하니 남강이 보이고 강에서 부드러운 비계 같은 바람이 불었다 바람에 정육점 주인이 날아가고 없다 어디 갔지? 어디 갔노? 흩어지고 없다 질긴 고기처럼 입을 다물고 돌덩이처럼 자리에 앉아서 전화도 받고 서류도 쓰고 했다 문득 관광객의 품위와 권리가 떠올라 남강에 몸을 비추어 보았다 때는 1923년이었다 진주 남강에는 백정들이 모여 운동단체를 만들었고 그것을 형평사라고 했다 비닐봉지에 든 고기 두 근이 바스락 소리를 내었고, 나는 엉거주춤 뒤로 물러나 몸을 털었다
- 시집『여수』 (문학과지성사, 2017) .............................................
이 시는 수록 시집 전체의 구성이 그렇듯이 무늬는 기행의 형식을 띈 지리서지만 속살은 사뭇 다른 내용이다. 현재의 사적 체험과 과거의 역사적 사실을 중첩시키면서 특정 공간에서의 새로운 시대적 의미를 제사해보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그런데 동네 ‘정육점 주인’이 판 ‘질긴 돼지고기’와 ‘백정’들이 모여 만든 ‘형평사’와의 상관관계를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의도는 대충 짐작하겠는데 솔직히 무슨 말인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엊그제 ‘알쓸신잡3’의 수다 여행을 마무리하면서 유시민 작가가 지난 ‘진주’편에서 빠트린 ‘衡平社’ 이야기를 끄집어낸 것에 흥미가 부추겨졌다. 나도 개념만 알고 있었던 ‘형평사’였기 때문이다.
아시다시피 조선시대 백정은 천민 가운데서도 가장 천대받는 ‘불가촉천민’이었다. 호적에도 오르지 못하고 일평생 상투도 못한 채 머리를 풀어헤치고 다녀야 했다. ‘미스터 션샤인’에서 구동매의 신분이 그러했다. 태어나보니 백정의 아들이었고 백정은 사람도 아니었다. 별로 마주칠 일 없는 양반의 횡포보다 상민이나 천민이 백정에게 부리는 행패가 더 잔인했다. 조선 바닥 어디에도 백정의 아들 동매에게 더 나은 세상은 없었다. 1894년 갑오개혁이후 표면적으로는 신분제가 철폐되었으나 잔재는 그대로였고, 특히 백정에게는 크게 변한 것이 없었다. 백정이 갓 쓰고 길을 나서다가는 언제 멍석말이 당해 골로 갈지 모른다.
나라가 망하고 세상이 달라져도 백정은 계속 백정이었다. 자식을 학교에 입학시키려 해도 학부형의 반대로 좌절되고 교회도 맘대로 가지 못했으며 백정끼리 아니고는 혼인도 불가능했다. 이에 불만을 품고 1923년 강상호의 주도로 조선형평사를 일으켜 진주에서 창립총회를 열었다. 때마침 일본에서 일던 ‘水平社’ 운동에도 자극받았고 뜻을 함께하는 일반인도 가세했다. 형평운동은 백정에 대한 편견과 차별을 없애고 인간으로서의 평등한 권리를 회복하고자 시대에 맞서 싸운 우리나라 최초의 인권운동이자 공동체운동이다. 그 과정에서 기존 질서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인 노동자 농민을 포함 편협한 수구세력과의 충돌이 빈번히 일어났다.
이는 사회 최하층 계급이었던 백정들이 신분해방과 평등을 주장하자 노동자 농민들은 이를 백정계급과 자신들의 동질화 내지는 자신들의 사회적 계급의 하향으로 인식했기 때문이었다. 예수는 믿겠는데 백정하고는 죽어도 함께 예배를 볼 수 없다며 신자들은 ‘땡깡’을 부렸다. 하지만 이러한 시련들은 모두 평등사회를 향한 인류의 기나긴 장정에서 일어날 수 있는 역경이라 하겠다. 적지 않은 활동을 통해 억압이 많이 완화되고 부분적인 개선에도 불구하고 일부 사회주의운동과 연계되고 일제강점기라는 시대 상황에 맞게 항일운동으로 발전하였으나 일제의 압력에 못 이겨 1935년 어용단체인 ‘대동사’로 이름이 바뀌면서 해체된다.
그러나 진주의 선각자들이 뿌린 형평운동의 씨앗은 우리나라 인권 운동의 금자탑으로 기록될 역사적 사건이었으며, 형평사는 일제강점기에 가장 오랫동안 유지된 사회운동 단체이기도 했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는 신분의 잔재를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물론 노비나 백정 계급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형태는 달라도 여전히 사회적 차별은 곳곳에 남아 있다. 따라서 진주 사람들의 용기로 일궈낸 그 정신은 서로 사랑하며 똑같이 사람답게 살고자 하는 인류의 영원한 정신이며, 오늘날에도 계승되어야한다. 특히, 모든 이가 더불어 사람답게 살며 서로를 배려해주는 형평운동의 공동체 정신은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실천 이념이라 하겠다.
권순진 |
출처: 詩하늘 통신 원문보기 글쓴이: 제4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