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육은 참 어린아이같고 순진하고 연약합니다. 육의 연약함의 사례는 모니터에 벌거벗은 여자 이미지와 실제 여자의 모습을 구분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혼은 이러한 것을 구분하지만 육은 그것이 가짜인지 진짜인지를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레몬의 이미지를 보아도 침을 흘리는 육은 아주 순진한 어린아이와도 같아서 잘 보살펴주어야 합니다. 이런 육의 연약함을 혼이 잘 간수하지 못하면 우리의 육은 보존되지 못하고 죄의 오염에 노출되어 망가지게 됩니다.
혼은 육에 비해 똑똑하지만 실제로 움직이는 것은 육입니다. 그래서 몸이 아프면 게을러지는 것처럼 혼도 육의 영향을 받으며 늙는 것도 혼이 아니라 육입니다.
또 너희 지체를 불의의 병기로 죄에게 내어주지 말고 다만 너희 자신을 죽은 자들로부터 살아난 자처럼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로마서 6장 13절
위 말씀의 지체는 육이며, 하나님의 뜻에 대한 순종의 열매는 육의 모습으로 드러나게 되어있습니다. 우리의 육은 분별하지 못하지만 우리의 혼은 우리의 육이 죽은 자들로부터 살아난 것과 같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어리고 연약한 육을 그러한 진실로 인도하여 영과 혼의 그릇인 육을 의의 병기가 되도록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죄를 갈망하는 당신의 육을 잘 달래고, 다스려야 합니다. 지금 우리가 가진 육은 바울이나 베드로나 스테판이나 엘리야나 모세나 모두 똑같은 것입니다. 그들도 추우면 따듯하고자 하고, 배고프면 먹고자하는 육을 가졌던 것입이다. 신앙의 선배들도 우리와 동일한 육을 가지고 주의 뜻에 순종하였던 것입니다.
마지막때에는 지금처럼 육의 요구를 모두 들어주면서 살아가기란 어려울 것입니다. 우리가 가진 육이 매우 어리고 순진하다는 것을 깨닫고 잘 다스려서 구원에 이르는 생명의 길을 잘 찾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절대로 육의 요구사항을 최우선의 진리처럼 생각하는 세상사람들과 같아져서는 안됩니다.
그리고 또한가지의 육의 특성은 어리고 순진하기 때문에 그 역량을 잘 이끌어주어야 합니다. 역량은 곧 인내의 역량이기 때문입니다.
팔굽혀펴기를 20개 한다고 생각하고 20개를 시작하면 19 20개할 때 쯤에 힘이들어 더이상 하기 힘든 느낌이 듭니다. 그런데 50개를 한다고 생각하고 시작하면 20개까지 하는데 힘이 들지 않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육이 실제와 사진을 구별못하는 것처럼 혼의 생각도 구별하지 못하고 대응한다는 것의 증거입니다. 그러므로 두려워하지 말고 담대하게 목표를 크게 잡고 인내함으로 맞서야 합니다.
이러한 육의 특성은 좀 더 확장해보면 혼도 이러한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의 혼도 육과 다르지 않은 것입니다. 호랑이를 그려야 고양이라도 그린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는 잘 생각해보면 우리가 앞으로 반드시 가져야할 인내에 대해서 지혜를 얻을 수 있습니다.
어짜피 싸워야 할 싸움에서 목표를 더 크게 두고, 방어하는 마음보다 공격하는 자세로 우리의 혼을 이끌고 육을 다독여야 합니다.
이전에 글에 쓴대로 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 각자의 마음 즉 혼의 영역의 싸움입니다. 우리를 공격하는 자들이라도 그들은 사탄이 아니라 사탄의 쓰임을 받는 자들이며, 그들의 혼을 설득하는 것이 우리의 공격이자 최선의 방어입니다. 일루미나티라고 해도 자신이 지옥에 간다는 것을 알지 못하고 속고 있는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백신시기에 백신을 강요하는 사람을 대응하는 최선의 방법은 강요하는 그 사람에게 백신을 만류하는 것이 었습니다.
경기장에서 달리는 사람들이 모두 달릴지라도 한 사람만이 상을 받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그러므로 너희도 상을 얻게 되도록 달리라.
이기려고 애쓰는 사람은 누구나 모든 일에 자제하나니 이제 그들은 썩어질 면류관을 받으려 하지만 우리는 썩지 않을 면류관을 받고자 함이라.
그러므로 내가 그처럼 달리되 불확실하게 하지 아니하며 또 내가 그처럼 싸우되 허공을 치는 자같이 아니하노라.
내가 내 몸을 억제하여 복종하게 함은 다른 사람들에게 전파한 후에 어떻게 해서든지 내 자신이 버림받지 않게 하려는 것이라.
고린도전서 9장 24절 25절 26절 27절
경기장에서 달리는 것은 육과 혼을 달래서 최고의 힘을 내는 것입니다. 그리고 상을 받는 한 사람이 됨이 육과 혼의 목표를 삼아야 합니다. 이런 것에 겸손함은 불순종의 악이 됩니다.
썩어질 면류관은 우리의 육과 혼이 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인내로 하나님의 뜻에 순종이라는 썩지 않을 면류관을 바라봐야합니다. 이것을 애매하지 않게 분명하게 인식하는 것이 허공을 치는 자와 같지 않음을 의미합니다.
음란물을 보면 우리의 어리고 순진한 육은 그 유혹과 자극을 견디지 못합니다. 이러한 원리를 깨닫고 우리의 육을 억제하여 복종하도록 하여야 하며, 그렇지 못한다면 우리의 연약한 육으로 인해 실패하여 버림받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