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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과 감상을 바탕으로 쓴 글입니다.
※ 또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팬으로서 쓴 글이기 때문에 그 입장에서 서술하였습니다.
1.
8:2
우승팀과 강등팀 혹은 1부 리그 팀과 2부 리그 팀의 경기라면 어느 정도는 납득할 수 있는 경기 결과이다. 그만큼 축구에서 저만한 스코어가 나오기는 쉽지 않다. 10-11 시즌 프리미어리그를 예로 살펴 보아도 6골 차 경기는 손에 꼽는다. 일단 생각나는 경기는
맨유vs블랙번 경기 7:1
첼시vs웨스트브로미치 6:0
뉴캐슬vs아스톤빌라 6:0
(첼시가 개막전 이후로 6:0승리가 한 번 더 있었는데 어느 팀이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물론 뉴캐슬과 아스톤빌라의 경우 강팀 약팀으로 딱히 나누기 애매한 부분이 있었지만 뉴캐슬의 홈이었다는 이점과 이상하게도 그 경기에서 뉴캐슬의 찬스는 번번히 골이 되었고 아스톤빌라의 찬스는 번번히 지나갔다. 전반전만 해도 아스톤빌라가 유리한 고지에 있었는데 어느 순간 그 찬스들의 패권을 빼앗기면서 큰 격차로 벌어졌던 경기이다.
스코어가 일방적인 경기는 대개가 끌려가는 경기이다. 골이 터지기 시작하면 그대로 경기 흐름이 넘어가고 한쪽팀의 압승으로 굳어지기 때문이다. 특히 세 골 차 이상으로 점수가 벌어진다면 따라잡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3:1 상황에서 만회골을 넣지 못하게 되면 실점한 위험도 그만큼 높아지고, 4:1 상황이 되면 이후부터는 걷잡을 수 없이 점수가 벌어진다. 이번 경기가 딱 그런 경기였다.
맨유가 웰백의 헤딩골로 한 골 앞서 있을 때 아스날은 기회를 잡지 못했다. 반페르시의 페널티 실축이 일종의 복선이었던 셈이다. 사실 반페르시의 페널티킥은 구석으로 잘 찼던 킥이다. 그러나 논란의 중심에 있는 데헤아가 페널티를 막아내면서 아스날의 공격기회를 완전히 무너뜨려버렸다. 만약 이 페널티킥이 성공해서 1:1로 아스날이 맨유를 따라갔다면 이 정도까지 참혹한 경기 결과가 나타나진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스날은 그 기회를 잡지 못했다.
이어 몇 분 지나지 않아 애슐리 영의 골과 루니의 프리킥 골로 3:0으로 경기가 벌어졌다. 전반 추가 시간에 아스날의 만회골이 있었지만, 이미 경기는 맨유의 흐름으로 넘어간 상태였고 맨유팬으로서 후반전이 더 기대되는 전반전이었다.
지난시즌 리그에서 두 번 마주친 맨유와 아스날은 각각 한 골 차로 승리했었다. 올드트래포드에서는 박지성 선수의 골이, 에미레이츠 스타디움에서는 램지의 골로 양팀의 희비는 엇갈렸었다. 그만큼 양팀은 어느 한 쪽에 치우치지 않는 팽팽한 실력을 가졌다. 한 세기를 넘은 팀의 역사와 퍼거슨 감독과 벵거 감독의 오랜 앙숙 관계만큼이나 치열한 라이벌 관계를 이어온 팀들인 것이다. 그런데 이번 경기에서 이변 중에 이변이 일어났다. 8:2라니 여전히 믿을 수가 없는 숫자이다.
2.
올드 트래포드 위에서 맨유는 훨씬 강해진다. 또한 2라운드에서 토트넘을 상대로 완승을 거둔 맨유이다. 개막전에서는 웨스트브로미치를 상대로 아슬아슬한 경기를 펼치기도 했지만 어쨌든 승점 6점을 이미 챙겨둔 상태였다. 게다가 제 2의 퍼기의 아이들이라 불리는 웰백, 클레버리 등이 활약을 펼치고 있고, 새로 영입한 애슐리 영이 기대 이상의 몫을 해주고 있기 때문에 디펜딩 챔피언이었던 지난시즌보다 훨씬 선수진이 보강된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박지성과 긱스 등 고참들의 노련미가 살아 있기 때문에 맨유는 신구의 조화가 잘된 팀이라는 평을 받고 있었다.
반면 아스날은 주축 선수들을 잃었다. 공격의 중심이고 팀의 중심이었던 파브레가스가 그토록 염원하던 바르셀로나로 떠났다. 뒤를 이어 나스리도 맨시티로 떠났다. 특히 파브레가스의 부재는 팀을 순식간에 흔들리게 만들었다. 구심점이 사라진 아스날은 중심을 잃어버린채 흔들릴 수 밖에 없었다. 그 흔들림에 나스리마저 가세했다. 그리고 주축선수들의 공백은 팀 전체의 문제로 확산된다.
파브레가스의 이적은 갑작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아스날이 10-11시즌 끝내 어떤 트로피도 들어올리지 못하면서 이미 예견된 일이었다. FA컵에서는 맨유에게 무릎을 꿇었고, 챔피언스리그에서는 바르셀로나에게 무릎을 꿇었다. 이미 두 개의 트로피가 날아갔고, 리그 트로피는 멀어지고 있었다. 그 상황에서 반전의 기회가 된 것이 칼링컵이었다. 라이벌팀들이 칼링컵 우승컵보다 다른 컵에 열중한 사이 아스날은 주전 선수들을 중심으로 결승까지 올라갔다. 상대는 리그 순위로도 차이가 있는 약체 버밍엄시티였다. 그런데 그 약체 팀에게 진 것이다. 이번시즌엔 어떤 컵이든 하나 이상은 올리겠다고 장담했던 벵거 감독의 말이 무참해지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팀은 그때부터 무너지기 시작했다.
리그에서 첼시가 주춤하는 사이 꾸준히 2위 자리를 지키던 아스날이었다. 심지어는 홈경기에서 맨유를 잡으면서 저력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런데 첼시에게 2위 자리를 내주더니 리그 후반부동안 남은 몇 경기 동안은 어이 없는 패배를 하게 되면서 맨시티에게 3위 자리마저 내주게 된다. 악재에 악재, 불운에 불운을 거듭한 최악의 시즌이었다. 칼링컵 우승컵을 눈앞에서 놓치면서, 끝내 6년 째 무관이라는 사실은 선수들이 다른 팀으로 눈을 돌리기에 충분한 이유가 되었다.
특히 파브레가스는 언젠가는 바르셀로나로 떠날 선수였다. 오히려 바르셀로나로 '돌아갈'이란 표현이 맞겠다. 벵거 감독의 설득이 더이상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면서 파브레가스의 이적에는 정당성이 부여되었다.
아스날은 그 대비를 했어야 한다. 파브레가스가 떠났다면 그 자리를 그만큼의 선수를 영입해서 빈 자리를 채워야 했다. 그 예로 맨시티의 경우를 꼽을 수 있다.
이번 시즌 맨시티가 우승후보로 꼽히게 된 가장 큰 까닭은 선수 영입이다. 지난시즌만 해도 맨시티의 경기력은 테베즈의 컨디션에 좌우되었다. 그러나 테베즈는 몇 번이고 팀을 떠나고 싶어 했다. 최고의 대우를 받고 있으면서도 내내 향수병에 시달렸으며,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어했다. 맨시티는 이미 테베즈의 이적을 대비하고 있었다. 그래서 겨울 이적시장에서는 제코를 영입했고, 여름 이적시장에는 아구에로를 영입했다. 그리고 두 선수 모두 이번 시즌 그 가치를 증명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 사이 아직까지 이적에 성공하지 못한 테베즈의 자리는 좁아졌다.
아스날도 맨시티처럼 존재감 있는 선수의 부재를 대비했어야 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 아스날의 실수이다. 리그 3라운드 현재 아스날은 승점 1점만을 챙겼다. 그리고 더 큰 출혈은 3경기 연속 퇴장하는 선수들이 나왔다(특히 릴에서 영입한 제르비뉴는 프리미어리그 데뷔전에서 퇴장을 당했다). 홈에서 리버풀에게 몇년만에 패했고, 맨유에게는 그야말로 박살이 났다.
이제 벵거의 유망주 영입과 유소년 정책은 비난의 대상이 될 뿐이다. "우리는 스타 선수를 영입하지 않는다. 스타 선수를 만들어 낸다."라고 말하던 벵거 감독의 신념은 더이상 느낌표가 아닌 무한한 물음표가 된것이다.
지난 시즌 전통의 명가 리버풀이 강등권까지 추락했던 시절도 있었다. 이후 리버풀은 팀을 완전히 개혁했다. 리버풀의 레전드 달글리쉬 감독이 새로운 감독으로 부임했고, 재정난에 시달리던 구단도 헨리 구단주를 만나며 안정이 되었다. 토레스의 이적과 수아레즈의 영입은 팀의 변화의 전환점이 되었으며, 그 결과 리버풀은 리그 후반 좋은 경기력을 보여주며 아쉽게 6위에 올랐다. 그러나 다음시즌이 기대되는 가능성을 보여준 굴곡많은 시즌이었다.
그리고 이번 시즌 리버풀은 그 가능성을 내보이고 있다. 개막전에서 주도권을 잡고도 아쉽게 승점 1점을 챙겼지만, 이후 산뜻한 2승으로 선두권을 지키고 있다. 특히 아스날을 상대로 거둔 두 골 차 승리는 그 가능성에 날개가 되었음이 분명하다.
반면 아스날은 벵거의 고집을 버리지 않는 한 개혁이 불가능하다. 벵거의 경질이라는 최악의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는 앞서 말했듯 최악의 상황이다. 퍼거슨 감독의 말처럼 누가 아스날에 와서 벵거 감독의 자리를 메울 것인가. 아스날의 팀 컬러도 업적도 벵거 감독이 이루어놓은 것이기 때문이다. 퍼거슨 없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상상할 수 없듯 벵거 없는 아스날도 상상할 수 없는 건 마찬가지이다.
나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팬이다. 당연히 이번 승리가 기쁘고 반가울 수 밖에 없다. 무엇보다 박지성 선수의 멋진 시즌 첫 골이 있었다. 이미 박지성 선수는 아스날을 상대로 많은 골을 기록하고 있고, 더욱이 지난 시즌에는 선제골이자 결승골로 팀에게 승점 3점을 안겨주었기 때문에 이번 골은 더욱 반가운 소식이다. 그래서 아스날을 상대로 한 이 첫 골은 그 어느 골보다 더 값져야 한다. 그러나 어딘가 찜찜한 구석이 있다. 바로 아스날이 '그 아스날'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난날 무패우승이라는 자랑스러운 기록을 세운 이름만으로도 가치가 되는 아스날의 상징성이 이번 경기에는 없었다.
맨유의 8골, 웰백의 선제골과 루니의 해트트릭, 애슐리 영의 데뷔골과 추가골, 박지성 선수의 교체투입 3분만에 터진 골, 미덥진 않지만 나니의 골, 데헤아의 슈퍼세이브까지. 아스날을 상대로 한 맨유의 골 잔치는 앞으로의 프리미어리그 역사 속에 두고두고 회자될 것이다. 그리고 이 골들이 더욱 빛나고 이야기되려면 아스날의 부활이 절실하다.
앞서 말했듯 맨유와 박지성 선수의 팬으로서 박지성 선수의 시즌 첫 골을 마지막으로 경기가 끝났더라면 하는 바람도 든다. 이런 씁쓸한 기분이 들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6:2의 스코어의 승리도 엄청난 대승이기 때문에 바로 직전에 열린 맨시티의 승리를 순식간에 넘어선 승리라고 자부하며, 아스날을 상대로 기분좋은 리그 3연승을 거두었다고 마냥 신났을 것이다. 그러나 루니의 페널티골과 애슐리영의 추가골이 터지면서 어딘지 모르게 씁쓸함이 감도는 승리가 되었다.
3.
모든 축구는 이야기이다. 경기 자체도 이야기이지만, 경기 전에도 경기 후에도 수많은 이야기를 낳는다. 그 중에서도 이 경기는 그 어느 때보다도 많은 이야기를 낳을 것이다. 그러나 앞서 말했든 이 경기가 이번 시즌 EPL의 전부는 아니다. 앞으로도 EPL은 38라운드가 끝나기까지 수많은 이야기를 만들 것이고, 그 이야기 속에서 팬들은 수많은 감정을 느끼며 축구 이상의 축구를 경험할 것이다.
EPL의 38R의 대장정 중에서 이제 막 3R가 끝났다. 한 시즌을 한 권의 책으로 비유한다면, 그 책은 이제 막 몇 장 넘겼을 뿐이다. 3R 현재 상황은 우승후보 맨유와 맨시티가 무서운 득점력으로 3연승을 거두며 리그 선두 자리를 두고 다투고 있고, 그 뒤를 아쉬운 개막전을 치룬 리버풀과 첼시가 바짝 뒤쫓고 있다. 반면 파브레가스라는 구심점을 잃어버린 아스날과 모드리치라는 구심점을 잃어버린(이적은 아니지만 이미 선수가 구단에서 마음이 떠났으므로 한동안 그 마음을 추스리기란 쉽지 않다) 토트넘은 하위권에 쳐져있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 아직 전체 리그 경기의 반의 반도 진행되지 않은 상황이다.
지난 시즌 강등권의 리버풀이 6위로 끝까지 치고 올라왔 듯-심지어 막판에 토트넘을 잡았다면 5위까지 가능했다- 알 수 없는 부진을 겪었던 첼시가 시즌 막판 우승 저력을 확인하며 맨유를 맹추격 했듯 시즌은 다 끝나봐야 아는 것이고, 한 단면만 보고 평가할 수는 없는 것이다. 축구 경기 그 자체처럼 말이다. 모든 축구는 경기 종료 휘슬이 울려야 끝난다. 마찬가지로 38R가 끝나기 전까지는 추측은 가능하되 그 어떤 얘기도 쉽게 판단하고 확신해서는 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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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아스널이 페널티킥을 얻은 시점은 한골차였을 때입니다.
지적 감사합니다. 수정했습니다
벵거의 이적 정책에 대해선 아무말 하지 않겠습니다. 돈이 벵거에게 오지 않는다면 그가 돈을 쓰는것 자체가 불가능한 일일테니까요. 누군가 그 부분을 확실하게 긁어줬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이번 경기는 벵거의 전술적 고집이 낳은 참패라고 봅니다. 아스날의 수비는 느리고, 맨유의 공격수들은 리그에서 손꼽힐정도로 빠른 선수들입니다. 누구나 아는 사실이죠. 그럼에도 벵거는 풀백들을 적극적으로 공격에 가담시켰고 수비라인을 앞뒤로 열심히 움직였습니다. 결과는 역습, 또 역습으로 수비수의 퇴장으로 까지 이어진 참패였죠.
이곳은 에미레이츠 스타디움도 아니고 1차전을 패배한 후에 벌어진 챔스 2차전 경기도 아니었습니다. 어디까지나 리그 디팬딩 챔피언의 홈에서 왜 그렇게까지 공격적으로 경기를 운영했는지가 의문스러울 뿐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