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임재로 너를 부른다. 찢긴 몸을 통한 하나님의 약속
그분의 몸은 찢겼다. 채찍질에 찢겼고 가시에 찢겼다. 십자가의 무게와 못의 구멍으로 찢겼다. 그러나 처참하게 찢긴 그 몸을 통해 영광의 문을 여셨다.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길이요 휘장은 목 그의 육체니라. (히브리서 10:20)
우리 앞에 가로막힌 장벽
대통령이 그의 집 방문을 위해 그대에게 초청장을 보낼 리가 없다는 것을 그대는 알고 있다. 하지만 하나님의 집이라면 다르다. 이미 초청장이 왔기 때문이다.
찢어진 휘장
그분은 당신을 눈여겨보았다. 당신을 초대하였다. 한때 당신을 막았던 벽이 이제 허물어졌다.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에베소서 2:13). 당신과 하나님 사이에 남은 것이라곤 열린 문뿐이다.
‘그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 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델 열어놓으신 살 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 (히브리서 10:19-20)
휘장은 곧 예수님이다. 예수님의 몸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 그분의 몸은 찢겼다. 채찍질에 찢겼고 가시에 찢겼다. 십자가의 무게와 못의 구멍으로 찢겼다. 그러나 처참하게 찢긴 그 몸으로 영광의 문이 열렸다. “예수께서 다시 크게 소리 지르시고 영혼이 떠나시니라.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고”(마태복음 27:5-51). 휘장이란 바로 성전의 휘장을 말한다. 지성소 앞에 걸려 있던 휘장이다. 지성소는 아무나 들어갈 수 없는 성전의 한 부분이다. 1,500여면 휘장으로 가려져 있던 성소는 무엇을 말하는가? 간단하다. 거룩하신 하나님이 계신 곳이다. 그는 우리와 구별되어 계시고 감히 다가갈 수 없는 분이다. 하나님은 거룩하시며 우리는 조인이다. 그 분과 우리 사이엔 건널 수 없는 깊고 거리가 먼 강이 있다.
이것이 우리의 문제가 아닌가? 예수님은 하나님을 접근 불가능한 자리에 그냥 두신 채 우리를 떠나지 않으셨다. 맞다! 하나님은 거룩하시다. 맞다! 우리는 죄인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가치 있는 사실이 있다. 예수님은 우리의 중보자시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디모데전서 2:5). 예수님은 우리와 하나님을 이어주던 휘장이 아니던가? 그리고 그분의 육체가 찢기시지 않았던가?
찢어진 휘장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유대인들에게 그것은 자신과 지성소 사이에 더 이상 장벽이 없다는 뜻이었다. 그들과 하나님 사이를 이어줄 제사장이 더 이상 필요 없다. 그들의 죄를 속해줄 동물 제사도 더 이상 필요 없다. .
죄책감이라는 휘장이 우리와 아버지 사이에 기어들어 우리로 하나님을 피해 다니게 한다. 그러나 찢겨진 육체가 주는 메시지는 우리가 다시 하나님과 가까워질 수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반겨주신다. 하나님은 우리를 피하시지 않으신다. 휘장은 찢어졌다. 문이 열렸다. 하나님이 우리는 안으로 부르신다. 자신의 양심을 믿지 말라. 십자가를 믿으러, 피가 흘려졌고 휘장이 찢겼다. 우리는 얼마든지 하나님의 임재 안에 들어갈 수 있다.
님들과 함께 생각해보길 바라는 주제는?
먼저, “1,500년 휘장에 가려져 있던 지성소는 무엇을 말하는지요? 간단합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십니다. 우리와 구별되어 게신 분이며 감히 다가갈 수 없는 분입니다.”
1) “거룩하다”는 말이 당신에게는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가요?
2) 하나님은 왜 자신의 거룩함을 우리에게 알리려 하실까요? 그것이 왜 중요할까요?
둘째, “우리는 장벽을 다시 쌓아 올리려는 버릇이 있습니다. 성전에는 휘장이 없는데 우리 마음에는 휘장이 있습니다. 시계의 초침만큼이나 우리 마음에는 실수가 끊이지 않습니다. 때로, 아니 시도 때도 없이 우리는 그 실수가 장벽인 양 하나님과 거리를 둡니다. 양심의 가책이 휘장이 되어 우리와 하나님 사이를 갈라 놓습니다.
1) 당신은 “장벽을 다시 쌓아 올리려는 버릇”때문에 혹 고생하고 있는가요? 당신에게 자주 방벽이 되는 것은 무엇인가요?
2) 죄책감이 장벽이 되어 당신과 하나님은 갈라놓는 것을 어떻게 막을 수 있겠는지요?
주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우리의 죄를 도말하여 주시고 주님이 주관하시는 평화의 자리에 매일 부르십니다. 그러나 주님이 허락하신 인간의 자유의지와 자신이 쌓아올리는 마음의 휘장으로 "제 문지임에 먼저 저가 해보겠습니다!"라고 주님의 손길을 피하고 있지는 않는지요? 저/우리의 문제 이전에 주님의 임재로 이는 주님의 개입이 필요한 문제이며 주님의 손길로 온전히 해결받아야만 하는 문제입니다. 우리 개인/공동체 그리고 사회/세계 제 문제의 올바른 해결을 위한 주님의 온전한 보살핌을 구하는 기도가 필요한 시간입니다. 감사합니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