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해부] 서울대 철학과 97학번 31명 인생 궤적 따라가 보니… [조인스]
대한민국 ‘인문학 위기’ 檢證 보고서
■ 8명 국내외에서 학문 계속…사시 합격 2명, CPA 1명, 취업 9명
■ 철학이 직장에서도 먹힌다…인문적 문답수업 직장생활에 큰 힘
■ 영국 케임브리지 고전철학 전공자 10명 중 9명 취업 주목
■ 전문성 잃고 교양 수준의 인문학으로 변화…위기 돌파구일 수도
■ 위기 진단 자체가 비인문적 발상…인문영역 예술로 확대 중
1997년도 학번은 대한민국을 벼랑으로 내몰았던 IMF 외환위기세대다. 그들 중 가뜩이나 어렵다던 인문학 전공자들은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 서울대 철학과 97학번의 인생 궤적을 추적한다. 그들의 내성은 얼마나 강하며, 인문학은 얼마나 위기인가?
고래를 잡으러 간 영철은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남은 병태는 입영열차를 탔다. 영자와의 뜨거운 입맞춤만 남긴 채-.
요절한 천재 영화감독 하길종의 대표작이자 히트작인 <바보들의 행진>. 1970년대 중반의 시대상을 잘 반영한 이 작품 속 두 주인공 병태와 영철은 철학도였다. 군부독재라는 냉엄한 현실 아래서 철학을 하기에 고뇌해야 했고, 돈이 안 되는 학문이기에 이성으로부터 버림받아야 했던 인간군상들. 딱 32년 전 이야기다.
그리고 만 10년 전. 꿈을 안고 출발한 대학생활도 타성에 젖어갈 무렵, 그들이 딛고 선 이 땅은 사상 초유의 사태를 맞아 비틀거렸다. 외환보유고가 바닥나는 바람에 국가 파산 위기에 처했던 것.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저금통을 털고 장롱 속 금붙이를 들고 나와 위기를 넘기는 일이 벌어졌다.
대학 졸업반 선배들은 취업의 길을 열지 못해 주저앉았다. 그에 놀란 2~3학년 선배들은 군대로 도피하거나 휴학의 길을 택해 시간 벌기에 들어갔다. 아직 물정도 잘 모르면서 그냥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바라보기만 했던 그들. 바로 97학번이었다.
이후 대한민국은 고비를 넘기고 급격한 산업화를 거쳐 지식정보사회로의 빠른 페달을 밟고 있다. 군사정권도 끝난 지 오래다. 이제는 풍성한 민주화의 열매를 따 먹는 시절이 됐다. 하지만 여전히 이 사회에서 인문학은 냉대받는 학문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너무 많다. 심지어 한 인문학도는 “암울했던 군사독재시절보다 더 어려운 상황에 빠져 있다”고 외마디 비명을 내지른다.
“돈이 되는 것과 돈이 되지 않는 것. 이러한 이분법적 사고가 대한민국 사회를 짓누르고 있습니다.”
그 인문학도는 학문 역시 그러한 차원에서만 존립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개탄했다.
이 학생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런 사회 분위기를 해석하는 많은 학자의 주장도 다르지 않다. 몇몇 학자들은 그 시발점을 1997년 말부터 갑작스럽게 닥친 ‘외환위기’로 보고 있다. 소위 ‘IMF 시절’을 겪으며 사람들은 참 많이 변했다. 수많은 사람이 직장에서 쫓겨나고, 노숙자와 청년실업자가 거리에 넘쳐나는 혹한의 시기를 보내야만 했기 때문이다.
IMF 위기가 초래한 사회 변혁의 틈바구니
그로부터 10년이 지났지만 상처는 아직 아물지 않은 듯하다. 아니 오히려 더 거세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계무역기구(WTO)와 자유무역협정(FTA)이 상징하는 신자유주의의 조류 앞에 사람들은 한층 더 돈을 중심으로 한 이분법적 사고에 세뇌당하고 있다.
이런 시대에 인문학을 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지난해 9월 전국 인문대 학장들이 모여 시국선언을 했다. 유사 이래 최초라는 ‘인문학 위기’ 시국선언. 이후 폭발할 것만 같던 이 이슈는 약 반년이 흐른 지금 벌써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먹고사는 일에 바쁜 일반인들의 관심을 끌 수 없었던 이슈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시대 인문학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철학 전공자들의 삶은 어떨까? 10년 전 진리에 목말라 철학이라는 학문을 선택했던 이 시대의 영철과 병태는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서울대는 한국사회에서 아주 특별한 공간이다. 혹자는 이를 두고 ‘서울대망국병’이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사실 대한민국에서 공부 잘하는 학생이 몰리는 곳이다. 일종의 브레인 집단이기에 서울대가 차지하는 위상은 무시할 수 없다.
특히 인문학에서 서울대 인문대는 국내 어느 대학보다 규모가 크고 연구 성과도 높은 것으로 정평나 있다. 이는 상아탑발 인문학의 위기를 논할 때 서울대 인문대를 떼어놓고 이야기하기 힘든 이유이기도 하다.
이런 연유로 서울대 인문대의 한 학과 중 한 학번 학생들을 표본으로 삼아 이들의 진로가 어떻게 됐는지 조사해 보기로 했다. 최종적으로 선정한 집단은 서울대 인문대학 철학과 97학번.
우선 철학과를 선택한 이유는 철학이 모든 인문사회과학의 출발점이자 가장 기초가 되는 학문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97학번일까? 앞에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한국사회는 1997년 말부터 시작한 외환위기 사태를 계기로 급속하게 사고의 전환이 이뤄졌다. 사회가 그러한데, 대학과 그 구성원들도 변화가 없을 리 만무하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철학을 전공하기 위해 입학한 97학번 동기생들은 학교에 다니며 가장 다이내믹한 인문학의 위기상황을 목격한 주인공이기도 하다. 선배들과 달리 ‘서울대’라는 간판만으로 취업하던 시절도 끝나고, 또 ‘철학도’라는 꼬리표가 더 이상의 자랑이 될 수 없는 마지막 세대가 이들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들이 사회로 진출한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하지만 거꾸로 생각해 보면 이들 97학번 집단이야말로 사회 변혁기에 가장 큰 혼돈 속에서 진학과 취업을 저울질해야만 했던 세대라고 할 수 있다.
서울대 인문대학 철학과 97학번으로 입학한 학생은 모두 31명(97학번 편입생 1명 포함). 이들 31명은 정말 다양한 길을 걷고 있었다. 아직 졸업하지 못한 재학생도 3명이나 됐다. 이들 재학생을 제외한 28명 중 3명은 끝까지 행적을 알 수 없었다. 결국 졸업 후 진로가 확연히 드러난 사람은 총 25명.
이들 25명의 졸업 이후 진로 스펙트럼은 각양각색이지만, 크게 범고시파·취업파·진학파로 나눌 수 있었다. 물론 이들 그룹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여러 갈래로 다시 나뉠 수 있다.
우선 범고시파의 경우 사법시험 합격자가 2명, 공인회계사시험 합격자가 1명이었다. 사법시험 합격자 중 한 명은 이미 수원지방법원에서 판사로 재직하고 있고, 나머지 한 명은 현재 모 지방법원에서 연수 중이다.
공인회계사시험 합격자는 현재 공군 장교로 복무하고 있다. 그는 6월에 전역하면 국내 4대 회계법인(삼일·삼정·안진·한영) 중 한 곳에 바로 입사할 예정이라고 했다.
삼수생 이상 입학자 중 학구파 많다
특이한 점은 아직 취업하지 못한 미취업자 그룹 역시 범고시파라는 것이다. 확인된 미취업자 3명은 전원이 사법시험을 준비 중이었다.
취업파는 졸업생의 거의 3분의 1 수준인 9명이다. 인문계 학생들이 일반적으로 가장 많이 취업하는 대기업과 금융권 취업자가 각각 3명씩 6명이었다. 대기업 진출자 중에는 사무직이 아닌 정보기술(IT) 개발 쪽으로 취업한 경우도 한 명 있었다. 금융권은 은행 2명, 보험회사 1명이었다. 이외의 취업자들은 공기업·출판사·IT벤처기업에 각 1명씩 진출했다.
의외의 분야는 진학파였다. 진학파는 모두 10명으로 우선 수적으로 타 그룹을 압도했다. 철학 또는 철학과 연계된 전공으로 진학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들 중에는 벌써 박사과정에 진입했거나 해외 유명 대학 대학원에서 유학 중인 경우도 있었다.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8명의 철학 관련 진학자 중 4명은 본과 대학원, 1명은 협동과정인 고전학 분야로 진학했고, 나머지 3명은 유학을 떠난 상태였다. 유학 중인 사람은 각각 미국의 카네기멜론대·브라운대, 영국의 옥스퍼드대에 재학 중인 것으로 드러났다.
진학파 중 나머지 2명은 전공을 바꿔 진학했다. 한 명은 같은 대학 경제학과 대학원으로, 다른 한 명은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예술전문사과정에 진학했다.
이들 진학파를 분석하면서 재미있는 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특히 철학을 계속하는 사람들은 삼수생 이상의 장수파였다. 같은 대학원 철학과로 진학한 4명은 전원이 삼수생이었다. 유학자 중 2명은 아예 고령 입학생으로 70년대 초반 출생자였다.
나머지 한 명의 유학생도 서울대 천문학과를 졸업한 후 철학과 97학번으로 편입한 학생으로 나이가 많은 축이었다. 한 동기생은 이에 대해 이렇게 평가했다.
“나이가 좀 들어 입학하는 사람은 스스로 진지한 고민 끝에 결정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물론 그 이유만은 아니겠으나, 나이가 든 이후 입학한 학생들의 진학률이 높은 것은 사실이었다.
97학번은 또 하나의 특징이 있었다. 확인된 것으로만 봐도 지방학생 비율이 과반을 넘었다. 무려 18명(확인자만) 이상이 수도권이 아닌 지방 출신이었다. 요즘 서울대에 서울 강남권 학생이 집중되는 현상과 비교하면 사뭇 다른 느낌이다.
이에 대해 한 97학번 졸업생은 “지방 출신 학생이 줄어들면서 대학원 진학이나 철학 자체에 대한 관심도 현저히 줄어드는 것 같다”고 잘라 말했다. 여학생은 4명뿐이었다. 하지만 97학번을 기점으로 여학생이 점점 늘어나 요즘에는 거의 정원의 반 정도에 이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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