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형제는 어렸을 때부터 스포츠를 엄청 좋아했죠. 그 계기는 1988년 서울 올림픽이었습니다. 아마도 학교가 이유였던 것 같은데, 서울 올림픽 개막식은 토요일이었습니다. 온 가족이 서울 올림픽 개막식을 구경하러 갔을 때, 전 혼자 TV 로 그 장면을 지켜보고 있었더랬죠.
'혹시 TV 에 울 엄니 나오시려나..'
그 때 본 굴렁쇠 쇼가 어찌나 멋지게 뵈던지..
어쨌든 간에 서울 올림픽을 계기로 저와 제 동생은 스포츠에 슬슬 미치기 시작합니다. KBS 에서 방송했던 서울 올림픽 리뷰 프로그램.. 비디오 테잎 두 개를 차지하는 그 방송 테잎은 정말 마르고 닳도록 열심히 봤었죠..
그 때를 계기로 저와 제 동생은 야구, 축구, 농구, 배구.. 중계가 많은 모든 구기 종목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1989년부터는 팽귄아파트 야구단에 동시 가입.. 글러브와 배트를 모아가며 열심히 야구 연습도 했었더랬죠.
야구 팬이 되기 시작한 게 1989년이거든요. 그러고 보면 동생은 빙그레 시절부터 지금 한화까지 이글스 팬으로 살아온 인생 15년.. 하지만, 전 1989년엔 해태를 응원했고, 1990년 개막 3연전에서 해태가 3연패 당하는 충격적인 장면을 보고-_- 막 창단했던 LG 트윈스로 바로 턴해버린 관계로 트윈스 팬 14년 삶입니다. ㅎㅎ
매주 금요일날 오후 6시가 되면 각자 살기 바쁜 저와 제 동생이었음에도 TV 앞에 나란히 모여 하구라의 해설을 들으며 꼬박꼬박 야구 중계를 보곤 했었죠..
같이 TV 중계를 볼 때가 많아서 그런지 좋아하는 선수나 팀이 겹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허동택의 기아자동차..
김주성의 부산 대우..
장윤창-정의탁의 고려증권..
야구만 빼고 좋아하는 선수, 좋아하는 팀은 거의 같았죠.
그 때 제 또래 스포츠 매니아들은 대부분 특징들이 비슷했죠. 저와 제 동생만 그랬던 게 아니다란 걸 왜 알 수가 있냐면 학교가서 애들과 얘기하다보면 다 똑같았으니까.. 프로야구, 프로축구, 농구, 배구 거의 모든 팀들의 로스터를 줄줄 외워가며 정말 미친듯이 중계 챙겨보고 노가리 까고 그랬었죠 ㅎㅎ
아, 둘 다 WWF 의 광적인 팬이기도 했습니다. 어렸을 때 이불 깔아놓고 정말 많이 했었죠. 각자 독특한 등장 세레모니도 있었는데..
그런데 제 동생의 스포츠 삶 중 특이한 게 하나 있습니다. 요건 형 따라 보게 되니 어쩔 수 없이 추가된 거라 생각하는데,
제 동생, 유타 재즈의 10년 팬입니다.
NBA 팬 아닙니다.. 재즈 팬입니다..
아직도 그 이유를 알 수 없지만, 제가 조던 미워..바클리 내 사랑.. 노랑이들 왜 저래? 를 외칠 때 제 동생은 그 옆에서 칼 말론 조아.. 존 스탁턴 멋져.. 저 감독은 왜 저래? 를 외치고 있었습니다.
이후 전 점점 더 농구에 빠져들었고, 동생은 빙그레 이글스를 중심으로 열심히 스포츠를 보기 시작했죠. 그냥 농구는 해주면 보고.. 바빠서 못보면 말고..
시간이 흘러 흘러 90년대 말이 되니 이제 동생은 이글스와 부산 대우 중심이긴 했지만, 국내 프로야구-축구는 거의 꽉 잡더라구요. 지금도 TV 로 이글스나 대우 경기를 볼 때는, 제 동생이 옆에서 열심히 해설을 해줍니다. 누가 누구고 요즘 성적은 어떻고 등등.
그리고 아주 가끔씩 제게 물어보죠. 요즘 재즈 어때? 칼 말론 여전히 잘하남? 등등
제 동생이 본다는 NBA 중계는 중요한 경기다 경기다 하도 떠들어대는 아들 탓에 우리 어머니까지 TV 앞에 앉으시게끔 만드는 빅 경기 몇몇, 그리고 재즈 경기들 뿐입니다. 오히려 KBL 에 더 관심이 많죠.
97년이랑 98년.. 레이커스가 재즈에게 2년 연속 물먹었을 때, 동생 좋아하는 모습 보고 얼마나 뻘쭘하던지.. 그리고 재즈가 2년 연속 불스에게 보기 좋게 당했을 때의 동생 표정 보고 또 역시나 얼마나 뻘쭘하던지..
그렇게 해서 조던이 은퇴하고 NBA 는 새로운 시대를 맞고 이러는 과정에서도 동생은 끊임없이 제게 질문을 던집니다. '요즘 재즈 어때?' 라구요. 다른 질문도 가끔 들어오지만 90% 는 언제나 재즈 관련 질문입니다. 다른 질문들이라 하면 '코비 요즘 왜 저래?', '맥그래디가 어디서 뭐하던 놈이야?', '가넷이 그렇게 잘해?', '조던 진짜 복귀하는거야?' 등등
몇 년 전에는 키릴렌코가 대체 어떤 넘이냐! 라는 질문을 하길래 이래저래 설명을 해줬었죠. 올해는 맷 하프링에 대해서 마구 설명을 해줬습니다. 그러고 보니 몇 년 전부터 계속 말론과 스탁턴은 언제 은퇴하냐란 질문도 받았었네요.
레이커스가 우승을 하건 말건 조던이 복귀를 하건 말건 '어 그래' 하고 넘어가면서도 재즈에 무슨 일이 생기거나 하면 '그건 왜 그래?' 라고 꼭 묻고 넘어가는 참 독특한 재즈 매니아가 바로 제 동생입니다.
제 동생이 얼마 전에 물어보더군요. 올해 재즈 몇 위 했느냐.. 7위.. 그럼 누구랑 붙는데.. 킹스랑 붙지.. 또 걔네야.. 그렇다.. 못이기는 분위기인감.. 둘이 붙으면 언제나 빡세긴 한데 객관적으로는 좀..
얼마 전엔 재즈 vs 킹스 경기를 같이 봤습니다. 같이 보긴 했지만, 동생이 외출했다 들어오는 관계로 4쿼터 3분 전부터던가 같이 보기 시작했죠. 재즈가 6점차 지고 있을 때, 재즈 공격이었는데 제 동생이 TV 를 유심히 보더니 제게 던진 말이 참 인상깊었죠.
'스탁턴 쟨 왜 저리 침착해? 재즈 지고 있는 거 맞어?'
그러면서 오랜만에 보는 재즈 경기라고 연장전 가기를 바라더군요. 스탁턴이 그러한 제 동생의 바램을 텔레파시로 받았는지 기막힌 스틸에 3점 러쉬로 정말 겜을 연장으로.. 뭐 저두 같이 바랬지만 -_- 올해 처음으로 보는 재즈 경기였고, 동생도 참으로 오랜만에 보는 재즈 경기였기에.. 결국 연장에서 바비 잭슨의 3점 미스가 페자 손에 딱 걸리는 바람에 승부는 사실상 끝나버렸죠. 그 장면 보고 동생이 어찌나 아쉬워하던지..
Stockton to Malone 을 보는 게 실질적으로 올해가 마지막일 거라는 생각을 해보면서(Stockton 이 시즌 후 은퇴할 것 같다라는 개인적 추측에 의한 것임다.) 갑자기 동생 생각까지 같이 하게 되네요. 칼 말론이랑 스탁턴을 엄청 좋아하는 덕에 재즈에 관심을 가진 동생인지라 두 선수가 은퇴하고 그러면 이제 NBA 볼 일은 거의 없어질 거 같기두 하구요.
재즈가 좀 잘해서, 이기든 지든 명승부 좀 해줬음 좋겠습니다. 두 선수가 함께 뛰는 마지막일지 모르니 중계가 있다면 열심히 녹화해둬서 나중에 보라고 꼭 챙겨줘야겠습니다. 기왕이면 오래오래 남아서 보다 많은 경기를 녹화할 수 있게 되기를 바라죠 ㅎㅎ
셤 공부하다가 -_- NBA PO 대진표를 보는데.. 킹스vs재즈 페이지를 보다 문득 동생 생각이 나서요. 걍 주저리주저리 떠들어봤습니다.
첫댓글 음.. 좋은 글입니다.. -.-;; 재즈의 마지막 영광이 될려나..
부럽네요...전 남동생있어도 취미가 극과극이라서!!대화도 잘 안함~~
이번주에 재즈 경기 중계 없는거 같던뎅... 갠적으로도 열라 아쉽다는-_-;;
우리형제랑 비슷한점 이 많군요...^^ 전22살이구 형은23 연년생인데 같이스포츠를정말좋아합니다^^ 프로야구 광팬(무적엘지^^) NBA도 물론...전 페니팬 우리형은 앤써팬.스톤콜드님과 다른점은 프로축구,배구..이런건 별루..-_-;ㅋㅋ암튼 글 재밌게쓰셨네요 ㅎㅎ
...남동생도 있었군요...
저도 어렸을때 스포츠를 좋아하고 동생분과 같은 나이 입니다.. 근데 88올림픽에 대한 기억은 하나도 없음....ㅡㅡ
비슷하군요...^^ 저랑..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