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석기의 과학카페] 방울토마토 먹고 배탈 난 과학적 이유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지난주 TV에서 의아한 뉴스를 봤다. 급식으로 나온 방울토마토를 먹은 아이들이 구토와 배탈 증상을 보였다는 내용이었다. 증상이 일시적이고 쉽게 회복돼 일반적인 식중독은 아닌 것 같다는 말로 봐서는 병원체 감염은 아닌 것 같았다.
농약 중독일 수도 있겠지만, 방울토마토처럼 온실재배 기법이 확립된 작물에 농약을 과도하게 뿌렸거나 인체 독성이 커 허가가 안 된 농약을 썼을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런데 2~3일 뒤 원인이 밝혀졌다는 후속 보도가 나왔다. 토마토에 들어있는 토마틴이라는 성분 때문이라는 것이다. 덜 익은 열매에 있는 토마틴은 열매가 익으면서 사라지는데, 이번 경우는 이 과정에서 저온에 노출돼 익은 뒤에도 꽤 남아있었다고 한다.
난방비가 비싸다 보니 하우스 온도를 좀 낮췄던 것일까. 아무튼 원인이 밝혀져서 다행이다. 그런데 토마틴은 어떤 물질이기에 먹었을 때 탈이 나는 것일까.
다른 많은 식물처럼 가지과 식물도 여러 속으로 분화하면서 속마다 특징적인 방어물질인 이차대사물(피토케미컬)을 발명해 살아남았다. 담배속(Nicotiana) 식물은 니코틴(연두색)을, 아트로파(Atropa) 등 몇몇 속 식물은 트로판 알칼로이드(녹색)를, 고추속(Capsicum)식물은 캡사이시노이드(보라색)를, 가지속(Solanum) 식물은 스테로이드 글리코알칼로이드(파란색) 생합성 경로를 진화시켰다. 천연물 리포츠 제공
● 감자가 녹색을 띠면 먹지 말아야
가지과(Solanaceae) 식물에는 중요한 작물이 여럿 들어있다. 식용작물로는 가지와 토마토, 감자, 고추가 있고 특용작물로는 담배, 페튜니아가 있다. 이 가운데 앞의 셋은 가지속(Solanum)으로 가까운 사이다.
가지속 식물은 잎과 열매에 스테로이드 글리코알칼로이드(steroidal glycoalkaloid, 이하 SGA)라는 구조의 이차대사물인 피토케미컬을 지니고 있다. SGA는 알칼로이드와 배당체의 구조에 따라 수십 가지가 있는데, 종에 따라 주성분이 다르다. 이름에서 짐작하겠지만 토마틴(tomatine)은 토마토에 있는 SGA다. 가지에는 솔라소닌(solasonine)과 솔라마진(solamargine)이 있고 감자에는 솔라닌(solanine)과 차코닌(chaconine)이 있다.
2011년 감자 게놈과 2012년 토마토 게놈이 해독되면서 가지속 식물의 SGA 생합성에 관여하는 유전자 네트워크를 밝히는 연구가 진행됐고 이듬해 결과가 학술지 ‘사이언스’에 실렸다. 감자와 토마토는 최종 산물이 다르지만, 합성에 관여하는 유전자 종류와 유전자가 자리한 염색체 위치는 거의 겹친다.
그 결과 콜레스테롤을 출발물질로 해서 스피로솔레놀(spirosolenol) 골격을 지닌 스테로이드알칼로이드 분자가 만들어지는 과정까지는 공통이다. ‘식물에도 콜레스테롤이 있나?’ 이렇게 생각하는 독자도 있을 텐데, 콜레스테롤은 식물과 동물이 등장하기 이전 초기 진핵생물이 발명한 생체분자로 대표적인 스테로이드다.
그 뒤 토마토에서는 스피로솔레놀 골격에 당분자가 붙어 콜레스테롤 글리코알칼로이드인 토마틴이 만들어진다. 참고로 글리코알칼로이드의 글리코(glyco-)는 ‘당’이라는 뜻이다. 감자에서는 약간 복잡해 먼저 스피로솔레놀 골격이 솔라니데인(solanidane) 골격으로 바뀐 뒤 당분자가 붙어 솔라닌과 차코닌이 만들어진다. 솔라니데인은 스피로솔레놀보다 독성이 좀더 강하다.
감자를 빛에 노출된 채 보관하면 껍질에 엽록체가 많아져 녹색을 띤다. 이때 솔라닌 합성도 활발해지므로 이 부분을 잘라내지 않고 먹으면 탈이 날 수 있다. 위키피디아 제공
SGA 가운데 감자의 솔라닌이 널리 알려져 있다. 제철 감자가 싸다고 상자로 사서 두고 먹다 보면 어느 순간 녹색 기운을 띠는 감자들이 하나둘 보이기 시작한다. 이 부분을 칼로 도려내지 않으면 맛도 쓰지만 몸에 안 좋고 많이 먹으면 목숨이 위험할 수도 있다. 바로 솔라닌 때문이다.
솔라닌과 토마틴을 포함해 가지속 식물이 만드는 SGA의 다수는 이를 먹은 동물의 세포막을 불안정하게 만들고 신경전달물질인 아세틸콜린을 분해하는 효소의 작용을 방해한다. 그 결과 소화계와 신경계를 교란시키고 고농도로 섭취하면 죽음에 이를 수도 있다. 다만 SGA는 맛이 쓰기 때문에 보통은 치사량을 먹기 전에 피하기 마련이다.
본래 SGA는 가지속 식물이 병원체와 병해충, 동물로부터 자신을 지키려고 만들어내는 방어물질이다. 따라서 씨가 여물 때까지 손상되면 안 되는 잎과 덜 익은 열매에 고농도로 존재한다. 열매가 익으면서 SGA의 농도가 떨어지며 독성과 쓴맛이 사라지면서 동물의 먹이가 되고 배설을 통해 씨를 퍼뜨린다. 그럼에도 야생 식물의 익은 열매에는 여전히 SGA가 꽤 존재한다.
토마토 열매가 익으면서 맛이 쓰고 독성이 있는 토마틴이 쓴맛과 독성이 없는 에스큘레오시드 A로 바뀐다. 지난 2020년 이 과정에 관여하는 유전자 네트워크의 일부가 밝혀졌다. 이번에 문제를 일으킨 방울토마토 품종은 저온 스트레스 조건에서 이 과정에 관여하는 효소의 유전자(아마도 23DOX) 발현이 제대로 일어나지 않아 열매가 익어도 토마틴이 여전히 남아있었던 게 아닐까. 식물&세포생리학 제공
● 작물화 과정에서 농도 낮아져
다른 작물도 그렇지만 가지속 식물도 작물화 과정에서 맛이 쓰거나 독성이 있는 피토케미컬은 농도가 낮아지는 쪽으로 선별이 이뤄졌다. 따라서 작물 감자와 토마토 역시 야생 식물에 비하면 GSA 함량이 꽤 낮지만, 감자처럼 상황에 따라서는 많이 만들어져 독성을 띨 수도 있다.
감자를 빛에 노출된 채 보관하면 껍질에서 솔라닌 합성이 활발해지고 엽록체가 많아져 녹색을 띤다. 싹이 날 조건이 될 때까지 땅속에서 안전하게 있어야 할 덩이줄기가 외부에 노출됐다는 뜻이므로 화학무기를 생산해 앞으로 닥칠 공격에 대비하는 것이다. 이때 껍질째 감자를 요리해 먹으면 다량의 솔라닌을 섭취할 수 있다. 참고로 솔라닌은 안정한 분자라 웬만한 열로는 분해되지 않는다.
의학사를 보면 소위 ‘솔라닌 중독’으로 불리는 사례가 여럿 보고됐는데, 2000여 명의 발생 사례 가운데 사망자가 30명에 이른다. 굶주리다 보니 쓴맛을 참아가며 많은 먹은 결과 아닐까.
토마토 역시 작물화 과정에서 열매의 토마틴 함량이 크게 줄었을 뿐 아니라 열매가 성숙하면서 토마틴이 인체에 무해하고 쓴맛이 없는 SGA인 에스큘레오시드 A(esculeoside A)로 바뀐다. 열매인 토마토는 일단 익으면 새로 토마틴을 만들지 않으므로 싹을 품고 있는 덩이줄기인 감자처럼 유통이나 보관 중에 위험하게 바뀔 가능성은 없다.
이번 토마틴 사건의 경우 야생 토마토 수준으로 토마틴이 많이 만들어졌거나 열매 숙성 과정에서 에스큘레오시드 A로 바뀌는 과정에 문제가 생긴 결과일 것이다. 그런데 이번 말고도 재배과정에서 저온을 겪은 일이 꽤 있었을 텐데 왜 과거에는 이런 일이 없었을까. 토마토의 작물화와 육종의 역사를 살펴보면 이번 사건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수천 년 전 남미 안데스 지역에서 야생 토마토의 작물화가 일어난 뒤 중미에서 본격적으로 재배됐고 16세기 유럽을 거쳐 세계로 퍼졌다. 이 과정에서 유전자 다양성이 떨어졌다. 그러나 1960년대 이후 병충해 저항성과 당도와 향미 등 품질에 대한 시장의 요구에 맞춰 품종을 개량하는 과정에서 여러 야생종과 재래종을 도입하면서 토마토 유전자 다양성이 커지고 있다. 많은 품종을 개발하다 보니 평가가 제대로 되지 않아 이번처럼 문제가 있는 품종이 농가에 보급된 게 아닐까. 식물과학의 경계 제공
● 야생종 유입으로 게놈 다양성 높아졌지만...
가지속은 구성원이 2000종 가까이 돼 네 아속(subgenus)로 나누는데, 가지는 렙토스테모눔아속(Leptostemonum)이고 토마토와 감자는 솔라눔센수스트릭토아속(Solanum sensu sticto)으로 더 가까운 사이다. 실제 감자 열매를 보면 방울토마토처럼 생겼다. 식용 부위로 보면 열매인 가지/토마토와 덩이줄기인 감자로 나뉘지만, 분류학 관점에서는 가지와 토마토/감자로 나뉜다는 말이다. 자생지를 봐도 가지는 아시아이고 토마토와 감자는 중남미다.
아속은 다시 섹션(section)으로 나뉘는데, 토마토는 리코페르시콘(Lycopersicon) 섹션이고 감자는 페토타(Petota) 섹션이다. 게놈을 비교한 결과 약 730만 년 전 갈라진 것으로 보인다. 두 섹션의 차이 가운데 하나가 덩이줄기를 만드는가 여부다. 리코페르시콘 섹션의 종들을 넓은 의미에서 토마토로 부르고 페토타 섹션의 종들 역시 넓은 의미에서 감자라고 부른다.
우리가 먹는 토마토(학명 솔라눔 리코페르시쿰S. lycopersicum)는 수천 년 전 남미 에콰도르와 페루 일대에서 야생 토마토인 솔라눔 핌피넬리폴리움(S. pimpinellifolium)을 작물화한 것이다. 야생 토마토 열매는 크기가 콩알만한데(평균 2g), 이때 작물화를 거치며 방울토마토만한 크기가 됐다.
그 뒤 방울토마토가 중미로 퍼졌고 여기서 육종으로 좀 더 큰 토마토가 나왔다. 16세기에 유럽인들이 중미에서 토마토를 가져갔고 그 뒤 세계로 퍼졌다. 이 과정을 거치며 토마토의 게놈 다양성은 줄어들었다. 이는 다른 작물에서도 보이는 일반적인 경향이다.
1940년 25살의 젊은 나이에 미국 데이비스 캘리포니아대 채소작물과 교수가 된 찰스 릭(Charles Rick)은 토마토 육종에 혁신을 불러오기 위해 원산지인 남미 안데스의 페루와 에콰도르, 갈라파고스까지 탐사하며 수많은 야생종(리코페르시콘 섹션)과 재래품종 자원을 모았다.
릭 교수는 기존 작물 토마토가 취약한 병원체에 내성이 있는 종류를 찾아 교배해 잡종을 얻었고 이를 다듬어 새 품종을 개발했다. 오늘날 유통되는 토마토 품종 대부분은 게놈에 야생종에서 유래한 병원체 저항유전자를 포함한 영역을 지니고 있다.
2000년대 들어서는 맛과 향, 색깔 등 과일로서의 상품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육종이 진행됐고 그 결과 마트에서 새로운 토마토 품종이 속속 소개되고 있다. 특히 방울토마토가 다채로운데, 이 가운데는 초기 작물화의 결과물인 재래품종을 개량한 게 아니라 열매가 큰 작물 토마토와 야생 토마토(핌피넬리폴리움) 또는 야생 근연종을 교배해 나온 것도 있다. 오늘날 토마토 대다수는 두세 종의 게놈이 뒤섞인 잡종이라는 말이다.
이번에 문제를 일으킨 방울토마토는 국내 품종 등록번호 ‘HS2106’인 특정 품종이라는데 구체적인 정보가 없어 어떻게 나온 것인지는 모르겠다. 아마도 교배 과정에서 게놈이 뒤섞이며 저온 스트레스 아래에서 토마틴 생합성에 관여하는 유전자의 발현이 강화되거나 토마틴을 에스큘레오시드 A로 바꾸는 과정에 관여하는 유전자의 발현이 억제돼 열매에 토마틴이 축적된 것으로 보인다. 아마 단맛도 꽤 있어 토마틴의 쓴맛이 가려져 아이들이 거부감 없이 먹은 게 아닐까.
신품종을 개발할 때는 다양한 조건에서 재배해 결과물을 평가해야 하는데, 저온 스트레스 실험을 소홀히 했던 것 같다. 이 품종을 재배한 농가가 세 곳에 불과했고 그나마 한 곳은 출하하기 전에 사건이 터져 폐기했다고 하니 불행 중 다행이다.
※ 필자소개
강석기 과학칼럼니스트 (kangsukki@gmail.com). LG생활건강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했고 2000년부터 2012년까지 동아사이언스에서 기자로 일했다. 2012년 9월부터 프리랜서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직접 쓴 책으로 《강석기의 과학카페》(1~7권),《생명과학의 기원을 찾아서》가 있다. 번역서로는 《반물질》, 《가슴이야기》, 《프루프: 술의 과학》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