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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For.20C.B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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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바람이 불어나간다. 아파트와 아파트의 사이를 찌르는 바람은 골이 깊었다.
우리동에는 아파트가 하나밖에 없다. 나머지는 죄다가 다 논이었다. 농촌은 아니었지만, 논은 많았다. 농부는 없었다. 성당에는 사람이 많았는데, 농사를 짓는다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논은 제 스스로 모를 내고, 제 스스로 가을걷이를 하는 것임에 틀림없다. 동네는 여름이면 온통 파도치는 풀빛으로 충만해졌다. 그러나 그 풍경에는 사람이 없었다.
아들은 소싯적부터 풀을 보고 자랐지만, 풀을 베는 사람은 본 적이 없다. 언제나 자고 일어나면 모내기가 되어있었고, 눈을 감고 떠보면 어느새 겨울눈이 내리고 있었다. 아들은 사시사철 변하는 논의 순간순간만을 관조했다.
대신 우리동에는 허수아비가 많았다. 논에도 있었고, 시퍼런 풀 사이로 난 논두렁에도 있었고, 아스팔트 길가에 심지어 차속, 집속에까지 있었다. TV속에도 있었고, 라디오 속에도 있었다. 어릴 적에 아들은 입버릇처럼 묻곤 했다. - 우리 동네에는 허수아비가 왜 이렇게 많아? 그럴 때면 아버지는 희미하게 웃어 보이는 것이었다.
아들은 집에 혼자 있었다. 2월에 아들은 보통 혼자였다. 대학교가 방학을 하면 집에 붙어있는 이라고는 그 뿐이었다. 아들은 고등학교때는 적적한 집안을 좋아했지만, 나이가 들면서 점점 외로움을 탄다. 뭔가 인간에 대해 알아 가는 까닭에 그는 점점 혼자 있는 것이 두렵다. 그러나 외로움을 알아갈수록 외로울 수밖에 없는 것이 인간 삶의 역리 - 아니, 현대인의 역리였다.
아들은 혼자 있을 때면 보통 TV를 보았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아주 오랫동안 보면 사타구니에 땀이 흘렀다. 그래도 아들은 일어서지 않고 계속 보았다. 그러면 끝내는 사타구니의 불쾌한 습기까지 익숙해지고, 편안하게 느껴지는 때가 오는 것이었다. 극한에 치닫다보면 결국 역으로 회귀한다 - 그렇게되면 마음까지 아주 편안해졌다. 아들은 그 편안함을 즐겼다.
가끔은 문득 그 스스로에 대해 돌아보게 되는 때가 있다. 어떠한 관계의 단절을 서슬 퍼런 칼날처럼 느끼고, 한겨울 바람맞은 철기둥에 얼굴을 갖다댄 것과 같은 오한에 몸서리치는 때가 있다. 아들은 그럴 때마다 옆에 놓인 핸드폰과 노트북을 만지작거렸다. 그러면서 그는 관계의 회복, 아니 원래부터 이어져있던 관계에 대해 생각한다. 나는 단절되어 있는 것같지만 사실은 단절되어 있지 않아 - 라고. 그의 관계는 꼭 스크래치와 같은 것이어서 겉보기에는 그저 검지만, 한 꺼풀 들춰보면 형형색색의 본모습이 드러난다. 단지 가려져있을뿐, 관계가 까만 것은 아니다. 선은 얇지만 무지개의 가능성을 품었다. 거기까지 생각하면 아들은 다시금 기분이 좋아졌다.
그러면 또다시 TV에 집중하게되고, 보통의 2월은 그런 것이었다. 오늘도 그랬다. 때아닌 폭설에 새하얀 거리, 영하 10도를 넘어선 강추위에 온 국민이 얼어붙어 버려도 그것은 창밖의 일이다. 아들은 창밖의 일에 대해서 묘한 단절감을 느꼈다. 사실 창문을 열지 않으면 창밖의 일은 그와 완전히 단절되어 있는 것이었다. 단지 눈에 보이기 때문에 단절되어 있지 않다고 믿는 것뿐. 아들은 창문을 가만히 바라본다. 닫혀있는 것은 비단 집 창문만이 아니다. 아들은 평생에 걸쳐 꽉 틀어막은 창틀 안에서 거짓 오한으로 추운 척 하는 누군가의 모습을 상상한다.
아들은 그 TV에서 이것저것을 배웠다. 그는 축구광이 되었다. K리그는 몰라도 유럽 프로리그에는 바삭해졌다. 베컴과 레알 마드리드를 좋아하면 푼수 취급했고, 아스날이라고 하면 앙리보다 륭베리를 먼저 떠올렸다. 세계최고의 스트라이커라고 하면 호나우도보다는 셰브첸코라고 생각했다. 그는 서양의 종마 같은 선수들에게 익숙해졌다. 가끔은 어떠한 유대감이나 친숙함마저 느꼈다. 전부 TV에서 받아들인 것들이었다.
아들은 채널을 마구 돌려본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에 전지현이 나오고, 아들은 순간 아는 사람인가 하여 '아'하는 탄성을 지른다. 하도 많이 본 얼굴이라 웃는 그 얼굴이 마치 자기를 향해 웃는 것 같다. 억울하도록 예쁜 이목구비의 생김생김이 평생을 같이한 가족처럼 머릿속에 또렷하다. 서먹한 친구보다 더 친하게 느껴진다. 그 사실이 아들의 힘을 빼놓았다. TV는 보통 그랬다. 언제나 관계의 허위로 아들의 진을 빼놓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아들은 그 관계의 허위마저 즐겼다.
아들은 전지현에게 전화를 거는 자신을 상상해본다. 여보세요 하고 아들이 자연스럽게 말하면 전지현은 아마도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 누구세요?
물론 TV를 보면서 사타구니에 맺힌 땀방울보다 가치 있는 생각을 한 적도 있긴 했다. 닫힌 공간에서 구겨진 걸레처럼 아무렇게나 몸을 놀리다가도 TV에서 바다나 산의 아름다운 풍경이 나오면 아들은 감상에 젖어 여행을 생각하곤 했다. 아주 오래 전에 갔었던 동해바다로의 여행 같은. 파란 먹빛 물결 위에 아름답다기보다 소박하게 떠있는 고깃배. 흰 페인트가 바래 군데군데 이가 빠지고, 애처롭게 나무판때기의 속살이 보이는 - 배의 삐걱거리는 숨소리마저 들려오는 풍경을 보면 아들은 왠지 푸근할 것만 같은 어부의 삶같은 것을 종종 상상했다. 그러면서 여행에의 욕구같은 것이 마음에 차오르고, 역마살이라도 낀 것처럼 여행이란 말에서부터 두근거리는 자신을 바라보게 되는 것이었다.
그 두근거림의 근원은 아무래도 '설국'이었다. 설국의 첫 장면, 눈고장을 가는 기차와 깨끗하고 맑은 아가씨 요코, 창문에 비친 요코의 얼굴을 흐르는 밤풍경과 요코의 맑은 눈동자를 밝히던 등불의 이미지에 빠져버렸던 것이다. 요코가 창문을 열고 '역장님'하던 고아한 소리는 아들의 가슴에 남아 그로 하여금 이때까지 여행을 종용하고 있다. 그것이 고등학생적의 일이었다. 그 후로 비교적 어릴 때부터 그는 이곳저곳을 여행 다녔다.
겨울 여행에서 수증기가 어리어 거울이 된 버스의 창문을 보며 설국을 생각하고, '바보'라고 낙서를 한 일. 이유도 없고 딱히 연상작용이 될만한 일도 없건만 왠지 들으면 그 옛날의 여행의 두근거림이 되살아나는 노래들. 낭만고양이. 나 홀로 바다와 육지의 경계선에 놓인 굽이치는 길을 바라보던 일. 길 아래 바윗턱에 부딪쳐 부서지는 파도와 길 위로 끼얹어지는 약간의 포말. 그런 것들이 아들의 머릿속에서 스냅사진들처럼 스쳐가며 그만의 영상필름을 만들고 있었다. 그것은 아들의 구성성분이었다. 닫힌 창문 안의 순수한 존재증명이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의 머릿속에 가득차 있는 것은 역시 기차였다. 언제 어디로 여행을 가서 어떤 계획으로 움직였나, 누구와 갔나 하는 것은 이미 그의 머릿속에 흐려져있고 지금에 와서는 마치 그 홀로 여행을 한 듯 착각을 하기도 했다. 여하튼 아들은 기차에서 낭만을 느꼈고, 여행의 상징 같은 것을 기차에 투영시키고 있었다. 그것도 가는 기차보다는 돌아오는 기차에. 보통 어슥한 저녁에 돌아올 적에 해는 지고, 짙은 보랏빛으로 세상이 물들면 사람들은 숨소리조차 미안할 정도로 고요하게 잠들곤 했다. 그러면 아들은 홀로 깨어 아무 할 것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창밖을 보고 신문을 뒤지고 흔들리는 형광등을 보고, 종내는 고적한 짐승같은 기차의 숨소리에만 집중하게 되는 것이다. 그 덜컹하는 소리에 한 꺼풀 막을 씌운 것같은 부드러운 숨소리, 스치는 애저녁의 보랏빛 풍경화, 저 멀리 보이는 기차의 대가리가 터널 속으로 침잠하는 모습. 오래된 탄광과 눈. 이유 없이 아들은 두근거렸고, 몇 년이 지나도록 상상만으로 설레었다. 그는 고독을 씹는 것이었다.
아들은 때때로 그만의 이 교류되지 않는 낭만을 공유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밤기차의 애잔한 풍경화를 누군가의 소매를 붙잡고 보여주고 싶은 욕구에 사로잡힌다. 보아라, 밤의 신비함을. 인간의 삶 자체가 갖고있는 본질적인 구슬픔을 - 하고. 그러나 아들은 평생에 걸쳐 소매를 붙잡고 이야기할 적당한 상대를 만날 것 같지가 않다.
그러는데 전화가 운다. 집전화가 운 것은 아주 오랜만의 일이었다.
"여보세요."
청명한 목소리의 여자였다. 새벽공기의 단정한 내음이 났다. 아들은 까닭 없이 설레었다.
"저, 이번에 민규씨 유품을 정리하다가 당신에게 맡겨달라고 한 것이 나와서요..."
아들은 그 금시초문의 소식에 깜짝 놀랐지만, 이상하게도 슬프지 않았다. 그저 전화선을 타넘는 목소리가 정결하다고 생각할 뿐이었다.
2
여자는 하얀 블라우스에 검은 정장을 입고 있었다. 귀밑머리까지 한데 묶어 핀을 꽂은 모습이 단정했다. 부드러운 콧대에 코끝이 몽똑했는데, 얼굴이 희었다. 눈동자는 맑고 컸다. 정결한 아가씨의 풍모가 있었다. 아들은 전날 목소리를 듣고 얼추 상상한 여자의 모습을 눈앞에 서있는 여자의 모습에 투영시켰다. 여염집 여자 같다고 아들은 생각했다. 심술궂은 귀족집 영양이라기보다는 산골의 인심 좋은 소국, 넷째 공주 같은 느낌이었다.
공기가 차다. 그래서 여자는 더욱더 단아하게 보였다. 아들은 여자에 대해 생각했다. 친구의 친구도 아는 사이라고 한다면 분명히 여자와 아들은 관계가 깊었다. 여자는 민규의 애인이었고, 아들과 민규는 꽤나 친했다. 누군가가 아들에게 중학교 동창중에서 친한이를 하나 꼽으라고 한다면 아들은 주저 없이 민규를 뽑을 것이다. 비록 나이가 들면서 만나는 일은 줄었지만, 같은 게임 같은 길드에서 아들과 민규는 절친했다. 그만큼 아들과 여자는 가까운 사이였다. 동시에 그들은 초면이었다.
"어디로 갈까요."
여자가 말한다. 아들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여자 역시 무언가 대답을 기다린 것은 아니었다. 여자는 천천히 걸었다.
동안의 여자다. 나이를 추측하기 어려웠다. 동안의 여자일수록 실제 나이는 많은 경우가 흔하다. 아들은 여자의 느린 걸음에 맞추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여자는 아들에게 점심을 먹었느냐고 물었다. 아들은 먹지 않았다고 했다. 여자는 점심을 먹으러 가자고 한다. 아들과 여자는 잠시 걷다가 형광등 불빛이 밝은 돈가스집에 갔다. 불빛이 너무 밝아서 오히려 후레해보였다. 적당함이 없는 음식점, 싼 가격과 많은 양으로 학생들에게 어필하는 - 그런 류의 음식점이었다. 손님은 꽤 많았는데, 거개가 학생이었다. 학교앞 분식집의 풍경과 얼추 비슷했다.
"받으세요."
자리를 잡고 여자가 내민 것은 한 개의 허름한 공책이었다. 아들이 손을 대자마자 부스럭거리는 것이, 그 공책이 가진 연륜의 깊이를 알게 했다. 펴보지 않아도 그 공책 하나를 올려놓고 수십번, 수백번 펼쳤다 덮었다 했을 민규의 모습을 떠올릴 수 있었다. 그것은 글씨가 빽빽한, 삼년도 더 된 일기장 같은 느낌이었다. 아들은 그 공책에서 까닭 없는 질량을 느꼈다. 이러한 공책은 한때 아들에게도 있었다. 지금은 없다. 그의 굳게 닫힌 창문 안에 있었던 한 권의 공책은 교류의 단절이란 최악의 환경에서 썩어버렸는지도 몰랐다.
"이것이 무엇이죠?"
"소설... 이예요. 끄트머리에 당신에게 보여달라고 써놓았더군요. 아주 오래전에 쓴 것 같은데 부끄러웠는지 여지껏 갖고 있었던 것 같아요."
"소설... 이요? 민규가 소설을 썼었나요?"
여자의 눈매가 살짝 치켜떠졌다. 눈망울이 만화처럼 반짝였다. 아들은 순간 얼굴이 달아오르는 것을 느끼고 눈이 마주치는 것을 피한다.
"네. 언젠가는 꼭 소설가가 되어보겠다고, 그렇게 써있더군요. 일기장에는... 저도 잘 몰랐지만..."
"그런데 이것을 왜 제게 맡겼을까요?"
"민규씨는 당신을 같이 문학하는 친구라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일기장에는 당신에 대한 이야기와 문학이야기로 가득차 있었지요. 지금은 소설, 안 쓰세요?"
여자의 고아한 목소리가 누군가를 탓하는 것처럼 아들의 귓가에 앵앵거렸다. 2월의 찬바람이 어울리는 목소리였다. 아들은 공책을 펴본다. 곧 다시 덮었다.
다른 사람에게 문학을 한다고 떠벌리고 다닌 일이라고는 일생에 걸쳐 단 한 번도 없었다. 단지 작자미상으로 인터넷이라는 하나의 거대한 장에 소설을 버리듯이 던진 적이 몇 번 있을 뿐이다. 그것을 민규는 다 보고 있었다. 아들은 숨겨둔 일기장을 들킨 것같이 꺼림칙한 기분이 든다. 부끄러움에 얼굴이 달아오르고 눈물이 어리었다. 그렇지만 슬픈 것은 아니었다. 아들은 그저 당혹해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은 잘 쓰지 않아요... 안 쓴 지 몇 년이나 되었는데..."
그것은 거짓말이다. 아들은 불과 며칠 전에도 소설을 끄적거렸다. 그러나 아들은 언제나 소설에 대해서는 죄인이었다. 아들은 게을렀다. 소설을 읽지도 않고 쓰기만 했다. 평생이 가도 그의 소설은 어느 수준을 넘지 못할 것이다. 아들은 어느 누구의 앞에서라도 소설을 쓴다고 말할 것 같지가 않다. 소설은 그의 밀실이다.
아들은 돈가스를 썰어본다. 무딘 칼이 튀김이 두꺼운 돈가스를 뜯어내었다. 여자도 아들을 따라서 칼질을 한다. 칼질을 하는 손가락이 나긋했다. 보통 여자의 손가락이 그렇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 가늘고 흰 손가락이었다. 꽉 쥐면 똑 부러질 것처럼 가느다란 손가락 끝에 매끈하고 윤기 나는 손톱이 있다. 손톱은 잘 다듬어져 있었다.
아들은 여자의 손을 보면서 예쁘다고 생각한다.
아들과 여자는 자잘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이야기 속에 민규의 존재는 없고 죽음의 슬픔도 없었다. 오래된 친구처럼 사소한 잡담만 오고갔다. 예를 들자면 어제의 날씨는 좋았는데 오늘은 춥더라, 대학교때 나는 학점이 3.4가 나왔었다, 우리 회사는 아침에 8시까지 출근인데 집에서 7시 34분에 나오면 8시 2분전에 도착한다 - 이런 이야기들. 거기에는 '죽다'에서 슬픔을 거세한 공허함만 찌꺼기처럼 남아있었다.
여자는 일어섰다. 아들은 잘 가라고 말을 해준 후에야 그 여자의 이름도, 전화번호도, 그 아무 것도 알지 못한다는 것을 알았다. 심지어는 여자의 정결한 얼굴 생김도 머릿속에서 잊혀졌다는 것을 알았다.
중학교 동창중의 그 누구도 자신의 바뀐 핸드폰 번호를 알지 못해서 민규의 소식을 전해주지 못했다는 영창의 말을 들었을 때는, 존재의 반을 물컹 뜯긴 듯한 기분이었다.
3
네온사인의 불빛이 하나 둘 들어온다. 어슥한 밤하늘에 별이 서너개 떠있다. 자동차들은 새빨간 후미등을 보이며 느지막하게 기어갔다. 그 속을 아들이 탄 버스도 천천히 밟아간다.
네온싸인의 새빨간 불빛이 도시를 적시면 사람들은 몽유병자처럼 흐늘거렸다. 삼삼오오 모여 비틀대는 발걸음이 쓸쓸하고 황량했다. 아들은 그 모습을 버스에 앉아서 관조한다. 버스의 창문은 굳게 닫혀있었다.
유백색의 형광등 불빛만 단조로운 아파트 단지를 끼고 도는 시골길로 수십 분을 가야 우리동이다. 2차선 도로에는 원색의 네온싸인도 없고, 그 날따라 한층 푸르게 - 혹은 빨갛게 젖어든 달도 없었다. 보름을 막 지나 둥그스레한 달이라도 뜨면 조금이나마 덜 적적하겠건만 달도 없는 밤이면 사람들은 수십 분을 수시간처럼 느꼈다. 그들은 그들의 온 몸을 인생의 피로에 내맡겼다. 그러나 아들은 이러한 쥐죽은듯이 조용한 밤이 좋았다.
민규의 여자와 만난 것도 벌써 삼일전의 일이었다. 여자와 헤어지고 거리에 나와서 아들은 울었다. 민규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그의 공책을 받고 그의 여자와 이야기를 하면서도 흘리지 않았던 눈물이 거리에 나서자 갑자기 쏟아진 것이다.
아들은 서서히 잠에 빠져든다. 버스 안은 묘한 공간이다. 수십 명의 사람들이 버스라는 좁은 공간에 몸을 부대끼고 있지만, 아무런 오고감도 없는 공간. 열려있지만 닫힌 공간이다. 아들은 그 자신이 앉은자리에서부터 운전석까지 뻥 뚫린 공간에 촘촘히 가로쳐진 유리장막을 보았다.
삼일 전 그때 거리에는 사람이 많았다. 아들은 눈물을 주르륵 흘렸지만, 가슴이 찢어질 것 같은 슬픔은 없었다. 단지 그동안 얹혀있던 무언가가 기회를 보다가 밖으로 흘러나왔다는 - 그런 느낌이었다. 사실 그동안 아들은 주욱 혼자였고, 눈물을 흘릴 이유도 없었다. 결국 민규란 존재는 아들에게 혼자 있을 때 눈물을 흘리게 할 수조차 없는 그런 정도였다.
아들은 지하철을 탄다. 길거리보다 더 많은 사람들. 노인은 서있고 고등학생은 앉아있다. 노약자석에는 뚱뚱한 중년의 여자가 뚱한 표정으로 앉아있고, 쥐색 양복에 흰 양말을 정강이까지 추켜 신은 장년의 사내는 유달리 빼빼 말랐다. 규칙적인 전차의 바큇소리가 아들의 귀를 간질인다. 귀와 코는 우리 몸에서 가장 빨리 지친다고 했건만, 전차의 느릿한 바큇소리는 귀에서 떠날 줄 모른다. 꼭 아주 어릴 적 병원에 갔을 때 밖에서 들려오던 아이들의 노는 소리 같다. 두 세겹의 벽을 뚫고 아득히 들리는 바이엘 피아노 소리 같다. 그런 소리들은 묘한 울림을 가졌다. 아들은 가슴이 뛴다. 전차의 숨소리에도 아들은 가슴이 뛴다.
아들은 몽상한다.
지하철은 7호선과 2호선만 있으면 되. 아들은 생각한다. 결국 다른 것은 그와 관계가 없다. 그는 머릿속에서 두줄기 선만 남기고 지나치게 복잡한 지하철 노선도를 소거한다. 그렇게 생각하니 버스도 필요 없다. 길가에 다니는 버스를 소거하니 승용차도 필요 없고, 나의 앞에서 꾸벅 조는 여자도 필요 없다. 그 여자가 세상에서 없어도 아들의 삶에 변화란 없다. 소거한다. 또 소거한다. 친구도 소거한다. 명절에 모이는 친척들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명절 따위 집에서 보내면 그만이다. 친척도 소거한다. 가족.
가족도 소거한다.
그렇게 다 소거하다보니 결국 세상에 그와 그가 밟고 선 한 뼘의 땅만 남았다. 아들은 순간 오한이 든다. 살을 에는 추위를 느끼고 소거하지 않기로 한다. 소거하지 않기로 하니까 비로소 아들은 꿈을 꾸고 있음을 느낀다.
아들은 퍼뜩 눈을 떴다. 버스는 집에 도착하고 있었다.
4
'인간이 인간을 안다고 하는 것이 얼마나 어마무지한 일이던가.'
'우리는 시간과 공간을 알고있다고 생각하지만 E=mc^2 상대성 이론의 수준에 올라선다면 그 누구도 시간과 공간을 엄정히 정의 내릴 수 없었다. 그리고 그것은 인간에게 있어서도 마찬가지였다.'
공책에는 이러저러한 이야기들이 쓰여있었지만, 주가 되는 소설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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人
人間. 人間? 人? 人.
나는 어느 날 아침, 불안한 꿈에서 깨어났을 때 나 자신의 몸이 작아져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의 손가락은 고작 옷의 팔꿈치 언저리까지밖에 미치지 않았고, 발은 무릎께에서 놀았다. 허리통은 좁아져 반치밖에 안 되어 보였고, 키도 7살 꼬맹이의 그것과 다름이 없었다. 나는 화들짝 놀라 거실로 뛰쳐나가지 않을 수 없었다.
"엄마, 내 몸이 이상해."
"뭐가 이상하다는 거니? 정상이잖아."
"몸이 작아졌는 걸."
"원래 작았어."
엄마의 말을 들었을 때, 나는 순간 스쳐 지나가는 생각이 있었다.
그러니까, 한 삼일전의 일이었다. 체육시간이었는데, 나는 주번이었다. 주번이라면 아이들이 모두 나가는 것을 확인하고 문을 잠그고 나가야 옳겠으나, 나는 문을 잠그지 않고 그냥 나갔다. 사실 교실에 훔쳐갈 것도 없거니와 어느 양심 없는 놈이 같은 학교 - 그것도 최고학년인 3학년 - 의 물건을 훔쳐가겠냐는 생각에 그냥 나갔던 것이다. 그러나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딱 그날 마침 학급비가 없어진 것은, 뭐랄까, 거의 신의 농간이었다. 그 신의 농간에 아이들의 비난은 모두 나에게로 쏠렸고, 나는 순간 이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한 아이를 찍었다. - 이 아이가 체육시간에 교실로 들어가는 것을 나는 보았어.
그 아이는 왕따였다. 키도 작고, 운동도 못하고, 공부만은 보통이었다. 얼굴 생김생김은 그리 못생긴 편이 아니었으나 아이들은 모두 그 아이를 못생겼다고 말했다. 성격은 그리 좋지 않았다. 아니 좋지 않다고 아이들은 말했지만, 그것은 그냥 소문이었다. 그 아이와 놀아본 아이가 없기 때문에 그 아이가 정말 성격이 나쁜지 좋은지는 아무도 몰랐다. 단지 남들이 나쁘다니까 나도 나쁘다고 할뿐이었다.
사실 엄밀히 말하자면 내가 나빴지만, 그렇다고 내가 없는 말을 지어낸 것은 아니다. 그 아이가 교실에 들어갔던 것만은 사실이었던 것이다. 단지 나는 그 아이가 훔치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 뿐이다. 나는 내가 살기 위해 그 아이를 희생시켰다.
나는 순간 나의 몸이 쪼그라드는 듯한 착각을 느꼈다.
내 몸이 이렇게 작아진 것은 분명히 그날의 그 사건 때문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누구도 내 몸이 원래 컸었다는 사실을 알아보지 못했다. 그 날 아침에 버스 정류장에서 만난 우리반 친구도 나의 비정상적으로 작아진 몸과 땅에 질질 끌리는 바지통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는 바로 그 아이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던 것이다.
"야, 어제 걔 떠드는 것 봤냐? 존나 추해, 씨발새끼."
"아무도 안 들어주는데 뭐냐, 걔."
"그러니까. 좀 맞아야 정신을 차리지."
"누가 좀 안 때리나."
"도둑놈새끼가 안 한 척 존나 짱이라고."
"맞어. 내가 봤는데 말이지..."
"짜증나. 나 같으면 전학 간다."
나는 그 아이와 웃고 떠들면서 그 아이의 몸도 작아지는 것 아닌가 생각했고, 어느 순간 그 아이의 몸도 나와 같아져있어서 한참 웃었다.
그로부터 며칠이 지나면서 나는 나의 몸이 갈수록 작아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것은 영아의 성장속도를 역행하는 것보다 2배, 아니 20배는 더 빠른 속도의 퇴보였다. 그리하여 한 달이 지났을 때 나의 몸은 거의 4살 짜리 수준이었다. 학교 의자에 앉기도 벅찼고 작달막한 손으로 펜을 쥐는 것도 힘들었다. 그래도 나의 이 이상한 변화를 알아채는 이도, 신경 쓰는 이도 없기에 나는 그닥 불편을 느끼지는 않았다.
나는 그 아이에 대한 험담을 줄줄 늘어놓았다. 사실 내가 그 아이를 싫어해야 할 직접적인 이유는 없었다. 단지 그 아이의 험담을 늘어놓음으로써 나는 웃을 수 있었고, 나에게 돌아오는 불이익은 하나도 없었다. 그것이 이유였다. 그것은 어떠한 소속감과 관련이 있었다. 나는 그 아이를 욕하면서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윗자리를 선점한 것같은 느낌이었다. 그 아이를 욕하며 몰려든 아이들은 서로 뭔가 유대감마저 느끼고 있었다. 그것은 가짜 유대감이었다.
수학시간이었다. 정년퇴임이 일년 남았다는 늙은 수학 선생은 칠판에 문제를 배껴놓고 우리들에게 풀도록 시켰다. 그 아이는 지목을 받고 2번째 문제를 풀었다. 계산이 틀려서 답이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 나는 야유를 보내었다.
"고등학생 맞냐? 전학 가라."
나는 한바탕 웃었고, 나는 나의 몸이 조금더 작아졌다는 것을 느꼈다.
나의 몸은 아주 작아져서 급기야는 그 어떤 옷도 입을 수 없게 되었다. 부끄러워하며 맨 몸으로 거리에 나섰으나 아무도 나에게 신경 쓰는 사람이 없었다. 나는 묘한 쾌감까지 느꼈다.
때때로 나의 몸이 심하게 오그라듦을 느끼는 때가 있었다. 약육강식의 계단에서 굴러 떨어지는 나를 상상할 때 그랬고, 나의 유대감이 갈기갈기 찢기는 상상을 할 때 그랬다. 나는 그럴 때마다 그 아이를 욕하며 자위했다. 다른 아이들은 진심으로 웃어댔다. 나의 밑에 누군가가 있다는 것은 정말 하늘이 내린 축복인 것이다.
나는 다른 아이들의 몸도 겉보기엔 그렇지 않지만, 조만한 쪼그라들고 말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아이는 정말 조용했다. 그 아이는 사실 정말 착할 지도 모른다. 나는 그런 것따위야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사실 다른 아이들도 그런 것따위야 상관없고 단지 그들의 발밑을 엎드려 기어줄 누군가가 필요할 뿐이었다.
그 누군가가 되는 것이 두렵다.
사실 그 누군가는 누구라도 될 수 있다.
그 누군가가 되지 않은 사람들은 그 누군가의 존재로 인해서 더욱 똘똘 뭉치게 되고 - 그 누군가를 조금이라도 더 밟으면서 자신의 생존 가능성을 확인하지 않고서는 못 견디게 되는 것이었다. 나는 공리주의적 입장에서 모든 문제를 생각하기 위해 노력했다. 우리가 공리주의적으로 생각한다고 했을 때, 우리의 행동은 비논리적으로 합리화되었다.
나는 작달만한 펜처럼 작아졌다. 친구의 필통속에 장난 삼아 들어갔다가 친구가 필통을 닫고는 집에 가져가 버려 이틀이나 갇혀 있은 적도 있었다.
그때 나는 나와 그 아이와의 차이점을 생각해보았다.
나는 노래방에 갈 친구가 있다. 그 아이는 없다. 그게 다 였다. 아니, 사실 그 아이에게도 노래방에 갈 친구는 있다.
나는 다시 BB탄처럼 작아지고 개미만큼 작아지고, 먼지만큼 작아졌다.
그러다가 나의 육체는 없어지고 만다. 나는 나의 존재가 소거된 세상을 끔찍한 눈, 아니 뭔가로 인식했다. 나는 절규한다. 그러다가 곧 슬퍼할 일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생각한다.
나란 존재는 무엇인가? 인간이란 무엇인가? 인간의 육체는 어디에 소용되는가. 정신만 살아있는 나는 무엇인가. 이러한 복잡한 질문 속에서 나는 나의 자아를 찾아간다. 人間. 人이 사람 - 정신이라면 間은 관계다. 인간의 육체란 결국 '관계'에 소용되는 것이다. 어차피 나의 관계가 허구이고 나의 유대감이 희박하다면 육체도 필요 없다. 人間도 필요 없다. 人이면 족하다.
그렇게 생각하니 나는 나의 육체가 사라졌다는 사실에 오히려 뛸 듯이 기뻤다. 그것은 오히려 육체의 속박, 관계의 허위에서 벗어나 완전한 정신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이었다. 나는 퇴보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현대인'에서 '신인류'로 진화하고 있었다.
나는 나의 존재가 없는 세상에서 만화책도 보고 컴퓨터 게임도 하고 TV도 볼 나를 상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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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은 미친 듯이 웃었다.
그것은 아주 오래 전의 일이었다. 어릴 적에 아들은 입버릇처럼 묻곤 했다. - 우리 동네에는 허수아비가 왜 이렇게 많아? 그럴 때면 아버지는 희미하게 웃어 보이는 것이었다. 그러곤 말하기를 - 글쎄... 꼭 우리동에만 많은 것은 아니야. 人間이 없고 人만 있는 곳이라면 어디에나 있거든.
그때 아들은 너무 어려서 아무 것도 몰랐다.
지금은 알고 있다.
End
하도 게으르게 쓰다보니 자꾸 뭔가가 엇나가서 이제 뭐가 뭔지 모르게되어버린 느낌. ...
잡담하나 하자면,
하얗게 불태운다는 말이 왜 이렇게 마음에 드는 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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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와!~ 대단해요 좋은글 보구 갑니다. 앞으로두 좋은글 많이 올려 주세욤
하얗게 불태우면 방화범이죠 ^^
오랜만이시네요. 후아, 좋은 글 잘 봤어요. 다음에도 좋은 글 부탁드려요. 하얗게 불태운다….
오오. 잘 쓰셨어요오. ㅇ_ㅇ 다음에도 부탁드려요오
좋은 글 보았습니다.
저는 이 글을 더 깊게 평가 하고 싶습니다. 여기에 감평을 적기엔 모자라지만... 인간과 인. 신인류는 인이란 존재만 남는다. 맞을지도 몰라요. 육체와 정신만 가진 인. 그것만 남아 인류를 대변할지 몰라요.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