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 글로벌 사태는 중소 섬유제조업체가 일약 재계서열 3위까지 도약한 영광 뒤의 어두운 구석을 드러내었습니다.
SK글로벌의 부실은 사실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수십 년간 쌓여온 것입니다. 이 회사의 부실은 지난 수십 년간 우리나라가 일관되게 추진해 온 수출드라이브정책의 폐해를 온전하게 드러내었습니다. 수출실적에 따라 금융세제혜택과 지원을 해주는 정부의 정책은 그 회사 경영진이 밀어내기 수출의 유혹을 떨쳐내기 어렵게 하였습니다. 이에 따라 아무런 문제의식없이 자행되었던 밀어내기 수출(실제 매출도 없이 해외자회사에 가공매출을 일으키는 것, 결국 매수없는 매도를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은 결국 대규모 해외부실채권을 양산하였습니다. 그리고 문제의 해외부실채권들은 정상채권으로 회계 장부에 올려져 왔습니다.
그러나 어찌됐든 구 선경은 그런 방법을 통해서 성공적으로 무지하게 커 왔습니다. 사실 사돈(노태우) 잘 만난 덕도 컸지만, 중견 화섬업체인 구 선경이 자기보다 덩치가 훨씬 컸던 구 유공(현 SK)을 인수하고 이동통신사업에까지 뛰어들어 대한민국 최고이자 최대 이동통신회사인 SK 텔레콤까지 거느려 명실공히 재계 서열 3위의 기업까지 된 일은 선경의 분식회계가 없이는 불가능했을지도 모릅니다. 분식회계가 없었다면 선경의 회사인수대금 변제자력(辨濟資力)이나 회사인수능력을 디스플레이(Display)하기가 어려웠을 테니 말이죠.
저는 본디 SK그룹을 별로 마음에 안 들어 했습니다. 왜냐하면, 무지하게 성장해 온 기업집단이긴 하지만, 대체 국가경제에 기여한 점을 눈 씻고도 찾아보기 힘들어서 입니다. SK 그룹에서 내놓을만한 회사라야 SK㈜와 SK 텔레콤 밖에는 없습니다. 나머지 회사들은 그냥 그 두 회사 때문에 먹고 사는 정도입니다. SK 증권이나 생명은 엉망이며, 케미칼도 유화업종에서 그저 그렇고, 뭐 SK C&C 역시 별반 차이가 없는 회사입니다. 결국에 분식회계와 사돈을 무기로 국영기업을 인수해서 지금까지 먹고 살았고, 그 외에는 무슨 잘하는 사업이 있는지 며느리도 잘 모르는 형태의 기업입니다. 그렇다면, SK그룹에서 국가경제에 이바지하는 기업은 2개 회사인데 그나마도 자신들이 일군 기업이 아니라는 데에 제가 별로 안 좋게 보는 이유가 있습니다.
저는 SK 글로벌에서 SK의 정유제품을 판매하는 것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정유회사에서 정유판매망과 정유판매는 핵심부문이기 때문에 이것을 타인에게 의존하거나 양도한다는 것은 기이한 현상입니다. 결국 글로벌의 유통마진을 높여주기 위해서 SK의 정유제품가격만 높아질 뿐입니다. 실제 SK의 기름은 LG나 오일뱅크에 비해서 비쌉니다. 기름에는 제품차이가 거의 없습니다. 그런데도 SK의 기름이 다른 회사 제품보다 더 비싼 것은 이렇게 밖에 설명할 수 없습니다. 물론, 브랜드 프리미엄이라고도 할 수도 있지만, 차 기름 넣을 때 누가 브랜드 그렇게 생각하나요?
사실 기름을 SK에서 직접 판매하지 않고 글로벌에서 판매하는 데는 SK㈜라는 개별기업이 아니라 SK그룹이라는 기업집단의 입장에서 보면 나름대로 이유가 있긴 합니다. 기업집단 입장에서 보면 계열사인 글로벌을 살려내야 기업집단 전체에 유리할 테니까요. 글로벌이 갑자기 망하면, 그룹 전체의 신인도가 갑자기 떨어지는 데다가 해외에서나 은행에서나 돈 꾸기도 쉽지 않을 테니까요. 아마 SK㈜가 원유를 외상매입하는 것도 어려워졌을지도 모르죠.
실제로 최태원 회장은 취임 후 글로벌의 분식회계가 대단히 심각한 문제라는 것을 알게 된 후, 글로벌 분식회계문제정리를 위해 SK그룹에서 돈이 될 만한 것은 글로벌에 다 밀어주라고 지시했답니다. 그 결과로 최근까지 상당히 많은 분식이 해결되었고 몇 년 지나지 않으면 모두 해결되었을 것이라고까지 하더군요.
그러나, 최회장의 이러한 결정은 결국 SK의 주주에게는 해로운 결정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SK㈜ 핵심부문이자 수익원을 타 회사에 양도한 것밖에 안 되니까요.
사실 최태원 회장에게 큰 잘못이 있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선대부터 내려온 문제니까 작고하신 최원석 회장과 평생 그를 보좌해 온 손길승 회장 같은 분들에게 더 큰 잘못이 있겠죠.
여담입니다만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있습니다. 글로벌의 분식회계문제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닌데, 왜 최근에야 불거져서 검찰 수사의 대상이 되었을까요?
이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說, 썰)이 있지만, 하나같이 확인된 사실도 없고 유언비어에 가까운 면이 많아서 밝히기는 뭣 하지만, 여태까지 가만히 있다가 글로벌에 대한 수사가 최근에야 이루어진 것은 새삼스럽기도 하고 석연찮은 구석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게다가 글로벌의 분식회계문제는 예전부터 검찰고위간부들도 알고 있었는데, 그럭저럭 처리되어 간다고 하니까 그냥 놔뒀다고 하는 말도 있습니다. 굳이 들쑤셔서 국가경제에 좋은 영향을 미치지는 않으니까요. 어쨌든 글로벌은 최태원 회장 취임 이후 점점 나아지고 있었으니까, 굳이 들쑤시지 않아도 언젠가는 정리될 것이라고 많은 고위공직자가 믿고 있었다더군요. 썰의 내용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궁금하신 분은 나중에 저를 오프라인에서 만날 때 물어보시면 알려 드리겠습니다.
아무튼 갑작스레 수사의 대상이 된 이유는 저도 정확히는 잘 모르겠습니다. 정권에 그렇게 밉보인 것도 없는 것 같은데 말입니다. 정치자금을 안 줬나??? 참 요상하죠?????
결국 최태원회장은 구속되었고, 최근에는 징역3년의 실형까지 선고 받았습니다. 그러는 동안 국내 금융기관들은 글로벌채권단을 구성하여, SK그룹 계열사들을 윽박질러 1조원 이상을 출자전환케 만들었습니다. 이제 해외채권단과의 협상만 잘 되면, 채권단은 기대 이상 채권을 회수할 수 있게 됐습니다. 물론 SK(주)와 SK 텔레콤의 소액주주 및 소버린 자산운용을 어떻게 달랠 것인가의 문제도 남아 있습니다만…
그런데, 저는 채권단의 협상과정을 지켜 보면서 은행들의 압력수단은 정말 대단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과연 신용을 주는 기관은 저 정도의 힘이 있구나 하구요.
특히, 은행들은 SK(주)에 있어서는 수출입에 절대 필요한 무역금융(DA, DP, USANCE, LC 등등)의 한도를 팍팍 줄였습니다. 그리고, 그룹사들에 대한 여신연장불가입장을 천명하고 실제로 연장을 거부하기도 했습니다. 이에 따라 그룹사 전체가 유동성 위기에 빠지게 되었고, 이 정도의 압력에 버틸 기업은 국내에 별로 없기 때문에 백기를 들었습니다(사실, 국내 은행들이 똘똘 뭉쳐서 압력을 가하면, 거기에 버틸 기업은 국내에 거의 없다고 봐도 과언이 아닙니다. 삼성전자나 현대자동차라고 해서 전체 은행들과의 이런 싸움을 이기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현금이 남아 돈다는 SK㈜가 먼저 자빠질 지경이었으니까요. 사실 제조업체는 외상매입에 외상매출을 매치(Match)하여 움직이기 때문에, 어느 한 쪽에서 현금수요가 과다하면 필연적으로 주저 앉을 수밖에 없습니다. 은행이 신용을 안 주니까 자신은 원유를 외상이 아닌 현금으로 사 와야 하고, 또 자신은 판매정책상 외상판매를 해야 한다면 필연적으로 만세를 부를 수 밖에요.
치사하지만, 은행들은 이런 점을 이용한 것입니다.
은행들은 SK글로벌은 SK그룹이라는 기업집단의 일원이므로, 전체 기업집단이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왜냐하면, 당초 여신을 취급할 때도 전체 그룹을 보고 해 준 것이라나요. 은행들은 그들의 주장대로 애초에 감정적으로 혹은 정서적으로 SK그룹 전체를 보고, 글로벌에 여신을 줬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계약상 보증을 선 입장도 아닌 계열사가 그 돈을 물어줄 이유는 법 형식논리상 있을 수 없습니다. 여신계약에 그런 내용이 있을 리도 만무하구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은행들은 뻔뻔하게도 SK그룹 전체가 책임을 져야 한다고 윽박질렀고, 희한하게도 SK그룹은 또 거기에 응하였습니다.
이런 식의 처리의 비근한 예는 삼성자동차를 들 수 있습니다. 은행들은 삼성자동차에 경쟁적으로 돈을 퍼주고서 나중에는 삼성그룹전체가 채무책임을 져야 한다고 하였고, 최근의 SK 그룹처럼 협상에서 밀린 삼성그룹은 이건희 회장의 사재출연과 더불어 삼성생명 주식을 은행들의 손에 쥐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삼성생명 주식을 팔아서 일정금액이 되지 않을 경우 삼성그룹 계열사 30개사가 돈을 모아서 그들이 원하는 채권액만큼 보전해주기로 하는 약속을 하였죠. 삼성그룹도 은행들이 쥐어짜는데는 버틸 재간이 없었겠죠. 말씀드렸듯이 은행들이 똘똘 뭉쳐서 어느 기업집단이든 어느 기업이든 죽일려고 대들면 그거 버틸데 없으니까요.
저는 개인적으로 은행들의 이러한 짓거리가 채권자의 횡포라고 생각합니다. 더군다나 최근 은행들이 글로벌의 분식회계를 방조했다는 기사까지 나왔습니다. 회계법인에 보내는 채무잔액 조회서에 유산스(Usance, 기한부환어음입니다. 쉽게 말해서 수입을 할 때 외상이 가능하게 하는 일종의 은행신용부어음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채무잔액란을 공백으로 하거나 ‘0’으로 기입했다는 것입니다. 이런 짓거리는 명백히 비윤리적이고 부도덕한 행위라 하지 않을 수 없는데, 최태원 회장이 ‘주식회사의외부감사에관한법률위반죄’로 실형을 선고받은 이상 그 공동정범이나 방조범으로서의 죄책을 물어야 할 것입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이런 일은 은행 지점차원에서 일어나기는 힘들다고 봅니다. 담당 직원이 그걸 해주고 무슨 영화(榮華)를 보겠다고 그런 무모한 짓을 하겠습니까? 이것은 은행 본점 임원의 지시없이는 이루어지기 힘든 일이라고 보여지는 군요.
은행의 어떤 관계자는 대출경쟁시스템에서는 어쩔 수 없다고 얘기하더군요. 저는 그 기사를 보고 기가 막히더군요. 이게 무슨 말이나 되는 얘기입니까? 대출경쟁시스템에서 은행들이 어쩔 수 없다는 논리라면, 그들이 SK글로벌을 비난할 자격이 있을까요? 똥 묻은 개 겨 묻은 개 나무라는 격밖에 안 되는 것이죠.
그런 짓거리를 해놓고서 하는 변명이 정말로 가관입니다. 금융기관이 이런 형태로 남는 한, 그들이 원하는 기업투명성 제고는 영원히 이루어지기 힘들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체 이런 식의 처리가 어떻게 가능한지, SK그룹은 왜 은행들의 요구에 응했는지의 이유는 뭘까요? 여러분도 뻔히 짐작하실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그룹전체에 대한 오너의 경영권을 보호하기 위한 것입니다. 은행들도 그걸 알고서 오너의 경영권 유지를 협상용 무기로 사용했던 것이구요. 은행들이 담보물로 가지고 있던 최회장의 주식지분을 팔아버리면, 최태원회장의 그룹장악력은 한 순간에 날아가는 것이니까요. 그런데, 은행들이 가지고 있던 최회장의 주식가치를 아십니까? 돈으로 따지면 \1천억 정도 밖에 안 됩니다. 그런데, 그 정도의 돈을 가지고 그만한 기업집단에 대한 지배력을 가진다는 것이 이상하지 않습니까? 최회장은 그룹지배력을 장악하는 방법으로 순환출자구조를 이용했는데, 그렇다 한들 기본적으로 최태원 회장의 그룹에 대한 지분 보유율은 너무나 미미했고, 그런 정도의 지분율로 그룹을 지배해 왔다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결국 자기 돈은 별로 없이 그룹을 지배해왔다는 얘기밖에 안 되는 것이죠. 전하는 얘기에 의하면, 최회장의 불안정한 지분보유율은 언젠가 적대적 M&A의 대상이 될 위험성이 있다고 재계에서는 예전부터우려해 왔다는군요. 또 최근 소버린이 그 위험성을 현실화시키려고 하구 있구요. 여하간 최회장의 그 깻잎2장 같이 적은 지분율과 그에 따른 그의 경영권(지배권) 보호를 위해서 계열사들은 은행들의 요구에 백기를 들었습니다.
저는 SK글로벌 문제를 보면서, 해묵은 이야기지만 대한민국의 기업집단에 대한 대주주의 소유구조와 은행들의 거래관행이 대단히 심각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소유권과 재산권 또 그에 따른 경영권은 마땅히 보호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지분도 얼마되지 않게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자산규모가 국내 서열3위나 되는 기업집단을 좌지우지 한다는 것은 제 상식으로 이해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은행들의 몰지각한 행동의 타당성은 별론<別論>으로 하고) 위와 같은 최회장의 그룹지배권은 과연 정당할까요? 그 그룹지배권을 유지키 위해 은행들의 요구를 다 들어주는 것이 과연 정당합니까? 소버린의 요구는 무모한가요? 소버린이 SK를 지배하면, 민족자본을 양넘에게 팔아먹게 되는 것인가요? 이 문제를 두고 최근 민족주의가 갑자기 대두하여, 거의 매판자본론과 같은 논리로 매도하는 경우도 있더군요.
이 문제에 대한 제 입장은 이렇습니다.
1. 빈약한 지분으로 그룹전체를 지배하는 자의 경영권은 보호할 가치가 없다.
2. 은행들은 담보로 가지고 있던 최회장의 지분을 매각하여 채권을 회수하여야 한다.
3. 최회장의 경영권을 협상무기로 한 은행들의 SK계열사들에 대한 출자전환과 대위변제요청은 무모하며, 이러한 관행은 청산되어야 한다.
4. 은행들의 기업집단 전체를 보고 하는 여신관행은 뿌리뽑아져야 하며, 은행이 대출에 대한 이자수익을 도산(倒産)의 리스크를 안고 얻는 것이 당연하듯 자기책임하에 이루어진 여신에 대한 손실은 자신이 떠 안아야 한다.
5. SK계열사들의 글로벌 지원은 각 계열사들의 주주의 이익침해행위로서 철회되어야 마땅하다.
6. 적대적 M&A는 정당한 재산취득행위로서 허용되어야 한다. 다만, 기존 주주의 방어권도 향상되어야 할 것이다.
7. 소버린의 대주주로서의 권리행사는 정당하며, 이를 비난하여서는 아니 된다.
8. 향후 내외국인을 막론하고 누구라도 SK주식을 매집하여 SK그룹의 지배권 또는 개별 SK그룹사에 대한 지배권 또는 경영권을 가지는 것은 정당한 투자로서 존중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