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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형장에 함께 하시는 분 20년 넘게 검사로 근무하면서 사람의 죽음 앞에서 옷깃을 여미고 생명의 무게와 의미를 진지하게 묻게 될 때가 있습니다. 지난해 울산검사장으로 근무하면서 참혹한 아동학대 살해사건과 맞닥뜨 렸습니다. 의붓엄마가 소풍 가고 싶다는 아이를 마구 걷어차고 때려, 갈비뼈 16개가 부러져 목숨을
구속기소 후 여러 번 회의를 열어 고심 끝에 사형을 구형했습니다. 조금이나마 피해자의 넋을 달랠 했습니다. 새벽에 버스를 기다리던 여학생을 이유 없이 칼로 찔러 살해한 사건도 있었습니다. 피해자 어머니의 사연을 직접들으니 잠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유족들의 찢어지는 마음을 생각해 법정최고형을 구형했습니다.
하는데, 아침부터 저녁까지 꼬박 하루가 걸렸습니다. 칼부림으로 여러 명을 죽인 조직폭력배, 온 국민을 분노케 한 유괴살인범, 끔찍한 강도살인과 강간죄를 수차례 저지른 사형수도 있었습니다. 본인이 맞는지 확인하고 종교의식이 끝나면, 유언을 남긴 후 사형이 집행됩니다.
온몸을 떨며 기도하는 사형수, 모든 것을 체념한 듯 마지막까지 염주를 돌리는 사형수, 끝까지 집 행을 회피해보려는 사형수도 있지만, 목숨이 꺼져가는 순간을 지켜보는 마음은 처음부터 끝까지 숙연합니다. 생명이 스러지는 그자리에는 우리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후회하며 참회하는 사형수를 떠올리면 사형폐지론에 마음이 기울기도 하지만, 억울한 피해자들의 원혼과 유족들이 평생 짊어질 고통을 생각하면 바로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하기가 어렵습니다. 목 숨이 얽힌 사건을 수사할 때는 심신을 경건하게 해야한다는 선배들의 가르침을 수없이 들었습니 다.
살인 현장을 찾아 기도하는 검사, 사체 부검에 앞서 넋을 기리고자 큰절을 올리는 검사도 있습니 다. 사후세계를 묻는 말에 한 신부님께서는, 아이가 엄마 배속에 있을 땐 그 안이 전부인 줄 알다가 세상으로 나오듯 죽음 이후도 그와 같지 않겠느냐고 답하셨습니다. 영화 ‘인터스텔라’에서는 우주 를 비행하던 아버지가 죽음의 블랙홀로 빨려 들어간 후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곳에서 지구에 있는 어린 딸에게 세상을 구할 메시지를 전합니다.
예수님께서 물으십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고, 또 살아서 나 를 믿는 모든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너는 이것을 믿느냐?”(요한11,25-26)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이 세상에서 변하지 않는 궁극적 가치는 영원하신 분의 말씀 속에 잉태되어 있다고 믿습 니다. 사형장에서도 함께 계시는 당신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입니다.
봉욱 바오로 법무부 법무실장 출처: 서울주보 2015, 11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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