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전 후에나 개발에 나선 무기
전쟁(戰爭)은 필연적(必然的)으로 무기(武器)의 발달(發達)을 촉진(促進) 시킵니다.
제2차 대전처럼 규모(規模)가 크고 기간(期間)도 길면 더욱 그렇습니다.
예를 들어 전쟁 말에 등장(登場)한 핵(核)폭탄은 8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가장 강력(强力)한 무기의 위치(位置)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굳이 이 정도는 아니더라도 전차(戰車), 전투기(戰鬪機), 폭격기(爆擊機) 같은 주요 무기도 제2차 대전이 시작(始作)되었을 당시와 종전 시점(終戰始點)을 비교(比較)하면 차이(差異)가 큽니다.
이기려면 당연한 수순(手順)입니다.
↑상당히 독창적인 디자인의 BvP 208 전투기 모형. 종전으로 완성되지는 못했습니다
그런데 의외(意外)로 그렇지 않은 무기도 있었습니다.
필요(必要)도 했고 기술(技術)이 있었음에도 예전 것을 그냥 사용(使用)하는 사례(事例) 또한 많았습니다.
군대(軍隊)의 가장 기본(基本)이라 할 수 있는 소총(小銃)이 대표적(代表的)이었습니다.
M1 개런드(M1 Garand. 공식 명칭은 the United States Rifle, Caliber .30, M1↑)로 무장(武裝)한 미국을 제외(除外)한 모든 교전국(交戰國)이 19세기 말에 등장한 볼트액션(bolt action) 소총을 사용했습니다.
제2차 대전 말(末)에 StG44가 등장했으나 돌격(突擊)소총의 본격적(本格的)인 실용화(實用化)는 종전(終戰) 이후에나 가능(可能)했습니다.
↑가장 기본인 소총은 변화가 적었습니다
오늘날 전차와 더불어 기갑부대(機甲部隊)의 한 축(畜)을 담당하는 장갑차(裝甲車)도 그런 사례(事例)입니다.
최초의 전차인 Mk 시리즈는 최초(最初)의 자주포(自主砲)이자 최초의 장갑차로도 불립니다.
엄밀히 말해 개발(開發) 및 사용 목적(使用目的)으로 보자면 장갑차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정도로 장갑차의 필요성(必要性)은 오래 전에 제기(提起)된 상태(狀態)였습니다.
그럼에도 제1차 대전 중에 개발이나 배치(配置)는 없다시피 했는데, 전간기(戰間期, Interwar period) 당시까지는 그래도 이해(理解) 할 수 있었습니다.
↑Mk IX는 30명의 병력을 탑승시킬 수 있어서 최초의 APC로 여겨지기도 합니다
제1차 대전에서 전차는 오로지 참호 지대(塹壕地帶)를 안전(安全)하게 돌파(突破)하는 목적(目的)으로 개발(開發)되었지만 어떻게 사용(使用)하는 것이 좋은지 참고(參考)할 전례(前例)가 없었고 기계적 성능(機械的性能)도 좋지 않아 커다란 전과(戰果)를 거두지는 못했습니다.
종전 후(終戰後) 제1차 대전의 결과(決科)를 전훈(戰勳) 삼아 새로운 전투 기법(戰鬪技法)을 연구(硏究)하는 이들의 주도(主導)로 각국(各國)에서 다양(多樣)한 연구와 시도(示導)가 이루어졌으나 당시 보수적(保守的)인 군부(軍部)는 여전히 전선(戰線)의 주역(主役)은 보병(步兵)과 기병(騎兵)이라 주장하며 기갑(機甲)은 부수적(附隨的)인 병과(兵科)로 취급(取扱)했습니다.
↑최초의 APC로 거론되는 마크 IX
하지만 기갑전투(機甲戰鬪)가 보편화(普遍化)되면서 기동전(機動戰)이 대세(大勢)가 된 제2차 대전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단지 병력(兵力)의 이동 목적(移動目的)으로만 보자면 독일의 Sd.Kfz. 251, 미국의 M2, M3 하프트랙이 그런 역할(役割)을 담당(擔當)했다고 할 수도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유탄(流彈)정도로부터 병력을 보호(保護)할 수 있는 최소한(最小限)의 방어력(防禦力)이 요구(要求)되는 장갑차와 달리 이들은 단지 야지(野地) 기동력이 좋은 트럭이었을 뿐입니다.
↑Sd.Kfz. 251의 기반이 되었던 Sd.kfz. 11 트럭
↑제2차 대전 당시 독일군 기갑부대의 APC 역할을 담당한 Sd.Kfz. 251
↑역사상 가장 독특한 하프트랙, 독일 국방군의 오토바이 하프트랙 케텐크라프트라트(Kleines Kettenkraftrad Typ HK101, Sd.Kfz. 2)
↑미군의 M3 하프트랙, 기동성(機動性)에서 단순(單純)한 차륜형(車輪形) 장갑차보다 우위(優位)에 있다는 점을 파악(把握)한 각국 군부(軍部)의 수용(受用)에 따라, 하프트랙 구동 방식(驅動方式)을 사용한 장갑차인 반궤도(半軌道) 장갑차가 개발되어 제2차 세계 대전기에 운용된다.
그러나, 후술(後術)할 단점(短點)으로인해 군용 하프트랙 차량 및 반궤도 장갑차는 도태(淘汰)되었다.
하프트랙(Half-track)은 종종 장갑차로 오인(誤認) 하나 트럭의 일종이었습니다.
당시 전차(戰車)의 수준(水尊)을 고려(考慮)하면 분명히 장갑차(裝甲車)를 만들 능력(能力)은 충분(充分)했습니다.
하지만 추축국(樞軸國), 연합국(聯合國) 가리지 않고 이상하리만큼 모두 등한시(等閑視) 했습니다.
하루에 수천의 사상자(死傷者)가 흔했을 정도로 제2차 대전에서 인명 피해(人名被害)가 많았던 이유 중 하나가 이처럼 병력 보호에 대한 개념이 낮았던 점도 포함됩니다.
어쨌든 그렇게 전쟁이 끝났지만 앞으로도 그럴 수는 없었습니다.
특히 가장 많이 피해를 본 소련은 더했습니다.
↑제2차 대전 당시 트럭을 이용해 전선으로 이동 중인 소련군
1940년대 말에 BTR-152, BTR-40 등을 제작(製作)했으나 이들은 BTR(Bronetransportyor, 병력수송장갑차(兵力輸送裝甲車)이라는 이름과 달리 기존 트럭을 개조(改造)한 수준이었습니다.
이에 전후 소련군 재편(再編)을 주도(主導)하며 모든 보병부대(步兵部隊)를 기계화(機械化)하기로 결정(決定)한 국방장관(國防長官) 주코프(Georgy Konstantinovich Zhukov, 1896년 12월 1일~1974년 6월 18일)의 지시(指示)로 제대로 된 장갑차 개발에 나섰습니다.
비단 소련뿐 아니라 미국도 마찬가지였을 정도로 장갑차의 시작은 이처럼 전차에 비해 상당히 늦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