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은 많은 단계가 있지만 두단계로 구분할 수 있다.
처음 단계는 믿으면 구원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단순해 보여도 종교에서 수십년을 수도하고, 수행해도 얻지못하는 진리이다.
수십년을 수도한 고승이 찾지 못한 진리를 아무나 순식간에 깨닫게 되는 것이 하나님의 구원의 메시지 곧 복음이다. 그래서 기쁨이고, 불확실한 것이 아니며, 하나님의 약속이라는 보증이 있어서 그것을 아는 것만으로도 행복을 느낄 수 있다. 이러한 단계는 어린아기와 같아서 이러한 믿음의 사람에게는 전쟁이 나도 나가 싸우라고 요구하지 않는다.
두번째의 단계의 믿음은 자기부인이다. 자기 부인이 없는 믿음은 불순종의 믿음으로 죽은 믿음이라고 볼 수 있으며, 이는 구원 받지 못하는 믿음이다. 이러한 단계는 아기의 믿음과 달리 전쟁이 나면 징집 대상이 된다. 이에 불순종하여 거부하면 탈영병이 된다. 탈영병은 총살감이다.
첫번째와 두번째 모두 같지만 다르다. 이를 혼란스럽게 느끼는 사람들도 많으나 어린아이와 성인의 역활과 요구가 다른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20살이 된 사람이 엄마품에서 벗어나지 않으려고 하는 것은 정상적인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각자의 분량의 맞는 믿음을 가져야 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상급이 필요한 것이다. 구원받음은 믿음을 가진 모두에게 동일하지만 그 믿음의 분량이 모두 같을 수는 없다. 그러나 상급의 공의는 공정하여 모두에게 동일하게 적용될 것이다.
아기 수준의 믿음으로 계속유지하려는 것보다 자신에게 맞는 믿음의 분량을 해내는 충실한 종이 되길 바라는 바이다.
첫번째와 두번째의 차이는 크다. 그러나 같다.
믿음은 값없는 구원에서 시작하여 내 자신의 주권을 주께 맡기는 구원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이것은 에덴동산에서 분리되었던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불화를 화평으로 회복하는 일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삶의 진행과 같다. 우리의 믿음의 길은 예수 그리스도의 순종에 함께 이르는 것이다. 내 자신의 주인됨을 포기하는 것은 잃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선악과로 인하여 분리된 사람과 하나님과의 관계가 완전히 회복되는 것이며, 그 과정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심과 부활이라는 과정을 우리도 거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에게는 십자가에 죽으심은 곧 내 자신에게는 나의 주인됨을 포기하는 것이며, 이러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함이라는 과정을 거치지 아니하면 아주 당연하게도 부활은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말씀하시기를 '인자가 죄인들의 손에 넘겨져야 하겠고, 십자가에 못박혀야 하며 셋째 날에 다시 살아나야만 하리라.'고 하셨느니라." 고 하더라.
Saying, The Son of man must be delivered into the hands of sinful men, and be crucified, and the third day rise again.
누가복음 24장 7절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신 것처럼 저나 당신의 삶에서 일어나야만 하는 일들은 죄인들의 손에 넘겨져야 하는 일들이다. 그러므로 인생의 과정에서 힘든 일과 억울한 일들이 일어나도 불평하거나 원망해서는 안된다.
또 그들은 몰약을 탄 포도주를 주께 주어 마시게 하였으나, 주께서는 마시지 아니하시더라.
마가복음 15장 23절
몰약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포도주는 십자가형의 육체의 고통을 감해지시라고 드린 것으로 보인다. 주께서는 육체의 고통이 경감되는 것을 거부하신 것이며, 역시 우리도 이 땅에서 일어나는 일들의 고통을 회피하려고 하는 것보다 주께서 보이신 모습처럼 그분과 같은 길을 가도록 하자.
사람들은 예수 부활, 내 부활이라고는 잘 외치지만 예수 십자가, 내 십자가라고 외치려고 하지 않는다.
그러나 부활보다 십자가가 먼저이다.
이글을 쓰는 제 자신과 이글을 이해하고 동의하는 당신의 분량은 전쟁시 징집대상이다. 기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