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29일 국회 본회의를 열고 18개 상임위원장 중 11개 상임위원장을 소속 의원으로 선출했다. 제1야당인 미래통합당은 불참, 범여권인 정의당은 상임위원장 선출 투표를 거부한 가운데 벌어진 일이다.
민주당은 앞선 15일에도 6개(법제사법·기획재정·외교통일·국방·산업통산자원중소벤처기업·보건복지) 상임위원장을 자당 몫으로 차지한 바 있다.
국회법상 야당 몫 국회 부의장이 뽑혀야만 선출할 수 있는 정보위원장만을 남겨놓은 상태라 사실상 여당의 독식이다.
이로써 민주당은 국회의장의 원내 교섭단체 의원 전 상임위 강제 배정, 53년 만에 여당 단독 원 구성, 전두환 정권 때인 12대 국회 이후 35년 만에 여당의 첫 상임위원장 독식 등의 '기록'을 만들었다.
◆주호영 "민주당이 협치 걷어차"
주호영 통합당 원내대표(대구 수성갑)는 이날 오전 원 구성 협상 결렬 직후 기자간담회를 열고 "민주당이 상생과 협치를 걷어찼다"며 "민주당은 오랜 반대와 전통을 깨고 법사위원장을 일방적으로 빼앗아 가버렸다.
저희는 후반기 2년이라도 교대로 하자는 제안을 했지만, (민주당은) 그것마저 받아들이지 않았다"며 민주당이 통합당의 수정 제안을 거부해 협상이 결렬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박병석 국회의장이 '전반기엔 민주당이, 후반기엔 (차기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한) 집권당이 법사위원장을 맡자'고 중재안을 낸 데 대해서도 "차기 대선에서 이긴 당이 (법사위원장직을) 맡는 것 자체가 국회의 독립성이나 자율성에 반한다고 봤다"며 "도저히 받을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민주당이 국회를 일방적으로 운영하는데 우리가 상임위원장을 맡는다는 것은 들러리 내지 발목 잡기 시비만 불러일으킬 것으로 판단했다"면서 "민주당이 제안한 7개 상임위원장을 맡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앞서 민주당은 쟁점인 법사위 포함 6개 상임위원장을 차지하면서 나머지 12개 장 중 7개(국토교통·정무·문화체육관광·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교육·환경노동)를 통합당 몫으로 제시했다.
다만 주 원내대표는 "야당 의원으로서 역할은 포기하지 않겠다. 국회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견제하고 비판하는 것을 더 가열차게 하겠다"며 "상임위에서 최대한 팩트와 정책, 논리와 대안으로 여당을 견제하겠다"고 강조했다.
◆김태년 "민주당 양보 통합당이 거부"
김태년 민주당 원내대표도 원 구성 합의에 최종적으로 실패하자 주 원내대표와 같은 시각 기자간담회를 열고 "민주당은 최대한의 양보를 했으나, 통합당이 거부 입장을 통보해왔다"면서 국회 상임위원장을 모두 민주당이 맡는 것은 "국회 정상 가동과 3차 추경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김 원내대표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 합의 및 후속조치와 관련된 사안 국정조사, 한명숙 전 총리 사건의 수사·재판 과정과 이후 제기된 문제 등에 대한 법사위원회 청문회에 합의했다"며 "합의가 이뤄지면 30일 개원식도 열 예정이었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민주당은 '김종인 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 입김'이 협상 결렬에 영향을 미친 것이라는 취지의 주장을 내놓았다.
김 원내대표가 이 자리에서 "지난 금요일과 오늘, 비슷한 합의안이 부결된 것은 김 위원장이 과도하게 원내 상황에 개입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지적한 데 이어 김영진 원내수석부대표도 "김 위원장이 과도한 개입을 통해서 과연 무슨 역할을 했는지 되물어 보고 싶다"고 말한 것이다.
이해찬 대표도 이날 오후 의원총회에서 "협상을 할 때는 창구 일원화가 중요하다"며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저쪽은 창구 일원화가 안 된 것 같다"고 했다.
이에 대해 김성원 통합당 원내수석부대표는 "민주당이 책임 회피를 위해 핑계를 대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향후 정국 경색 장기화 우려
이처럼 양당이 국회 원 구성 최종 합의 실패 책임을 서로에게 미루면서 감정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
게다가 민주당이 이날 본회의 산회 직후부터 상임위를 열고 3차 추가경정예산(추경)안 예비심사에 돌입, 이를 이번 임시국회 회기 내 처리하고,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장 임명 강행도 시도할 것으로 보여 정국 경색 장기화에 대한 우려가 나온다.
통합당은 지난 15일 민주당의 단독 원 구성에 항의하며 국회 전 일정을 거부하고 있다. 이날도 끝내 상임위원 명단을 제출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추경안 처리를 위한 본회의도 민주당이 단독으로 열릴 가능성이 커 보인다.
통합당이 "야당 의원으로서 역할은 포기하지 않겠다"고 한 만큼 적절한 시기에 상임위에 복귀하겠지만, 그 사이 여당이 '민주당 주도의 일하는 국회'를 강조하며 야당을 압박할 것으로 보인다.
당장 이날도 김 원내대표가 기자간담회에서 "21대 '일하는 국회'를 좌초시키고 민생에 어려움을 초래한 책임은 통합당에 있다"고 말하며 야당을 공격했다.
게다가 3차 추경 처리 이후에도 일부 쟁점 법안 처리와 공수처장 임명 문제, 남북 현안 등을 놓고 여야 간 충돌이 예상돼 이른바 '얼어붙은 정국'이 한동안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