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선형
한국학중앙연구원 제7기 K-STORY 기자단
여러분에게 조선은 어떤 이미지를 가진 나라인가요? 이성계로부터 시작되는 500년의 왕조, 김홍도와 같은 화가들의 풍속도, 서울 중심에 자리 잡은 궁궐 등 조선은 다양한 요소로 이루어진 국가일 것입니다. 그 가운데 유학은 조선을 대표하는 키워드로 500년 왕조를 관통하고 있습니다.
물론 고려와 삼국 등 그 이전 국가들의 경우에도 국정 운영에 유학이 영향을 끼친 바 있습니다. 그로부터 정치 이념을 구하거나 유학 교육기관을 설립하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유교를 통해 건국의 정당성을 확보했던 조선은 달랐습니다. 특히 주자학은 사회 전반에 영향력을 선보였습니다.
주자학은 오히려 차별과 대립을 불러일으키기도 했습니다. 신분처럼 뚜렷한 구분은 상극을 만들어냈고 그 결과는 갈등이었습니다. 하지만 조선이 갈등만으로 빚어진 시대는 아닙니다. 사회를 구성하는 다양한 주체들이 교유와 논쟁을 통해 풀어가려는 시도가 존재했습니다. 지난 8월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편찬한 [교유와 논쟁으로 본 관계의 문화사]는 구분과 대립 속에서 화합과 상생을 찾아내려는 조선시대의 여러 시도들을 연구한 서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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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로부터 시작된 유학은 동아시아 지역에서 여러 형태로 변화하며 발전해 왔습니다. 중국에서는 한나라의 훈고학, 명나라의 양명학, 청나라의 고증학 등 다양한 분파가 등장했습니다. 당시의 학문은 인근 국가인 조선과 일본에도 영향을 주었습니다. 그 결과 주자학과 양명학이 번성하고 실학과 고학이 형성된 바 있습니다. 이처럼 다양한 분파의 유학 가운데 조선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학문은 송나라의 주자학이었습니다.
주자학은 중국 송대의 유학자 주자가 주창한 학문으로, 그것이 조선에 처음 들어온 것은 여말선초, 국가가 혼란스럽던 시기였습니다. 당시 새롭게 등장한 지식인 집단인 신진사대부를 중심으로 주자학이 유입되었는데요. 불교가 현실 정치와 윤리를 외면한다고 여겨 대체 가능한 이념으로 선택한 것이 유학의 한 분파인 주자학이었습니다.
나라의 위기 속에서 새롭게 등장한 지식인 집단은 새로운 왕조가 세워진 뒤 주요 관료의 자리들을 차지했습니다. 고려와는 다른 조선의 정치개혁과 한양을 비롯한 국가 건설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유학을 국가 이념으로 삼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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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좌) 퇴계 이황 (출처: 전통문화포털) (우) 공부하는 양반을 묘사한 그림(출처: 우리역사넷)
지금부터 '조선' 하면 '유교 국가'라는 한 가지 키워드만 떠올리셨던 분들이 계시다면 ... 이 책을 통해 '조선'이라는 국가를 다방면에서 입체적으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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