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지"(gnosis)라는 그리스어는 "신적인 앎"(divine knowledge)이라는 뜻인데요. 여기에서 나온 "영지주의"(gnosticism)라는 근대 용어는, 개념 구실을 못할 만큼 너무 혼탁하게 쓰이는 것 같습니다.
제가 아래 댓글에다가 몇 가지 내용을 간단히 적어 놨는데, 다시 정리해 놓겠습니다.
나그 함마디 문헌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게 "요한 비서"(Apocryphon of John)이므로, 이 문서만 갖고 몇 가지만 지적하겠습니다.
(1) "요한 비서"에서, 제베데오의 아들 요한이나 예수 층은 맨 마중에 들어온 겁니다. "요한"이나 "예수" 대목을 빼고 읽어도, 이 책의 취지 자체에는 큰 변화가 없어요. 즉, 영지주의 층이 먼저이고, 기독교와의 접합은 나중에 이루어진 겁니다(1세기 말쯤에). 영지주의 운동은, 일차적으로 유대교/기독교와는 따로 논의해야 한다... 는 이야깁니다.
(2) 영지주의는 기본적으로 "2원론적 우주관"입니다. 이걸 쉽게 이해하자면, 물질세계의 창조자를 "참된 하느님"으로 보는 사상은 기본적으로 영지주의가 아닙니다. 영지주의에서는, 물질세계의 창조자를 "데미우르고스"로 보고, 이걸 하위의 신격/천사, 또는 악한 신격으로 간주하여 나중에는 유대인들의 "야훼" 신과 동일시합니다. 이 물질세계의 "저편"에 참된 영적인 천상계가 따로 있는 겁니다.
(3) 영지주의 표현 양식은, 기본적으로 "신화"입니다. 따라서 이런 신화 이야기에서 "역사적 사실"을 운운하는 건, 발상 자체가 잘못되었습니다. 영지주의 신화의 핵심은, "Sophia(지혜)의 타락과 복귀"입니다. 나머지 주제들은, 이 핵심 신화에서 파생됩니다.
(4) "지혜"를 추구하는 경향 자체가 곧바로 "영지주의"가 되는 건 아닙니다. 히브리 전통에도 "지혜" 사상이 있어요. 그래서 요즘의 영지주의 전문가들은 대개, "토마 복음서" 같은 걸 영지주의 문헌이라고 부르질 않습니다.
(5) 영지주의 사상 체계에서는, 이런저런 "구원자 신화"가 있습니다. 저편의 천상계에서 이런저런 구원자가 이 물질세계로 내려와서 영지주의자들에게 "신적인 가르침"을 베푸는 것입니다.
(6) 영지주의는 "종교적 혼합"이 아주 심하게 이루어지므로, 각 지역마다 천차만별의 색깔을 이룹니다. 한마디로 정의하기가 힘들 정도로 복잡 다양해요.
(7) 영지주의는 대개 "엘리트주의적"으로서, 대중 운동이 되기 힘듭니다. 크리스천을 분류할 때도 "영적인 인간"(pneumatics)과 "혼적인 인간"(psychics)으로 나눈 후, "영적인 인간" 즉 영지주의자들만이 "신적인 지혜"를 얻을 수 있다... 라고 주장합니다. 그래서 종교 지식인들의 서클이나, 수도사들의 사상 같은 걸로 이해하면 무난할 듯.
저도 신학적인것보다는 사람에 중심을 두고보는데요 지금 강경수님의 댓글보면서 님의 솔직담백함 성품에 반갑습니다 우리가 설왕설래한다해도 중요한 것은 마음의 합계아닌가 싶습니다 그깢 지식은 서푼? 가치도 없을때가 많습디다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때로 티격태격할지라도 함께 가는 길이 즐겁지않겠습니까
그리고 저는 이제 무슨 주의 라는 말에 크게 신빙성두지않습니다 사람이란게 불완전하여 모든것에 미흡할수밖에 없는데 어찌 무슨 주의 라는 게 온전히 있을수있겠습니까 다만 우리가 곰곰히 살펴야할 것은 가령 바울을 예를 든다면 바울은 어떤 주의 였다 라는 신학적 나열보다는 과연 바울을 통하여 어떤것이 사람들에게 긍정적인것이었고 어떤것이 부정적 결과를 주었는지를 연구해가면서 더욱 우리들의 종교의식을 순수하게 변화발전시켜가는 게 중심핵심이 되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카발라"에 대해서는 모릅니다.
영지주의는 의식의 비일상적 상태에 대한 경험에 근거하는데다 곧잘 그 경험에 의해 수정되고,
그런 만큼 신학적인 엄격성을 거부하는 사고 체계이고...
연구하는 학자들 대부분이 종교를 가진 사람들이었던 탓에 각자의 종교적 기반에 따라
영지주의도 달리 해석되었다. p230
무지로부터 그노시스를 통해 영적 체험을 하고, 해방(해탈)에 이르는 과정을 강조하고 있는 것처럼, 내가 깨달을 수 있는 것은 내가 경험하고 고민한 만큼 일 것이다..역자의 후기 같은데, 공감하게 되네요..
삭제된 댓글 입니다.
새벽님...//내가 깨달을 수 있는 것은 내가 경험하고 고민한만큼 일 것이다//라는 위의 말에 저는 전적으로 동의합니다..새벽님께서도 여전히 진행 중인 분이심을 늘 잊지 않으신다면 예동이라는 공동체에서 조화를 꾀하실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어제는 "코웃음이 나오네요" 구절에 그냥 화가 나서 댓글을 심하게 달았는데요. 오늘 새벽 님의 댓글들을 다시 읽어 보니까, 취지 자체에는 별문제가 없군요. 그래서 어제 댓글은 그냥 지우고, 새벽 님, 어제 말을 심하게 해서 미안합니다.
저도 신학적인것보다는
사람에 중심을 두고보는데요
지금 강경수님의 댓글보면서
님의 솔직담백함 성품에 반갑습니다
우리가 설왕설래한다해도
중요한 것은 마음의 합계아닌가 싶습니다
그깢 지식은 서푼? 가치도 없을때가 많습디다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때로 티격태격할지라도
함께 가는 길이 즐겁지않겠습니까
그리고 저는
이제 무슨 주의 라는 말에 크게 신빙성두지않습니다
사람이란게 불완전하여 모든것에 미흡할수밖에 없는데
어찌 무슨 주의 라는 게 온전히 있을수있겠습니까
다만 우리가 곰곰히 살펴야할 것은
가령 바울을 예를 든다면
바울은 어떤 주의 였다 라는 신학적 나열보다는
과연 바울을 통하여 어떤것이
사람들에게 긍정적인것이었고
어떤것이 부정적 결과를 주었는지를 연구해가면서
더욱 우리들의 종교의식을 순수하게 변화발전시켜가는 게
중심핵심이 되어야한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