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도대전에서 진림은 원소의 부하로 일하면서
원소를 대신해 격문을 기초하여 조조에게 심하게 욕을 퍼붓습니다.
이격문은 원소전에 기록되어있는데
정말 입에 담을수없을 정도였습니다.나중에 원소가 전쟁에서 패하자 진림은 포로가 됩니다.
조조는 단지 이렇게 말합니다.
"욕을 할때 나를 욕하는 건 괜찮지만 ,어찌 나의 조상 삼대까지 욕을 하는가 ? "
진림은 사죄하면서
" 시위에 화살을 얹으면 쏠 수밖에 없습니다 "
라고 말합니다.
조조는 더이상 이일을 문제삼지 않고 그대로 그를 사공군모좨주로 임명합니다.
이일은 삼국지 진림전 본문에 실려있으니 믿으셔도 됩니다.
또 조조는 자신을 배반한 사람도 용서했습니다 .
위종은 원래 조조가 가장 신임했던 사람입니다.
장막이 반란을 일으켰을때
많은 사람들이 무기를 버리고 장막을 따라갔지만
조조는 매우 자신있게 말합니다.
" 위종만은 나를 배반할 리 없다."
하지만 위종마저 장막을 따라 달아났습니다.
그러자 화가 난 조조는 이를 갑니다.
"좋아,그래 너 위종 ! 하늘 끝까지 한번 도망가봐라
내가 널 가만두지 않겠다.
그러나 막상 위종이 포로가 되자 조조는 의외로 크게 한숨을 쉬며
"위종은 인재로다!"라고 하고는 그를 하내태수로 임명합니다.
그리고 필심의 모친과 동생 , 처자식이 장막에게 억류되자
조조는 그에게 말합니다.
"자당 어른이 장막에게 있으니 그대는 거기로 가는 편이 좋겠소"
필심이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리며
자신은 딴 마음을 품고 있지 않다고 말하자
감동한 조조는 눈물을 흘립니다.
하지만 그이후 필심은 조조를 배반하고 장막에게 몸을 맡깁니다.
후일 필심이 포로가 되자 사람들은 그가 이번에는 틀림없이 죽을것이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조조는 너무 뜻밖에도
"효도를 다하는 사람이 어찌 충성을 다할 수 없겠는가?
이사라이 바로 내가 찾아 헤매던 사람이다라고 말하며
그의 죄를 묻지 않았을 뿐 아니라
공자의 고향인 곡부로 가서 노국상을 맡게합니다.
이 두가지일은 모두 삼국지:무제기의 본문에 실려있으므로 믿을 수 있습니다.
심지어 자신을 배반한 친구에게마자 조조는 지날날의 우정을 중시했습니다.
조조와 친하게 지내던 진궁이 끝까지 여포를 도아 여포를 치다가
포로가 된 다음에도 투항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조조는 그의 자를 부르면서
"공대! 자네가 죽는 것은 괜찮지만 자네의 노모는 어찌하란 말인가!?"
라고 말하자
진궁은 크게 탄신하고는
내듣기에 효로써 천하를 다스리는 자는 남의 부모를 해치지 않는다고 하니
노모가 죽고 사는것은 모두가 그대에게 달렸소"라고 합니다
조조가 다시 묻습니다
자네의 처자식들은 또 어떻게 할것인가?"
진궁이 다시 대답합니다.
"듣기에 인정으로 천하에 베푸는 자는 남의 후손을 끊지 앟는다고 하니,처자식이 죽고 사는 문제도 그대가 알아서 처리하시오"
진궁은 말을 마치자 뒤도 돌아보지 않고 고개를 들고 형장으로 향합니다.
조조는 눈물을 흘리며 그를 배웅합니다.
진궁이 죽고 나서 조조는 그를 봉양하고,
그의 딸이 시집가는 것을 도왔으며 친구였을때보다도 그의 집안에 더 잘해주었습니다.
이는 삼국지:여포전에 기록되어 있으니 믿으셔도 됩니다.
원소군은 관도대전에서 완전히 무너지고 만다
이때 몰수한 전리품 중에서 원소와 내통하고 있었던 조조의 부하의 편지가 무더기로 나왔다.
조조는 원소의 대군을 상대로 해서 나 자신조차도 어찌 될지 알 수 없었다.
하물며 다른 사람들은 어떠했겠는가?라고 말하면서
편지를 읽지 않고 모두 불태웠다고 한다.
그 후에도 북진을 계속하여 원씨 잔당 세력을 철저히 격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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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사실 진짜 인물이었죠 간계와 잔인함만으로 중원의 3분2를 통일할수는 없죠
저게 아량보다도 자기편 만드려는 철저한 자기계산도 있는듯
역시 삼국지의 진짜 주인공은 조조여야하는데;;
무예, 병법, 정치, 문학, 경영 어느 하나 모자란 것이 없었다는게 단점이죠.
22222222 중국 역사상 최고의 천재가 아닐까요. 순수 재능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하면 당태종이나 한무제보다도 더 뛰어난 인물이라고 봅니다. 저는 역사를 보면서 가장 흥미로웠던 인물이 서양에서는 카이사르, 아시아에서는 조조였습니다.
@코비_메시_샤비_인혜 심지어 여자 꼬시는 능력 마저도...
@John Havlicek ㅋㅋㅋㅋㅋㅋㅋ 둘 다 공통점이 수많은 여자를 거느렸고 엄청난 대인배였으며 독재자였고 절대적인 자신감과 추진력, 군사적 재능, 정치, 문학.........무엇 하나 부족한게 없었다는 것. 카이사르는 탈모라는 단점이 있었지만요.........ㅎㅎㅎㅎ 그리고 카이사르는 로마세계 다 통일해놓고 암살당하는 안타까움과 조조는 끝내 삼국통일에 실패하고 죽는 안타까움마저......
계산이라고해도 사회생활하다보니 감정에 치우치지 않고 배신하더라도 능력있으면 용서하는것은 쉽지 않죠
사회생활하다보니 실감함
미친 대인배
하지만 그 당시에도 흔하지 않았던 서주 대학살이 있음~
인재를 등용할 때 다른 어떤 능력들은 무시하고 오직 '재능'만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압도적인 자신의 카리스마로 찍어누르면서 그에 대한 문제점을 없앴죠. 하지만 사람의 인품등의 또다른 중요한 요소는 무시했던 여파로 조조 사후 사마가에게 정권이 넘어가게 됩니다. 당대만 놓고본다면 풍운아에 대단한 능력자이지만... 긴 안목으로 본다면 옳다고만 할 수는 없습니다.
조조가 사마의를 믿지말라고 수차례 경고한걸로 알고 있어요 그 후대 문제가 아닐까 생각이 드네요
@Passion-Run 글쵸 유비나 조조나 자손이 문제
@Passion-Run 사마의를 중임한 것은 조조였으니까요. 당시에 많은 신하들이 반대를 했으나 조조가 중용했었죠.
조조의 후계자 조비가 역대급(유선급은 아니었지만..) 망나니였고 그 후계자 또한 무능했던걸 생각하면... 과연 정권이 넘어간게 조조의 탓인가는 회의적이란 생각이 듭니다
@라제쉬 쿠트라팔리 말씀하신대로 유비로 대표되는 '촉'과 비교하면 극명하게 갈리지요. 말씀하시다시피 무능함으로 따진다면 유선이 더 심하죠. 하지만 '촉' 멸망까지 유선 중심의 정권 체제가 무너지지는 않았습니다.
유비 사후, 제갈량이 보좌해 주었고, 그 이후 동윤등의 명재상등도 유선을 끝까지 보필했었죠. 하지만 '위'는 어떤가요? 조조 사후, 정권이 분열하게됩니다. 위 몰락의 결정적 이유라고 봅니다.
동습? 혹시 동윤 말씀하시는 건가요?
@李굴비 그렇군요 ㅋ
그리고 명재상이 조조사후에 이끌필요는 없지 않나요? 조비가 유선처럼 어린아이도 아니고 나름 정치적으로는 조예때까지 잘 해나간걸로 알고 있는데요(전쟁을 많이 한게 단점이긴 했지만..)
@[Mavs] 3D 제가 알기로는 사마의는 조조대는 물론이고 조비,조예때까지도 별 문제없이 지낸것으로 알고있는데 아닌가요? 조예 사후 조방이 황제가 되고 같은 고명대신인 조상과의 싸움 이 후에 최고의 권력자로 부각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조조사후 3대가 지나서 사마씨가 정권을 잡은 것인데 이를 통해 조조의 안목을 옯다/옯지않다라고 하는것은 맞지 않는 것 같네요.
조조가 재능만을 본건 한 황실을 보위한다는 명분을 가진 상태에서 실질적으로 자신이 군주로 군림해야 했던 당대 모순때문에 어쩔수 없었습니다. '충의' 를 중심으로 멤버를 모은다? 그건 자연스레 한 황실을 허수아비로 만든 자신에게 독이 될 수밖에 없었거든요.
그리고 사마가문에게 권력이 넘어간건 조조보다는 조비 때문이죠. 종친을 극도로 경계했기 때문에 자신의 형제들인 조창, 조식을 작살냈고 하후 가문도 조비 시절에 한풀 꺾여버리죠. 황제 권력 강화라는 면에서는 조비의 행동이 맞았지만 자신과 아들 조예가 단명하게 되면서 조씨 황실 자체가 무력화되는 방향으로 가게 됩니다.
조비는 권력 강화를 위해 잠재적 위협인 황실 실력자들을 제거했고 이게 권력강화로 이어졌지만 결국 조씨 천하를 보위할 종친도 사라지는 결과가 되었기에 역성혁명이 일어나게 되죠.
그래서 사마씨는 오히려 종친을 강화하여 사마씨들이 전국의 권력을 장악하게 만듭니다. 이러한 방식은 선대 조씨의 멸문을 보고 배운 것이지만 결과적으로 조비가 우려하던 식의 종친간의 내전인 팔왕의 난이 일어나게 되고 이것이 종친들이 군사력 강화를 위해 이민족을 끌어들이게 되면서 영가의 난으로 이어져 사마씨 황실이 멸망하게 되는 이유가 됩니다. 아이러니죠 ㅎ
@Kobe Durant 조조의 인재관에 대하여 잘못되었다, 안목이 옳지 않다고 말씀드리지는 않았습니다. 단, 찬양 해야하는 것은 또는 당연히 옳은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서 쓴 댓글이지요.
말씀드리고 싶었던 것은 인재를 쓰는데 있어서 중요한 점을 중용을 지키는 것입니다. 조조와 같이 목표 지향적으로 재능만을 중시할 경우에는
단기적인 성과는 크게 낼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 본다면, 공동의 목표가 아닌 개인적인 야망에 대한 분열, 또는 재물등의 탐욕등으로 인해 혼란에 빠지게 됩니다.
또한 너무 '인'의 관점에서 틀어밖히게 된다면, 좋은 재능을 적재적소에 쓸 수 없게 되지요.
그 중간의 적절한 조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Mavs] 3D 위 본문 자체에 대한 평가가 조조의 인재관을 찬양하는 식의 뉘양스를 가지고 있어서 그에 반대되는 의견을 전개했을 뿐, 위의 몰락 이유가 전적으로 조조의 잘못이라고는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적어도 당대에서는 그런 힘을 바탕으로 전국을 주도했으니까요. 다만 그 사후에도 그를 대신 할 수 있는 인물이 나오면 좋겠지만 그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것이었죠.
고대의 동방의 국가에서는 인, 예를 바탕으로 둔 유교를 국가 경영의 중심에 세웠습니다.(우리나라는 충, 효) 이는 어느 특출난 카리스마에 의한 지배가 아닌 보편 타당한 국가 경영 시스템에 의해서 안정을 꾀한 것이죠.
조조에게는 이런 점이 아쉬운 것입니다.
이렇게 장점도 있지만 서주대학살은 어떻게 쉴드칠 수 있는 부분이 아니죠
다들 아시겟지만 소설(연의)과 정사는 천지차이라 ...나관중이 촉나라 사람이라서 조조가 완전 나쁜넘으로 나오고 유비는 완전 영웅에 선인으로 나오는데 실제와 너무다른 내용들이 많죠
근데 오히려 유비도 연의 피해자 중 한명이죠...나쁘게 말하면 바보같고 멍청하게 나오지만 실제로는 상당히 뛰어난 인물이죠...그렇지 않고서 그 천하의 조조를 상대로 죽지 않고 어떻게든 버텨서 나라 하나 만들어서 나름 대항할수도 없었을듯..
조조 너무 신격화 하지 마세요 사람목숨을 그냥 소모품으로 본 사람입니다. 저도 전에는 조조 대단하다 생각했는데 생각하면 할수록 유비가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되네요. 특히 장판파전 민초들이 유비를 자발적으로 따라가고 유비도 그들을 저버릴수 없다고 한건 지금 시대에 생각해도 정말 대단한 사건이라 생각되네요
동의합니다. 신격화 할 인물은 아니죠. 서주대학살도 있고, 여백사 살해도 있고... 목표 달성을 위해 과정의 공정성등을 무시하는 인물의 대표상이죠. 그것이 인재 등용에도 그대로 나타나 있고요.
조조의 평가가 좋아진 것에는 일본에서의 재조명이 크다고 보는데요. 일본 전국시대의 오다 노부나가가 조조를 닮은 모습때문에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 조조에 대해서는 '간웅'이라는 평가가 가장 적절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고요.
굿~!
222
당시 유비는 황족의 자손이였고 때문에 당시 춘추전국시대에서 흔들리는 민심은 자연스레 유비쪽으로 타고 흐를수밖에 없었죠.거기다 유능한 장수나 군사들도 유비에게 모이게되고...조조를 신격화 하는건 아니고 개인적으로 유비는 좀 부풀려져있다고 생각해요.
@내일앨런 황손이라 민심이 그냥 올리 없고 설사 그렇다면 유장, 유기도 황손인데 거기로 가거나 그냥 있었겠죠. 유능한 인물도 조조나 손견어게 비교도 안되고요. 아무것도 없지만 민초들이 유비의 명성과 인품에 나머지 포기하고 유비를 선택한 대단한 일입니다. 그리고 유비는 중국인이 제일좋아하는 황제 유방의 무능력한 이미지와 비슷하게 하려고 소설상으로는 오히려 능력이 깍여서 나옵니다
연의를 읽고 촉빠가 되었다가 정사를 알게 되고 위빠가 되었다가 정사를 읽고 나니 다시 촉빠가 되었더라...
는 말이 있죠.
위 무제도 엄청난 능력자이고 대단한 매력을 지닌 인물임은 틀림없지만 그도 장단점이 있는 사람일 뿐입니다.
간웅이 정확한거같아요!
@제리코 근성도 근성인데 유비는 진짜 맨주먹으로 시작해서 일국을 이뤄낸 영웅이죠. 삼국지 최고의 먼치킨 제갈량을 본인 사후까지 충성을바치게 했던 인성의 소유자이기도하구요.
조조도 사세삼공의 명문 원소와 비교되서그랬지 엄청난 명문가 출신이죠.
저도 이 말에 동감하는데요. 어릴 때 주인공으로 나오는 배경의 유비를 좋아하다가 커가면서 다방면에 뛰어난 능력을 보인 조조에게 호감을 느끼게 되죠. 하지만, 사회 나와보면... 알게되죠. 유비를 조건없이 따라다니는 사람을 보며, 유비가 진정 위대했다는 걸요.
유비또한 대단한 인물이죠.. 인품이 워..
사실 원소도 말이 사세삼공의 자식이지, 서자 출신으로 힘든 길(계책으로 기주 먹기, 이후 원소 vs 공손찬 대결도 거의 다윗과 골리앗 수준의 대결이었다고 하죠. 다윗이 원소)을 통해 하북의 지배자로 떠오르게되었고, 관도에서 대패를 당한것은 사실이나 그이후 세력도 딱히 조조한테 밀린것은 아니었다고 하더군요. 본인이 사망 이후 후계구도를 제대로 잡지 못했던게 컸고...유비에 대해 말한다면 나관중이 빠짓하는게 이해될만큼의 먼치킨이라고 생각합니다. 조조와 대비하여 '인의'를 강조한게 유비의 능력을 오히려 가려버린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죠.
기주 먹은 시점에서는 오히려 공손찬쪽 세력이 더 크다고 보는 편이죠..하지만 계속되는 전쟁에서 패배하면서 전력이 약해지고 결국 궁여지책으로 역경루 지었지만 그것도 뭐...
삭제된 댓글 입니다.
전 오히려 관우가 가장 신격화(이미 신)된거라 생각합니다. 손권과의 외교문제나 유비말고는 깔보는 인품이나.. 반준이나 미방을 업신 여긴부분도 그렇구요.
그렇다고 관우가 허접한 장수는 아니죠..분명한건 삼국지에서 군주 제외 최고의 장수인건 확실하죠...조조 진영 최강의 장수 조인,우금을 박살내고 조조가 실제로 수도를 옴기려고 했을정도로 엄청난 인물입니다..단지 그 자존심 때문에 모든게 무너져서 그렇지..
@李굴비 저도 한수정후를 삼국지에서 가장 좋아하긴 합니다만 삼국지 최고의 이미지메이킹의 승리라는데는 동의합니다. 한이 망하고 전국이 혼란스러워질때 당시 지배층에서 개인의 능력이 엄청남에도 끝까지 충절을 지켰던 관우를 일부러 띄워줬다는 말도 있죠.
@李굴비 우리나라에 사당이 생길정도니까요
일본, 우리나라, 대만, 홍콩 제외하고... 대륙은... 조조나 유비, 손권 등은 생각보다 사람들이 거의 모르죠. 그에 반해... 제갈량이나 관우.... 화타 등은 거의 다 알고... 신격화되어있죠..
유비 손권은 별로여도 조조는 모를 수가 없습니다. 조조는 중국 역사교과서에 한무제, 당태종에도 그리 꿇리지 않을 정도로 삼국시대 부문에서 조조가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죠. 구품중정제와 관도,적벽은 문과생이라면 모르면 안되는 필수고요. 그리고 엄청 유명한 속담도 있어서 모를 수가 없습니다. 한국에 '호랑이도 제말하면 온다' 라는 속담이 중국에서는 '조조도 제말하면 온다' 거든요. 워낙 유명하고 쉬운 속담이라 저같이 외국에서 온 유학생들도 이 속담은 '说曹操,曹操到' 거의 다 압니다. 아시아 역사에 관심 전혀 없는 제 유럽이나 남미 친구들도 조조는 거의 다 알아요.
@코비_메시_샤비_인혜 학생들이라던가~~ 역사에 관심있는 사람들은 알죠. 하지만 다수의 인민들은 모르고 관심도 없어요. 그에 비해 화타는 인민들도 많이 알더군요. 조조 고향도 여행해 봤습니다. 그곳... 인민들~~~ 화타때문에... 약제시장으로 유명해져서인지... 화타는 알아도... 조조는 거의 모르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