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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궁화꽃은 지지 않았다3' 허경영 총재 자서전
31. 미국은 선거인단을 뽑은 뒤 그들이 대통령을 뽑는 간접선거를 하는데 내가 통일주체대의원 뽑아서 그들이 대통령 뽑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32. 미래는 우월민족주의자인 유대인과 자주민족주자인 韓民族의 두뇌 대결의 시대
33. 정치는 이상이며 歷史는 현실입니다
34. 청계천의 물이 보이지 않게 덮어서 고가도로를 놓았기 때문에 이제 經濟도 살아나고 전쟁은 없겠지만 그래도 각하! 이후락을 北으로 보내야 합니다.
35. 김대중 선생의 진짜 납치범은?
36. 김대중 선생은 人間(인간)이 아니라 四覽(사람)이므로 90살을 넘길 것이며 꼭 살아옵니다
37. 김대중 선생 납치는 각하를 제거하기 위한 신호탄
38. 해(日)와 달(月)은 나란히 있어야 밝을 明이 됩니다
39. 1970년부터 1980년 사이에 한국과 미국의 대통령이 죽게 됩니다
40. 육 여사 저격의 진범은 따로 있습니다
41. 예수님은 머리 둘 곳이 없다고 했는데 나는 청구동 집 한 칸이 있으니
42. "요즘 내 꿈에 집사람이 나타나"
43. 美國의 최종 목표는 각하를 제거하는 것입니다
44. 남침 땅굴 발견에 이어 캄보디아, 월남 공산화와 남침 일보직전
45. 핵무기 노적봉전법을 서둘러야 합니다
46. 일주일에 한 번 정도씩 나를 없애려는 쿠데타 정보가 들어와...
47. 석가탄신일 공휴일 제정 반대한 미국, 소련 핵기지 한국 인수를 논의한 소련
48. 유신 이후 내 말보다 미국대사의 눈치를 보는 각료가 너무 많아. 진짜 독재자는 바로 美國이야!
49. 羊頭狗肉(양두구육)의 소련, 가무버 海岸(해안)의 한국 핵기지 인수 추진
50. 소련은 한국을 원하고 미국은 北韓을 원해?
31. 미국은 선거인단을 뽑은 뒤 그들이 대통령을 뽑는 간접선거를 하는데 내가 통일주체대의원 뽑아서 그들이 대통령 뽑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선거에서 내가 當選은 되었지만 그게 어디 당선인가? 과잉충성이 일부는 있었을 걸세. 그러니 나는 놀라지 않는데 당과 측근들은 너무나 불안해하고 놀라는 눈치야! 그러니 지난번 자네도 차라리 국민들에게 그동안 추진해오던 經濟개발계획을 1단계 마무리 할 때까지 만이라도 장개석 총통과 같은 종신 대통령은 아니더라도 일정한 기간의 임기연장을 솔직하게 요구하여 국민투표에 붙이는 것이 3선 개헌보다는 나을 것이라는 말을 나한테 한일이 있지 않은가?
그런데 나도 절대 종신토록 이곳에 있고 싶지 않아. 도둑떼들한테 政權을 맡기려니 국민이 불쌍하고 자리를 지키려니 독재자라고 하니 내 속을 자네 말고 누가 알겠나? 요즘 維新헌법에 대한 이야기가 있는 게 사실이야. 南北統一 이전에는 직선제는 전쟁의 위험까지 내포하고 있어. 그런데 국제 정세는 더욱 급박하게 되고 있네. 닉슨이 중국을 방문하여 곧 修交가 이루어질 것으로 보이니, 김일성이 완전히 오판하게 되어 있어.
「아시아인의 安保는 아시아인의 손으로」라는 닉슨의 한 마디에 완전히 힘을 얻은 김일성에 대해 닉슨이 중국과 수교를 선언한다면 중국과 국교가 없는 우리로서는 韓半島는 적화가 된 것이나 다를 바가 없는 게 아닌가? 이러한 국제 정세가 남북전쟁을 유발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전혀 없어. 나는 이때 남북전쟁을 억제하기 위해 국내의 정치적인 소모전을 불식시키지 않을 수가 없어. 내가 3선 개헌 마지막 유세 때인 지난번 장충단공원 유세 때 모인 군중이 60만 명쯤이었어.
그런데 내가 연설을 하고 있는데 청중들이 警察(경찰)저지선을 밀면서 내 얼굴을 보기 위해 단상 쪽으로 점점 가까이 오는 것이었어. 만약 그 중에서 북한의 사주를 받은 사람이 김대중 후보에게 돌멩이 하나만 던지면 그 육십만 관중이 나를 의심할 것이고 대규모 소요가 일어나면서 북한이 남침을 하게 되지 않겠나? 그것이 직접선거의 한계야. 미국은 간접선거를 하고 있어. 미국의 민주주의야말로 維新(유신)정치가 아니고 무엇인가?
維新체제는 바로 美國의 대통령선거를 모방한 거야. 미국은 대통령선거인단을 선출하여 그들이 대통령을 뽑는 간접선거는 간접민주주의 인데 우리도 통일주체국민회의대의원(선거인단)을 뽑아서 그들이 대통령을 뽑겠다는데 그것이 미국과 무엇이 다르다고 보는가? 더구나 루즈벨트 대통령은 經濟事情이 어렵다고 헌법에도 없는 네 번이나 대통령을 하지 않았나, 대통령 간선제를 미국에서 하면 민주주의이고 우리가 하면 독재가 되나?”
32. 미래는 우월민족주의자인 유대인과 자주민족주자인 한민족의 두뇌 대결의 시대로서, 無窮花(무궁화)가 청결(淸潔), 근면(勤勉), 영속(永續), 박애(博愛)라는 민족정신으로서 되어있는 것은 하늘이 이미 한민족을 인류의 중심으로 선택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각하! 유신은 안 됩니다. 남북對話의 길을 열면 전쟁도, 쿠데타도 예방되며 정치 안정에도 도움이 될 것입니다.”
박 대통령은 심각한 모습으로 질문을 던졌다.
“지금 닉슨 대통령은 7사단의 駐韓美軍 2만 명을 이미 철수를 시작했는데 자네는 그들의 미국철수의 깊은 뜻은 어디에 있다고 보는가?”
“駐韓美軍 철수는 닉슨의 모든 민족의 공존과 세계평화를 위한 양심을 보여주는 중요한 증표입니다. 닉슨은 진정한 평화주의자입니다. 닉슨은 언젠가 케네디와 같은 희생자가 될 것입니다. 케네디 역시 세계 모든 민족의 자주와 평화와 동서화해를 부르짖으며 쿠바와 월맹 포격을 거부했습니다. 그러자 미국의 유대인 우월 민족주의자들인 防衛 산업체들은 무기 팔 곳을 없애 버리는 케네디를 암살해 버린 것입니다. 미국 정보부가 미국 대통령을 살해해 놓고 엉뚱한 사람에게 누명을 씌웠던 것입니다.”
“자네가 보는 우월 민족주의란 뭔가?”
“일본, 독일과 유대인들은 그들이 어떤 종족보다 우월한 민족임을 내세웁니다. 그러나 우리 한 민족은 나라꽃인 無窮花에서 보듯 꽃이 도르르 말려서 떨어지므로 淸潔(청결)하며, 매일 바꾸어 피니 勤勉(근면)하며, 계속 피니까 永續(영속)적이며, 꽃에 진드기 등의 먹이를 내보내니 博愛(박애)인데 이런 정신이 우리 白衣민족을 21세기 세계를 이끌 민족으로 하늘이 결정해 놓았다고 봐야 합니다. 유대 보수 세력이 CIA를 장악하고 있으며 우월 민족주의자들인 방위산업체들에 의해 케네디는 돌아갔습니다. 아마 닉슨도 우월 민족주의자들의 손에 의해 탄핵되고 존슨이라는 대통령이 나타날 것입니다.
제가 지난번 말씀드렸듯이 한국과 미국에서는 반드시 1970년부터 1980년 사이에 대통령들이 죽거나 쫓겨난다는 사실입니다. 이점을 항상 염두에 두셔야 합니다. 미국 국민은 미국의 軍事행동에 대해 언제나 무조건적인 지지를 보냅니다. 월남전도 마찬가지입니다. 월맹포격을 끝까지 거부하는 케네디를 암살한 뒤 확장했습니다. 물론 미국 국민의 전폭적인 지지가 있었습니다. 21세기에 東方역사가 한반도에서 일어난다는 것을 서양인들은 눈치 채고 있기에 유대인들의 韓民族에 대한 경계가 더욱 심해질 것입니다.”
33. 정치는 이상이며 역사는 현실입니다
“아마 케네디의 東西화해라는 이상주의가 패배했듯이 닉슨의 이상주의도 패배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나면 한국의 美軍 철수도 중지 될 것입니다. 정치는 이상이지만 歷史는 현실 편이니까요.김구 선생의 훌륭한 자주민족주의인 이상주의도 선구자는 될 수 있을지언정 先知者가 되지 못함으로써 국가의 運命을 입체적으로 보지 못함으로서 그 뜻을 이루지 못했던 것입니다.
未來에 세계 역사를 바꿀 지도자는 선구자, 선지자 선각자의 지혜를 同時에 깨달은 자라야 하는 것입니다. 역사의 현실적 흐름을 깨닫고 재빨리 本妻와 헤어지고 서양 여성인 프란체스카(오스트리아 출신)를 아내로 택함으로써 미국의 陰性적 지원으로 대통령이 될 수 있었던 현실주의자인 이승만에 의해 뜻을 펴지 못한 것도 마찬가지입니다.레닌의 독일망명을 도와준 히틀러가 소련과 불가침조약을 맺어놓고 유럽을 占領한 다음 그대로 멈추었으면 그것이 현실이고 성공이 될 터인데 약속을 깨고 소련까지 차지하겠다고 침공함으로 망했습니다. 히틀러의 이상은 소련의 氣候(기후)와 食糧事情이라는 현실을 전혀 몰랐던 것입니다.
얼마 전 1968년 소련의 브레즈네프는 獨立을 주장하는 위성국인 체코를 武力 침공하여 장악했습니다. 그리고 브레즈네프는 소련연방에서 이탈하려는 어떠한 위성국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강력한 軍事 패권주의인 브레즈네프 독트린을 발표했습니다. 어떻게 보면 1969년 닉슨의 괌 독트린과는 정반대되는 견해입니다. 그러나 브레즈네프 독트린이야말로 현실적인 것입니다. 오히려 닉슨 독트린은 결국 닉슨의 權力分散을 가져와 김구 선생처럼 그것은 하나의 이상으로 끝나고 말 가능성이 높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브레즈네프 독트린도 소련연방을 지키려는 현실적 정치 수단이며 그들 내부 문제이듯이 닉슨 독트린은 결국 CIA와 군부를 장악하려는 닉슨의 이상에 의한 한판승부 싸움으로 단순한 그들의 內部싸움에 의해 주한미군 철수가 나온 것입니다. 그러나 대통령이 된지 얼마 안 되는 닉슨이 수 십 년간 權力의 내부를 샅샅이 꿰뚫고 있는 CIA와 유태우월 민족주의자들의 방위산업체들의 노련한 실력자들 앞에서 미국의 군사패권주의를 버리고 전 세계에서 손을 떼겠다는 이상주의적 평화주의 정책이야말로 현실적인 벽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입니다.”
“참으로 많은 情報보고를 듣지만 자네야말로 정확한 것 같아. 美軍 철수에 대해 어떻게 대처해야겠나.”
34. 청계천의 물이 보이지 않게 덮어서 고가도로를 놓았기 때문에 이제 경제도 살아나고 전쟁은 없겠지만 그래도 각하! 이후락을 北으로 보내야 합니다. 그 청계천 때문에 임진왜란과 6.25 사변이 일어났고 남한이 아시아에서 경제가 최저였는데 청계천을 덮어 고가도로를 만들었으니 우리 경제가 아시아 1위를 향해 급성장할 것입니다.
“방법이 무엇인가?”
“각하! 이후락 정보부장을 北韓으로 보내야 합니다. 美軍 철수가 많이 일어난 직후가 가장 좋습니다. 2만 명 정도의 철수가 마무리될 것입니다. 그때 북쪽에 남북회담을 제의해야 합니다. 우리의 선조들은 전쟁 중에서도 밀사를 서로 교환했습니다. 그것은 전쟁보다는 民心의 동요를 막을 수 있는 남북회담을 얻어낼 수 있습니다. 각하가 1967년 청계천을 덮어 고가도로를 만들었기 때문에 한반도에 戰爭은 나지 않게 되었습니다. 風水地理상 원시시대부터 서울 장안의 땅은 하늘이 만들어 놓은 그대로의 天土이기 때문이 개천물이 눈에 보이면 전쟁이 나고 경제가 망하게 되어있습니다.
그런데 각하가 청계천을 덮고 고가도로를 놓았기 때문에 이제는 한반도에 戰爭이 일어나지는 않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청계천을 덮지 않고 그대로 두면 경제도 망하겠지만 격암유록을 쓴 남사고의 예언대로라면 戊子(2008년), 己丑(2009년), 庚寅(2010년), 辛卯(2011년)년에 한반도에 化學大戰이 발생한다고 했는데 청계천을 덮었으니 큰 전쟁은 예방 될 것입니다. 그러나 강남의 땅은 흙을 부어 메꾼 사람이 만든 人土요 浮土(부토, 떠있는 땅)라서 개천을 파도 되지만 江北의 天土에는 절대 물이 흘러나가는 것이 보이면 사람의 얼굴에 핏줄이 노출된 것처럼 나라에 전쟁과 기근이 나게 됩니다.”
“그래 자네 말대로 자동차가 없어서 교통문제도 없는데 여러 風水의 대가들이 청계천을 덮지 않으면 戰爭이 난다고 해서 예산도 부족한데도 덮었던 것이야. 청계천을 덮기 전에는 우리나라 경제가 아시아에서 꼴찌였고 북한이 대단했는데 청계천을 덮고 나서부터 經濟가 급성장하고 청계천 고가도로가 우리 경제성장의 상징탑이 되어 전 세계로 필름을 만들어 홍보하고 있어. 先進國도 경제성장의 상징으로 고가도로를 많이 보여주는데 우리는 청계고가와 삼일고가도로라도 있으니 다행 아닌가. 그런데 청계천과 이후락 이가 무슨 상관인가?”
“각하! 한강물은 외부에서 서울로 들어오는 入水이므로 좋은 것이며 청계천은 서울의 氣運이 빠져나가는 出水이므로 개천이 눈에 보이지 않게 덮어야 하는 것입니다. 각하가 청계천을 덮고 나서부터 미국 완전철수는 중지되었습니다. 그러나 民心은 여전히 전쟁을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이때 이후락을 북한으로 보내면 많은 국민이 經濟활동에만 전념하게 되고 쿠데타 위험도 줄이며 南北의 주도권도 확보할 수 있으며 해외 국가들의 투자지원도 늘어나게 될 것입니다.”
35. 김대중 선생의 진짜 납치범은?
1971년 11월 20일 박 대통령에게 내가 제의했던 이후락 정보부장의 북한방문 건의에 의해 그 몇 개월 뒤인 1972년 5월 20일 청산가루를 소지한 이후락 정보부장이 北韓을 방문하게 되었다. 중국은 티베트가 獨立을 주장하자 젊은 시절 후진타워의 지시로 티베트 국민 600만 명 중 250여만 명을 사살했던 것처럼 한반도가 統一되면 만주조선족과 한민족공동체가 형성되어 중국 내란으로 이어질 것을 두려워서 한반도 통일을 원치 않고, 소련 역시 동시베리아 高麗人들이 독립을 주장할까 반대하고, 일본은 우리가 통일되면 강대국이 될까 반대하며, 미국은 거대한 軍需品 처리시장을 놓칠까 반대하게 될 남북의 비밀 접촉의 진의는 미군철수를 중지시키기 위한 逆(역) 전략이었다.
그 뒤 1972년 5월 29일 북한의 박성철 부수상 일행이 4박5일 일정으로 극비리에 청와대를 방문하여 30분간 박 대통령과 會談을 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난 뒤 2개월 뒤인 1972년 7월 4일 오전 10시 서울과 平陽에서 7·4 남북공동성명이 發表되었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 1972년 10월 17일 유신특별선언이 공포되고 11월 17일 국민투표에서 91.5%의 찬성으로 통과되었다.
그리고 1972년 11월 30일 남북조절위원회가 탄생하고 1972년 12월23일 유신헌법에 의한 박 대통령이 제 8대 대통령으로 就任했으며 1973년 7월의 제 7차 본 회담까지 순수이산가족 찾기까지 진전되어 가는 남북회담이 1973년 8월 8일 갑작스런 김대중 선생 납치사건으로 완전히 뒤집히게 되었다. 김대중 선생 납치가 있은 20일 뒤인 1973년 8월 28일 남북조절위의 북측의 공동위원장인 김영주는 김대중 사건을 들어 ‘중앙정보부가 납치 주모자다’라는 발언이 나오기까지 했다. 이 와중에서 박 대통령과 나는 여러 번의 만남에서 각종 대책을 세웠다.
“자네 김대중 선생 납치사건 알고 있었나?”
“예. 각하!”
“8일 날 김대중 선생이 日本에서 어디론가 납치되었다는 거야. 하비부 미국대사와 미국과 일본뿐만 아니라 全 世界가 나를 의심하고 있어. 이거 보통 사고가 아니야. 가만히 앉아서 생사람 잡는 거야. 전 외신보도가 나를 의심하고 있으니 이거 속을 보일 수가 없잖아. 김정렴 비서실장에게 알아보라고 했더니 이후락 중앙정보부장과 박종규 경호 실장, 그리고 제일거류민단장은 전혀 모르는 사실이라는 거야. 나한테 누가 거짓말을 하겠나. 결코 우리는 介入(개입)되지 않았어. 유신헌법 하에 대통령이 마치 야당지도자를 의도적으로 납치한 것으로 국민들이 보지 않겠나. 또한 만약에 김대중이 죽었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지난번 자네는 김대중 후보는 74세가 넘어서 꼭 대통령이 될 것이라고 했는데 생명에는 별 이상이 없을런지?”
“각하! 김대중 선생은 죽지 않습니다. 다만 납치되었을 뿐입니다. 아마 그 공작의 背後에는 이후락 부장이 美國과 협력을 했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각하가 3선 개헌과 維新을 하고난 이후부터는 장관들과 정보부장이 각하보다는 미국대사와 CIA의 눈치를 더 많이 보는 듯 한 印象을 받았습니다. 각하! 이후락 부장이 김대중 선생이 묵고 있는 일본호텔을 지키고 있었는데 어떻게 다른 사람들이 납치를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분명한 것은 납치범들은 유신체제를 극렬히 반대하는 국민의 輿論(여론)을 이용하여 각하를 제거하기 위해 각하를 유신 장기집권을 위해 야당 총재를 납치한 악랄한 독재자로 만든 뒤 각하를 암살시키려고 하는 美國의 공작일 가능성이 가장 큽니다.
여권에서 김대중 선생의 자작극이라고 하는 것도 억측입니다. 김영삼 총재와 김대중 선생은 이제 40을 넘긴 사람들로 純粹性(순수성)을 간직한 사람들입니다. 그 분들의 觀相은 소인배의 행동으로 大權을 노릴 사람들이 아닙니다. 김대중 선생은 머지않아 韓國으로 올 것입니다. 다만 각하는 철저한 공개수사를 일본에 천명하고 사과사절을 일본으로 보내야 할 것입니다. 김대중 선생 납치는 누가 납치를 주도하였든 각하를 제거하려고 하는 信號彈이라는 사실을 명심하셔야 할 것입니다.”
“자네 말처럼 3선 개헌 이후 청담스님과 배호가 돌아간 지 한 달 후인 12월 24일 대연각 火災로 200여 명이 죽는 엄청난 일들이 계속해서 일어났어. 이것이 유신개헌과 무슨 연관이 있는가.”
“각하! 저는 사서삼경과 대장경, 聖經 등 53개의 전 세계 종교경전을 다 배웠는데 그것들이 공통으로 가지고 있는 것이 不可入性의 법칙입니다. 즉 병에다 물을 넣으면 그 들어간 물만큼 공기는 나와야 한다는 법칙입니다. 저는 한문책들은 그대로 암기를 했는데 聖經은 제 스스로 성경책을 한문으로 번역을 해서 그 분량을 縮小(축소)시켜서 모두 漢文 글자로 다 외웠습니다.
그 성경말씀 중에 예수가 最初(최초)로 설교한 것이 마태복음 5장 3절부터 12절까지의 산상설교라는 八福이 있으며, 예수가 십자가에 매달리기 전 마지막 설교가 요한계시록 21장 8절에 나오는 八死인데 팔복이 오면 팔사는 당연히 없어지며 팔사가 오면 팔복은 없어지는 것입니다. 기독교에선 인간의 몸에 聖靈이 들어오면 반드시 악령이 나가게 되어 있으며, 惡한 마음이 들어오면 善한 마음은 떠난다는 것입니다.
八福의 첫째는 心靈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다니 天國이 저희 것이요 인데, 저는 이것을 한문으로 靈賓天國(영빈천국)으로 번역해서 외웠으며 그 다음은 哀痛慰勞(애통위로), 溫柔地業(온유지업), 義渴多食(의갈다식), 矜恤矜恤(긍휼긍휼), 心潔天見(심결천견), 和平天子(화평천자), 義逼天國(의핍천국)으로 이것들을 지키면 다 福이 있는 것인데,
八死 즉, 恐怖死亡(공포사망), 不信死亡(불신사망), 凶惡死亡(흉악사망), 殺人死亡(살인사망), 淫行死亡(음행사망), 주술사망(呪術死亡), 偶像死亡(우상사망), 虛僞死亡(허위사망) 중 한 개만 들어오면 八福은 나가게 되는 것처럼, 김대중 선생 납치 등 나라에 크고 작은 재앙이 연속적으로 일어난다는 것은 한편으로는 국가경제성장이 급속도로 이루어진다고 볼 수는 있으나 각하 건강을 조심해야 합니다.”
36. 김대중 선생은 人間(인간)이 아니라 四覽(사람)이므로 90살을 넘길 것이며 꼭 살아옵니다
나는 모처럼 周易의 비결을 통하여 박 대통령을 안심시키기 시작했다.
“각하! 김대중 선생은 人間이 아니라 四覽이므로 90을 넘기는 장수하는 얼굴이니 하늘로부터 각하처럼 召命을 받고 온 四覽입니다. 인간이 아닌 四覽은 하늘의 심부름을 마치기 전에는 절대 죽지 않습니다. 美國이 오히려 마치 각하가 납치한 것으로 만들어 각하를 악랄한 독재자로 만든 다음 각하를 제거하려는 名分을 만들고 있는 것이 확실해 보입니다.
각하가 장교시절 親北문제로 사형선고를 받았지만 하늘은 각하를 간단하게 살려 내었습니다. 그 당시 그것이 있을 수 있는 일입니까? 이 지구상에 60억 이상의 人口가 있지만 그 중에서 몇몇 사람은 父母의 몸을 받았지만 그 靈魂은 하늘에서 내려준 특수한 召命으로 잉태되어 지구에 도착한 것입니다. 그런 아이를 가진 부모는 특수한 胎夢(태몽) 꿈을 꾸게 됩니다.
기독교에서는 하늘에서 天使가 내려와 세상의 지도자로 변신한다고 하기도 하며 불교의 우주관에는 十界가 있는데 그 10계 중에서 아래 여섯 세계 즉 제 1의 지옥계(微生物) 제 2의 아귀계(昆蟲, 곤충) 제 3의 축생계(짐승) 제 4의 수라계(人間) 제 5의 인계(四覽) 제 6의 천상계(宇宙人)라는 여섯 세계의 생명체는 그 업이 다할 때까지 계속 輪廻를 하게 되는데 제 7의 성문계(성문부처) 제 8의 연각계(연각부처) 제 9의 보살계(보살부처) 제 10의 부처계(완성부처, 하나님)에서 그 분이 정해놓은 윤리의 한계선을 인간들이 넘어서 인간 스스로 해결할 수 없을 때를 대비하여 하늘은 인간에게 胎夢(태몽)으로 알린 다음 부처나 천사가 사람의 몸을 받아 인간의 자식으로 태어나게 하여 그 맡은 바 召命을 다하게 한다는 이야기가 있지 않습니까?
각하역시 하늘에서 사용하려고 키우고 있었기에 대통령 당선이 확실시 되던 신익희 선생이 당선 이틀 앞두고 急死하였으며 대통령 당선 두 달을 앞두고 조병옥 博士가 돌아간 것도 하늘의 뜻이었습니다. 그때 그분들이 당선되었으면 4.19도 5.16도 있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생명은 胎(태, 모태에서 태어나는 것), 卵(란, 알에서 태어나는 것), 化(화, 알에서 나온 애벌레, 나비 곤충들), 濕(습, 미생물 등 습기에서 태어나는 것)이라는 네 가지의 형태로 태어나 神, 靈, 魂, 魄, 鬼라는 다섯 가지를 만날 때 동물(畜生)은 다섯 가지 중에 魄을 가지게 되고 人間은 魂과 魄을 가지게 되며 四覽은 靈과 魂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人間이 성장하면서 四覽이 되어 갈 때 기독교를 믿든 불교를 믿는 간에 진실로 그 믿음을 하늘이 인정할 때에는 靈을 받게 되는데 이것을 기독교에서는 聖靈을 받는다고 하고 불교에서는 깨달음을 얻었다. 혹은 成佛을 했다고 합니다. 魂魄(혼백)으로 되어 있는 인간이 魂과 靈을 갖춘 靈魂으로된 사람四覽이 되기란 참으로 어려운 것입니다. 인간은 태어나면 누구나 혼백(魂魄)이 있으니 누구나 인간이지만 人間이란 뜻은 짐승(畜生)과 사람(四覽) 사이란 뜻입니다. 그런데 지구상의 60억 인간 중에 四覽은 1% 정도 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만큼 인간이 사람이 되기란 어렵습니다.
인간이 四覽이 되려면 한문 뜻대로 四覽은 네 가지를 본다는 뜻인데 첫째, 神에 대한 믿음(信)이 있어야 하고 둘째, 父母에 대한 孝가 있어야 하고 셋째, 夫婦에 대한 愛가 있어야 하고 넷째, 子息에 대한 敎가 있어야 하며 이 네 가지를 완만히 갖추어야 비로소 인간이 四覽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결혼을 하여 자식을 낳지 못한 사람이 죽으면 부모들이 묘를 써주지 않습니다. 그러나 승려나 신부, 수녀와 같이 어느 차원을 넘어서 있는 경우에는 例外로 결혼을 하지 않아서도 사람보다 한 단계 더 높은 聖者로 보아야 합니다. 부모에 의해 태어나기만 하면 누구나 人間이지만 자기 자신이 피나는 노력을 해야 四覽이 될 수 있습니다.
각하! 그러므로 놀라기를 잘하는 인간을 魂飛魄散(혼비백산)한다고 하는 것은 혼백이 날아간다는 뜻인데 靈을 갖춘 四覽은 절대 잘 놀래지도 않지만 쉽게 죽지도 않습니다. 사람이 놀랄 때 머리카락이 삐죽 선다는 것은 결국 精神의 작용이 머리카락까지 변화시킨다는 증거입니다. 머리카락은 皮膚(피부)에서 태어난 자식이며 피부의 어머니는 살이며 살의 어머니는 뼈이며 뼈의 어머니는 피이며 피의 어머니는 마음이며 마음의 어머니는 精神이며 정신의 어머니는 靈魂이며 영혼의 어머니는 빛이며 빛의 어머니는 소리이며 소리의 어머니는 神입니다. 기독교의 성서에는 태초에 먼저 神의 음성이 첫째 날에 “빛이 있어라” 명령하여 빛이 생기고 둘째 날 셋째 날에 땅과 바다가 넷째 날에 해와 달이 다섯째 날에 새들과 물고기 여섯째 날에 동물과 人間을 만들었다는데 결국 소리, 즉 神의 음성이 만물을 創造했다고 하는데 과학적으로도 일치합니다.
하나의 소리가 머리카락에까지 전달되는 것은 10단계이지만 그것은 0.1초도 걸리지 않습니다. 아들이 교통사고로 죽었다는 전화를 받은 부모는 그 순간 얼굴빛이 창백해지는데 100兆나 되는 몸의 모든 細胞(세포)의 색깔이 0.1초도 걸리지 않고 소리에 반응하며 색깔을 달리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남에게 욕을 한 사람은 먼저 自身의 귀에 의해 자신의 세포 전체 DNA까지 그 욕설이 전달되기 때문에 자신의 얼굴빛이 순간적으로 나빠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창세기 17장에서 하나님이 99세까지 자식이 없는 「아브람」에게 열국의 王이 되려면 「아브라함」으로 아내「사래」는 「사라」로 이름을 바꾸게 한 뒤 그 다음 해에 「이삭」을 낳았던 것 역시 소리의 비밀이 있습니다. 김대중 선생은 며칠 안으로 꼭 살아 돌아옵니다.''
그러자 그 닷새 후인 8월 13일 김대중 선생이 동교동 집 부근에서 밤 10시 20분 풀려나 무사히 歸家했다는 보도가 터져 나왔다. 사건 발생 2개월이 다 될 무렵인 1973년 10월 26일 김대중 선생의 기자회견 요청으로 자신의 행동이 국가에 누를 끼친데 대해 미안하게 생각한다며 자신으로 인한 韓日양국의 우호가 중단되지 않기를 바라는 解明을 함으로써 납치사건은 겉으로는 종결되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전혀 알지 못하는 납치사건에 주모자처럼 세계 言論에 오해를 받아 회복할 수 없는 도덕성의 손실을 보았고, 그로 인해 유신정부를 비방하는 국내외의 여론이 날로 악화되어 갔다.
37. 김대중 선생 납치는 각하를 제거하기 위한 신호탄
그러던 어느 날 대통령은 김대중 선생이 돌아온 후 2개월이 지난 1973년 11월 5일 월요일 나를 불렀다. 박대통령은 나의 손을 꼭 잡았다.
“자네 말이 한 치도 틀리지 않았어! 자네야말로 오늘의 우리의 위치를 정확히 診斷하고 未來를 내다보며 이 나라를 이끌 수 있는 능력이 있음을 나는 깨달았네. 그런 큰 사건에 전혀 당황하지 않았거든. 그리고 어떻게 그렇게 확신하는 선견지명을 가지고 있을 수 있는가? 어느 수사기관도 자네 말의 근처에도 가지 못했어.”
“각하! 김대중 선생 납치사건은 하나의 信號彈 같은 느낌이 듭니다. 어떤 일의 징조입니다. 담장 넘어 뿔이 보이면 소가 있는 것을 알라는 말과, 굴뚝연기가 곧게 올라가면 아침인 줄 알고 아래로 퍼지면 저녁인 줄 알라는 옛말이 있습니다. 이미 미국의 우주센터는 이런 동양의 周易을 근거로 해서 밀물과 썰물의 시간대를 陰曆으로 파악하여 굴뚝연기가 솟는 시간과 썰물시간에 우주선을 발사하여 대기권의 抵抗(저항)을 줄이고 있습니다.
즉 어떤 세력이 큰일을 벌이기 위한 名分을 만들었다고 보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각하를 제거하기 위해 일을 시작한 것 같습니다. 이것은 始作입니다. 그 계획의 일부일 것입니다. 지금은 각하를 독재를 위해 야당지도자를 납치하는 죽어 마땅한 지도자로 만들기 위한 것이며 언젠가 각하를 제거하려는 것 같습니다. 이후락 실장이 김대중 선생을 납치했다면 호텔에서 소리 없이 죽이지 일본 領海(영해)로 데리고 나와 바다 위에서 美國 헬기의 추격을 받겠습니까? 한국의 중앙정보부가 바보입니까? 또한 중앙정보부가 했다면 어떻게 6분 만에 미국의 헬기가 따라올 수 있겠습니까?
日本과 美國을 오가면서 각하를 비방하고 다니는 김대중 선생을 납치할 경우 100% 각하가 김대중 선생의 입을 다물게 하기 위해 본국으로 납치한 것으로 국민들이 誤解할 것을 역이용하여 미국이 先手를 쳐서 각하를 위기로 몰아넣은 다음 정권교체를 시도해 보려는 것 같습니다. 지금은 아무 증거가 없습니다만, 아마 韓國의 어떤 고위 공직자가 美國과 서로 양해를 한 뒤 각하와 미국 사이에 한국 사태가 위험할 때를 대비하여 망명까지 생각하여 양다리를 걸치고 있는지도 의심해 봐야겠습니다. 이후락의 행동에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래, 그래서 12월 3일부로 이후락을 정보부장에서 내보내고 신직수로 바꾸고 김종필을 다시 국무총리에 앉히고 10개 부처 長官을 경질하기로 했네. 그런 정보하나 파악 못하며 월급 받는 정보요원 모두 바꾸도록 지시했네. 日本의 호텔에 있는 김대중 선생이 없어졌다면 세상 사람이 누구를 의심하겠나? 이후락 실장과 나야.
監視하고 싶어 감시하고 연금하고 싶어 연금하는 줄 아나. 그 사람들 다칠까봐, 솔직히 내가 제일 두려워하는 게 그거야. 그래서 사람들을 철저히 지키게 했는데 美國 놈들이 그런 짓을 하는 것도 모르고 있다가 우리가 누명을 뒤집어쓰게 하다니. 그래서 모조리 바꾸어 버렸어.
김대중 선생이 납치되는 그 날도 정보부 요원들이 호텔 주변에서 김대중 선생을 監視하고 있었다는 거야. 그런데 감쪽같이 없어진 후에 수소문해서 김대중 선생을 찾느라고 호텔 측에 問議를 하고 북새통을 하다가 일본 言論에 알려지다 보니 마치 중앙정보부가 김대중 선생을 납치한 것으로 착각 보도가 최초에 나오게 되었다며 이후락은 나에게 변명을 했지만 누가 그것을 믿겠나. 모든 것이 자네 豫測(예측) 대로였어. 그러고 보니 내가 좀 성급했던 것 같기도 해.”
그러나 이 사건은 훗날 내가 예측한 대로 的中되었다. 그러니까 김대중 선생이 납치된 지 1년 7일이 되는 날인 1974년 8월 15일 문세광이 박 대통령을 향해 쏜 총에 육영수 여사가 피살됨으로써 김대중 선생 납치는 결국 박 대통령의 저격으로 이어졌다.
38. 해와 달은 나란히 있어야 밝을 明이 되지만 천부경의 一始無始一 析三極無盡本(일시무시일 석삼극무진본)과 유교의 최초의 조상을 말하는 始祖(시조)에 최초의 조상을 여자(女)의 자궁(台)이라고 하는 시(始)자를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여자를 태초의 시조로 동서양이 인정하고 있으며, 여성을 박해하는 나라는 다 가난하고, 女性을 우대하는 나라는 잘사는 이유를 알아야 합니다.
나는 걱정스런 모습으로 박 대통령의 신변의 안전을 강조했다.
“각하! 金正濂(김정렴) 비서실장의 이름자 가운데 바를 正자와 각하의 가운데 正자를 합치면 10획이 되니 生命의 계승이므로 각하께서는 김정렴 비서실장이 있는 동안은 安全하다고 볼 수 있으니 오래 데리고 있는 것이 좋습니다. 우리의 손가락이 10개인 것이 어머니의 뱃속에서 10달 동안 어머니의 피를 10말을 먹고 태어나서 10말의 젖을 먹고 10달간 어머니를 괴롭혔으므로 항상 보면서 恩惠를 잊지 말라고 하늘이 열손가락을 만들었다고 하는 것처럼 '숫자'라는 것이 별 것도 아니면서 操心(조심)해야 하는 특수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努力을 하면 運命을 어느 정도 바꿀 수 있습니다. 길거리에 걸어 다니는 사람들 중에 30% 정도는 죽었어야 할 귀신들입니다. 醫師의 도움이 없었다면 금성맹장이나 아이를 낳다가 죽을 수밖에 없는 觀相을 가진 사람들이 의사의 도움으로 장수하고 있는 것도 운명을 바꾼 것입니다. 하찮은 것으로 천시해서 보는 사람들이 있지만 周易이 없이는 우주선과 항공모함이 한 발짝을 움직일 수 없습니다. 머지않아 컴퓨터 정보시대가 오고 그 다음 생명공학과 문화산업의 시대를 지닌 다음에는 전 세계가 東洋學에 심취하여 超과학의 靈性산업의 세계가 최고 상품화되는 시대가 올 것입니다. 김정렴 실장의 거북이像도 청룡상인 각하와 잘 어울립니다.”
“자네, 왜 갑자기 김 실장 이야기를 하나. 자네가 그때 세 사람의 비서실장 후보 가운데서 김정렴 실장을 고집한 이유를 날이 갈수록 자네가 사람 보는 눈이 대단하다는 것을 깨닫고 있네. 중국의 측천무후가 일개 平民의 딸로서 50년간 권세를 잡은 女子皇帝가 되었던 것은 그 여자가 사람의 觀相을 잘 보는 것이 이유였다는 것을 본 적이 있지. 그 당시 당태종 시절 남성들이 판을 치는 유교문화권에서 女子가 황제가 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었겠나? 나폴레옹이나 징기스칸보다도 더 무서운 인물이야. 그런데 자네가 사람의 얼굴을 보는 것을 보면 세계 역사와 미래의 歷史와 사람의 마음까지 다 알고 있는 것 같애. 자네가 알다시피 요즘 내가 술 때문에 내자와 시끄러운 일이...”
“각하! 男子들이 꼭 명심해야 할 세 개의 글자가 있습니다. 술 酒라는 글자를 보면 물 水변 옆에 닭 酉자가 붙어있지 않습니까. 그것은 술을 마실 때는 닭이 물을 먹듯이 조금씩 먹어야 하며 먹는 시간은 酉時가 되는 오후 5시부터 7시 사이에 먹어야 하며 닭이 머리와 턱에는 벼슬이 있고 울 때는 高貴位(고귀위)하고 우는데 이는 높고 귀한 지위라는 뜻이니 술을 품위 있게 먹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꿈에 닭이 우는 것을 보면 벼슬을 얻는다고까지 합니다.
각하! 술은 어린아이가 마시면 독약이요. 人間이 마시면 술이요. 四覽이 마시면 보약이요. 神仙이 마시면 곡차가 되며 초저녁에 조금 먹고 일찍 들어가면 가족과 건강에 좋다는 선조들의 지혜가 담겨져 있습니다. 그리고 항상 밝은 明이라는 글자 또한 명심하셔야 합니다. 날(日)과 달(月)이 밝은 明자가 되려면 항상 같은 위치에 明이 있어야 합니다. 달이 여자라고 해서 날 日자 밑에 들어가거나 위에 가면 밝을 明자가 없어집니다. 가정에 밝음이 있으려면 항상 남자와 여자가 上下가 아니라 똑같은 평행선상에서 平等(평등)해야 집안이 밝아진다는 뜻이지요.
즉 남자가 태양이고 여자가 달이라면 낮에는 남자가 기선을 잡고 밤에는 여자가 기선을 잡아야 하는데 태양이 달을 보고 낮에 왜 안 떴느냐고 是非를 걸면 달이 대낮에 밝게 빛을 낼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달이 태양을 보고 왜 밤중에 해가 뜨지 않느냐고 시비를 걸면 태양이 달을 닮아서 밤에 뜰 수 있겠습니까? 해는 해고 달은 달입니다. 男子가 退勤(퇴근)하여 집에 들어갈 때는 하늘에 해가 이미 지고 없는 대신 달이 떠있으므로 집에 들어가서 女子 앞에서 조용히 지내는 것이 正常입니다. 그 반대로 달이 지고 없는 아침에 해가 떴을 때는 여자가 남자에게 是非(시비)를 걸면 안 되는 것입니다.
달은 낮에 없기 때문에 낮은 太陽과 男子의 시간이기 때문입니다.서로의 個性을 바꾸려고 하면 부부싸움만 날 뿐입니다. ''절대 해와 달은 서로 닮으라고 강요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어른들은 자기 婦人을 남에게 말할 때는「안해(집안에 있는 태양)」라고 달보다는 한 단계 높게 불렀는데 그것이 소리 나는 대로 하다 보니 「아내」로 바뀐 것입니다.
세 번째 날 生자를 파자해보면 인간이 태어나거나 살아간다는 것은 소(牛)가 외줄 위(一)를 걸어가는 것만큼 어렵다는 뜻이므로 어떠한 고난을 참아야 한다는 뜻으로 人生이라고 합니다. 마치 아이가 「엄마」라고 부르면 그 발음에는 머리가 좋아지게 되어 있고, 아이가 오줌을 눌 때에 「쉬」라고 발음을 하면 방광에 힘이 들어가 소변이 잘 나오게 되고, 「응가」라고 하면 직장에 힘이 들어가게 되는 인체의 건강까지 一致하는 세계에 으뜸의 지혜가 담겨져 있는 우리글인 한글도 漢文으로 보면 우주의 진리가 들어있는 宇理(우리)글이라는 뜻의 한문에서 유래되었으며 漢字 역시 陰의 글이고 陽의 글인 한글과 함께 우리 民族이 만든 글이지 중국의 글이 아니었습니다.
孔子(공자)가 결국 부인과 이혼을 하고 혼자 살았다는 것과 소크라테스가 아내 때문에 죽게 된 것은 그들이 세상의 스승이었음에도 이 밝을 明자의 이치를 알지 못함으로써 아내위에 君臨(군림)하려다가 家庭이 파탄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단군초기에 만들어진 天符經에도 一始無始一 析三極無盡本(일시무시일 석삼극무진본)이라하여 인간이 여자(女)의 자궁(台)에서 나왔다고 하며 유교에서도 최초의 조상을 이야기할 때 始祖(시조)라고 하는데 이것 역시 여자의 子宮을 시조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자를 박해하는 나라는 가난하며, 女子를 잘 대우하는 나라는 잘 사는 것입니다. 여자들이 먹지 말라는 술과 담배는 삼가야 합니다.
三綱(삼강) 중에 君爲臣綱(군위신강), 父爲子綱(부위자강), 夫爲婦綱(부위부강)의 해석을 보면 子息은 아버지를 으뜸으로 섬기고, 婦人은 남편을, 臣下는 임금을 으뜸으로 섬긴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세 가지를 섬긴다는 뜻이 오륜에서는 정반대의 뜻이 됩니다. 부위자강에는 父子有親(부자유친)인데 자식이 아버지를 으뜸으로 섬기는 방법은 서로 親(친)해야 하며, 부위부강에는 夫婦有別(부부유별)인데 부인과 남편은 친하면 안 된다는 즉, 구별(別)이 있어야 한다고 되어 있습니다.그런데 오늘날은 이 두 가지를 거꾸로 바뀌어서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父子有親에서 자식이 부모와 친한 것이란 즉, 친할 親 자를 파자를 해보면 외출한 부모님이 집에 언제 돌아오실지 걱정이 되어서 나무 위에(木) 올라가 서서(立) 언제쯤 부모님이 돌아오시나 하고 지켜보고(見) 있다는 뜻으로 외출한 자식이나 부모에 대해 서로 애틋하게 기다린다는 것을 親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효도사상을 孝親사상이라고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부부사이의 구별 別자는 査頓(사돈)관계라는 뜻입니다. 부인은 처갓집을 대표한 사돈이며 남편은 시댁을 대표한 사돈으로 서로 존대하며 禮를 갖추어 서로의 가문의 체통을 지켜 서로 존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부부가 親하게 되면 오래 가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서로 査頓을 대하듯 해야 오래 간다는 것입니다.
아내는 일곱 가지가 있습니다. 그 중에 첫 번째로 가장 좋은 아내가 어머니 같은 아내입니다. 남자가 食事 때가 다된 어중간한 시간에 山에 올라가자고 하면 어머니 같은 아내는 남자 몰래 가게에 들어가 빵과 우유를 핸드백에 넣고 올라갔다가 밥 때가 되면 남자에게 먹이는 女子입니다. 그런가하면 어떤 여자는 왜 식사 때가 되어 배가 고파 죽겠는데 산에 데리고 와서 밥을 굶기느냐며 따지는 여자도 있습니다. 이럴 때 빵과 우유를 몰래 가지고 와서 남자가 식사를 거르지 않게 해주는 여자가 어머니 같은 아내입니다. 바로 육 여사님 같은 분입니다.
두 번째는 남편 잘못을 항상 理解해 주는 누이 같은 아내, 세 번째는 남편의 뜻을 잘 따르는 여동생 같은 아내, 네 번째는 信賴할 수 있는 친구 같은 아내, 다섯 번째는 일만 잘하는 종 같은 아내가 있는데 이 다섯 가지 아내는 아내로서 만나도 되지만 여섯 째 무슨 일이든지 남편에게 是非를 걸어오는 원수 같은 아내와 남편의 財産을 노리고 남편의 생명을 해치는 도둑 같은 아내는 결코 만나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 국민은 대부분 친구지간에 의리가 있어야 한다고 하는데 義理란 임금과 신하, 지도자와 국민 사이에만 있는 君臣有義이지 친구 사이에는 朋友有信으로 벗과 벗은 믿음이 있어야 하는 것으로 일반적으로 信義가 있어야 하는 것이지요.
論語(논어)에서 가장 좋은 친구는 山같이 언제나 변함없는 善意 있는 친구요. 그 다음은 초승달 같은 친구로 날이 갈수록 보름달이 되어 가는 친구요. 가장 나쁜 친구는 꽃 같은 친구로 처음엔 좋다가 금방 시들어 버리는 信義가 없는 친구요. 그 다음은 보름달 같은 친구로 처음엔 둥글다가 점점 작아지는 신의가 떨어지는 친구라고 했습니다. 친구란 왜 親해도 안 되고 구별(別)해도 안 되고 義를 지켜도 안 되며 오직 믿음(信)만을 지켜야 하는 朋友有信을 주장하겠습니까.
남자가 女子 문제로 누명을 쓰고 사형을 받게 되었다고 가정해 본다면 부모가 찾아왔을 때 그 아들이 억울하다고 아무리 본인은 사람을 죽이지 않았다고 해봐야 부모는 젊은 여자를 호텔 방에서 아들이 죽인 것으로 단정하고 부모 앞에서 차마 사람을 죽였다는 말을 할 수 없어 거짓말한다고 생각한 나머지 오히려 죄를 實吐(실토)해야 사형을 면할 수 없어 거짓말한다고 생각한 나머지 오히려 죄를 실토해야 사형을 면할 수 있다면서 자식을 나무랄 것이며, 아내가 찾아오면 젊은 여자와 호텔에서 바람을 피우다고 죽였다면서 남편과 이혼하겠다고 할 것입니다.
경찰도, 부모도, 처도, 변호사도, 판사도, 어느 누구도 그 남자의 潔白(결백)을 믿어주지 않을 것입니다. 이런 사항을 종교에서는 言語道斷이라고 합니다. 말[言]과 경전[經]과 道가 끊어진[斷] 경지 즉, 말[言]도 안통하고 경전[經]도 안통하고 道도 통하지 않는 경지라는 뜻입니다. 이런 언어도단의 상태에 처할 때는 辨明을 하면 할수록 더 의심이 커지면서 죄는 무거워지게 되며 반드시 親舊에게 부탁해야만 살아 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친구는 누명을 썼다는 친구의 말을 믿을 것이며 그 죽은 여자의 남자관계를 몰래 조사해서 친구의 억울함을 풀어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옛날 어른들이 “부모 형제 처자식 팔아서 親舊(친구)를 산다.”는 말이 있습니다. 또한 여자는 서론을 먼저 말한 뒤 본론은 이야기하고 남자는 본론을 먼저 듣기를 원하다 보니 다툼이 생김으로 끝까지 여자의 말을 들어보는 雅量(아량)이 필요합니다.”
“자네의 明자와 酒자와 生자 강의를 진작 들을 걸 그랬어.”
39. 1970년부터 1980년 사이에 한국과 미국의 대통령이 죽게 됩니다
나는 박 대통령의 身邊(신변)의 위험을 측천무후라는 방편을 내세워 경고하고 있었다.
“즉 自然의 이치를 적용하면 사람의 마음을 보게 되고 나라의 運命도 훤히 보이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을 볼 줄 모르고 나라를 다스릴 수 없습니다. 앞으로 1980년까지 7년간 미국과 한국 대통령인 각하의 신변에 죽음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70년부터 최근까지 3년 사이에 벌써 청담스님과 가수 배호의 사망, 200여 명이 사망한 대연각화재를 시작으로 닉슨 독트린, 주한미군 철수, 3선 개헌, 유신개헌, 윤필용 사건, 김대중 납치 사건 등 불길한 徵候(징후)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앞으로 남은 1980년까지 7년간은 더 큰 일들이 일어날 것입니다. 그러니 현재 있는 김정렴 비서실장을 꼭 붙들어야 하면 박종규 경호실장과 신직수 정보부장은 이대로 지속되어야지 새로운 사람으로 교체하면 안 됩니다.”
“그럼, 차지철은 김재규 사령관과 어떤 차이가 있는가?”
“차지철 의원은 사자상입니다. 원래 누구를 막론하고 사자상은 가까이 두는 것이 아닙니다. 만약 개인의 운전기사를 사자상으로 두면 반드시 주인과 함께 교통사고로 죽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사자상은 自尊心이 강해서 다른 차가 자기 車를 추월하는 경우 중앙선을 넘어서라도 앞질러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므로 名譽(명예)를 위해선 목숨을 던져버리는 단순한 성격의 소유자들입니다.
대부분 飛行機 조종사들이 사자상입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김재규와 차지철은 당분간 한직으로 내 보내야 합니다. 그러나 차지철은 각하 곁을 떠나지 않을 겁니다. 태양주위를 지구가 시속 10만 7160km로 공전하며 시속 1609km로 자전하고 있는 대기권이탈을 위해 인공위성이 시속 4만km의 속도를 내야하지만 대기권을 벗어난 후에도 화약껍데기가 인공위성에 붙어 다니면서 인공위성의 진로를 방해해서 되겠습니까?”
“자네는 미국의 닉슨과 내가 1980년 사이에 신변에 큰 이상이 있다는 것은 무슨 말인가?”
“각하! 미국과 한국의 國運은 1970년부터 1980년까지 비슷하게 됩니다. 이 기간 동안 미국과 한국에서 동시에 큰 별들이 떨어집니다. 닉슨 대통령의 얼굴로 보아 죽지는 않겠지만 대통령직에서 사퇴할 수밖에 없는 코너에 몰릴 것이며 각하께서도 着陸(착륙)준비를 서두르지 않으시면 위험한 運勢입니다. 각하의 착륙지점은 1978년 이전입니다. 2세들을 생각하셔서 착륙하셔야 됩니다. 우선 1980년부터는 變化의 시대가 오게 되어 있습니다.
각하의 청룡상은 어둡고 암울한 시대라는 가난의 구름이 자욱할 때 나타나 세상 사람들을 구한 뒤 사람들의 형편이 나아져 구름이 걷힐 만하면 급히 떠나야 하는 것이 청룡상의 소명입니다. 보릿고개를 넘긴 대한민국은 이제 각하를 필요로 하지 않는 것입니다. 각하가 보기에는 背恩忘德이라고 하시겠지만 하늘의 뜻입니다.
후세사람들이 각하를 經濟를 살린 보릿고개를 없앤 대통령이라고 하겠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각하는 독재자이면서도 이 나라의 민주주의의 礎石을 만든 인물이었다는 것도 알게 될 것이며 미국도 각하의 유신체제처럼 선거인단을 뽑아 그들이 대통령을 뽑는 간접민주주의요 간접 선거하는 독재국가라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각하의 억압적인 통치인 한국식민주주의가 在野운동을 활발하게 만드는 촉매제가 되고 서양의 민주제도를 이론적으로만 배우는 것이 아니라 독재와 鬪爭(투쟁)하는 체험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민주주의를 배우고 발전시키는 원인을 제공하신 것입니다.
각하의 얼굴에는 인간의 여덟 가지 福중에서 수명복(壽)이 짧습니다. 여덟 가지 복이란 天貴, 天權, 天財, 天官, 天文, 天德, 天福, 天壽가 있는데 그 중에서 財閥(天財)은 절대 天權인 대통령이 될 수 없는 특징이 있는 것처럼 각하는 일곱 가지를 다 가지셨는데 단 한 가지 天壽(하늘로부터 받은 壽命)가 짧은 것은 하늘은 이 땅에 보릿고개를 없애는 즉시 돌아가셔야 하는 召命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각하! 1974년도인 내년이 되면 미국과 한국에서 동시에 큰 별이 떨어질 가능성이 보입니다. 각종 行事에 참석하시는 것을 삼가야 하겠으며 방탕조끼를 입고 다니셔야 합니다. 김대중 납치사건은 제1막입니다. 제2막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사퇴를 서둘러야 합니다.”
40. 육 여사 저격의 진범은 따로 있습니다
1974년 8월 10일 저녁 나는 박 대통령에게 육 여사의 광복절 행사 참석을 하지 못하게 건의했다. 그 이유로는 내가 10일 새벽 4시 경 눈을 뜬 상태에서 면벽(벽을 바라보며 기도(참선)자세로 앉는 것)을 한 채로 冥想을 하고 있는데 어떤 행사장에서 어떤 사람이 권총을 들고 나타나 마구 총을 쏘는데 육영수 여사와 박 대통령이 황급히 뛰어나오며 나에게 안기는데 박 대통령이 먼저 안기고 그 다음으로 육영수 여사가 뛰어왔는데 그 사람의 총에 등어리를 맞고 숨지는 장면이 나타난 것이다.
그날 저녁 박 대통령에게 이야기했더니 박 대통령은 “내가 자네한테 안기었다면 내가 위험한 게 아니겠나. 내가 목적이니 집사람을 왜 쏘겠나? 그리고 누가 왜 나를 그토록 죽이려고 하는가? 아마 그 명상은 헛것을 본 거 같애. 우리를 너무 걱정하다보니 그럴 수도 있겠지”라고 말하며 그냥 묻어두자고 했다.
그 닷새 뒤인 1974년 8월 15일 장충동 국립극장의 8.15 기념식장에서 육 여사는 문세광의 총탄에 의해 떠나고 말았다. 8월 19일 국장으로 장례를 치른 뒤인 8월 30일 저녁 박 대통령은 이성을 잃다 시피한 채 나의 또 다른 당부도 차례도 듣지 않았다. 행사장에서 처음 문세광이가 박대통령을 향해 총을 쐈을때 박종규 실장이 곧바로 육 여사를 땅에 엎드리게 하든지 육 여사님의 몸을 막고 총격전을 하든지 해야 하는데 그것을 소홀히 한 박종규 경호실장의 책임문제를 놓고 나와 한동안 의논을 했으나 결국 김정렴 비서실장과 김재규 그리고 한병기 대사와 육인수 씨로부터 차지철 의원을 추천받자 감정이 격앙되어 있던 박 대통령은 나의 當付(당부)를 무시한 채 경호 실장을 바꾸고 말았다.
문세광은 모처에서 조사를 받으면서도 무엇인가 橫說竪說(횡설수설)하며 몇 번씩 자백을 번복했다. 횡설수설하다가는 결국은 美國을 들먹이며 살인을 지시한 조직을 암시적으로 밝혔다. 그러나 문세광은 육 여사를 살해한 지 9일째가 되는 8월 24일 정식으로 구속 송치되었다. 그리고 10월 7일 문세광의 첫 사실심리에 이어 10월 14일 신속히 사형이 구형되었다. 그리고 사흘 뒤 뉴 남산 호텔에서 화재가 나고 11월 3일에는 대왕코너의 화재가 나서 88명이 사망했다. 육 여사가 떠나자 온갖 사고가 그 뒤를 이었다. 그 뒤 11월 17일 서울고등법원은 문세광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그리고 11월 19일 문세광의 사형 확정 판결이 났으며 삼일 뒤인 11월 20일 문세광의 사형이 집행되었다. 이런 신속한 재판은 박 대통령의 분노가 극에 달했음을 잘 보여주는 일이다.
1972년 이후락을 北韓에 보낸 뒤 7.4 공동성명에 이어 남북조절위원회 회담이 21차 회담을 며칠 앞둔 상태에서 남북영수회담을 논의 하는 등 남북화해 무드가 무르익어갈 무렵에 박 대통령을 암살하려 했다는 것은 누가 보아도 제3국이었다. 그때부터 박 대통령은 美國에 대해 많은 불만을 토로하기 시작했다.
“요즘 장관들이 나보다는 미국 大使를 한국의 대통령으로 착각하고 있는 것 같애.”
“각하! 미국은 우리의 급격한 남북대화와 統一을 원치 않습니다. 한 달 뒤인 9월 21일 경에 각하와 김일성의 회담일이 잡혀있다는 것을 미국이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문세광이의 배후가 과연 누구이겠습니까? 72년 이후락 실장을 북에 보낸 이후 南北 고위급 왕래회담이 7차례나 있지 않았습니까? 더구나 무엇보다도 한국이 야당과 학생들에게 유신 대통령으로 엄청난 반대에 시달리고 있는 각하를 북한이 제거하게 되면 야당의 후보가 대통령이 되어 정국이 안정된다면 북한의 적화야욕의 기회가 적어진다는 것을 잘 아는 북한이 각하를 제거하려 하겠습니까?”
“그래, 문세광이의 말대로라면 美國이 확실해. 그런데 문세광이의 진술대로 언론에 보도된다면 反美감정이 확산될 것이고 그나마 남아 있는 주한미군 모두 철수해 버릴 게 아닌가? 그 다음은 전쟁이야.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조총련이 연루된 것으로 조작할 수밖에…”
41. 예수님은 머리 둘 곳이 없다고 했는데 나는 청구동 집 한 칸이 있으니
박대통령은 평소보다 많은 양주를 마신 탓인지 나에게 처음으로 기독교 이야기를 꺼냈다.
“이봐! 허 군! 난 그동안 豫首님을 예사로 봤는데 요즘 집사람을 잃고 나니까 갑자기 예수님이 생각나. 자기들을 구하러 온 사람을 원수라고 내쫓기고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지. 나는 요즘 그 心情을 알 것 같아. 다 낡은 런닝 입고, 양말 꿰매신고 다 갈라진 몇 십 년 된 혁띠 허리에 매고 배고픈 國民을 살려보겠다고 언제 추락할지 모르는 고물 헬리콥터를 타고 악천후에도 全國을 누비며 경제개발에 모든 것을 바쳤어. 죄가 있다면 革命을 하고 보니 나라가 가진 것이라고는 사람밖에 없다보니 젊은 청년들이 달러를 벌어 經濟를 일으키기 위해 독일에 광부로, 월남의 전쟁터로 사막의 노동자로 시체 처리하는 간호원으로 해외에 팔아서 수천 명이 죽고 불구자가 되었으니 그 父母들에게 큰 죄를 지었어.
그리고 그 돈으로 가난한 이 땅에 100여개의 貯水池(저수지)와 20여 개의 댐을 만들어 침수방지와 천수답을 없애고 工場 만들어 준 죄밖에 없어. 짧은 韓服을 그대로 입기 위해 일부러 다리를 굽히며 내 옆을 따라다니던 안사람이 나와 함께 지방시찰을 다녀온 뒤 무릎관절이 쑤시고 퉁퉁 붓는다는 말을 듣고 ”치마 한 벌 새로 해 입지.” 했더니, “어차피 당신이 키가 작으니 내가 다리를 굽히고 걸어도 한복이라 보이지도 않고 좋은데 왜 새 옷을 삽니까.”라고 한 말을 지금 생각해 보니 눈물이 나와 밤잠을 못자겠어.
그 사람 총 맞아 떠나던 그 날도 무릎이 아프다며 아침에 무릎 양쪽에 파스 열 장을 붙이고 다니며 언제나 나보다 키가 작게 보이려고 무릎을 몰래 굽히고 다니며 나를 위해 그 애쓰는 모습이 너무나 고마웠지. 대한민국의 言論이 아직도 그것을 모르고 있어. 집사람과 나와 자네밖에 모르는 일이야. TV에 나란히 나올 때 나보다 키가 크면 안 된데 글쎄. 낸들 청구동 사택을 멋들어지게 수리해서 老後를 보내고 싶지 않겠나?
그 사람 생전에 그런 말 한 마디 없던 여자야. 청와대에서 에어컨 못 켜게 하고 선풍기도 못 켜게 해도 부채로 여름을 보내면서도 판자촌과 비닐하우스에서 사는 국민들 걱정하며 나환자의 손을 일일이 두 손으로 어루만지고 握手(악수)하면서 한 마디 불평이 없던 사람이었어.
예수가 예루살렘 성을 내려 보며 "人子는 머리 둘 곳이 없구나" 하셨다는데 나는 그래도 돌아갈 청구동 집이라도 한 칸 있지 않은가? 하지만 자네는 나보고 그것마저도 버리고 대통령을 그만두면 三男妹 데리고 시골에 가서 農事지으라고 하니 그 집도 필요 없게 되었군. 그래야 죽을 고비를 벗어날 수 있다고 했지. 나는 국민이 낸 稅金을 내 목숨보다 아껴서 사용했어. 나는 은행지점장처럼 살아왔어. 세금은 곧 국민이 맡겨놓은 예금통장이지. 어떻게 정치인들이 고객의 통장을 훔칠 수 있겠는가? 나는 그렇게 살았어. 그런 나를 우리 國民과 美國은 죽이려고만 하니...”
총탄을 맞고 병원으로 실려 가는 육 여사를 보면서도 8.15 光復節 행사연설을 계속한 뒤 연설이 끝나자 그때서야 육 여사의 고무신과 핸드백을 단상에서 찾아서 눈물을 흘리며 들고 나가던 박 대통령의 모습은 참으로 平素에 얼마나 육 여사님을 사랑했는가를 보여주는 證票(증표)였으며 또한 연설을 중단하지 않은 것은 아내와 자신의 목숨을 헌신짝같이 바쳐서라도 우리 國民을 얼마나 사랑하는가를 보여주는 거룩한 지도자의 모습이었다.
鐘(종)소리가 멀리 울리는 것은 그 속이 비었기 때문이며
거울이 세상모습을 담는 것은 거 겉이 맑기 때문이며
강물이 넓은 바다로 흐르는 것은 그 밑이 깊기 때문이며
바람이 거물에 걸리지 않는 것은 그 몸이 없기 때문이라는 말이 있듯이 박 대통령은 참으로 종과 거울과 바다와 바람처럼 淸廉(청렴)하고 투명하고 깊고 사심이 없는 將軍이면서 정치인이요, 철학자요, 사상가요, 교육자요, 충실한 머슴이면서도 자비로운 主人 같은 우리 국민에게는 과분한 지도자였으며 그러한 지도자의 눈에서 눈물을 흘리고 통곡하게 하는 육 여사님이야말로 또한 얼마나 깨끗하고 正直(정직)하고 헌신적인 분이었겠는가. 박 대통령을 반대하고 미워하는 국민이 있었지만 육 여사님에게는 政敵도 미워하는 국민도 없다보니 갑작스런 서거는 국민들에게도 큰 충격이었는데 박 대통령은 어떠했겠는가.
42. 요즘 내 꿈에 집사람이 나타나
나는 취기가 오른 박 대통령의 모습을 보면서 가슴이 아팠다.
“나를 독재자라고 하는 국민들 앞에 내 子息들이 어떤 수모를 받게 될지 요즈음 그런 생각이 자꾸 들어. 안사람이 꿈에 하얀 한복을 입고 나를 부르는 모습이 자꾸 나타나. 하얀 한복을 입고 안개가 자욱한 바닷가의 하얀 城에서 계단을 내려오면서 나를 오라고 손짓하는 안사람이 요즘 매일같이 나타나는 거야. 자네 꿈 해몽도 막힘이 없겠지. 이 꿈은 어떤 꿈인가? 왜 하루도 거르지 않는 건가?”
“육 여사님은 좋은 곳에 가 계십니다. 그 손짓하시며 오라고 하시는 것은 그 분이 계속 각하를 염려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꼭 그쪽으로 오라는 손짓이 아니라 잘 있다는 표시입니다.”
나는 흔들리는 박 대통령을 안심시키려 애썼다.
“언젠가 각하께서도 돌아가시면 아마 그곳으로 가실 겁니다. 결국 그곳은 육도가 아닌 부처계(佛界)인 하나님이 계신 곳일 겁니다. 하얀 옷을 입었다는 것은 좋은 곳에 계시다는 뜻이며 손짓은 마음의 표시입니다. 마치 어린아이가 예쁘면 손으로 그 머리를 만져주고 싶은 것과 같이 손은 마음의 움직임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또한 석가는 사람의 손가락이 열 개가 있는 것은 어머니의 뱃속에서 열 달 동안 열 말의 피를 먹고 태어나서 열 말의 젖을 먹은 것을 잊지 말고 孝道하라고 열 손가락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손짓은 좋은 꿈입니다.”
“전국의 寺刹들이 자발적으로 아내의 영정을 모셨다는데 왜 꿈에 나타나는가 하고 걱정하던 참이었어. 자네 말을 들으니 구천에서 방황하는 것은 아니구먼.”
“사람의 魂인 삼혼(심혼·영혼·정혼)과 7백(두개의 눈·두개의 귀·두개의 코·한 개의 입의 신경)은 부모님의 혼백을 모신다는 말을 많이 사용하듯 돌아가신 분은 6도윤회의 업에 따라 각자의 방향으로 돌아가 49일이 되면 生命으로 거듭난다고 합니다. 그러나 육 여사님과 각하 같은 분은 하늘에서 특별히 召命을 받고 왔으므로 소임을 다하면 神을 거치지 않고 하늘에서 데려가는 것이니 너무 상심할 일이 아닙니다. 기독교에서 성령을 받았거나 불교에서 성불을 이룬 사람은 혼백이 아닌 영혼으로 바뀌므로 6도 輪廻(윤회)를 거치지 않고 하늘이나 성문, 연각, 보살, 부처계로 가게 됩니다.
나폴레옹의 병사가 러시아 침공 시 웅크리고 앉아 있는 한 여성에게 총을 대며 일어나 손들어 위협하였더니 女人의 가슴에서 갓난아이가 온몸에 피투성이가 된 채 있었습니다. 알고 보니 전쟁 중에 먹을 걸 먹지 못해 젖이 나오지 않아 아이가 굶어죽게 되자 아이를 살리기 위해 젖꼭지를 잘라서 피를 아이에게 먹이고 있었습니다. 병사가 感動을 하여 위생병을 불러서 여인과 아이를 살렸다는 실화가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어머니의 母性愛입니다. 아무리 하나님의 품이나 부처 계에 가 계신 육 여사님이라도 어찌 인간세계에 남겨놓은 남편과 어린 자식들이 걱정되고 보고 싶지 않겠습니까? 그러니 그 아이들을 잘 보살펴 달라는 육 여사님의 간절한 모습이 꿈에 나타나시는 것입니다.
요즘 각하의 心情을 저는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남자란 어머니에 의해 길들여지고 아내에 의해 인간으로서 成熟(성숙)되어 가는 법입니다. 남자에게는 어머니와 아내와 며느리라는 세 사람의 여인이 갖추어져 있을 때 男子라고 했는데 이 어머니와 아내의 사별로 中心을 잃고 인생을 망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더구나 각하와 육 여사님은 서로가 서로를 받쳐주는 그림과도 같았습니다. 그랬으니 각하의 요즘 심정이 몸을 아껴 살고 싶은 심정이 아니겠지요. 그러나 저 불쌍한 국민들을 끝까지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원망해서도 안 됩니다.
이제 勇氣를 내어서 마무리를 해 나가야 합니다. 우리 국민들은 육 여사님의 서거를 보고 수많은 눈물을 흘렸습니다. 육 여사님이 치마를 즐겨 입는 이유가 각하보다 키를 작게 보이기 위해 무릎에 파스를 붙이시고 치마 속에 다리를 구부린 채 다니시거나 서 계셨다는 것은 아무도 모릅니다. 만약 우리 국민이 이 사실을 알게 된다면 얼마나 가슴이 아프겠습니까? 앞으로 우리나라가 존재하는 한 육 여사님과 같이 존경받는 國母는 나오지 않을 것입니다.
나병환자의 손을 두 손으로 움켜잡는 분이었습니다.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시기는 유년기요. 가장 중요한 장소는 家庭이며, 가장 훌륭한 교과서는 어머니며, 가장 가까운 친구는 아내라는 옛말이 있습니다. 친구를 잃은 각하의 가슴이 얼마나 허전하시겠습니까? 육 여사님은 신사임당을 능가하는 나라의 어머니였습니다. 육 여사님의 눈동자에는 신사임당의 고귀한 인격과 퀴리부인의 純粹(순수)하고 아름답고, 맑은 영혼의 빛나는 눈을 가졌으며 바보 온달을 사랑해 준 평강공주와 같은 바다와 같은 눈으로서 각하와 우리 국민의 아픈 마음을 그동안 감싸주었습니다.
옛날에 한 젊은이가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스승은 저고리를 뒤집어 입고 신발을 거꾸로 신은 사람이라는 말을 듣고 몇 년간 全國을 돌아다니고 헤매었답니다. 그러나 결국 그런 사람은 찾지 못하고 몇 년 만에 홀어머니가 계신 집으로 돌아 왔답니다. 그런데 싸리문을 여는 순간 子息을 애타게 기다리던 어머니가 너무나 반가워 갑자기 저고리를 뒤집어 입고 신발을 거꾸로 신은 채 어머니가 황급히 뛰어 나오더랍니다. 그것을 보고 아들은 어머니가 가장 훌륭한 스승이라는 것을 깨달았다는 말이 있습니다. 각하는 아내를 잃었지만 우리국민은 어머니를 잃었습니다.
그런 나라의 어머니가 가셨으니 우리 국민의 마음은 어떻겠습니까? 옛 성현들은 女子를 바다에 비유하고 男子를 소금에 비유했습니다. 남자가 여자에게서 태어나듯 소금은 바다에서 태어납니다. 바다물이 소금을 감싸고 녹이듯 육 여사님은 각하와 우리 국민의 아픈 마음을 녹여주고 따뜻하게 포용해 주신 분입니다. 그런데 육 여사님은 결코 죽지 않고 돌아갔을 뿐입니다. 그 곳에서 각하를 기다리고 있을 뿐 절대 죽어 없어진 것이 아닙니다. 또한 우리 국민들 가슴속에 영원히 살아있을 것입니다.”
43. 미국의 최종 목표는 각하를 제거하는 것입니다
나의 간곡한 말에도 양주 몇 잔의 醉氣(취기)가 오른 박 대통령은 침통한 모습으로 새로운 결심을 보이지 못한 채 어두운 앞날에 모든 것을 맡기듯 점점 그 분의 눈동자에서는 그 빛나는 정의와 청렴과 불굴과 박애의 精氣가 서산의 해처럼 사라져 가기 시작했다. 그 뒤를 따라 그 精氣를 보좌하고 있던 얼굴의 和氣와 가정의 潤氣와 마음의 溫氣와 건강의 活氣가 저 멀리 뒤따라 떠나고 있었다. 한참 이야기를 하고 있던 나는 혼잣말로 물끄러미 박대통령의 표정을 살피며 중얼거렸다.
“아! 박 대통령은 이미 하늘에서 짐을 챙기게 하시는구나. 떠날 준비를 하고 있구나. 저 행동은 사람의 행동이 아니라 이미 하늘에서 떠날 준비를 指示(지시)하고 있는 것이야. 이미 육 여사를 향해 따라갈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구먼. 아! 하늘의 뜻은 참으로 높고 가이없는데 어리석은 인간의 욕심, 망상은 오지 않는 봄을 기다리는 떨어진 낙엽의 어리석은 꿈인 것을 왜 모르는가?
오지 않는 님을 기다리며, 지나가버린 것을 슬퍼하지만 함께 있을 때가 얼마나 소중한 時間이었다는 것을 우리에게 알려주기 위해 하늘은 그토록 눈부신 女人의 바다 같은 사랑을 맛보게 한 뒤 情들자 이토록 이별의 말 한마디 하지 못하게 가슴 아픈 이별을 남기는가? 아, 참으로 다시 볼 수 없는 天使 같은 여인이여, 육영수 여사님!”
나는 혼자말로 중얼거리며 고개 숙인 박 대통령을 바라보고 있는 나의 腦裏(뇌리)에 번개처럼 천공이 열리며 케네디가 떠올랐다. 미국이 다음으로 또 누군가를 시켜 박 대통령을 죽이러 올 것이 아닌가? 소련의 후르시초프 서기장이 핵미사일을 함대에 싣고 미국의 코앞인 쿠바로 이동시킬 때 대통령 케네디는 CIA의 간곡한 부탁에도 그 미사일 공격을 하지 못하게 했다. 그리고 월맹포격을 아무리 건의해도 케네디는 세계 어떤 나라의 主權을 침해할 수 없다는 평화주의를 고수하며 CIA의 말을 거절했다.
결국 CIA 책임자는 케네디에 의해 해임되었고 그는 강제퇴임을 당한 즉시 두고 보자는 말을 남겼다. 巨大한 CIA를 움직이는 미국의 방위산업체의 리더였던 CIA 책임자의 동생이 사장으로 있는 달라스를 방문한 것부터가 CIA의 계획이었다. 그 곳에서 케네디는 쫓겨난 CIA의 동생이 시장으로 있는 곳에서 사살되고 말았다. 자기 나라의 대통령도 世界 平和를 주장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무기를 팔아먹지 못한다는 방위산업체들의 검은 資金(자금)에 의해 그 대통령을 죽이는 나라가 바로 미국이 아닌가?
東西화해정책을 폄으로서 武器를 팔 곳이 없어진 미국의 방위산업체들은 결국 케네디를 암살시키게 되었으며 核개발로 자주국방정책을 펴면서 핵무기만 있으면 미국 무기를 사지 않음으로써 5년 이내에 일본 경제를 따라잡고 150년 걸린 독일 라인 江의 기적을 15년이면 漢江의 기적으로 따라잡을 수 있다고 호언장담하며 先進國 진입이 가능하다고 주장하는 박 대통령까지 암살하기 위한 계획이 착착 진행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 CIA가 월남철군을 결정하고 아시아인의 安保(안보)는 아시아인의 손으로라는 닉슨독트린을 주장하고 착착 실행해 나가자 닉슨을 제2의 케네디로 보고 닉슨에게 도청을 해야 할 일이 있다고 하여 어쩔 수 없이 허락을 했는데 그 증거를 CIA가 야당과 新聞社에 역제공하여 결국 닉슨의 정치생명줄을 끊어버리지 않았던가? 미국은 박대통령을 독재자라고 했지만 그들은 아직도 간접민주주의 유신체제와 똑같이 선거인단에 의해 대통령을 뽑는 반쪽짜리 민주주의를 하면서도 다른 나라 내정간섭에 그토록 매달리는가?
나는 이미 박대통령에 대한 죽음의 그림자를 느끼기 시작하며, 닥쳐올 엄청난 역사의 소용돌이를 예측하고 분노하며 두보의 春望(춘망)이라는 시가 떠올랐다.「나라는 폐허가 되어도 산하는 여전하고 장안성 봄은 草木이 깊었구나, 시국이 서러워 꽃을 봐도 눈물이 나고, 이별이 한이 맺혀 새 소리에 놀라는구나…….」“모두에게 奉仕(봉사)하는 자는 아무에게도 보수를 받지 못한다”는 英國의 속담처럼 청빈한 지도자로, 아내마저 바치고 오직 우리국민이 잘 살수만 있다면 어떤 희생과 욕이라도 먹겠다는 박 대통령의 헌신적 삶도 이제 그 召命이 끝나가고 있었다.
44. 남침 땅굴 발견에 이어 캄보디아, 월남 공산화와 남침 일보직전
1974년 8월 15일 육 여사가 돌아가신 지 두 달쯤 뒤인 11월 15일 제1땅굴이 發見되어 국민들을 놀라게 한데 이어 바로 며칠 뒤인 22일 미국의 포드 대통령이 訪韓하여 계속된 미군철수를 재확인 함으로써 한반도에 戰雲이 증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1975년 3월 20일 제2땅굴이 또 발견되어 또 다시 온 나라가 전쟁의 공포에 휩싸이게 되었으며 4월 17일 캄보디아가 공산화된 데 이어 4월 30일 월남이 공산화되고 말았다. 인도차이나가 차례대로 공산화가 되어가자 김일성은 아시아 政勢가 북한에 유리하게 전개되어간다고 판단한 뒤 남침협조를 얻기 위해 중국과 동구 同盟國(동맹국)을 방문하기 위해 4월 18일 평양을 떠났다.
그때 김일성은 중국 측이 베푼 晩餐(만찬)에서 「이미 인도차이나에서 공산당이 승리했으며 미국이 韓半島에서 완전히 철수를 선언한 이후 2만 명의 미군의 철수가 완료된 이때에 우리가 이제 戰爭을 하게 된다면 전쟁에서 잃을 것은 박정희 정권과 군사경계선이며 얻을 것은 조국통일 밖에 없다」는 발언을 함으로써 육 여사의 사망과 제1, 2땅굴발견, 미군 완전철수 선언, 美7사단 2만 명 철수완료, 캄보디아 패망과 공산화, 월남 패망과 공산화, 김일성 남침선언으로 이어진 긴박한 남북전쟁 여건이 확실해져 가고 있었다. 1975년 5월 10일 캄보디아가 공산화되고 월남이 공산화된 지 며칠 되지 않아서인지 밤잠을 자지 못한 초췌한 모습의 박 대통령은 그래도 그 음성만은 반갑게 나를 맞이했다.
“71년 말부터 시작한 유도탄 개발은 이제 한참 진행 중이네!
평양까지 갈 수 있는 유도탄은 아직 멀었어. 그러나 전쟁은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으니 막는 對策을 세워야 하지 않겠나. 김일성은 요즘 이때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주변지원국을 돌며 전쟁준비를 하고 있어. 프랑스로부터 核 재처리시설을 도입하려 해도 방해가 만만치 않어.
그래서 자네가 지난번 말한 것이 자꾸만 생각이 떠올라. 지금 우리가 언제 장거리미사일과 핵을 개발해서 이 좁은 國土에서 어디서 지하 핵실험을 하며 언제 전쟁을 막아내겠나. 자네 말이 옳아! 장거리 유도탄 하나 개발하기 위해 이천여 명의 인원으로 10년이 걸리는데, 핵을 개발하는 것은 얼마나 어렵겠나. 자네가 핵무기를 만들지 못하게 하는 이유를 알겠어.”
“각하, 북한이 소련과 군사동맹을 철회하고 중국과 동맹계약을 한 이때에 소련의 극동에 있는 核미사일기지 한 개 구입을 제안해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소련은 곧 붕괴되고 市場경제체제가 들어설 것입니다.”
45. 핵무기 노적봉전법을 서둘러야 합니다
나의 소련 붕괴설에 대해 박 대통령은 놀라운 표정을 지으며 意味深長한 모습으로 듣고 있었다.
“그런데 선진국수준에 도달한 소련이 후진국인 대한민국보다도 더 폐쇄적인 정부주도의 계획경제와 극단적인 계급주의를 사수하고 있으니 자연적 市場經濟 욕구에 의해 무너지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아마 앞으로 10년만 지나면 소련은 붕괴되고 말 것이며 전 세계의 90여 개의 공산주의 국가는 시장경제 체계에 의해 붕괴되어 새로운 新자본주의를 받아들이게 될 것입니다. 다만 농경국이던 제정 러시아 시대에나 통하던 공산주의의 계획경제가 이제 나이를 먹어 다 늙었으니 이 지구상에서 레닌의 銅像은 10년을 前後하여 모두 없어질 것입니다. 그때 북한은 자동적으로 전 세계에서 이념적 고아가 될 것입니다. 그 이념적 고아가 될 북한을 우리가 경제적으로 지원하여 南北 연방통일로 껴안아야 할 준비를 해야 합니다.
앞으로 35년 후인 2010년까지는 전면 전쟁은 없습니다. 캄보디아와 월남의 공산화는 이제 공산주의 승리가 아니라 마지막 發惡(발악)이라고 봐야 합니다. 그러니 전쟁방어 목적으로 핵무기를 만들려는 흉내만 내면 됩니다. 즉 핵무기를 만든다는 소문만 주변국가에 흘려도 북한과 일본과 미국이 흔들릴 것이며 평화적인 원자력 발전소를 얻을 수도 있습니다. 엄청난 비용을 들여가며 핵무기를 개발해서는 안 됩니다.”
“자네는 왜 공산주의가 모두 단계적으로 해체된다는 결론을 내리는가? 그 근본 이유가 뭔지 말 좀 해봐.”
“각하, 한 사람의 아버지가 재산을 10억을 가지고 열 명의 자식에게 1억씩 나누어주면 그것은 공산주의입니다. 그런데 그 자식들이 1억씩 나누어 가지면 얼마가지 않아 그 돈들이 없어질 가능성이 많습니다. 그러나 아버지가 10억으로 큰 企業(기업)을 만들어 그 열 명의 아들에게 맏형은 사장 둘째는 전무 등 골고루 직책과 주식을 나누어 주면 그 기업도 커지고 자본도 없어지지 않을 확률이 높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공산주의는 언젠가 자본주의 앞에 도태될 것이며 자본주의는 21세기에 가서는 부익부 빈익빈의 극단적 자본주의의 문제점에 의해 또다시 도태될 것이며 21세기 이후에는 제가 주장하는 대부분의 국민이 中産層이 되는 중산주의가 드디어 완벽한 사회 정치제도로 전 세계에 자리 잡게 될 것입니다.”
46. 일주일에 한 번 정도씩 나를 없애려는 쿠데타 정보가 들어와
1975년 5월 10일 우연하게도 총력안보를 위한 서울시민대회가 열리는 그날부터 박 대통령과 나는 본격적으로 소련연방 러시아 共和國 내의 연해주 지역의 소련의 핵미사일 基地(기지)를 인수할 수 있는지에 대해 엄밀히 검토하기 시작했다. 국방과학연구소 관계자들과 유도탄 개발을 하고 있는 오원철 수석 그리고 김정렴 비서실장, 정보부장, 군 수뇌들 등에게도 일체의 러시아 核에 대한 것은 비밀에 부쳤으며, 박 대통령이 극비리 챙기는 자료들에 대해서는 모두 유도탄 개발을 위한 것으로 핑계를 댐으로서 어느 누구도 눈치 채지 못하게 했다.
박 대통령과 나는 소련 내의 러시아 공화국에 정통한 믿을 수 있는 사람을 극비리에 찾아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소련과 러시아지리에 군사전략과 국방지식과 국제 법에 풍부한 경험을 가진 자를 어느 누구도 모르게 찾아내는 것이 우선 과제였다. 어느 누가 미국 CIA와 연결되어 있는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軍이나 정부기관을 함부로 이용할 수도 자문을 구할 수도 없었다.
더구나 國産 유도탄 개발을 눈치 챈 미국이 핵개발 의혹을 가지고 CIA요원을 요소요소에 극비리 배치한 채 온통 청와대 주변을 盜聽(도청)하고 있었으므로 더욱 조심스러웠다. 더구나 세계 곳곳에 나가 있는 유능한 미사일 전공 석학들을 은밀히 故國으로 부르는 것을 미국은 눈치 채고 있었다. 시시각각 북쪽의 탱크소리가 南進해 오는 듯한 긴박감에 박 대통령은 밤만 되면 잠을 설칠 정도로 安保 노이로제에 시달려 가기 시작했다.
그것은 일반 국민이 생각하는 것보다 천 배나 더 심한 것이었다. 그것은 마치 유명한 癌 전문의사가 암으로 죽게 되고 낙엽처럼 가버린 사랑을 부른 가수 차중락이 낙엽 따라 떠나고 배호가 자기 노래가사의 暗示(암시)에 걸려 마지막 잎새가 되어 떠나는 것처럼 캄보디아와 월남의 공산화와 주한미군 철수에 이어 육영수 여사를 통한에 잃은 박 대통령은 밤낮 북한의 남침만 걱정하다보니 戰爭 노이로제가 병적으로 나타나가 시작한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외적으로는 北韓 침공과 내적으로는 美軍철수에 불만을 품은 일부 장성들이 미국과의 관계를 유신독재로 악화시키는 박 대통령을 제거하기 위한 국내 쿠데타 정보가 一週日에 한 건 정도로 청와대로 들어옴으로 해서 박 대통령은 북한과 미국 CIA와 국내의 군부 쿠데타와 야당으로부터 언제 제거될지 모르는 四面楚歌와 風前燈火의 운명 앞에 서 있었던 것이다. 그러던 중 1975년 7월 1일 박 대통령은 박 대통령과 먼 인척관계에 있는 在美 무기사업가 박명국(가명)을 은밀히 불러 비밀연회장에서 나와 함께 세 사람이 동석하게 되었다. 박명국은 박 대통령과 나에게 소련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해주었다.
“저는 소련과 地下水 개발 그리고 러시아의 추크초카 자치구와 코략 자치구·연해주 일대의 農業 분야에 많은 투자를 추진하고 있는 중입니다. 특히 대통령께서 核 기지를 인수하려고 하는 극동의 핵기지는 연해주 남쪽 가무버 부근의 포셋트 港口(항구) 일대에 많이 있습니다. 그곳은 海邊이 북한의 해금강만큼 아름다운 곳입니다. 또한 그곳은 북한의 나진선봉과 가장 가까우며 수많은 核시설이 있습니다. 그곳은 앞으로 자유경제지대와 국제농업개방지대로 외국에 개방하게 될 것이므로 往來(왕래)는 자유로울 수 있지만 워낙 북한 사람들의 출입이 많은 곳이라 북한과의 보안이 문제될 수도 있는 곳입니다.
그러나 대통령께서 하시는 일이라면 저의 事業보다는 우선적으로 당연히 제가 나서서 돕겠습니다. 개인적으로 브레즈네프와도 많은 뒷거래를 했으므로 잘 알고 있습니다. 구체적인 지시만 해주십시오. 그동안 미국에서 武器 중개상을 하면서 대외 무기상들을 많이 알고 있는데 러시아와 유럽 쪽에 특별한 친분이 있는 지도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름 있는 무기 거래상들은 소련과 러시아의 최고위층과도 비밀거래를 공공연히 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들 중에도 믿을 수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지금 소련은 9,800여기의 각종 미사일과 그 발사대, 그리고 2,350대의 각종 요격기와 소련연장의 항공방위시스템이 있습니다.
제가 무기 중개상을 오래 하다 보니 블라디보스토크 지역의 核 기지도 대략 알고 있습니다. 러시아는 세계 무기시장을 미국에 뺏기지 않기 위해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일종의 전쟁을 하고 있는 셈이지요. 아마 대통령께서는 아시는지 모르겠습니다만 한국정부의 정보원들이 무기와 군사관계의 기밀을 수집하기 위해 무역회사의 이름으로 유럽과 소련을 많이 왕래하고 있는 줄로 알고 있습니다.”
“박 사장! 그들은 이미 미국에 露出(노출)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하고자 하는 이번 일은 의논조차도 할 수 없어요. 만약에 이 일이 성사되기 전이나 그 후에 미국 CIA등에서 알게 될 때는 미국과 소련과 한국과 북한과 일본의 외교마찰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면에서는 우리가 언젠가 소련과의 修交를 해야 할 테니 이번 일이 그 작은 시작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또한 이 계획이 다른 새의 둥우리에 몰래 알을 낳아서 까게 하는 뻐꾸기처럼 다소 비겁한 일 같기도 하지만 개인이나 국가는 비사와 野史와 정사가 있는 법이며 또 언젠가는 對 공산권과도 외교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대한민국은 단 한 명의 군인도, 단 한 개의 무기도 없으니 나는 껍데기 대통령입니다. 모든 군사작전은 美國이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니 만약 소련의 核미사일 기지를 박 선생이 도와서 구입할 수 있게만 해준다면 그것은 대한민국 대통령이 최초로 가지는 무기이며 미국의 명령 없이도 내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는 무기가 되는 것이지요.”
“각하! 왜 군사 작전권을 아직도 미국이 가지고 있습니까? 북한은 처음부터 독자적으로 행사했습니다.”
박 선생의 질문에 나는 박 대통령 대신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우리도 同感입니다. 그러나 아직 시기상조입니다. 돈 때문입니다. 북한의 동향을 미국은 인공위성과 조기경보기를 동원하여 개미 한 마리 움직이는 것까지 알아낼 수 있는 고도의 정보수집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이 문제예요. 우리는 그런 고급정보수집 능력이 없습니다. 우리가 經濟개발을 이대로 해나간다면 한 10년 후에는 우리도 미국처럼 수 천 억씩 하는 인공위성을 쏘아 올리고 조기경보기도 도입해서 북한의 동향을 파악할 수 있는 능력과 군사 장비를 골고루 갖출 수 있겠지요.
그러나 지금은 군사 작전권을 무리하게 우리가 인수할 경우 국가안보에 위험을 초래할 수가 있습니다. 박 선생님 한문 글자중에 人生이라고 할 때 生자를 파자해 보면 소[牛]가 외줄[一]위에 서있는 것을 生이라고 합니다. 한 사람의 生이 참으로 어렵고 어렵다는 뜻입니다. 우리 한반도의 운명을 보면 바로 소가 외줄위에 서있는 것처럼 위태위태합니다. 소가 외줄 위에 서있는 것은 너무나 어려운 것이듯이 우리의 안보 역시 生이라는 글자만큼이나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언젠가는 미국에 있는 유엔본부를 판문점으로 가지고 와야 한반도의 안보가 보장될 것입니다.
미국이 국제연합을 만들어 2차 대전을 승리로 이끌었고, 그 국제연합을 다시 UN으로 만들어 6.25사변을 위해 유엔군이 처음으로 4만 589명이나 전사하고 48만 명이 부상했는데 18개국의 대부분이 판문점과 철원부근에서 전사했습니다. 그러므로 유엔본부는 세계3차 대전을 막기 위해서라도 판문점으로 옮겨와야 합니다.”
47. 석가탄신일 공휴일 제정 반대한 미국, 소련 핵기지 한국 인수를 논의한 소련
1975년 1월 15일 석가탄신일과 어린이날이 공휴일로 지정된 후 첫 번째 맞이하는 사월초파일이 몇 달 지난 1975년 7월 5일 박 대통령은 황급히 나를 불렀다. 캄보디아 월남이 공산화된 지 3개월이 된 시점인데다 북한의 김일성이 중국과 공산국가들을 순방한 뒤 전쟁준비에 돌입함으로서 한치 앞을 알 수 없는 때인지라 박 대통령과 나는 지난 한 달이 100년만큼 가슴 조이며 하루하루를 보내며 낮과 밤의 구분이 없이 독대가 잦았다.
“북한은 제정신이 아닐세. 나도 전군에 비상령을 선포하고 서울 外廓(외곽) 사수를 철저히 지시해 놓았어. 긴급조치도 했지. 미국은 미사일부대 전원과 지상군 2만 명을 완전철수하고도 이제 남아있는 1만 2천여 명의 병력을 몽땅 철수해 가겠다는 거야. 그런데 소련의 브레즈네프가 南侵(남침)을 허락하지 않자 북한과 소련의 군사 동맹관계를 해체하고 중국과 손을 잡음으로써 남침 준비를 끝내고 있으니 이게 문제야.
닉슨이 미사일부대를 모두 철수할 때부터 시작한 우리의 대전차로켓과 다연발 로켓과 중거리 로켓 開發이 다행히 성공하긴 했지만 북한 전역으로 갈 수 있는 장거리 미사일이 아직 개발되지 않은 상태에서 전쟁이 나면 우리는 束手無策이야! 아무리 빨라도 3년은 있어야 장거리 유도탄을 완성할 수 있어. 미국 놈들은 일방적으로 파월지원을 요청하다가도 갑자기 의논 한마디 없이 미군을 철수해 버리고 완전철수를 결정하는가 하면 중국과 수교를 맺는 등 종잡을 수가 없어! 오직 우리가 미사일이든 핵무기든 우리 스스로 自主國防을 하지 않으면 이제 살아남지 못해.
작년 11월 22일 경. 포드가 청와대에서 나에게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미사일 개발을 핵 개발로 오해를 증폭한 나머지 핵 개발 중지를 요구하면서 만약 핵을 포기하면 5억 불의 경제투자 자금을 지원하겠다고 하였는데 자네 생각은 어떤가. 그렇게 하겠다고 하면서 5억불의 경제투자 자금을 지원 받아서 소련의 핵미사일 기지 인수자금으로 전용하면 어떻겠나?”
“러시아 영토 내에 핵 기지의 引受(인수)는 큰 자금이 들지 않을 것으로 봅니다. 그러나 미국의 5억 불 경협지원은 믿기 어렵습니다. 또한 경협이 이뤄진다 해도 그 시기가 내년도 미국의 대통령 선거와 맞물려 있어서 어려울 걸로 봅니다. 러시아 핵 자금은 다양한 방법을 동원해야 하며 비밀 때문에 국회의 승인을 요청할 수도 없습니다.
각하께서는 미국을 멀리 해서도 안 되며 가까이 해서도 안 되는 等距離(등거리) 외교로 가야 됩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머지않아 중국과 소련과도 수교를 할 수 있게 됩니다. 이번의 소련의 핵시설 매입 추진으로 머지않아 소련과도 수교가 가능해질 것입니다. 미국은 등거리 외교를 할 수밖에 없는 특수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중국은 중화사상으로 국가의 중심을 이루고 소련은 슬라브 민족, 영국은 앵글로색슨족, 독일은 게르만족, 유태인은 유태족, 우리는 檀君族으로서 민족의 구심점이 뚜렷이 있습니다. 그런데 미국은 잡종들이 섞여서 나라를 세우다보니 民族主義 앞에 최악의 열등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내세운 것이 청교도를 내세워 종교핵무기로 세계를 制霸(제패)하고 그 다음으로 1957년 IAEA라는 국제원자력 기구를 만들어 미국과 영국, 불란서, 중국, 소련을 제외한 모든 나라를 핵무기를 만들지 못하게 核雨傘(핵우산) 아래 가두어 버렸습니다. 금년 1월 15일 석가탄신일이 공휴일로 제정된 것은 각하께서도 잘 아시겠지만 미국이 보이지 않는 반대를 노골적으로 해 온 것으로 저는 알고 있습니다. 머지않아 오히려 중국과 소련이 미국보다 더 우호적 국가로 다가올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국내의 용태영이라는 변호사가 왜 기독교는 한국 땅에 온 지 100년밖에 되지 않았는데 건국초기부터 豫首 탄생일은 公休日로 하고 한국 땅에 온 지 1500년이나 된 불교의 석가탄신일은 건국 2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공휴일로 하지 않느냐며 재판을 제기하여 엄청난 법정공방 끝에 승소함으로서 정부에서 공휴일로 제정하였지만 그 과정이 대단했던 것으로 압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기독교인들은 오히려 협조를 해주었다고 합니다.”
48. 유신이후 내 말보다 미국대사의 눈치를 보는 각료가 너무 많아. 진짜 독재자는 바로 美國이야!
“기독교 지도자들이 歎願書(탄원서)를 내어주지 않았다면 석가탄신일의 공휴일은 지정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것이 재판에 승소가 이루어지다 보니 미국이 끝까지 막지 못한 것이지 정부에서 행정적으로 정했다면 당장 미국에 의해 白紙化되었을 것입니다. 이것도 마치 우리나라에 미국의 승인 없이 핵무기를 만드는 일이나 석가탄신일을 우리 마음대로 공휴일로 지정하기 어려운 것과 마찬가지라고 저는 봅니다. 말로만 주권국가이지 미군이 가지고 있는 한국군의 作戰權과 한미 미사일협정, IAEA협정과 경제식민지 종교 식민지 등으로 우리는 모든 행동을 미국에 의해 약소국이라는 이유로 불공정하고 불평등하게 통제 받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닉슨의 주한미군철수 선언과 주한미군 2만 명 철수가 결국 각하를 자극하고 그 틈새를 한 변호사의 재판에 의해 합법적으로 석가탄신일의 公休日 지정이 이루어진 것은 사법부와 각하의 미국에 대한 민족주의적 자존심이 처음으로 승리한 역사적 사건이라 봅니다. 석가탄신일 자체도 중요하지만 等距離 외교의 시작이라는 점에서 매우 큰 의미가 있습니다. 러시아 핵 지지의 매입도 이런 맥락에서 추진되어야 합니다.
미국은 그들이 잡종으로 섞인 나라이다 보니 전 세계의 民族主義者들을 가장 경멸하는 버릇이 있습니다. 민족주의자 김구를 암살한 것도 우리는 그 하나의 실례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앞으로 또 다른 민족주의자의 암살이 있을 것입니다. 소련이 슬라브 민족을 내세울 때 미국은 무엇 하나 내세울 것이 없다보니 청교도 정신의 세계화라는 새로운 형태의 패권을 지키려다보니 석가탄신일 공휴일까지도 막아야만 하는 지경에 이른 것이지요. 韓半島에서 민족주의자가 나오는 것을 싫어하며 김구를 없앴는데 또다시 민족주의자인 각하가 갑자기 나타난 것입니다.
그런데 미사일과 核을 만든다는 소리까지 들리니 미국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겠습니까? 각하에 대해 제 2의 김구를 만들려다가 육 여사님이 대신 돌아가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항상 각하의 安全을 염려하는 것입니다. 제가 지난번 말했던 것처럼 71년도부터 80년 사이에 한국과 미국에 큰 별이 동시에 떨어질 것이라고 했던 것이 우연하게도 비슷한 시기에 육영수 여사님 서거와 닉슨 대통령의 워터게이트 下野가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앞으로 80년 까지는 5년이 남았습니다. 엄청난 조심을 해야 합니다. 소련의 핵 기지를 우리가 인수하는 것은 마치 한 변호사의 힘이 거대한 미국의 종교 핵우산을 무너뜨린 것처럼 얼마든지 해낼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 준 것입니다.”
한 사람의 변호사가 거대한 미국의 종교 核雨傘을 물리치고 석가탄신일을 크리스마스 공휴일보다 25년 늦게나마 투쟁으로 얻어낼 수 있었는데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소련에 핵 기지를 사는 일은 그것보다 어렵지 않다는 나의 논리를 듣고 있던 박 대통령은 자기 자신이 밤중에 國務會議를 소집한 석가탄신일 공휴일 지정 소송을 받아들여 공휴일로 지정한 장본인이었는데도 지금 말을 듣고 보니 참으로 새삼스럽게 역사적인 승리라는 것을 깨닫는 듯했다.
“그때 미국의 압력이 참으로 대단했었지. 나는 석가탄신일 공휴일 지정문제를 14년간이나 推進(추진)했지만 결국 미국 대사에 의해 좌절되는 수모를 겪었지. 기독교와 불교의 종교 싸움에 정부의 총무처 장관이 한 사람의 변호사로부터 소송을 당하여 양쪽의 눈치와 미국 정부와 미국교계의 엄청난 압력에 시달린 지 14년 만에 간신히 閣議(각의)를 통과시킬 수 있었어. 그런데 오늘 자네 이야기를 듣고 보니 참으로 우리 민족의 魂이 종교를 떠나 강대국에게 종교와 군사와 경제가 종속된 채 그 우산 속에서 벗어나는 일이야말로 민족의 자주요 자존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구만!
사실 나를 두고 국민들은 독재자라고 하지만 크게 보면 미국 놈들의 독재에 나는 희생된 民族主義者야. 사사건건 한국의 대통령은 로봇이었으니까. 내가 그들의 말에 호락호락 들어주지 않으니 그들이 독재니 인권이니를 내세워 결국 내 아내를 데려갔고 또다시 나를 데려가겠지. 진짜 독재자는 美國이었다는 것을 언젠가는 우리 국민은 알게 될 거야.
그들이 우리의 인권을 들먹이지만 우리는 대통령을 뽑는 직접민주주의를 해오다가 최근에 통일주체대의원에 의한 간접선거를 바꾸었지만 미국은 건국초기부터 지금까지 유신체제와 똑같은 국민이 선거인단(통일주체대의원)을 뽑고 흑인이나 유색인종에게 權力이 넘어 가지 않게 그들이 원하는 백인 대통령만 뽑기 위한 간접민주주의가 아닌가. 그리고 그들도 나라 경제위기가 오자 루즈벨트가 헌법에도 없는 네 번씩 간선에 의해 대통령을 하지 않았다.
그들이 노리는 것은 무기를 많이 사도록 압력을 넣고 결국은 우리를 經濟的 식민지로 만드는 것이 그들의 목적이지 우리 민주주의를 걱정한다는 건 핑계야! 그때 1975년 1월 14일로 기억되는데 야간에 청와대에서 내가 직접 비상 閣議(각의)를 주재했었지. 석가탄신일과 함께 어린이날과 음력설도 공휴일로 하자고 했는데 음력설은 10대 9로 부결되었어. 경제장관 10명이 수출 때문에 공휴일을 늘릴 수 없다고 하며 반대했던 것이 기억이 나는군.
그 당시는 수출제일주의를 하고 있을 때였으니까. 한 표 차이로 음력설은 否決(부결)되었어. 석가탄신일 공휴일 지정이 용태영 변호사의 소송이 없었다면 석가탄신일 공휴일지정이 9대 10으로 통과될 수 없었겠지. 나는 그때 미국의 힘과 미국 宗敎의 힘을 보았지. 만일 석가탄신일을 어린이날과 같이 장관들의 각의에서 일방적으로 지정했다가는 미국대사와 CIA·미국 정부·미국 종교계에서 우리를 그냥 두지 않았을 거야.
그것이 용태영이라는 민족주의 변호사에 의해 끈질기게 추진되어 재판으로 얻은 결과였기에 강대국의 압력을 물리치고 내가 결정을 내렸지만 그때처럼 내 입장이 난처한 적이 없었어. 그래서 미국대사가 잠이 든 틈을 이용해 늦은 밤 시각 청와대에서 긴급 閣議를 해야 할 정도로 미묘한 일이었지. 그런데도 19명의 각료를 야간에 청와대에 몰래 집합을 시켰는데 그 각료의 절반 정도는 미국대사와 CIA의 使嗾(사주)와 협박을 받는 자들이었어. 그래서 내가 어린이 문제와 불교 문제에 대한 可決(가결)의 필요성을 회의 시작과 동시에 언급을 했었지.
維新(유신)을 하고 나니 각료들과 군 장성들이 미국대사를 마치 한국의 대통령으로 착각하는 것 같을 정도야. 그들은 내가 잘못되면 미국을 유일한 도피처로 생각하고 있기에 미국대사에게 잘못 보이면 비자를 받을 수 없다는 계산을 하고 있는 것 같애. 그런데 그때 한국기독교계 대표들이 석가탄신일을 공휴일로 해야 된다며 용변호사님의 재판에 법원과 청와대에 진정서를 낸 것을 보고 우리 국민의 저력을 보는 것 같아 감동을 했었지. 역시 자네야말로 우리 민족의 自主를 지킬 사람이야. 그 공휴일 지정문제를 핵문제와 비교분석하는 것을 보고 나도 많은 것을 깨달았어. 사사로운 문화적인 데서부터 우리의 自尊을 확보해 나가야 하겠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군.
자네 말을 듣고 보니 소련의 핵 기지 인수가 순조롭게 이루어질 것 같은 自信感이 생기는구먼. 이 땅에서 자네가 아니고 누가 그런 생각을 해낼 수 있었겠나? 용변호사님이 사시는 집이 우연하게도 청와대 경내에 있기에 미국으로부터 암살을 면했지. 그 분의 집이 청와대 담장 한쪽을 차지하다보니 결국 개인이 청와대 正門으로 출입을 하는 유일한 사람이야. 차 경호실이 여러 번 용태영 변호사의 집을 경호상이유로 뺏자고 했지만 내가 그냥 두라고 했어. 그런 훌륭한 분이 어디 있겠나?”
“잘 하셨습니다. 그곳에 사실 자격이 있는 분입니다. 용태영 변호사와 같은 정신으로 소련의 핵 기지 인수를 밀고 나간다면 성공합니다.”
49. 羊頭狗肉(양두구육)의 소련 가무버 海岸(해안)의 한국 핵기지 인수 추진
비싼 양머리를 내걸고 값싼 개고기를 판다는 羊頭狗肉은 바꾸어 말하면 값비싼 한우를 판다는 간판을 걸어 놓고 값싼 수입고기를 파는 것을 말한다. 국가 간의 외교관계가 없는 소련 영토 내에 한국 핵기지를 하나 인수한다는 것이 고종 황제가 새벽에 일본군 몰래 경복궁을 빠져나가 러시아 공관으로 도피한 俄館播遷(아관파천)으로 러시아를 이용해 일본을 제압했던 것처럼 적을 이용해서 적을 방어하는 以夷制夷가 전략적 용어라면 羊頭狗肉은 전술적 용어일 것이다.이런 엄청난 전략과 전술이 실제 일어났다는 것은 어느 누구도 상상할 수 없는 국가의 비사가 아닐 수 없는 것이다.
하나의 국가가 존재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야사와 정사가 있지만 국민에게 말할 수 없는 秘史(비사) 또한 엄청난 것이다. 박정희 대통령과 나를 제외하고는 이 책이 만들어지는 이 순간까지도 미국 CIA도 북한도 한국 정부도 모르고 있었으며 언론도, 역대 대통령도 전혀 모르고 있는 사실인 것이다. 다만 나만이 유일하게 알고 있는 것이다. 박 대통령이 1975년 7월 1일 미국에 있는 僑胞(교포) 군수품 밀거래업자를 은밀히 만나 핵기지 인수를 지시한 지 보름 후인 1975년 7월 16일 박명국(가명)은 은밀히 소련으로 들어갔다.
비밀무기 거래상으로 수시로 소련을 드나들었으므로 미국 CIA와 북한의 특별한 尾行(미행)을 받지 않았다. 미국이 한국의 핵개발을 눈치 챈 당시로서는 박 대통령의 측근과 어느 누구도 그 행동을 미국 CIA로부터 감시받지 않는 사람이 없었으므로 소련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불가능했으나 박명국(가명)에겐 미행이 따르지 않았다. 박명국(가명)은 두 달간 러시아 공화국과 소련 연방의 크렘린 그리고 러시아에서 제의한 극동군 사령부 관내 여러 가지의 핵 기지 중에서 지역적으로 가장 유리한 가무버만의 300만 평 규모의 핵미사일 기지를 수차례 왕복하며 핵기지 인수 작전을 추진하고 있었다.
우연하게도 소련은 공산주의 經濟와 대외 경제활동을 촉진해야 한다는 공산당 내의 여론이 일기 시작했으며 러시아 극동지역 중에 자유무역이라는 중앙정부에 대한 지방정부의 자치권 확보바람이 마치 自治 獨立을 추구하려는 여론과 함께 전 소련 지역에 일기 시작해 이미 거대한 소련의 붕괴가 시작되고 있었다. 마치 제정러시아가 몰락해 갈 때 그 경제적 어려움을 해결할 突破口(돌파구)를 찾기 위해 적대국인 미국에게 러시아 전체 국토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알래스카를 720만 불의 헐값에 팔게된 그때와 같은 제2차 경제적 정치적 변형기를 앞두고 있었다.
이러한 소련의 정치 경제적 변화조짐을 교묘하게 이용한 사람이 바로 박 대통령의 정책보좌역인 나였다. 세계 정치, 국방의 전략사에 敵國의 영토 내 自國의 핵 기지를 인수한다는 초유의 작전이 진행되고 있었으니 세계에서 그 유래를 찾을 수 없는 작전이었다. 하늘이 도왔는지 이미 소련의 1968년 체코의 독립자유화운동을 시작으로 지방 정부들은 정치적 경제적 자유체제를 스스로 해결하려는 자치독립의 바람이 거세게 불기 시작했으며 또한 정치적·군사적으로는 나토(NATO)와 대치하고 있는 소련의 바르샤바軍의 對西方 쪽의 연방국분쟁과 또한 미국과의 군사력 우위확보에 국력을 집중하고 있을 때였다.
그래서 하바로스크 극동군 사령부 지역인 블라디보스토크 일대에 대해서는 크게 신경을 쓰지 않은 채 러시아 공화국의 自治權을 상당히 인정해 주고 있을 때였으므로 박명국(가명)의 작전성과는 의외로 급진전되어 가고 있었다. 더구나 소련이 제2전선이라고 할 수 있는 극동지역에 미7함대가 전력강화와 함께 미국과 일본이 유대관계를 강화하고 있었으며 미국이 중국과 국교를 맺는 사건이 발생함으로써 소련은 미국과 중국과 일본과 한국의 동맹관계를 분리시켜 보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던 터에 박명국(가명)이 찾아와 국교를 맺는 것보다 더 무게가 실린 핵기지 거래를 부탁한다는 것은 소련으로서는 자국의 전략적 가치와 한국과 미국을 이간시킬 수 있는 더없는 기회였던 것이다.
50. 소련은 韓國을 원하고 미국은 北韓을 원해?
더구나 소련은 극동의 핵 기지 하나를 韓國에 제공해 줄 경우 극동 아시아에서 한국을 미국과 분리하며 중국보다 먼저 한국과의 깊은 관계를 간접적으로 유지하여 등거리 외교를 하며 중국 쪽으로 기운 북한과 일본을 견제할 수 있는 세 가지의 좋은 기회로 보고 있었다. 지형전략으로 본다면 미국은 중국과 소련과 연결되는 北韓이 필요한 땅이었다. 한국은 중국과 소련으로 연결되는 모든 통로가 차단되어버린 전략적으로 죽어있는 땅이지만 북한은 중국과 소련과 연결되어 있는 그야말로 미국이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소련은 북한보다는 韓國이 필요했다. 블라디보스토크의 극동 함대사령부와 공산화된 베트남의 잠수함 기지인 캄란港(항) 사이에 한국의 제주도가 꼭 필요한 전략적 장소였기에 몇 번이나 우리 정부에 극비 채널을 통하여 濟州島를 빌려 줄 것을 부탁하였기에 한국의 핵기지 매수 제의는 소련으로서는 고려 볼 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었다. 브레즈네프는 1960년 6월경 중소 국경분쟁발생과 1972년 미국과 중국의 수교와 함께 한반도에서 1971년 이후 미군의 철수가 본격화됨에 따라 극동아시아에서 미국의 힘이 월남과 캄보디아와 한국에서 벗어나는 힘의 空白을 중국과 일본이 차지할 것을 염려하고 있었다. 그래서 태평양 함대의 증강을 계획하고 있던 차에 한국의 소련 영토 내의 핵 기지 인수제의와 그 대가로 엄청난 달러의 제공은 구미가 당기는 사업이 아닐 수 없었다.
또한 때마침 북한이 소련과 등거리 외교를 하며 중국과 점점 가까워지고 있을 때였으므로 서둘러 계약을 체결하기에 이른 것이다. 그 때가 마침 소련이 나토군에 대해 대응전략으로 東西 양면의 적으로부터 소련을 보호하기 위한 구주안보 회의를 준비하며 1975년 8월 구주안보협력협정 체결이 이루어지는 미묘한 시점이었다. 미국과 유럽의 나토동맹에 대응하기 위한 35개국의 구주안보기구의 체결분위기에 휩싸인 소련에서는 박명국(가명)의 작전실행은 소리 없이 진행되어 갔다.
1956년 일본의 원자력연구소가 수십 개의 연구용 원자로와 발전용 원자로를 확보하고 플루토늄 재처리 공장까지 갖추고 있다는 것을 잘 아는 박 대통령은 기필코 한국도 소련의 핵기지 인수의 호의적 배려에 힘입어 프랑스와 캐나다·소련 쪽에서 우선 연구용 원자로를 들여놔야 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일본이 아마 원자탄을 몰래가지고 있다면 북한 못지않게 위험한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 박 대통령의 또 다른 걱정이었다. 1953년 이미 일본은 독도의 영유권을 국제사법재판소에 청구해 놓고 있으며, 수차례에 걸쳐 독도를 사이에 두고 우리와 마찰을 빚지 않았던가?
우리가 소련의 핵기지 인수를 제의했을 때 브레즈네프가 조건부로 제주도를 빌려달라는 제의를 했다는 보고를 들은 박 대통령은 자신이 1961년 11월 11일 일본에 가서 이께다 수상에게 대일청구권자금 8억 불을 내놓으라고 하니까 독도를 일본에 주면 주겠다고 하던 그들을 설득하여 결국 8억 불을 받아내었던 때가 생각났다. 아이러니하게도 북한 김일성은 일본이 주겠다는 돈을 ‘일본 놈의 돈은 받지 않겠다.’고 거절함으로써 아시아에서 선진국이었던 북한이 당시 후진국에 속해있던 남한에 의해 선진국이 뒤 바뀌기 시작했다.
북한도 두렵지만 일본도 무엇인가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에 독도 영유권을 내세우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지울 수가 없는 박 대통령의 생각은 곧 국민의 생각이기도 했다. 중국의 350만 군대와 미국의 150만 군대, 북한의 120만 군대에 이어 세계에서 네 번째로 많은 60만 대군을 가지고 있는 소련은 9200개의 핵미사일을 가지고 있는 최강의 군사강대국이라는 사실과 북한은 남한의 두 배가 넘는 군사장비까지 가지고 있지 않은가. 박 대통령의 심정은 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도 잡아야겠다는 심정, 바로 그것이었다.
1968년 체코가 독립을 주장하며 소련에 저항할 때 브레즈네프 독트린은 제3세계의 흔들림에 쐐기를 박고 무력을 포함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위성국의 이탈을 막아내겠다는 강력한 흐름이 1975년까지 지속되어 왔다. 그런데 미국에서는 그 정반대의 입장인 1969년 닉슨의 괌 독트린으로 「아시아의 안보는 아시아의 손으로」를 내세우며 캄보디아와 월남의 공산화로 미국은 떠나고 한반도에서는 미군을 70%까지 철수하고 신속히 나머지도 철수하겠다는 것이 1975년까지의 미국의 정책이 아니었던가.
소련은 나토의 군사력에 쫓긴 강력한 군사패권주의의 브레즈네프 독트린이었다면, 미국은 부드러운 평화주의적인 닉슨 독트린으로 너무나 대조적인 국제관계를 추진하고 있었다.
미군이 캄보디아와 월남과 한국에서까지 철수하게 되면 중국과 일본의 군사경쟁이 팽창하게 되는 것도 소련은 우려되었다. 그때 소련이 제주도 일부를 소련의 군사기지로 빌려줄 것을 제의하여 대한해협을 마음대로 통과할 수만 있다면 소련은 중국을 둘러싼 인도차이나, 월남, 한국, 북한, 블라디보스토크, 사할린에 이르는 모든 위성국들을 장악하게 됨으로써 중국 주변을 고립하는데 성공할 수 있게 됨으로 많은 난관이 있었지만 결국 소련은 우리의 조건을 수용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