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시조>
백운동원림*의 봄
유헌
산다경 터줏대감 동박새가 소집한
옥판봉 저 너머 갖갖의 산새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속속들이 도착해 옛 선비 두리두리 풍류 읊었을 자리쯤에 전깃줄에 참새 앉듯 일렬로 좌정하자 동박새 포르르 돌계단에 올라서서 일장 연설 하는 품새 미루어 짐작건대, 강남 갔다 돌아온 제비의 환영회 겸, 취미선방 처마 밑 옛집의 입주식 겸, 유상곡수 푸른 물로 부리도 닦을 겸, 운당원 대바람 소리로 귀도 씻을 겸, 여차여차 주절주절 머뭇머뭇 갸웃갸웃, 칼바람 눈보라 회오리 다 잊고 비바람 먹구름 천둥소리 다 잊고 그냥저냥 한나절 백매오 가지에서 매향에 흠뻑 취해 잘 놀다 가랍니다 정선대 날아올라 신선이 되었다가 모란체에 내려앉아 모란꽃 되었다가 조롱이는 삐삐삐삐 팔색조는 호잇호이잇 긴꼬리딱새 호이이호이이 제비는 지지배배
삼짇날 제비 돌아온 날
곡수연曲水宴 벌입니다
* 조선 중기 처사 이담로가 조영한 전남 강진 월출산 자락의 별서정원. 담양 소쇄원, 완도 부용동과 함께 호남 3대 정원으로 일컬어지며, 백운 12경으로 옥판봉(1경), 산다경(2경), 백매오(3경), 유상곡수(5경), 모란체(8경), 취미선방(9경), 정선대(11경), 운당원(12경) 등이 있다.
(시인정신 2023 봄호)
낙지와 목탁
유헌
갓 구운 빵 속처럼 보드라운 개펄 안에
미로 같은 동굴 파고 선정에 든 수도승
이뭣고 되뇔 때마다 목탁이 따라 운다
숨구멍 들락거리며 짱뚱어가 슬쩍 치고
파도와 달빛은 파문波紋으로 치고 간다
화두를 던질 때마다 목탁 더 크게 운다
(시인정신 2023 봄호)
첫댓글 낙지와 목탁.
이 시를 읽으니, 서해바다 갯벌에 나아가 가만히 숨구멍 들여다 보며 은혜로운 바다생물들에게 안부를 건네고 싶어집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 묻혀사는 낙지라고 어디 앞날에 대한 고민이 없겠습니까. 언제 밥상에, 술상에 산채로 오를지 모를 운명, 그걸 생각할 때마다 목탁이 우네요. 스님의 두상을 닮은 낙지의 머리는 어느새 목탁으로 변신하네요. 2수로 된 연시조입니다.
바다에 연해 있는 절에서 저녁 노을을 보는 듯한 느낌입니다.
저물녘, 사찰에서 바라보는 저녁노을, 여러 생각에 잠기게 할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