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순간이 꽃봉오리인 것을
정현종
나는 가끔 후회한다.
그 때 그 일이
노다지였을지고 모르는데......
그 때 그 사람이
그 때 그 물건이
노다지였을지도 모르는데......
더 열심히 파고들고
더 열심히 말을 걸고
더 열심히 귀 기울이고
더 열심히 사랑할 걸......
반벙어리처럼
귀머거리처럼
보내지는 않았는가,
우두커니처럼
더 열심히 그 순간을
사랑할 것을......
모든 순간이 다아
꽃봉오리인 것을,
내 열심에 따라 피어날
꽃봉오리인 것을!
(시집 『사랑할 시간이 많지 않다』, 1989)
[어휘풀이]
-노다지 : 목적한 광물이 막 쏟아져 나오는 광맥(‘No Touch’에서 유래) 한 군데에서 많 은 이익이 쏟아져 나오는 일. 또는 그런 것, 여기에서는 의 뜻.
-우두커니 : ‘아무런 말없이 멍하니 있는 사람’이란 뜻의 경기도 사투리
[작품해설]
이 시는 평이하고 일상적인 시어를 이용하여 열심히 살지 못한 과거에 대한 후회의 마음과 인생에 대한 깊은 성찰을 보여 주고 있는 작품이다. 화자는 지난 삶을 돌아보면서, 일을 열심히 하지 않은 것과 사람이나 물건을 소홀히 했던 소극적인 삶의 자세를 반성하고 있다. 훗날 생각해 보니, 좀더 애정을 가지고 행했다면 성공적인 결과를 이룰 수 있는 대상들이었기 때문에 화자는 더 큰 아쉬움을 느낀다. 그러므로 이 시는 자신의 삶을 진지하게 돌아보면서 ‘모든 순간’을 소중히 여기고 열심히 살아가는 것이 바람직한 삶의 자세임을 깨닫게 한다.
‘꽃봉오리’는 망울만 맺히고 아직 피지 아니한 꽃으로, 아름다운 꽃으로 피어날 수 있는 소중한 가치를 지닌 가능성의 존재이다. 즉 ‘꽃’이 훌륭한 결과물이라면, ‘꽃봉오리’는 훌륭한 결과를 얻기 위한 최선의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꽃봉오리’는 이 시의 지배적 이미지로서 화자로 하여금 바람직한 삶의 태도가 무엇인지 깨닫게 하는 소재가 된다.
이 시는 ‘지난 삶에 대한 후회’ ⤑ ‘삶의 태도에 대한 반성돠 깨달음’ ⤑ ‘모든 순간의 중요성 인식’의 순서에 따라 전개된다. 이 시에서 화자가 후회하는 것은 ‘어떤 일에 최선을 다하지 않은 점’ ⸱ ‘어떤 사람을 소홀히 대한 점’ ⸱ ‘어떤 물건을 하찮게 대했던 점 뿐 아니라, ’애정이 없이 만나고 행한 것들‘ ⸱ ’성심껏 대하지 못한 것들‘이며, 그렇게 살아왔던 자신을 화자는 ’반벙어리‘ ⸱ ’귀머거리‘ ⸱ ’우두커니‘에 비유한다. 이것은 모두 방관자적인 삶의 부정적 모습이다. 화자는 이러한 반성을 통해 마침내 모든 순간이 소중한 가치를 지녔음을 깨닫고, 지나간 삶에 대한 후회와 깊은 성찰을 이루게 된다.
[작가소개]
정현종(鄭玄宗)
1939년 서울 출생
연세대학교 철학과 졸업
1965년 『현대문학』에 시 「화음(和音)」, 「여름과 가을의 노래」 등이 추천되어 등단
1965년 『60년대 시화집』 동인
1966년 『사계』 동인
1990년 제3회 연암문학상 수상
1992년 제4회 이산문학상 수상
1995년 제40회 현대문학상 수상
1996년 제4회 대산문학상 수상
2002년 제2회 미당문학상 수상
현재 연세대학교 국문과 교수
시집 : 『사물(事物)의 꿈』(1972), 『고통의 축제』(1974), 『떨어져도 튀는 공처럼』(1984), 『거지와 광인』(1985), 『나는 별 아저씨』(1989), 『사랑할 시간이 많지 않다』(1989), 『생명의 황홀』(1989), 『꽃 한 송이』(1992), 『세상의 나무들』(1995), 『이슬』(1996), 『환합니다』(1999), 『갈증이며 샘물인』(1999), 『견딜 수 없네』(2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