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호랑이'-북러 밀월-일 정국혼미 급변하는 한반도 안보환경 / 10/31(목) / 조선일보 일본어판
'미국 퍼스트'를 내건 트럼프 전 대통령의 복귀 가능성, 북한군 파병으로 우크라이나 전쟁을 신냉전으로 이끄는 러시아, 윤석열 정권과 우호적 관계가 예상됐던 이시바 일본 총리가 이끄는 여당의 중의원 선거 과반이 깨지는 등 한국을 둘러싼 외교안보 환경이 급변하고 있다. 미국이 가장 경계했던 유럽·중동의 '두 전쟁'이 동시에 장기화 국면에 접어들었고, 미국의 대외정책으로 한반도는 더욱 후퇴하고 있다. 그 어느 때보다 다양한 요소가 복잡하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의 전직 외무장관은 28일 본보와의 통화에서 "현재 한반도 주변은 복합적이고 비상한 상황이기 때문에 그에 맞는 비상한 대응이 필요하다. 옛날 비옷을 입고 우산을 쓰면 될 상황이 아니다" 고 말했다.
국제정치 전문가들은 최근 한반도 안보정세가 전례 없이 혼란스럽다는 데 동의하고 있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역설적으로 남한을 둘러싼 외교안보 정세가 장기간 불투명해진다는 점만은 확실하다. 그 방향이 부정적이라는 점도 틀림없다고 말했다. 차두현 아산정책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체제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핵개발에 나선 북한, 개혁 개방으로 국내 문제에 대응하느라 바빴던 러시아, 한국의 역할 확대론이 불거졌던 미국 등 현재 상황은 1980년대 후반과 매우 비슷하다면서도 당시에는 냉전체제가 해체되는 안정적인 방향으로 움직였지만 지금은 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일주일 앞으로 다가온 미국 대선에서는 한국과 주한미군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가진 트럼프 전 대통령이 기세를 올리고 있다. 트럼프 씨가 당선될 경우 윤석열·바이든·기시다 체제에서 급속한 진전을 이룬 한미일 3국 공조체제가 다시 후퇴하거나 바이든 행정부가 약속한 확장억제(핵우산)도 안심할 수 없는 상태가 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다만 그동안 국제질서에서 중심 역할을 해온 미국의 자국 우선주의, 보호무역주의 등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경희대 정치외교학과 서정건 교수는 "미국은 원래 비개입주의, 미국 우선주의 국가로 소련과 이념전쟁을 치르고 국제주의를 취한 기간은 오히려 미국 역사 전체로 볼 때 극히 예외적"이라고 말했다. 우리의 국력이 과거보다 높아진 만큼 능동적이고 실용적인 접근을 통해 위기를 기회로 삼아야 한다.
전문가들은 트럼프의 불확실성이 오히려 기회가 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천영우 전 외교안보수석비서관은 "대미 관계에 있어서는 제대로 된 시스템이 작동하는 민주당보다 개인적 취향이 의사결정에 더 중요한 역할을 하는 트럼프 씨가 한국에는 쉬운 면이 있을 것" 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씨와는 '거래'를 통해 한국이 원하는 핵연료 재처리, 우라늄 농축 권리 등을 확보할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박인국 전 주유엔대사는 "한미 공동 컨소시엄을 구성해 러시아가 지배하고 있는 농축우라늄 공급망을 재편하거나 영국 독일이 독과점하는 잠수함 시장에서 기술동맹을 맺자는 비즈니스적인 거래 제안은 해리스보다 트럼프가 오히려 받아들일 확률이 높다" 고 말했다.
러시아에 파병된 북한군은 이르면 이번 주부터 우크라이나 전선에 투입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일각에서는 한국 정부의 관심이 우크라이나를 향하고 있는 사이에 북한이 증거가 남지 않는 2010년 천안함 폭침과 같은 도발 행위에 이를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다.
다만 전쟁 장기화로 러시아의 국력이 소모되고 있는 점, 북한군의 남한에 대한 군사적 대응이 일시적으로나마 뜻대로 되지 않는 점 등은 남한에 나쁜 것이 아니라는 분석이다. 천위안 수석비서관은 "이를 계기로 우크라이나와 방산협력을 본격화하고 북한군이 투입된 러시아 영토에 한국의 무기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북한군이 배치되지 않은 지역에 제공하는 등 지혜를 발휘해야 할 요소는 많다" 고 말했다.
윤석열 정권은 지난해 3월 강제징용 관련 제3자 변제안으로 한일관계를 정상화한 뒤 주로 자민당 지한파와 내년 한일수교 60주년에 대비해 왔다. 그러나 27일 중의원 선거에서 자민련 여당이 참패해 만약 정계개편이 되면 모든 논의가 다시 시작되는 상황이다. 중국이 혼란을 틈타 대만해협에서 군사행동에 나설 가능성도 지적되고 있다. 중국 정부는 시진핑 주석 3기를 계기로 자국령으로 간주하는 대만을 통일하려는 의지를 강조하고 있다.
박 전 대사는 "일본은 오키나와 남서쪽의 요나구니섬(与那国島)이 대만에서 116km밖에 떨어져 있지 않아 중-대 전쟁이 일어나면 자동으로 개입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한국이 이 문제에 대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전략을 연구해야 한다. 트럼프 행정부가 들어서도 한일이 단독으로 얘기하는 것보다 원 보이스를 내놓으면 (영향력이) 강해지기 때문에 한일이 연계한 활동 전략이 중요한 시기" 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한국이 대외적으로 '경제는 중국, 안보는 미국' 같은 전략적 모호성을 내세울 시기는 지났다고 본다. 또 지금과 같은 비상기에는 대통령실과 외교부가 위기의식을 갖고 대외전략을 전면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전직 외교관은 "현재의 위기 상황을 극복하려면 대통령실이 좀 더 전략적이어야 한다. 용산 내부의 소수 두뇌에서 나오는 생각만으로는 이 파고를 넘기 어렵다. 안보위기를 극복할 특별조직이 필요할 수도 있다" 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