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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청천(包靑天)
중국의 판관으로, 청렴 강직한 관리의 대명사이다.
包 : 쌀 포(勹/3)
靑 : 푸를 청(靑/0)
天 : 하늘 천(大/1)
재물 욕심 없이 깨끗하고 법을 바로 집행한 관리가 청백리(淸白吏)다. 조선시대 의정부(議政府)에서 추천한 청렴한 관리로 맹사성(孟思誠), 황희(黃喜) 등 모두 217명이 배출됐다고 한다.
중국에서 강직한 관리의 대명사로는 포증(包拯)을 꼽는다. 북송(北宋) 때의 정치가인 포증은 우리에게는 ‘개작두를 대령하라’며 죄인들에게 서슬 퍼런 명령을 내리던 드라마 속의 포청천(包靑天)으로 잘 알려진 사람이다.
푸른 하늘(靑天)은 청백리를 의미한다. 포공(包公)이라고도 불린 그는 지방관으로서 부당한 세금을 없앴고, 판관이 되어서는 부패한 정치가들을 가차 없이 처벌하여 가장 정의로운 관리로 칭송받는다.
포증은 형과의 나이가 20세나 되는 늦둥이로 태어났지만 어려서부터 효심이 지극했다. 진사에 합격하여 관직에 나갔으나 먼 지역에 근무하게 되자 부모를 모셔야한다며 사양했다.
양친 모두 돌아가신 38세가 되어서야 그는 안후이(安徽)성 천장(天長)이라는 곳의 현령으로 부임했다.
포증은 이 곳에서 유명한 소 혀 절단 사건을 해결한다. 농사에 필수적인 소는 당시 도축이 엄격히 금지되어 있었다. 한 농민이 자신의 소 혀를 절단해 갔다고 고발해 왔다.
포증은 농민에게 소를 잡아 시장에 내다 팔라고 했다. 얼마 안 있어 한 사람이 소 밀도살한 농민을 밀고해 왔다.
포증은 고발한 작자를 엄격히 문초하여 소 혀를 절단한 범인임을 자백 받았다. 고발한 자가 소 혀를 절단한 범인임을 알았던 것이다.
현명한 일 처리로 사람들은 귀신같은 일 처리라며 칭송했다. 이후 가는 지역마다 공사를 이용해 사욕을 채우는 아전들을 내몰고 백성들의 민원을 직접 받았다.
관리들의 상업 활동을 금지하고, 재해지역의 수습에 만전을 기하며 가혹한 세금을 면제해주는 등 청렴 강직한 행정을 폈다.
그의 선정이 알려지자 중앙으로 중용돼 감찰어사가 됐다. 장수를 선발하고 병사를 키워 변방을 지킬 것을 건의하고 유능하고 지혜로운 인재를 선발토록 했다. 이렇게 들어온 사람 중엔 유명한 왕안석(王安石), 사마광(司馬光) 등이 포함돼 있다.
수도 개봉(開封)의 부사로 있을 때는 권문세가의 비리를 추상같이 처리하고 청탁은 통하지 않아 포증은 염라대왕(閻羅大王)과 함께 있다는 말까지 돌 정도였다.
이런 포증이 있던 중국이나 청백리를 우러렀던 우리나라나 부패는 끊이지 않는다.
국제 투명성 기구의 우리나라 부패 순위는 2017년 51위로 해마다 뒷걸음질하고 있다고 한다. 경제 10위권 나라에서 부끄러운 노릇이다. 포청천 까지는 아니라도 청백리가 많아져야 할 텐데 아득하다.
포청천(包靑天, 999~1062)
송나라의 정치가이다. 지방관으로서 부당한 세금을 없앴으며, 판관이 되어 부패한 정치가들을 엄정하게 처벌하였다. 청백리로 칭송되었으며, 병사 후 예부상서(禮部尙書)에 추증되었다.
본명 : 포증(包拯)
별칭 : 포공(包公)
국적 : 송(宋)
활동분야 : 정치
출생지 : 여주(廬州) 합비(合肥:지금의 안후이성 허페이)
주요저서 : 포증집(包拯集), 포효숙공주상의(包孝肅公奏商議)
자는 희인(希仁), 이름은 증(拯), 시호는 효숙(孝肅)이다. 999년 여주(廬州) 합비(合肥: 지금의 안후이성 허페이)에서 출생하였다. 포공(包公)이라고도 한다.
1027년(인종 5) 진사(進士)에 급제, 건창현(建昌縣) 지현(知縣)이 되었으나 연로한 부모를 봉양하기 위하여 사임하였다.
1037년 다시 천장현(天長縣: 지금의 안후이성 천장현) 지현에 임명된 뒤 감찰어사(監察御使), 삼사호부판관(三司戶部判官), 하북로전운사(河北路轉運使) 등을 지냈다.
이어 삼사호부부사(三司戶部副使)와 지간원(知諫院) 등을 거쳐 1056년 개봉부지부(開封府知府)가 되었으며 1061년 추밀부사(樞密副使)에 임명되었다.
관료생활을 하는 동안 공평하고 사사로움이 없는 정치를 펼친 것으로 유명하다. 지방관으로 있을 때는 부당한 세금을 없애고 백성들의 억울한 사건을 명쾌하게 해결해 주었다.
판관이 되자 부패한 정치가들을 엄정하게 처벌하였으며, 높은 벼슬에 오른 뒤에도 소박하고 검소한 생활을 하여 청백리로 칭송되었다.
1062년 병사하자 예부상서(禮部尙書)에 추증되었다. 문집으로 포증집(包拯集), 포효숙공주상의(包孝肅公奏商議) 등이 남아 있다.
남송(南宋)과 금(金)나라 때부터 그를 주인공으로 한 문학작품이 등장하였다. 명나라 때는 수백 권으로 된 소설화본 포공안(包公案) 등, 청나라 때는 용도공안(龍圖公案), 삼협오의(三俠五義), 칠협오의(七俠五義) 등의 장편소설 등이 있다.
포청천(包靑天, 999~1062)
중국 청백리의 대명사
1.검은 얼굴에 늦둥이로 태어나다
포증은 북송시대 여주(廬州) 합비(合肥) 사람으로 다른 이름은 포문정(包文正)이고, 자는 희인(希仁), 이름은 증(拯)이다.
별칭으로는 포룡도(包龍圖), 포흑자(包黑子), 포흑탄(包黑炭)이 있으며 중국에서는 보통 포공(包公), 포청천(包淸天) 등으로 불린다.
진종(眞宗) 함평(咸平) 2년 4월 11일에 포원외(鮑員外)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위로 20여 세 연상인 친형 2명이 이미 출가해 있었던 터라 어머니는 며느리들과 비슷한 때 임신한 것을 부끄러워하여 그를 지우려 하였으나, 태몽을 꾸고 그만 두었다고 한다.
얼굴이 검었다고 하며, 드라마에서는 양미간 사이에 초승달이 있는 것처럼 묘사되었으나 실제로는 초승달이 없었다.
어려서 포가촌의 일가, 하인의 자제들과도 스스럼없이 어울렸다고 하며 아버지 포원외가 들인 독선생을 모시고 수학했다.
2.병사를 키우고 변방의 경비 강화를 건의하다
인종(仁宗) 천성(天聖) 5년(1027) 진사에 급제해 랴오닝성 젠창현(建昌縣)의 현령이 되었으나 연로한 부모를 봉양하기 위하여 사임하였다.
부모가 돌아가시고 3년상을 마친 뒤 1037년에 다시 관직에 복귀하여 안후이성 천장현(天長縣) 현령, 단주(端州) 지사(知使)를 거쳐 감찰어사에 발탁되었다.
그는 병사를 키우고 장수를 선발하여 변방의 경비를 철저히 할 것을 건의했다.
거란에 사신으로 다녀온 뒤 삼사호조판관(三司戶曹判官), 허베이로(河北路) 전운사 등을 지내고, 장쑤성 양저우(揚州)와 여주(廬州), 강녕(江寧), 개봉(開封) 등지의 지부(知府, 행정수장)를 역임한 뒤 우사낭중(右司郎中)으로 옮겼다.
3.강직하고 올곧은 성품
그는 조정에서 늘 강직하고 올곧아 귀척(貴戚, 임금의 인척)과 환관들이 감히 함부로 하지 못했다.
송사를 처결할 때도 명민하고 정직하여 정문을 열어 놓고 억울한 사람이 직접 찾아와 시비곡직을 따지도록 하여 간교한 아전들의 개입을 차단했다.
어사중승(御史中丞)으로 있다가 삼사사(三司使, 재정장관)로 옮기고, 1061년 추밀부사(樞密副使)에 임명되었다.
재임 기간 동안 청렴결백해서 소신대로 일을 처결하기로 명성이 높아 중국에서 청백리의 대명사로 불린다.
1062년 5월 24일에 개봉에서 병으로 사망했다. 당시 향년 63세였으며, 항간에는 독살당했다는 설이 돌기도 하였다.
인종은 그에게 동해군개국후(東海郡開國侯)에 추봉하고 예부(禮部)상서에 추증했다가 다시 이부(吏部)상서로 가증(加贈)하였다. 시호는 효숙(孝肅)이다.
저서로 포효숙주의(包孝肅奏議), 포증집(包拯集), 포효숙공주상의(包孝肅公奏商議) 등이 남아 있다.
4.관련 작품
남송(南宋)과 금(金)나라 때부터 그를 주인공으로 한 문학작품이 등장하였고, 명나라 때는 수백 권으로 된 소설화본 포공안(包公案), 포룡도판백가공안(包龍圖判百家公案) 등이, 청나라 때는 용도공안(龍圖公案), 삼협오의(三俠五義), 칠협오의(七俠五義) 등의 장편소설이 있다. 원나라 잡극(雜劇)에도 자주 등장한다.
뿐만 아니라 사후에는 중국 무속에서 신으로도 숭배되며, 사후 지옥 중 5번째 지옥을 주관하는 심판관이 되었다는 전설도 있다.
1879년에 작가 석옥곤이 '포공안', '용도공안'을 참고하여 120회본으로 축약한 '삼협오의'는 혼탁한 청나라 말기의 정세에 유행하면서 대중화 되었는데, 쉬운 문자에 책 중간 중간 그림을 삽입하는 등의 기법을 활용하여 일반 시민들이 쉽게 알아볼 수 있었다고 한다.
1900년대부터는 청나라, 중화민국의 라디오와 텔레비전 드라마로 방영되기 시작하여 이후 여러 번 드라마, 영화, 연극화 되었다.
한국에는 1993년작 드라마 '판관 포청천'이 소개됨으로써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5.관련 사료와 기록
포청천의 일생에 관해서는 송사 포승열전에 잘 기록되어 있다.
영화나 TV를 통해서 본 포청천은 하얀 이빨에 검은 얼굴을 하고 있는데, 이는 사실과 다르다.
포서원기(包書院記)라는 기록을 보면, '남아 있는 초상화를 보면 점잖고 단정한 모습으로 보통 사람과 다를 바가 없었다.'라고 되어 있다.
포청천의 신상에 관해서도 이견이 있다.
족보에 따르면 그는 72세까지 살았는데, 송사에는 64세로 기록되어 있다.
또 족보에는 28세로 요절한 숙덕(淑德) 부인으로 불린 이씨를 아내로 맞이했다고 되어 있는 반면, 송사에는 동(董)씨를 부인으로 맞이했다고 되어 있다.
먼저 이씨와 혼인한 후 이씨가 일찍 세상을 뜨자 다시 동씨와 재혼한 것으로 판단한다.
포억(包繶)이라는 아들이 하나 있었는데 동씨 소생이다. 포억은 담주(潭州)에서 통판(通判) 벼슬을 하기도 했는데 20대에 역시 요절했다.
포억도 아내와 아들 하나를 남겼는데, 이 아들 역시 요절하자, 포청천이 며느리에게 늘 재혼하라고 권유했다고 한다.
그때마다 며느리 최씨는 “아버님께서는 천하가 다 아는 명공이신데 제가 어찌 가문을 욕되게 하겠습니까? 살아서는 포씨 집안의 며느리로 죽어서는 포씨 집안의 귀신이 될 것입니다.”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이런저런 사료로 보아 오늘날 포씨 집안은 포청천의 직계 후손이 아니라 친척일 것으로 본다.
6.관련 유적
1) 개봉부대당(開封府大堂)
개봉부는 북송대의 천하 제1관청으로 알려져 있다. 재건한 개봉부는 카이펑시 포공동호(包公東湖)의 북안에 위치하며 건평 1400평방미터로 기세가 웅대하여 장관을 이룬다.
포공사(包公祠)와 마주해 있는 개봉부는 벽파가 출렁이는 산쯔호를 배경으로 하여 동쪽에는 관청, 서쪽에는 사당, 누각과 푸른 물이 어우러진 장관을 보이고 있다.
북송의 건축방식으로 구축된 개봉부는 정청(正廳(大堂)), 의사청(議事廳), 매화당(梅花堂)을 축으로 하여 천경관(天慶觀), 명례원(明禮院), 잠용궁(潛龍宮), 청심루(清心樓), 뇌옥(牢獄), 영무루(英武樓), 영빈관(寅賓館) 등 50여 채의 크고 작은 전당을 배치해 놓았다.
중국 북송 관청문화의 전시와 포공정신의 고양을 주 내용으로 하는 테마공원으로 되어 있다.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후 청심루에 포청천의 대형 동상이 세워졌다.
2) 개봉포공사(開封包公祠)
1989년 개방된 후 중국의 중요한 역사 문화의 하나가 되고 있는 포공 사당 안에는 청동으로 만든 포공상이 있는데 높이는 약 50cm 정도이다.
또 벽에는 포공의 정치적 업적을 표현한 벽화가 있고, 사당 옆에는 포공이 법을 집행하는 모습을 진열한 방이 있다.
포공사당은 대전(大殿), 이전(二殿), 동서배전(東西配殿), 반벽복도(半壁廊), 비정(碑亭)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풍격이 예스럽고 장엄하고도 숙연하다. 동쪽의 영석원은 석각과 수상정자로 되어 있는데 매우 우아하다.
사내에는 포공 조각상, 포공의 단안밀랍상(斷案蠟像), 개봉부 제명기비(題名記碑), 포공정사연의(正史演義)등 문물사료가 전시되어 있다.
3) 합비포하(合肥包河)
여주성(廬州城) 남쪽에 성을 둘러싼 강이 있는데, 전하는 바에 따르면 포공이 어릴 때 이 강변에서 즐겨 놀았다고 한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이 지역에서는 이 강을 포하(包河)라고 이름 붙였다.
사람들은 포하에 연(藕)을 심고 물고기를 길렀는데 포하의 연뿌리는 사각사각하고 부드러우면서도 사(絲)가 없었다고 한다.
또 포하의 붕어는 등이 검은색이었다.
안후이성 허페이에서는 1990년 포청천 탄생 990년을 기념하는 각종 행사를 벌였다. 중국 정부와 전문 학자들이 이 기념회에 참가했고, 중국, 프랑스, 캐나다 3국이 합작하여 '포공'이란 영화 제작을 협의했다.
허페이의 포공 사당에서 볼 수 있는 포공 석상은 하얀 얼굴에 긴 수염을 하고 야윈 모습이다. 이 포공 사당은 약 8만 평에, 포하(包河) 공원도 그 안에 함께 있다.
사당의 동쪽에는 우물이 하나 있는데, 사람들은 이 우물을 청렴결백을 상징하는 의미로 염천(廉泉)이라 부른다.
공직에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이 우물을 피해 간다고 하는데, 전설에 따르면 탐관오리가 이 우물의 물을 마시면 심한 복통을 일으키지만 청렴한 관리가 마시면 아무 탈이 없다고 한다.
▶️ 包(쌀 포/꾸러미 포)는 ❶회의문자로 勹(포)가 본자(本字), 苞(포)와 통자(通字)이다. 쌀포 몸(勹; 싸다)部는 사람이 몸을 구부리고 있는 모습이고, 巳(사)는 뱃속의 아이를 나타낸다. 뱃속의 아이의 뜻으로 부터 모든 것을 싸는 뜻이 되었다. ❷회의문자로 包자는 '싸다'나 '감싸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包자는 勹(쌀 포)자와 巳(뱀 사)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巳자는 '뱀'이라는 사전적 의미가 있지만, 사실은 태아의 팔과 다리를 생략해 그린 것이다. 그러니 包자는 자궁과 태아를 함께 그린 것으로 해석된다. 包자의 갑골문을 보면 둥그런 원안에 人(사람 인)자가 그려져 있었다. 이것은 자궁에 있는 아이를 표현한 것이다. 그래서 包자의 본래 의미는 '둘러싸다'나 '아이를 배다'였다. 그러나 지금은 단순하게 무언가를 둘러싼다는 뜻으로만 쓰이고 엄마의 뱃속을 뜻할 때는 여기에 肉(고기 육)자가 더해진 胞(태보 포)자가 쓰인다. 그래서 包(포)는 (1)장기짝의 이름의 하나 포자를 새기었는데 한 편에 둘씩 네 개가 있으며, 다른 장기짝을 한 개 넘어서 움직임 (2)촛가지 (3)파오(包) (4)동학(東學)의 교구(敎區) 혹은 집회소. 접(接). 장(帳) (5)일정한 양으로 싼 인삼(人蔘) (6)성(姓)의 하나, 등의 뜻으로 ①싸다 ②감싸다 ③용납(容納)하다 ④너그럽게 받아들이다 ⑤아우르다, 함께 넣다 ⑥아이를 배다 ⑦더부룩하게 나다 ⑧초목(草木)이 무성(茂盛)하다 ⑨꾸러미 ⑩보따리 ⑪푸줏간 ⑫포(꾸러미의 수를 세는 단위) ⑬주머니 ⑭봉지,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머금을 함(含), 에워쌀 위(圍), 묶을 괄(括)이다. 용례로는 어떤 사물이나 현상 가운데 함께 들어 있거나 함께 넣음을 포함(包含), 물건을 싸서 꾸림을 포장(包裝), 물건을 겉으로 드러나지 않게 싸서 간직함을 포장(包藏), 도량이 넓어서 남의 잘못을 이해하여 싸덮어 줌을 포용(包容), 있는 대로 온통 휩쓸어 쌈을 포괄(包括), 도망가지 못하도록 둘러쌈을 포위(包圍), 상대를 허용하여 받아 들임이나 포괄하여 자기편에 가담시킴을 포섭(包攝), 피륙이나 가죽이나 종이 따위로 만든 자루를 포대(包袋), 싸서 가지고 있음을 포유(包有), 어떤 성질이나 뜻을 그 속에 지님을 내포(內包), 자그마하게 포장한 물건을 소포(小包), 거적이나 새끼로 짐을 꾸려 포장함 또는 그렇게 꾸린 짐을 곤포(梱包), 헤엄을 치거나 물에 빠졌을 때 몸이 잘 뜨게 하는 물건을 부포(浮包), 약 따위를 한 봉지 씩 나눠 쌈을 분포(分包), 포장한 짐의 무게를 저울에 다는 일 또는 그 짐을 칭포(稱包), 남을 해칠 마음을 품음을 이르는 말을 포장화심(包藏禍心), 생활에 걱정이 없는 사람을 이르는 말을 팔포대상(八包大商) 등에 쓰인다.
▶️ 靑(푸를 청)은 ❶형성문자이나 회의문자로 보는 견해도 있다. 青(청)의 본자(本字)이다. 음(音)을 나타내는 生(생, 청)과 丹(단)이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生(생)은 새싹, 丹(단; 물감을 들이는 원료(原料)인 광물)은 돌을 뜻한다. 붉은 돌(丹) 틈에서 피어나는 새싹(生)은 더욱 푸르러 보인다는 뜻이 합(合)하여 '푸르다'를 뜻한다. ❷회의문자로 靑자는 '푸르다'나 '젊다', '고요하다'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靑자는 生(날 생)자와 井(우물 정)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生자는 푸른 싹이 자라는 모습을 그린 것으로 '싱싱하다'나 '나다'는 뜻이 있다. 靑자는 이렇게 싱싱함을 뜻하는 生자에 井자가 결합한 것으로 우물과 초목처럼 맑고 푸름을 뜻한다. 그래서 靑자가 부수로 쓰일 때는 '푸르다'는 뜻을 전달하게 된다. 그러다 보니 靑자는 푸름에 비유해 '젊다'는 뜻으로 쓰이기도 한다. 그래서 靑(청)은 ①푸르다 ②젊다 ③고요하다(조용하고 잠잠하다), 조용하다 ④푸른빛 ⑤대껍질(대나무의 순(筍)을 싸고 있는 껍질) ⑥봄 ⑦동쪽 ⑧땅의 이름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푸를 창(蒼), 푸를 벽(碧), 푸를 록(綠), 푸를 취(翠)이다. 용례로는 만물이 푸른 봄철이라는 뜻으로 십 대 후반에서 이십 대에 걸치는 인생의 젊은 나이 또는 그 시절을 청춘(靑春), 청춘기에 있는 젊은 사람 특히 남자를 일컬음을 청년(靑年), 푸른 하늘을 청천(靑天), 나무가 무성하여 푸른 산을 청산(靑山), 싱싱하게 푸름을 청청(靑靑), 신선한 과실과 채소를 통틀어 이르는 말을 청과(靑果), 푸른 빛을 청색(靑色), 푸른 빛깔의 구름을 청운(靑雲), 청기와로 푸른 빛깔의 매우 단단한 기와를 청와(靑瓦), 푸른 산봉우리를 청봉(靑峰), 푸른 이끼가 난 무덤을 청총(靑冢), 참깨의 잎을 청양(靑陽), 싱싱한 푸른 풀을 청초(靑草), 푸른 귤의 껍질을 청피(靑皮), 창기의 집을 청루(靑樓), 푸른 하늘을 청명(靑冥), 푸른 치마를 청상(靑裳), 남을 기쁜 마음으로 대하는 뜻이 드러난 눈초리를 청안(靑眼), 바늘로 살갗을 찔러서 먹물 따위를 들인 글씨나 그림이나 무늬 또는 그렇게 만든 몸을 자청(刺靑), 봄에 파랗게 난 풀을 밟고 거닒을 답청(踏靑), 늘 푸름을 상청(常靑), 구리에 녹이 나서 생기는 푸른 빛깔을 벽청(碧靑), 흰 바탕에 연한 푸른빛의 잿물을 올린 도자기 또는 그러한 빛을 영청(影靑), 검은빛을 띤 푸른 빛을 아청(鴉靑), 역사책 또는 기록을 한청(汗靑), 청운의 뜻이라는 말로 남보다 훌륭하게 출세할 뜻을 갖고 있는 마음을 일컫는 말을 청운지지(靑雲之志), 푸른 색이 쪽에서 나왔으나 쪽보다 더 푸르다는 뜻으로 제자가 스승보다 나은 것을 비유하는 말을 청출어람(靑出於藍), 맑게 갠 하늘에서 갑자기 떨어지는 벼락이라는 뜻으로 돌발적인 사태나 사변을 이르는 말을 청천벽력(靑天霹靂), 푸른 산과 흐르는 물이라는 뜻으로 말을 거침없이 잘함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청산유수(靑山流水), 전도가 유망한 젊은 사내들을 일컫는 말을 청년자제(靑年子弟), 푸른 산과 푸른 물이라는 뜻으로 산골짜기에 흐르는 맑은 물을 이르는 말을 청산녹수(靑山綠水), 입신출세를 위한 원대한 포부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을 청운만리(靑雲萬里), 나이가 젊어서 남편을 여읜 여자를 일컫는 말을 청상과부(靑孀寡婦) 등에 쓰인다.
▶️ 天(하늘 천)은 ❶회의문자로 사람이 서 있는 모양(大)과 그 위로 끝없이 펼쳐져 있는 하늘(一)의 뜻을 합(合)한 글자로 하늘을 뜻한다. ❷회의문자로 天자는 ‘하늘’이나 ‘하느님’, ‘천자’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天자는 大(큰 대)자와 一(한 일)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그런데 갑골문에 나온 天자를 보면 大자 위로 동그란 모양이 그려져 있었다. 이것은 사람의 머리 위에 하늘이 있다는 뜻을 표현한 것이다. 고대 중국인들은 하늘은 동그랗고 땅은 네모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天자는 사람의 머리 위에 동그라미를 그려 ‘하늘’을 뜻했었지만 소전에서는 단순히 획을 하나 그은 것으로 바뀌게 되었다. 그래서 天(천)은 (1)하늘 (2)범 인도(印度)에서 모든 신을 통들어 이르는 말. 천지 만물을 주재 하는 사람, 곧 조물주(造物主)나 상제(上帝) 등 (3)인간세계보다 훨씬 나은 과보(果報)를 받는 좋은 곳. 곧 욕계친(欲界責), 색계친(色界天), 무색계천(無色界天) 등 (4)성(姓)의 하나 등의 뜻으로 ①하늘 ②하느님 ③임금, 제왕(帝王), 천자(天子) ④자연(自然) ⑤천체(天體), 천체(天體)의 운행(運行) ⑥성질(性質), 타고난 천성(天性) ⑦운명(運命) ⑧의지(意志) ⑨아버지, 남편(男便) ⑩형벌(刑罰)의 이름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하늘 건(乾), 하늘 민(旻), 하늘 호(昊), 하늘 궁(穹),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흙 토(土), 땅 지(地), 땅 곤(坤), 흙덩이 양(壤)이다. 용례로는 타고난 수명을 천수(天壽), 하늘과 땅 또는 온 세상이나 대단히 많음을 천지(天地), 타고난 수명 또는 하늘의 명령을 천명(天命), 사람의 힘을 가하지 않은 상태를 천연(天然), 하늘을 대신하여 천하를 다스리는 이 곧 황제나 하느님의 아들을 천자(天子), 우주에 존재하는 물체의 총칭을 천체(天體), 부자나 형제 사이의 마땅히 지켜야 할 떳떳한 도리를 천륜(天倫), 타고난 성품을 천성(天性), 하늘 아래의 온 세상을 천하(天下), 천체에서 일어나는 온갖 현상을 천문(天文), 하늘과 땅을 천양(天壤), 선천적으로 타고난 뛰어난 재주를 천재(天才), 하늘에 나타난 조짐을 천기(天氣), 하늘이 정한 운수를 천운(天運), 자연 현상으로 일어나는 재난을 천재(天災), 하늘이 높고 말이 살찐다는 천고마비(天高馬肥), 하늘과 땅 사이와 같이 엄청난 차이를 천양지차(天壤之差), 선녀의 옷에는 바느질한 자리가 없다는 천의무봉(天衣無縫), 세상에 뛰어난 미인이라는 천하일색(天下一色)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