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연방의 군주 엘리자베스 2세 여왕 ◈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이 서거하면서 전세계적인 추모 열기가 고조되고 있어요 그런데 이번에 서거한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은 한국과 깊은 인연을 가지고 있지요 1999년 4월 여왕은 남편 필립공과 함께 3박 4일 일정으로 한국을 방문했어요 앞서 1992년 찰스 왕세자 부부가 한국을 찾은 뒤 7년만에 군주가 방한한 것이지요 알려진대로 영국 왕실은 수년전부터 여왕의 방문국 일정을 세밀하게 조율하지요 외국 순방을 연2회로 제한하고 있기 때문인데 그만큼 여왕의 해외순방에는 당사국 뿐 아니라 세계의 시선이 집중되고 있지요 한국 방문 때도 마찬가지였어요 당시 여왕 방한의 하이라이트는 양반·유교 문화의 본향인 경북 안동 하회마을을 찾는 것이었지요 방한 사흘째인 4월 21일 안동 하회마을에 도착했을 때 이의근 당시 경북도지사, 정동호 당시 안동시장을 비롯하여 무려 1만여명의 인파가 몰려들어 여왕을 반겼어요 여왕은 풍산류씨 14대 종손 류영하씨 부부로부터 합죽선을 선물받고 김치와고추장 담그는 모습을 지켜봤지요 특히 내실로 들어갈때 직접 신발을 벗었는데 이는 여왕의 일상에서 좀처럼 볼수 없었던 모습으로 방문국의 전통을 존중하는 행동으로 해석되면서 큰 화제가 됐어요 하회마을 담연재에서는 하회탈춤보존회원들의 하회별신굿탈놀이, 양반, 선비마당 등의 문화공연이 이어졌지요 특히 이날 안동방문에서는 이날이 여왕의 73번째 맞는 생일날이라 생일상이 차려졌어요 임금님 수랏상에만 올리던 음식인 문어오림과 매화나무로 만든 꽃나무떡 등이 생일상에 올랐고 불사조 장식 화관도 선물받았지요 이날 생일상은 안동소주 기능보유자인 전통음식연구회 회장 조옥화 여사가 준비했는데 다과 은행 곶감 약과 청과 등이 생일상에 올랐어요 여왕은 이후 서후면 봉정사로 이동해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인 국보 극락전을 둘러본 뒤 “조용한 산사 봉정사에서 한국의 봄을 맞다”라는 글귀가 쓰여진 방명록에 방명을 하고 청기와에도 서명을 했지요 당시 여왕은 “대웅전의 부처님은 세분인데 왜 극락전은 한 분의 부처님밖에 없느냐”고 물었고 “아미타불은 원래 혼자 계시는 것”이라고 성묵스님의 설명에 고개를 끄덕였어요 여왕은 일념만년거(一念萬年去 : 좋은생각은 만년을 간다)라는 족자를 받았고 정동호 안동시장에게서는 200년 묵은 오리나무로 제작한 “양반탈”도 선물받았지요 이로인해 경북 안동은 가장 한국적인 문화를 체험할수 있는 곳으로 하회마을은 유명세를 탔어요 이후 여왕의 안동방문은 국내에서 두고두고 큰 화제가 되면서 문화상품으로도 활용됐지요 특히 직접 신발을 벗는 소탈한 모습으로 여왕의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줬던 모습은 두고두고 화제가 되었어요 그런 그가 2022년 9월 8일 스코틀랜드 밸모럴성에서 96세를 일기로 서거 하였지요 엘리자베스 2세는 영국의 여왕으로 영국을 포함한 16개국(영연방 왕국)과 기타 국외 영토와 보호령의 군주 이지요 본명은 엘리자베스 알렉산드라 메리이며 호칭은 ‘영국 연방의 엘리자베스 2세 여왕 폐하 이지요 1952년 2월 사망한 부왕 조지 6세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으며 70년 동안 영국을 통치하였어요 식민 지배를 경험한 한국인의 시각에서 보면 영국과 옛 식민지 국가들로 구성된 ‘영연방(英聯邦)’의 존재는 이해하기 힘들지요 자존심이 있다면 식민지 잔재를 하나라도 더 지워버려야 정상 이지요 식민지하면 다 그렇듯 영국의 식민지에서도 아픈 기억이 없을리 없어요 인종차별은 기본이고 인도와 케냐처럼 학살을 겪은 나라도 있지요 그런데 어쩐 일인지 대부분의 옛 식민지 나라가 독립 후에도 연방을 유지하면서 우호 관계를 이어가고 있어요 심지어 모잠비크나 르완다처럼 영국이 아닌 다른 제국의 식민지였던 나라도 스스로 영연방에 들어왔지요 지금도 영국 국왕은 여전히 연방의 원수이지요 56개 연방국 중 식민지 역사의 맥락이 다른 캐나다·호주·뉴질랜드와 카리브해 국가 등 14개 나라는 지금도 영국 국왕을 자국의 왕으로 섬기고 있어요
1961년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신생 독립국으로서 영연방을 벗어나 소련에 다가가는 가나를 방문했는데 여왕은 은크루마 대통령에게 댄스를 제의했고, 과거 군주와 신민이었던 두 사람의 댄스는 세계의 화제가 됐어요
영연방과 엘리자베스 2세의 삶을 상징하는 장면 중 하나가 1961년 아프리카 가나 방문 때의 사진이지요 서른다섯살 엘리자베스 여왕이 가나의 초대 대통령과 얼싸안고 춤을 추고 있어요 흑백의 대조가 선명하지요 16년 전 남아프리카를 방문한 여왕 아버지 조지 6세는 식민 당국의 인종차별 때문에 백인하고만 악수를 하였어요 당시 남아프리카 순방에 동행한 엘리자베스는 “영국과 영연방을 위해 일생을 바치겠다”고 다짐 했다 하지요 그 결과 영국은 여왕의 방문에 힘입어 독립 직후 소련으로 기울던 제3세계 아프리카 국가들을 연방에 묶어놨어요 물론 이익이 뒷받침한 이유가 컸지요 2차 대전 직후 영국은 쇠락하고 있었으나 유럽 최대 공업국이었고 세계 무역의 10%를 찾이하고 있었어요 갓 독립한 나라들은 연방국에 부여된 무역, 이주, 노동 등 특권이 필요했지요 일제에서 해방된 한국처럼 신흥 패권국인 미국의 전폭적인 지원이 없었기 때문에 옛 종주국 영국의 도움이 절실했어요 1973년 영국이 유럽공동체에 들어가면서 특권을 폐지했을 때 가입국이 “영국이 우리를 버렸다”며 아우성친 것도 이 때문이었지요 영국 왕실의 구심력이 없었다면 특권이 사라진 이후 영연방도 서서히 해체의 길을 걸었을 것이지요 선량한 식민 지배란 없다 했어요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이던 영국이야말로 미국, 아프리카, 중국 등 세계 전역에서 수백년 동안 수많은 악행을 저질렀지요 그러나 식민 지배에 대해 사과를 단 한번도 한적이 없어요 그럼에도 영국은 식민 지배의 역사가 수십년에 불과한 일본보다도 피지배 국가들로부터 비난받지 않아요 오히려 영연방에 구속되기를 스스로 바라고 있어요 많은 나라가 영어를 공용어로 사용하고 제국 영국이 이식한 크리켓을 국민 스포츠로 즐기지요 몇몇 나라 국민은 영국 국왕의 얼굴이 실린 지폐를 지금도 사용하고 있어요 많은 이유가 있지만 근본적으로 영국이란 나라의 그릇이 크기 때문이지요 지난 70년 동안 그 그릇을 키운 존재가 여왕 엘리자베스 2세 였어요 정말 대단한 여왕이었지요 우리나라로 말하면 이승만 건국 대통령이 6.25 전쟁을 치르고 있을때인 1952년2월6일 여왕에 등극하여 오늘에 이르기 까지 70여년간 굴곡의 역사를 바라본 산 증인이었지요 그런 위대한 여왕이 오늘 영면에 든다 하네요 삼가 여왕의 명복을 빕니다
* 언제나 변함없는 녹림처사(일송) / 동촌 재 편집 *-
▲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차남 앤드루 왕자가 경북 안동시 풍천면 하회마을을 찾아 담연재에서 엘리자베스 여왕의 생일상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어요. 2019.5.14
▲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1999년 방한 당시 안동 봉정사를 방문해 스님들과 대화하고 있는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