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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 야호♬ (lil_ili@hanmail.net)
친정 ★ 야호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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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을 빌려주세요!
Please, Lend me your name. <37>
“이게 어떻게 된 거야?”
학교에 오자마자 가방도 내려놓지 못한 채 사름이 책상에 신문부터 내려놨다. 앉은 자세 고대로 턱만 뒤로 젖힌 채 세상 모르게
자고 있던 사름이는 내가 책상에 신문을 쾅 소리가 나도록 내려놓자 깜짝 놀라며 눈을 떴다.
“으악!”
비몽사몽한 얼굴로 날 쳐다보던 사름이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깜짝 놀라며 비명을 내질렀다.
그리고는 사름이 답지 않게 자기 비명소리에 다시 놀라 뒤로 벌러덩 자빠지고 말았다.
의자에 꼬리뼈를 정통으로 부딪힌 듯 사름이가 ‘악!’하고 다시 비명을 내질렀다.
“사름아 괜찮아?”
“응, 괜찮아. 아, 아야. 왜 아침부터 코 앞에 서있는거야! 한이 너 때문에 내가 제명에 못죽겠어.”
“아니, 난 그냥 너무 궁금해서……이거 봤어?”
뒷머리를 긁적거리며 책상 위에 내려놓은 신문을 다시 집었다. 사름이를 향해 내밀자 엉거주춤한 자세로 엉덩이를 탁탁 털며
자리에서 일어난 사름이가 고개를 쭉 내밀어 신문을 천천히 읽었다.
사름이가 신문을 읽는 시간이 마치 백년처럼 길게 느껴졌다.
신문을 들지 않은 한 손의 손톱을 나도 모르게 깨물며 사름이를 쳐다보자 이내 사름이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이거 뭐야?”
그리고 내뱉어진 한마디는 혼이 쏙 빠져나갈만큼 어이가 없어 입을 뜨악 벌리고 사름이를 쳐다보아야만 했다.
손사름, 나랑 장난하냐?
“한채수씨가 내 형이냐? 니 형이지.”
“나 우리 형 결혼한다는 소식 아직 못들었는데. 요즘 바쁘더니 결혼 준비하느라고 그런거래?”
“모른다니까. 그리고 제대로 읽은거야? 김하란이 결혼하는거라구. 한채수가 아니라.”
“그러니까 그 상대가 당연히 우리……”
“아니야.”
신문을 제대로 읽지 않은 듯 심드렁하게 대답하는 사름이의 말을 싹둑 잘라버렸다.
아니라는 내 대답에 사름이도 꽤 놀란 듯 당황한 표정으로 날 쳐다보며 ‘아니야?’라고 되물었다.
고개를 끄덕거리며 사름이를 쳐다보자 녀석은 이내 내 손에 들려있던 신문을 낚아채 다시 천천히 읽기 시작했다.
“재벌 2세? 우리 형이 재벌 2세는 아닌데. 요즘엔 조폭도 재벌로 쳐주냐?”
“아, 글쎄 그러니까 그게 한채수씨가 아니란 소리잖아! 너 진짜 아무것도 몰라?”
어제 연예뉴스 프로그램에서 떠들어대는 김하란의 결혼 소식에 한채수인갑다 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오늘 아침 학교 오는 길에 우연찮게 읽게 된 이 기사에 말 그대로 뒤로 넘어갈 뻔 했다.
김하란이 결혼을 한다. 그런데 상대가 한채수가 아니다. 연애 기간만 3년이라고 나와있는데도!
“루머 아니야?”
“아냐. 어제 김하란이 연예프로 나와서 인터뷰했단 말야.”
날 앞에 두고 한채수를 사랑한다며 울던 김하란은 분명 진심이었다. 그런데도 어떻게 이런 기사가 나올 수 있단 말인가.
내가 꿈을 꾸나 싶어 볼을 살짝 꼬집어보니 아프다.
꿈은 아니란 소린데…….
힐끔 사름이를 쳐다보자 신문을 천천히 정독하는 사름이의 표정도 꽤나 당혹스러워 보였다.
“사름이 너도 모르는 거면 정말 한채수씨랑 결혼하는 거 아닌가보네. 아무리 바빠도 가족들한테 결혼 얘기 안하고 결혼하는
사람이 이 세상에 어디있겠냐?”
“응. 우리 형은 아닐거야. 집에선 결혼에 기역(ㄱ)자도 안나왔어.”
김하란은 한채수와 결혼하겠다고 했었는 걸. 먼저 청혼하진 않겠지만 결혼하자고 하면 그러자고 대답할 거라면서…….
머리속이 복잡하게 뒤엉켜 베베꼬인 것 같다.
사름이가 다시 책상 위에 내려놓는 신문을 물끄러미 쳐다보자 김하란의 사진이 1면에 크게 담겨있었다.
살며시 웃는 얼굴을 한 김하란을 내려다보다가 괜히 억울한 마음에 한대 툭 쳤다.
이게 뭐야. 다른 사람하고 3년이나 연애하면서 한채수랑 양다리 걸친거였으면 애초에 날 만나지 말던가.
내가 누구때문에 한채수 고백을 거절했는데……이씨, 도로 물러내!
“근데 하나도 안 행복해 보이네.”
“응?”
“이 사진 말야. 결혼하는 사람이 왜이렇게 표정이 어둡냐.”
사름이는 심드렁하게 말하고는 신문을 내 손에 쥐어주고 다시 책상 위에 엎드려버렸다.
니네 형의 여자였던 사람이 결혼을 한다는데 어쩜 이렇게 태평할 수 있는 거니. 존경스럽기까지 하다.
손에 쥐어진 신문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 신문에 인쇄되어 있는 김하란의 사진을 말이다.
내가 보기엔 행복해보이는데…….
“손, 이게 뭐가 안 행복해 보이냐? 내가 보기엔 행복한 얼굴인데.”
“넌 아직 어려서 뭘 모르는 거라 그래. 그리고 한이야 다리 떨지마. 복이 달아나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린다.”
엎드려 있던 사름이가 내 목소리에 고개를 들더니 내 다리를 쿡 찔렀다.
나도 모르게 다리를 떨고 있었나보다. 앉아서 떠는 다리도 추하지만 서서 떠는 다리는 진짜 추한데.
사름이가 쿡 찔른 내 다리를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엄청 초조하긴 초조한 모양이다.
“붕대 언제 풀러?”
“수리 가는 날.”
“아…….”
떨고 있지 않던 다리, 그러니까 붕대가 칭칭 감긴 내 다리를 콕콕 찔러보던 사름이가 슬그머니 손을 치운다.
다시 엎드릴 심산인지 책상을 툭툭 털던 사름이는 뒷문이 열리는 소리에 몸을 발딱 일으켜세웠다.
“야! 이거 뭐야? 나멍충, 니네 사장 결혼하냐? 아니, 아니구나. 손, 니네 형 결혼하냐?”
뒷문이 부서지진 않을까 싶을 정도로 세게 열린다 싶더니 수리가 거친 숨을 몰아쉬며 모습을 드러냈다.
놀란 표정으로 등장한 수리는 반 아이들의 시선이 모두 자신에게 향해있다는 것에 아랑곳하지 않고 단박에 앞자리까지
걸어왔다.
그리고는 나와 사름이 앞에 김하란이 1면에 인쇄되어있는 신문을 내밀며 물었다.
“뭐야? 니들도 지금 알았냐? 앙? 이거 뭐냐니까? 왜 둘이 서로 쳐다보면서 쳐웃냐? 앙? 뭐냐고! 뭔데!”
나랑 사름이는 그저 마주보며 웃을 수밖에 없었다.
수리가 가기 전에 큰 웃음을 던져주려고 용을 쓰는구나 싶은 마음에 수리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수리야.”
“엉? 엉! 뭔데! 뭐야? 나도 알고 싶어! 뭔데!”
“너……”
“나?”
“뒷북 쳤어.”
푸하하 하고 터진 사름이의 웃음 소리와 함께 돌아온 것은 수리의 화려한 하이킥으로 그덕에 내 엉덩이만 욱신욱신.
윽.
*
“아직 소식을 못들었나?”
사무실 건물 앞에 사무실이 있는 위치를 올려다보자 환한 불빛이 바깥으로 새어나오고 있었다.
신문을 꼬박꼬박 읽는 한채수가 김하란의 결혼 소식을 아직까지 못들었을 리 없다.
내가 내뱉고도 어이없는 발언에 고개를 설레설레 가로저으며 다시 사무실을 올려다보았다.
김하란이 결혼을 하게 됐으니 나한테 연락이라도 좀 주지 않을까 싶었는데 한채수는 하루종일 절!대!로! 연락하지 않았다.
하긴 내가 거절했으니 뭐라고 탓할 입장은 아니다만…….
“으으, 궁금해!”
머리를 쥐어뜯으며 사무실을 올려보다가 한숨을 에휴 하고 내쉬었다.
야자까지 땡땡이치고 냅다 달려온 사무실인데 막상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이렇게 어려울 줄이야.
야자를 빼먹고 한채수를 만나러 가겠다는 나에게 사름이와 수리는 경악스러운 표정으로 ‘그렇게 진실이 궁금해?’라며 물었다.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였지만 사실 진실이 궁금하다기보단 한채수의 상태가 궁금했을 뿐이다.
정말 김하란이 결혼을 해도 괜찮은건지, 날 아직도 좋아하고 있는건지……뭐 그런거 말이다.
“……하기로 됐습니다. 나머지는 잘 처리됐으니 따로 신경쓰실 일은 없으실겁니다.”
“그래.”
건물 안에서 뚜벅거리는 걸음소리가 들린다 싶어 나도 모르게 건물 밖의 기둥으로 숨어버렸다.
힐끔 고개를 돌려 쳐다보니 한채수와 달수 형님이었다.
어, 어떡하지.
“형님, 요즘 잠은 좀 주무십니까? 피곤해보이십니다.”
달수 형님의 목소리가 나즈막히 들렸다. 한채수가 무어라 대답하는 것 같았는데 그 목소리는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이내 한채수가 담배를 피우기라도 한 듯 담배 특유의 향이 감각을 자극했다.
말초신경까지 꼿꼿하게 세운 채 기둥 뒤에 숨을 죽이고 서서 숨소리를 낮췄다.
근데, 내가 잘못한 것도 없는데 왜 숨어있는거지? 그냥 나갈까? 그래 나가자. 우연히 지나간 척 하면…….
“형님! 정말 괜찮으신겁니까?”
나가려다말고 기둥 뒤로 냅다 숨었다. 어정쩡하게 뻗었던 발을 다시 기둥 뒤에 숨기고 나자 등에서 식은 땀이 흘렀다.
달수 형님의 깜짝 놀란 목소리에 나까지 놀라버렸다.
뭐, 뭐야? 뭐지?
몸을 돌려 쳐다보면 좋은데 그랬다간 바로 들킬 것 같아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애꿎은 손톱만 깨물어댔다.
“괜찮아. 잠깐 어지러워서 휘청거린 것 뿐이다. 들어가서 쉬면 나아지겠지.”
“제가 오피스텔까지 모셔다 드리겠습니다.”
“됐다. 오피스텔 들렀다 가면 늦어. 바로 가봐.”
“하지만……”
“가보래도.”
단호한 한채수 목소리에 달수 형님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 그림자로 보였다. 그림자라도 보여서 다행이다.
것보다 한채수 정말 괜찮은걸까? 쓰러질뻔한 것일까? 몸이 안좋은건가? 아픈 건 아니겠지?
달수 형님이 빠른 걸음으로 어디론가 향하는 것이 희미하게 보였다.
조금씩조금씩 작아지며 멀어지는 달수 형님을 바라보다가 다시 고개를 숙여 그림자를 확인했다.
한채수는 아직 그 자리에 서서 담배를 피우는 듯 그림자가 이동하지 않았다.
그냥 지금 기둥에서 벗어나 ‘한채수씨!’하고 불러버릴까? 그럼 놀랄까? 반겨줄까? 싫어하진 않겠지?
이런저런 생각에 우물쭈물거리고 있는데 한채수의 그림자가 살짝 움직였다.
“난 괜찮다.”
담배를 버린 듯 담배 냄새가 옅어졌다 싶어 가려나보다 하고 있는데 느닷없이 한채수가 입을 열었다.
뜬금없이 들린 한채수 목소리에 다시 숨소리를 낮췄다.
스스로에게 한 말이라기엔 뉘앙스가 꼭 누군가와 대화하듯 내뱉어졌는데……?
한채수의 그림자가 천천히 기둥쪽으로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깜짝 놀라 온 몸에 힘이 들어갔다.
심장이 쿵쾅쿵쾅 거리며 바깥으로 튀어나올 것처럼 뛰어댔다.
점점 가까워지는 그림자에 질끈 두 눈을 감아버린 순간이었다.
“그러니 너도 괜찮을거라 생각할거다.”
한채수는 결코 기둥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그는 기둥의 아주 가까운 곳까지 다가와 나즈막히 말을 내뱉고는 다시 몸을 돌려 건물 옆에 세워둔 자신의 차로 향했다.
천천히 멀어지는 한채수의 그림자를 바라보다가 다리에 힘이 풀려 그대로 주저앉고 말았다.
붕대를 감은 다리 덕에 주저앉은 자세가 아주 우스꽝스러웠지만 그런 것은 하나도 중요하지 않았다.
“다……알고 있었어?”
중요한 것은 한채수가 이미 내가 기둥 뒤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날 향해 덤덤하게 내뱉어진 그의 목소리가 귓가에 남아 메아리치듯 들렸다.
희뿌옇게 차오르는 시야 때문에 손등으로 눈가를 벅벅 닦으며 고개를 돌려 한채수의 차를 바라보았다.
시동이 걸린 채 숨을 고르듯 출발하지 않던 차는 내가 고개를 돌리자 빠른 속도로 출발해버렸다.
“어떡하지……”
바닥의 찬 기운이 느껴졌다.
손등으로 눈가를 문질러도 자꾸자꾸 희뿌옇게 시야가 변해서 화가 날 지경이었다.
결국 두 손으로 눈가를 가렸다.
괜찮을거라 생각한다는 한채수의 목소리가 자꾸자꾸 귓가에 아른거렸다.
손 뻗으면 잡힐 듯한 거리에 있었는데, 나는 또다시 그를 붙잡지 못한 것이다.
“한채수씨……나 어떻게 해요.”
심장이 쿵쾅쿵쾅 누군가 흔들어놓기라도 한 듯 요란하게 뛰어댔다.
두 눈을 가린 채 나즈막히 한채수를 불러본다.
“나, 안 괜찮을 것 같아.”
당신이 보고싶어 죽을 것 같아.
기둥 뒤에 숨어있던 내가 아주아주 얄미워 미칠 것 같아.
그 순간만큼은 기둥 바깥으로 나서지 못한 내가 세상에서 가장 바보처럼 느껴졌다. 수리 말대로 나는 정말 나멍충인가보다.
*
“으아, 니가 미쳤지! 미쳤어! 어차피 들켰으면 바로 붙잡았어야지 왜 안했어! 나가 죽어라, 나가 죽어. 아, 울고 싶다.”
엄마 포장마차로 향하는 길에 정신나간 사람처럼 혼자 중얼거리며 자기 합리화를 했다가 다시 자괴감에 빠지기를 몇 번
반복했다.
엄마 포장마차가 저 멀리 희미하게 보일 쯤 익숙한 사람이 넉살 좋게 웃으며 엄마를 돕고 있는 것이 보였다.
배달과 청소를 돕는 듯 부지런히 움직이는 사람의 형체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그 자리에 멈춰섰다.
물끄러미 시선을 옮기지 않고 바라보고 있으니 내 시선을 느낀 듯 그 형체가 천천히 고개를 돌려 날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놀라워하는 기색 없이 손을 흔들었다.
“한이야!”
“달수 형님.”
“벌써 와? 너 야자 땡땡이 쳤구나? 다리는 괜찮고?”
“…….”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난 분명 달수 형님이 일을 도와주러 안와도 된다고 한채수에게 말했는데.
복잡한 표정으로 달수 형님을 바라보고 있으니 포장마차에 있던 달수 형님이 결국 걸음을 옮겨 내 쪽으로 다가왔다.
이것저것 물어오는 달수 형님에게 아무것도 대답해주지 못했다.
설마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자꾸 달수 형님에게 늦으니 어서 가보라고 재촉하던 한채수가 떠올라서……물어야겠다.
“한채수씨가 시켰어요?”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간만에 만났다고 히히 웃던 달수 형님은 내 물음에 별다른 놀라움이나 당혹스러움없이 고개를
두어번정도 끄덕거렸다.
“형님이 시켰지만 귀찮거나 하기 싫었으면 안했을거야. 형님도 강요 안하셨을거고. 너가 나 안와도 된다고 했다며?”
“그건…….”
“채수 형님이 그러시더라. 니가 말은 그렇게 해도 다리 다쳐서 일 돕는 거 쉽지 않을거라고. 다리 나을 때까지만이라도 내가
가서 일 도왔으면 좋겠다고.”
“…….”
“게다가 어머님도 그때 일로 많이 놀라셨을거야. 그러니까 누구라도 듬직한 사람이 하나 도와야지.”
도대체 한채수의 속을 알 수가 없다.
내 얼굴은 확인도 안하고 괜찮을거라 생각하겠다며 휙 가버린 주제에 이런 배려를 조금씩조금씩 해주는게 얄미울 정도다.
너무 얄미워서 가슴이 떨린다.
그렇다고해서 내가 변태라는 건 아니지만 내 앞에서 생글생글 웃으며 ‘그렇지?’하고 되물어오는 달수 형님을 보고 있으려니
한채수를 향한 마음이 도저히 주체할 수 없이 커진다.
“한채수씨는 괜찮아요?”
“괜찮아! 라고 말해주고 싶지만 요 근래 잠을 통 못주무시는 것 같아. 계속 피곤해하셔. 게다가 요즘에 일도 부쩍 늘었거든.”
조폭이 하는 일이 사람 죽이는 일과 때리는 일 말고 뭐가 있을까 곰곰히 생각하다가 그냥 생각을 접었다.
내가 모르는 일들이 아주아주 많을 것 같아서 더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그냥 배려심 많은 한채수만 떠올리고 싶으니까 패스.
“김하란씨 결혼하시던데…….”
“응. 우리도 그 기사 때문에 잔뜩 쫄아서 눈치 봤는데 형님은 의외로 덤덤하게 하란씨랑 통화하시더라고.”
“이제 형수님이라고 안하시네요?”
“헤어지셨대. 그럼 이제 형수님이 아니잖아.”
헤어졌구나. 결국 헤어졌구나.
뒷머리를 긁적거리며 달수 형님을 바라보다가 괜히 울컥하는 마음에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어차피 헤어질거면 한채수가 나한테 고백하기 전에 헤어지던가. 이게 뭐야.
생각할 수록 나만 억울하잖아!
……그렇다고 한번 찼으면서 이제와서 ‘아직도 절 좋아하세요? 그럼 우리 사귈까요?’하고 말하는 것도 너무 웃기잖아.
“난 배달 가봐야겠다. 몸 아직 덜 나았을테니까 무리해서 움직이지 말고, 어머님 말씀 잘 듣고 있어. 알았지?”
“제가 애에요? 걱정 안하셔도 돼요.”
달수 형님은 자기가 배달 간 사이에 내가 납치당했다는 사실 때문인지 ‘이상한 놈들이 시비 걸면……’이라며 십분 정도
더 설교를 한 뒤에야 내 어깨를 톡톡 두드리며 몸을 돌렸다.
거리가 어느정도 있는 곳의 배달인지 스쿠터에 올라타는 달수 형님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저기, 달수 형님.”
“응?”
“고마워요. 일 도와주러 오셔서…….”
달수 형님은 씨익 웃으며 엄지 손가락을 치켜세웠다. 나도 달수 형님을 향해 엄지 손가락을 치켜세웠다.
동네가 떠나갈 듯 크게 웃으며 달수 형님은 스쿠터를 움직였다.
으하하, 으하하 하고 달수 형님의 웃음 소리가 빵빵 터졌다.
“그리고 한채수씨한테두요.”
한채수는 듣지 못하겠지만 그래도 나즈막히 말을 내뱉어본다.
아무도 못 듣고 오로지 나만 들었다.
아마 한채수가 앞에 있었다면 ‘뭐, 별로.’라며 심드렁하게 대꾸하고서도 귀는 빨개졌을테지. 그리고는 담배를 물었을거야.
말릴 새도 없이 입가에 곡선이 그어진다.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떨리는 사람이다, 그 사람이.
“왁!”
“악!”
느닷없이 등짝을 내리치며 귓가에 ‘왁!’하고 들려온 소음에 놀라 비명을 내지르며 뒤를 돌아보았다.
얄밉게 ‘히히’하고 웃으며 낼름 혀를 내밀어보이는 수리의 모습에 두 눈을 동그랗게 뜨자 수리 옆에 서있던 사름이도 헤헤
웃었다.
“뭐야 니들?”
“야자 끝나자마자 종례도 안듣고 튀어왔어. 잘했지? 일 도와줄께. 너 혼자 하기엔 벅차잖아.”
“어이 나멍충, 왕감동이지? 우리만한 친구 없거덩. 그렇지? 자, 그런 의미로 우리 뭐 좀 먹고 시작하자! 배고파!”
사름이와 수리가 나란히 내뱉은 말에 ‘달수 형님 있는데’라는 말은 그냥 삼켜버렸다.
뭐, 일 도와주는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이상한 놈들도 시비 덜 걸고 장사도 잘 될테니까 말이다.
나만 믿으라는 표정으로 사름이와 수리의 손을 잡고 포장마차 안으로 들어갔다.
바쁘게 움직이던 엄마는 우리의 느닷없는 등장에 잠깐 놀라는가 싶더니 바로 국수를 말아주었다.
역시 우리 엄마는 센스가 있다.
“사장 아저씨는 만났어? 아, 아니 아니지. 사름이네 형은 만났어?”
“굳이 우리 형이라는 걸 강조하지 않아도 돼.”
“내 맘이거덩요?”
사름이를 향해 혓바닥을 낼름 내밀어보인 수리가 날 향해 두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물었다.
수리의 시선을 무시하고 국수를 먹으려던 내가 얄미웠는지 갑자기 수리가 손을 뻗어 내 팔뚝을 세게 꼬집었다.
“악!”
“만났냐고 물었잖아! 이게 어디서 내 말을 씹고 있어? 나멍충, 너 요즘 많~이 컸다. 앙?”
“안만났어! 됐냐?”
만나긴 했지만, 어차피 사름이와 수리가 생각하는 만남과는 다른 만남이었으니 별상관 없겠지 뭐.
새빨갛게 부어오른 팔뚝을 비비며 수리를 향해 말하자 수리가 ‘그러냐?’라며 아쉬운 듯 입맛을 쩝쩝거렸다.
아쉬운 건 난데 왜 수리가 더 아쉬운 표정을 짓는걸까.
“정말 못 만났어?”
“응.”
사름이가 확인차 물었다. 만났을거라 백퍼센트 확신했던 모양이다. 사름이에게도 같은 대답을 주고 다시 국수에 젓가락을
꽂아넣었다.
먹는 것에 집중하자 라고 생각하며 후루룩 국수를 입에 넣었으나 뜨겁게 날 쳐다보는 사름이와 수리의 시선에 체할 것 같았다.
도대체 내게서 무슨 대답을 원하는 거니 너희들은.
“왜? 내 얼굴에 뭐 묻었어? 왜들 그래?”
“그냥.”
수리가 심드렁하게 대꾸하고는 또다시 날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결국 쥐고있던 젓가락을 국수그릇에 다시 꽂아 넣은 뒤 고개를 들었다. 날 뜨거운 시선으로 쳐다보는 사름이와 수리가
무언가 기대하는 표정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오호라, 니들은 내가 지금 만나고서 안만났다고 뻥치는 줄 아는구나? 예리한 녀석들.
“나, 사실……”
내가 이런 얘기까진 안하려고 했는데 니들이 자초한 거야. 나중에 니들이 책임져라.
옅은 한숨과 함께 입을 열자 사름이와 수리가 ‘뭔데뭔데뭔데?’라는 표정으로 날 쳐다보았다.
이러다가 사름이와 수리의 눈이 튀어나오는 건 아닐까하고 아주잠깐 생각했다.
“한채수씨가 조금 좋아.”
순간 사름이와 수리가 동시에 휘청거렸다.
‘무슨 헛소리야?’하는 표정으로 날 쳐다보는 수리와 ‘어느정도 짐작했다’하는 표정으로 날 쳐다보는 사름이의 표정이
대조적이었다.
하지만 둘다 직설적으로 내뱉어진 내 말에 다소 놀란 눈치였다.
“아니다. 조금 좋은게 아니라 사실 쫌 많이 좋아해. 아, 에라 모르겠다. 그냥 많이 좋아해. 아주 많이! 조금 사랑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해.”
두 눈 질끈 감아버렸다.
사름이와 수리의 시선은 둘째치더라도 마음 속에서 자꾸만 ‘그런데 왜 아까 기둥 바깥으로 못나갔어?’하고 누군가가
물어왔다.
나도 지금 죽을 듯이 후회하고 있다구.
“그래서 사무실 그만뒀어. 아주 많이 사랑하게 되기 전에 그만두려구. 근데 나 그 사람이 벌써 보고 싶어. 짜증날만큼.”
천천히 눈을 뜨자 사름이와 수리가 벙찐 표정으로 날 쳐다보고 있었다.
놀랍지?
나도 그래.
“그러니까 그렇게 쳐다보지 마. 나도 죽을만큼 후회하고 있어.”
시간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한채수가 병원에서 자신의 감정을 말하던 때는바라지도 않으니 단지 기둥 뒤에 숨어있던 그 시간으로 돌아갈 수만 있어도…….
그러면 용기내어 한채수 앞에 당당하게 모습을 드러낼 수 있을 텐데. 손 뻗어 그 사람을 붙잡을 수 있을 텐데.
어색하게 웃으며 사름이와 수리를 쳐다보자 물끄러미 날 쳐다보던 사름이가 어깨를 톡톡 두드려주었다.
수리는 무려 ‘자신의 국수’를 내게 덜어주는 친절까지 보여주었다.
“한이야, 힘내.”
“나멍충! 많이 먹고 힘내! 죽을만큼 후회해도 죽지는 마. 니 곁엔 누가 있다? 우리가 있다!”
그래도 지금 내 곁에 그 사람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저 사름이와 수리를 향해 웃어보일 수밖에 없었다. 난 정말 나멍충이 맞나보다.
***
오늘도 비가 어찌나 많이 내리던지 외출했다가 정말정말 고생했습니다.-.,- 어휴
다들 비 오는 날 무리해서 외출하지 마시고 조심조심하셔요.
읽어주신 분들과 꼬리말 남겨주신 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야호♬ 올림.
첫댓글 우리의 채수 한이가 있는걸 알고 있었네요,.. 어여 둘이 만나서 다시 재회를..
작가님 항상 성실연재 감사드려요 ㅎㅎ 어서 빨리 둘이 붙길...
성실연재 감사...이제 둘이 이어질 일만 남았군요 ㅋㅋㅋ
역시 채수 +_+ 예리해....히히히>_< 다시 만나서 잘되기를 ㅜㅜ
ㅋㅋㅋ 쿄쿄쿄쿄.. ㅋㅋ 채수랑 한이가 하루빨리 다시 만나야 하는데.. ㅋㅋㅋ 기다려져요.. ㅋㅋㅋ
이 짜릿한 감동을 어찌 말로 표현할 수 있나요. 사랑하면 빨리 만나야징. 우리 한이 용기를 내세용. ㅋㅋ. 그럼 우리 영광씨는 어떻게 되는 건가. ㅜㅜ.
불상해 둘이 이어지면 아프지도 않는데...................................................... 난 지금 남자친구랑 헤어지려고 노력하는데 ㅠㅠㅠ
얼른 한이랑 채수씨랑 러브러브!!
ㅋㅋㅋㅋㅋㅋ 이제 둘이 이어지게 해주세용~~~~~~~~~~~~~~~~~`
아나... 김하란씨 지금 이상황 어떻할꺼... 댁때문에 멀쩡한 커플 파탄나게 생겼어요 ㅠㅠ 아니 사건은 해결해주시고 가셔야죠 ㅠ
ㅠㅠ한이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