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라나 강 저편의 아이들
유기섭
파라과이 땅 파라나 강을 거슬러 오르며 과라니족 마을을 향하여 속도를 더한다. 브라질 지역 북부에서 시작하여 파라과이 아르헨티나를 거치며 라플라타 강으로 흘러들어서 대서양으로 향한다. 강둑 저편에는 벌거숭이 어린 소년들이 물장구를 치고 멱을 감으며 지나가는 배와 이방인들을 향하여 손짓으로 인사를 건넨다.
과라니족 아이들이 외부세계에서 온 이방인들에게 호의를 보내며 정감을 표시하는 모습에서 세상의 어디를 가나 인간의 마음은 하나로 통하는구나. 생각하게 한다. 접안시설이 미비하여 겨우 올라탄 보트가 속력을 내며 강물을 거슬러 오른다. 띄엄띄엄 강가에 늘어선 가옥과 주민들을 보며 사람이 살것같지않은 이런 곳에도 사람들이 살아가다니. 피부색과 모습이 다를 뿐 그들또한 지구를 함께 나누는 지구인의 하나임을 되씹어보게한다. 물빛은 황토색으로 강 전체를 물들이고 물살은 급류를 맞는다. 지금까지의 여행지와는 색다른 곳으로 가고 있음을 느끼며 배에서 내려 밀림을 뚫고 좁게 난 길을 헤치며 전진을 거듭한다.
사람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 적막한 길을 나아가며 신천지를 탐험하는 것 같은 감정에 사로잡힐 즈음 깊은 밀림 속에서 반가운 건물 한 채를 발견했다. 오래전부터 이곳에서 전도활동을 해온 예수회소속의 선교사가 운영하는 학교시설이 나타났다. 밀림한가운데서 발견한 학교시설이라니 반가우면서도 놀랍다. 영화 ‘미션’중 한부문의 이야기가 이곳을 배경으로 하여 전개되었다는 사실에 새삼 놀라움과 다행이라는 마음이 들어 안도의 한숨을 쉬게 되었다. 문명생활과는 거리가 먼 이곳아이들에게 눈을 뜨게 하고 그들에게 새로운 세상을 보여주기 위하여 이곳까지 찾아온 선교사의 희생정신과 자애로움에 경의를 표한다. 일신의 안위와 영달을 마다하고 사랑과 희생을 몸소 실천하러 오지마을을 찾아든 그들에게 여행자의 모습이 어떻게 비쳐질지.
세상의 아이들은 갖가지 문명의 혜택을 받으며 살아가는데 이곳의 아이들은 눈앞에 보이는 것이 세상의 전부라고 생각하고 살아가는 것 같아서 마음이 쓰리다. 그들의 눈에 비친 여행자들은 전혀 다른 세상에서 온 사람, 우주의 별나라에서 온 이방인으로 비쳐졌을지 모르지만 우리들도 모두 그들과 같은 하늘아래에서 숨 쉬고 살아가고 있음을 그들도 알고 있겠지.
유년시절 마을을 찾아온 어떤 교단소속의 전도사가 밤에는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한문기초를 가르치고 농번기에는 마을의 손이 필요한 집에 가서 김매기 등 농사일을 도우며 전도하던 웃음기 가득한 청년의 모습이 오늘 이곳에 오버랩 된다. 그 후에 그의 영향을 받아서 마을의 젊은이 중에서 신실한 믿음을 가진 청년이 전도사의 길로 나아가기도 했다. 외지에서 온 청년의 모습을 보러 마을처녀들은 곁눈질을 하며 호기심을 보였다. 이곳의 아이들도 외지에서 온 이방인의 뒤를 따르며 그들이 만든 수제품을 사달라고 조른다. 이곳을 다녀간 사람들처럼 그들의 눈에는 물건을 팔아야하는 대상으로 비춰졌는지 모른다.
부모들은 사냥이나 먹거리를 구하러 나가고 집에는 어린아이들만 남았다. 집이라야 풀 더미를 이용하여 엮어 싸맨 허술하기 그지없지만 그곳에서 한 가족이 옹기종기 살아가고 있다니 사람이 사는 곳은 그곳이 어디에 있던 바로 그곳이 행복의 근원지라는 생각이 든다. 입은 옷이나 생김새로 봐서 우리의 시각으로는 이해되지 않는 모습이지만 그들은 최선을 다하여 행복한 미소로 우리들에게 자신의 존재를 각인시키기에 바쁘다.
오래전 그들의 조상들은 이웃나라인 삼국, 브라질 아르헨티나 우루과이 세 나라를 상대하여 큰 전쟁을 치르고 나서 국력이 극도로 쇠퇴하여 멸망지경에까지 다다른 아픈 과거의 역사가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을까. 삼국과의 전쟁에서 패하여 젊은 남자들이 전장에서 많이 목숨을 잃었다. 오랜 기간 인구가 늘지 않아서 국가적으로 어려움을 겪기 도한 아픈 역사를 안고 있다. 그들 아이들은 모를 것이다. 그들의 먼 조상들의 슬픈 과거를. 유유히 흐르는 파라나 강 만이 쓰라린 과거의 역사를 새기고 있을 것이다.
강가에서 내려 내륙으로 이동하며 원시그대로의 모습으로 우리를 맞이하는 돌과나무들, 새들의 지저귐을 맞으며 세상과는 거리를 두고 있지만 그들에게도 곳곳에서 새로운 문명의 빛이 스며들고 있구나. 느낄 수 있었다. 외부인들의 모습을 보며 그들과 다른 사람들의 존재를 깨우치고 그들의 전통을 오래도록 간직해나가기를. 과라니족 아이들과의 아쉬운 헤어짐의 시간을 뒤로하고 뱃길을 서두른다.
- 여행문화 여름호 게재 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