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명 암전 했다가 약간 흐리게>>
(죄수들이 일렬로 서있거나 앉아 있다. 중간에 소장이 서류를 들고 서 있고 죄수들을 한명 부를 때마다 앞으로 나온다.)
[소장]] 지금부터 당신들이 감방에서 살날을 알려주겠어. 잘 듣고 잊지 않도록 해 죄수 99번 징역 8년!
[구십구](들고 있던 명찰표를 던지며) 나 참.. 내가 웬만하면.. 참고 넘어 갈랬더니 말이 되는 말을 해야지! 여보쇼! 요즘이 어떤 시댄데 징역이 8년이야! 내가 장발장이라도 되는 줄 아슈? 그냥 주인 없는 물건 살짝 들고 와서 귀중하게 쓰려고 했던 것 뿐인데 무슨 살인죄목 씌우듯 썩히려는거요! 거 소장! 이리 내려와서 말 좀 해봅시다~ 거 소장! 내려와봐! (악쓰며..)
[소장] 끌고 나가!
(교도관들이 나와 끌고 나가며)
[구십구] 놔! 이사람들아! 나도 다리가 있다 이거야~(삿대질하며 나간다)
(교도관들 앞을 향해 인사하고 퇴장)
[소장] 야!! 다음 죄수 33번
[삼십삼] 흐응 여기요.
[소장] 이 새끼 넌 또 들어왔냐? 징역 4년,
[삼십삼] 하 그래. 흐. 또다. 누군 오고싶어서 오냐? 저 잘나신 얼굴 4년을 또 봐야 하는군. 제길 돈 많은 놈들 돈 자랑한다고 앞다투어 돈 쳐바른 망주석 좀 훔쳤다고 사람을 이렇게 잡아들여서 콩밥먹여도 되는거야? 내가 옛날에 태어나서 도적질했으면 홍길동 저리가라 에 영웅이 되는 건데 빌어먹을...
[소장] 저것도 말많군 죄인20번 징역 3년
[이십] (억울한 표정으로 소장을 쳐다보며) 내가 왜 이딴 곳에서 3년이나 살아야 하는거야?
내가 말했잖아! 주동자는 따로 있었다고!! 나는 아무 죄가 없다니까 (교도관들이 나와 끌고 나간다. 질질 끌리면서 큰소리로) 여기 밥은 맛있어? 냉난방은 되는 거야? 이런 제길~
[소장] (한숨쉬며) 죄인18번
[십팔] 예! 접니다!! 접니다!!
[소장] 넌 뭐야! 징역3년
[십팔] (눈을 부릅뜨며) 뭐? 징역3년?? 나버리고 간 그 잘난 새끼집에 불 한번 저지른게 그렇게 큰 죄야? 그 날 그 집에 아무도 없어서 피해본 사람도 없는데.!난 억울해 억울하다구 원인제공은 그 새끼가 했는데 내가 왜 이렇게 피해를 봐야 하냐구!! 어디말해봐!! 안그래? 안그래? (18번을 끌고 나간다. 18번 궁시렁 대며) 바보, 멍게, 해삼, 말미잘, 멸치 같은 새끼 어디잘사나 두고보자.
[소장] 죄인들이 말은 많군.. 참나. 죄수 5번
[오번] 네
[소장] 징역 3년6개월
[오번] 이제 1년 6개월 정도 남았군요 그때 일을 생각하면.. 아직도 생생히 기억납니다. 제가 흐트러진 나라정치에 대해 올바른 생각을 가지고 제 의견을 말한 것이 그렇게 죄가 되는 것입니까? 그리고 저뿐만 아니라 다른 여러 학생들과 국민들 모두가 저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었고 지금도 그렇습니다. 그것을 당신도 잘 알고 있지 않습니까?
[소장] 흠, 아직도 그런 어리석은 생각을 가지고 있군. 들어가!!
<<조명 암전 했다가 서서히 켜지며 죄수들이 웅성웅성하는 소리가 들린다 약간 푸른 조명 ****교도소 테마****>>
[소장] 자자. 시끄러워 곧 사회명사들께서 여길 방문 하실 꺼야 어서 깨끗이 청소해!!
[죄수들] 궁시렁..
{{{{오프닝 송}}}}
<<죄수 한명 당 스포트라이트 + 소장 조명>>
{{{{음향 목소리로 (앗! 오신 것 같군)}}}}
(빨간 카펫이 깔려나온다. 소장이 손님들을 안내하며 들어온다. 일자로 서있는 사회명사들과 죄수들이 몰려있다.)
[소장] 자~ 어서 오세요 여러분 (죄수들을 향해) 지금부터 이분들을 소개 하겠습니다. 여기계신 이분은 돌아가신 정몽헌 회장님의 사돈의 팔촌되시며 현대아산을운영하고 계시는 안중팔 회장이십니다. 자 박수!!
(죄수들 힘없이 박수친다)
[안중팔] 허허허 정당한 소개를 받았습니다. 힘든 생활에서도 희망에 찬 여러분들이 보기 좋군요. 이왕에 가는 거 마음껏 놀다 옵시다. 제가 모든 먹거리를 제공했습니다. (뻐기면서) 배터지게 먹고 돌아오십시다. (소장에게로 살짝 가서 귓말하며) 사돈의 팔촌이 아니라 사돈의 육촌이라네!!
[소장] (당황해하며) 아 예..저기 다음은 여성 권익옹호협회 회장이시면서 국내 최대의 결혼정보 회사를 운영하고 계신 고 여사님, 그리고 그분의 며느리 되시는 음악가 신신옥씨 되시겠습니다.
[고 여사] 호 호 호~ 여러분 이번 여행은 정말 즐거울 것 같군요. 그러나 한가지 불평할 점이 있다면 여자수가 남자수 보다 적다는 거예요. 남자고 여자고 평등하게 살아가는 세상인데..쯧쯧.. 그것 빼곤 좋군요. 여러분들이 감옥에서 나가게 되면 결혼도 하시겠죠?? 저희 결혼 정보회사ZZZ로 꼭 오세요 호 호 호~(명함을 나누어준다)
[소장] 이것 참..여자 죄수들을 더 데려갈껄 그랬군요.. 자 그럼 여기 이 교도소의 고문이시
며 우리나라 의학계의 자존심이신 오 박사님이 오셨습니다.
[오박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저는 여러분과 여행을 하며 여러분들을 지켜보려고 왔습니다. 죄수들의 건강 상태는 어떤지 또 죄수들은 어떤 병에 잘 걸리는지 또 어떤 죄목을 가진 죄수가 병에 덜 걸리는지 연구도 할 겸 왔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소장] 이건 마치 생쥐를 가지고 실험 하는거 같군요..(중얼거리는 말투로) 자자자. 좋습니다 좋습니다. 그럼 요번 여행에서의 우리에게 기쁨의 활력소가 되어줄 최고의 인기스타 최고의 여배우 김화자 양을 소개합니다!!
[김화자] (뻐기면서 걸어나오며) 사실 이운수 씨가 인기 관리에 좋다고 해서 따라가는 것 뿐이예요, 하지만 잘해 보자구요. 그리고 (남자 죄수들에게 키스 날린다 남자죄수 몇몇 뿅간다)
[소장] 역시 최고의 인기스타 답군요. 자 마지막으로 문학계의 거두이신 시인 이운수 선생님!!
[이운수] 이렇게 여러분들과 함께 그림처럼 아름다운 바다에서 향기로운 바다냄새를 맡으며 함께 여행을 떠나다니..낭만적이지 않습니까?? 이렇게 된 거 제가 바다에 맞는 시 한 수 들려 드리지요.. (시를 중얼중얼 왼다) 조개껍질 묶어 노래
[안중팔] (이운수를 무시해 버리며) 자 여기 그동안 나의 회사의 직원들과 고 여사의 협회회원 일동은 성금을 거두었습니다. 출발에 앞서 우리의 성의를 받아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김 화자가 죄수들에게 흰 봉투를 나누어준다. 33번이 봉투를 찢어 내용을 본다. 소장이 옆으로 가 자중을 권한다. 여섯 명의 손님이 각기 죄수 한 명과 팔짱을 끼고 노래를 하며 무대 밖으로 나간다. 소장만 남는다. 소장이 무대 밖을 향해 손을 흔든다.)
소장에게 스포트 라이트
[소장] 반갑습니다. 저는 이 교도소의 소장이올시다. 저희는 사회 명사 몇 분과 함께 이렇게 행락도로 소풍을 가게 됐습니다. 솔직히 썩 내키지는 않지만 사정이 이렇게 된걸 어쩝니까 근데 왠지 좋지 않은 예감이 드는군요. (기적소리 울리며) 엇! 배가 출발하려나 보군요. 저도같이 출발해야겠습니다.
[18번] 소장님!! (멀리서 부르는 소리)
(뇌성이 울린다. 폭풍이 뒤섞이며(뇌성+파도+비+폭풍우) 무대가 어두워진다. 비명소리가 어우러지고 한순간 배우들 가운데로 모이며 비명 (조명순간집중 바로꺼짐)잠시 후 무대에 고요한 음악이 들리며 중간 막이 열린다. 조명이 들어오며 새 소리가 들린다. 모두 지친 듯 여기저기 앉아있다)
[소장] (고 여사에게) 괜찮으신지? 몸은 좀 어떻습니까?
[고여사] 당연하죠!! 우리 신옥이는 어디있죠? 신옥아~ (고여사 퇴장)
[오박사] 행락도로 간다더니, 이 섬의 이름이 뭐죠?
[김화자] 지도에나 나와 있는거예요?
[안중팔] 글쎄, 하여튼 꼬박 하루를 표류했으니까.
[오박사] 일기예보를 믿은 것이 잘못이었지. 현대 과학에서 믿을 것은 의학밖에 없어요.
[김화자] (앙칼지게) 이게무슨 꼴이람~ 앞으로 잡힌 스케줄이 몇 갠데.. 어떡하자는 거예요?
[이운수] (유유자적하게 바다를 쳐다보며) 기다리노라면 배나 비행기가 지나가겠지요.
[안중팔] (일어나서 잘난 척 하며) 아마 하느님께서 우리가 좀더 친할 수 있도록 특별한 기회를 주셨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이른바 사회의 지도층에 있는 명사들입니다. 양식은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들이 서로 힘을 합해 일을 하면 안될 일이 없습니다. 자, 우리 짐을 풀어 점심이나 먹고 다음 할 일을 생각해 봅시다. 희망을 갖고 우리의 새 집인 이 섬도 구경해 봅시다. 가만, 잠자리라도 만들어야겠는데...
[삼십삼] 소장 님, 천막을 치면 어떨까요?
[소장] 배에 싣고 온 천막은.. 햇빛이나 가리는 건데?
[삼십삼] 배에서 내릴 때 닥치는 대로 가지고 왔으니까 궁리를 해보죠.
(33번이 죄수들 쪽으로 가 이것저것 지시하며 천막을 치기 시작한다. 명사들 구경한다.)
[안중팔] 솜씨가 제법이군요?
[소장] 모르긴 몰라도 솜씨야 저 사람들을 따를 사람이 없을걸요.
[이운수] 지금쯤 점심을 먹고 낮잠을 잘 시간인데.. 서늘한 방에서.
[김화장] 이봐요 이운수 씨 그런 걸 지금 생각하면 뭣해요.
[십팔] (이 운수와 오 박사에게) 아저씨들! 이것 좀 들어 주세요. 무거운데요.
(이 운수와 오 박사가 애써 상자를 동굴 안으로 갖고 들어간다,)
[오박사] (동굴에서 나오며) 이건 동굴인데. 삼십 명도 잘 수 있겠어
[안중팔] 자, 우리 섬이나 구경해 볼까요? 손바닥만한 섬이니 시간도 안 걸릴 거요. (죄수들에게) 수고들 하시오. 곧 육지로 돌아가게 될 겁니다. 배가 지나가겠죠. 바다가 넓다지만 지금 항해하는 배가 만 척도 넘을 거요. 그럼 잘 부탁합니다.
[삼십삼] 좋은 분들이군. 자, 그 쪽은 다됐나?
(죄수들이 다시 일을 시작한다.)
[십팔] 점심은 어떡하죠?
[구십구] 해야지.
[십팔] 다행히 배 안에 쌀도 좀 있었어.
[이십] 쌀뿐인가? 양주도 있었는데.
[십팔] 그렇지만, 배에 싣고 온 양식은 일 주일도 못 갈걸.
[소장] 아니, 일 주일 이상이나 여기 있을 셈이야?
[십팔] 배가 지나가지 않으면 할 수 없잖아요?
[소장] 비행기도 지나갈 수 있으니까.
[삼십삼] 흥, 저 천막에선 다섯 사람도 못 자겠는걸! 차라리 천막을 창고로 써야겠어.
[구십구] 네 마음대로? 저분한테 물어봐야 될꺼 아냐??
[십팔] 다 끝났으면 좀 도와줘요. 밥을 지어야겠어요. 불은 어디다 피운다? 땔감도 없고...
[소장] 자, 수고들 했어.
[삼십삼] (갈려는 소장을 잡으며) 소장 님, 좋은 생각이 있어요. 교도소를 여기로 옮기면 어때요? 장소가 그만인데.
[이십] 면회 올 사람은 어떡허구?
[삼십삼] 나는 가족이 없으니 상관없어.
[구십구] 쓸데없는 소리 말구 밥이나 하자. 난 나무를 해 올께.
[이십] 이 섬에 물이 있을까. 양동이가어딨지??
(18번과 소장만 남기도 모두 나간다. 18번은 돌을 고여 불 피울 차비를 한다)
[십팔] (소장에게 엉기며) 소장 님, 댁에서 걱정하시겠어요
[소장] 3년이 멀다 하고 전근을 하면서 살아온 부부니, 괜찮을 거야
(고 여사가 들어온다)
[소장] 어떻게 벌써..
[고여사] 힘이 들군요. 거기다 난 심장이 약해서요. 그래서 포기했어요. 오늘 저녁에 우리 회의 모임이 있는데--- 내가 없으면 회의가 힘들텐데.
[소장] 잊어버리세요. 할 수 없는 일이니까.
[고여사] 배가 언제 지나갈지 모르니까 밤에도 누굴 시켜 감시해야겠죠?
[소장] 불침번을 세우지요.
[고여사] (문득 생각이 난 듯)참, 사람의 팔자 두! (18번을 보며) 이것 봐요!
[십팔] 네?
[고여사] 밥을 너무 질게 하지 말아요.
[십팔] 네.
[고여사] 성질 나름이지만 난 진밥은 질색이야. (소품 귀부인 부채)
[소장] (얍실하게) 저도 마찬가집니다
(20번 양동이를 들고 들어온다)
[고여사] 그게 물이에요?
[이십] 드시게요?
[고여사] 목이 마르군요. (18번이 컵에다 물을 따라 가지고 온다. 고 여사가 마신다. 컵을던지며) 물맛이 왜 이래?
(이십번 움찔하며 고여사를 째려본다 이에 십팔번이 말린다. 안중팔 일행이 들어온다)
[고여사] 왜 벌써 오셨어요? 다 둘러 보셨어요? 섬은 어떤가요??
[안중팔] 뭐 그저 그렇군요.
[고여사] 피곤하군요 난 들어가서 자야겠어요
[김화자] (땀 닦으며 들어온다)거기 세숫대야가 있지? 좀 가져와 손을 좀 씻어야겠어.
(18번이 세숫대야를 갖고 와 물을 따른다. 김 화자가 손을 씻는다. 18번이 수건을 갖고 와 건네준다.)
[오박사] 좀 시장하군. 밥은 아직 멀었나요?
[십팔] 금방 됩니다.
[소장] (오 박사에게) 여기 좀 앉으세요.
[구십구] (안중팔에게) 저 잠깐.. 천막이 좁은 것 같은데 천막을 창고로 쓰고 잠은 저 동굴 속에서 자면 어떨까요?
[안중팔] --- 그렇군. 밤에 비가와도 곤란하겠지. 그렇게 합시다. 자 동굴로 갑시다
(신 신옥이 18번과 함께 불을 지핀다. 소장이 관객 앞에 나온다.)
<<조명 어두워짐>>
[소장] (관객에게) 이리하여 무인도에서의 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일 주일이 지났습니다.
<<다시밝아짐>>
[오박사] (먹을 풀을 한 아름 안고 오는 33번에게) 아무것도 안보여. 지나가는 배란 건보고 죽을래야 없어. 그건 뭐요?
[삼십삼] 약초요
[오박사] 우린 소나 말로 전락했군
(굴속에서 신신옥과 고 여사가 나온다)
[고여사] 오 박사 어떡하면 좋겠소?
[오박사] 글쎄 말입니다.
[신신옥] 기다릴 수밖에 없어요.
[오박사] 언제까지?
[신신옥] 장기 휴가를 나왔다고 생각하죠. 공기도 맑고 바다가 얼마나 아름다워요?
[김화자] 아~배고파 죽겠네 나 김화자를 곪아 죽일셈이야?? 오늘 아침은 아직 멀었나요?
[십팔] 오늘 아침엔 밥을 안 먹어 (김화자 애드립)
[김화자] 뭐?? 밥을 안먹는다고?? 다시 말해봐!!내가 잘못 들은거지? 우리 밥 먹자구요~ 여러분~
[십팔] 하루에 세 끼 먹을 밥이 어디 있어요?
[김화자] 하기야 우리가 먹는 것은 밥은 아니니까. 랍스타도 있고 안심스테이크도 있고..
[십팔] 제정신이 아니군
(18번과 싸우며 퇴장)
[고여사] 원, 운명도! 죽을 고생을 사서하는구나. 애당초 이런 일에 마음이 내키지 않았어.
성금만 전하면 됐지.. 죄수들하고 무슨 야유회람? 어젯밤에 죽은 아들의 얼굴이 보이더라. 너하고 결혼할 날만 기다리고 있었는데..그렇게 죽어버리다니! 결혼도 안한 네가 아직도 나를 시어머니처럼 대해 주다니...
[신신옥] 시어머니가 아니라 어머님이에요. 저는 고아예요. 저를 길러 준 분이 누군 데요.
[고여사] 미안하고 고맙다. 네 자유란다. 좋은 사람이 있으면 시집가도록 해라. (갑자기 슬픈 표정을 지으며) 하기야 네가 내 곁을 떠나면 나는 죽고 말 거야.
[신신옥] 어머니, 전 결혼 안 해요. 어머니 곁을 떠나지 않겠어요.
[고여사] 너만 그러면야( 큰소리로 웃는다)벌써 햇빛이 뜨거워지는군. 이런걸 뭐가 좋아서 여름철이면 기를 써서 바다로 몰려가곤 했는지.. 넌 시장하지 않니?
[신신옥] 할 수 없어요. 식량이 떨어진다니까요.
[고여사] 나는 좀 들어가 쉬어야겠다. 밖에는 뜨겁구 저 안에는 축축하구..
(고 여사 일어나 들어간다. 신신옥이 부축하려 하지만 오 박사가 대신 부축해 들어간다. 이어 김 화자가 화를 내며 일어난다)
[김화자] 여태껏 TV영화에 나가 별의별 역을 다 맡아 봤지만 이런 일은 처음이야. 이 운수 씨가 가자고 하기에 나섰는데 이게 뭐야! 인기를 얻는데 좋은 방법 이라더니. 도데체 여기가 어디쯤 되죠?
[신신옥] 모르겠어요. 지도에는 없을지 모르죠.
[김화자] 그래도 기선이나 하다 못해 비행기라도 지나갈 것 같은데..벌써 일주일이야. 지금 한 참 바쁠 때인데 이게 뭐람!
(<<무대가 어두워지며 시간의 흐름을 상징하는 조명이 비친다. 무대가 다시 밝아진다.>> 일행은 식사준비를 한다. 18번이 큼직한 냄비를 가지고 나온다)
[삼십삼] 흥, 즉석 토끼 탕이라!
[구십구] 이 토끼는 내가 잡았어.
[삼십삼] 그래서, 혼자 먹겠다는 거야?
[구십구] 누가 혼자 먹는대.
[소장] 어허! 조용히들 못해!
[안중팔] 한끼를 또 먹게 되었으니 감사할 따름이오.
[십팔] 누구한테 감사를 해요?
[안중팔]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
[구십구] 웃기고 있네.
[안중팔] 왜요?
[구십구] 우리 현실적으로 놉시다. 이 토끼는 내가 잡았고 요리는 18번이 했어요
[소장] 자, 다 시장할 텐데 시작합시다
(모두 말없이 먹는다. 오 박사는 손에 먹을 것을 들고 내키지 않는 양 이맛살을 찌푸리고 있다. 동굴에서 김 화자가 나와 일행 사이에 앉아 음식을 집으려고 손을 내민다)
[구십구] 이것 봐!
[김화자] 내?
[구십구] 먹어야 하겠소?
[김화자] 지금 밥을 먹고 있는 게 아니에요?
[구십구] 그렇지만 이름이 뭐라더라? 김 화자? 김 화자 씨가 꼭 먹어야 하는 건 아니지.
[이운수] 아니 그게 무슨 말이오?
[구십구] 일을 하지 않은 주제에 무슨 염치가 있어서요? 우리가 뭐 지금 호텔 방에서 사는 줄 아시우?
[고여사] 어떻게 그럴 수가?
[삼십삼] 옳아, 다 같이 일을 하고 다 같이 먹어야 살 수 있어. 저 배우는 먹을 자격이 없어.
[김화자] (벌떡 일어나며) 이런 사람들을 돕는다고 나선 우리가 바보였어.
[이십] 그땐 그때고 지금은 지금이야. 환경이 달라졌으니까.
[김화자] 그렇게 인정머리가 없어요?
[이십] 인정머리가 없는 건 당신이오!
[구십구] 먹을 수 있는 방법이 하나 있지. 훔쳐먹어요. 우리가 저 세상에서 그랬듯이. 그러나 훔치다 들키면 벌을 받을꺼요. 그러니 들키지 않아야 해. 우리는 들켜서 봉변을 당했지만. (죄수들 키득키득 웃는다)
[삼십삼] 훔치는 것도 기술인걸. 더 좋은 방법이 있어요. 사과해요.
[김화자] 사과요?
[이운수] 사과인지 능금인지 몰라도 당신네들은 지금 숙녀 앞에서 큰 실수를 하고 있어요.
[구십구] 지금 이 마당에 숙녀가 어디 있고 신사가 어디 있어?
[이십] 최소한 여기에서는 기생충은 존재할 수 없습니다. 저쪽 사회는 모르겠지만 여기서는 그런 존재가 있을 수 없습니다.
[신신옥] 다음부터 같이 일하면 되지 않습니까? (김 화자에게) 자, 이걸 좀 드세요
(김 화자가 말없이 음식을 받는다. 잠시 침묵이 흐른다.)
[삼십삼] 쥐죽은듯이 조용하군.
[십팔] 사람들은 참 간사해요. 조금 조용하면 조용해서 죽겠다고 하고. 조금 시끄러우면 시끄러워 죽겠다고 하니.
[구십구] 그것뿐인가. 조금 추우면 추워서 죽겠다고 하고 조금 더우면 더워서 죽겠다고 지랄을 하지.
[삼십삼] 그래도 이 중에서 조용한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 저 시인 선생님. 시인은 조용한 것을 좋아한다지?
[십팔] 자, 다 드셨으면 일어나세요. 치워야지
[구십구] 가만! 어째서 밥 먹고 치우는 것은 18번뿐이지? 식모도 아닌데.
[신신옥] 저도 돕겠어요
[구십구] 그게 아니라 우리 조를 짭시다. 일을 부담하자는 말이요
[삼십삼] 흥, 하기야 무덤에서 망주석을 훔칠 때도 조를 짰으니까.
[구십구]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것이 우리의 팔자가 아냐? 여기서 며칠을 더 살게 될는지 또는 몇 년을 살게 될는지 그러니 조직 생활이 필요해. 누가 알아? 부득이 결혼을 하게 될는지?
[고여사] 결혼? 나 참! 우릴 뭘로 보고하는 말이요?
[구십구] 걱정 마시오! 고여사 보곤 결혼하자고 하진 않을테니
[안중팔] 모두 진정합시다. (죄수들을 보며) 여러분들도 아시다시피 우리는 사회에서 기반도 굳혔고 또한 존경도 받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환경이 달라졌다 해서 당장 천대를 받는다면 우리는 용서할 수 없습니다. 특히 부녀자에 대한 모욕적인 언행이 있다면 이 안중팔은 생명을 걸고 싸우겠습니다. 우리가 여러분께 동정을 베푼 것이 죄가 될 수는 없겠지요?
[이십] 동정? 우리가 언제 동정을 바랐습니까? 안 중팔 선생의 동정은 사업을 위한 수단에 불과합니다. 국회의원 되시려고요? 그러면서, 우리에게 동정을 베풀어요? 우리를 방문했다는 신문기사가 더욱 중요했지요. 선생은 지금 유명해지기 위해 투자를 한 겁니다.
[안중팔] 당신이 무슨 일을 하다 잡혔는지는 몰라도 한심합니다.
[이십] 사기꾼이요!
[이운수] 안 선생 그만해 둡시다. 얘기하면 뭣하겠소. 차라리 바다를 향해 소리지르는 편이 낫지.
[삼십삼] 시인 선생, 우리가 바닷물보다 못하다는 말이요? 덜 짭니까?
[이운수] 말끝마다 꼬리를 무는군. 그만 합시다.
[소장] 우리 이제부터 제발 조용히 지냅시다. 입씨름을 해 봤자 승자도 패자도 없소.
[구십구] 누가 입씨름을 하자고 했나? 살기 위해서 하는 일을 분담하자고 제의했을 뿐인데.
[소장] 나도 그 의견에 동의합니다. 환경이 달라지면 그 환경에 적응해야 하니까.
[이십] 저도 동감입니다. 우선 지도자가 있어야 합니다.
(죄수들 웅성거리며 긍정)
[이운수] 흥, 내각을 구성할 생각이군
[오박사] 잘 해보시우. 3년 동안을 돌보아 주었는데
[이십] 형무소에서 돈을 주지 않았던가요?
[오박사] 내가 돈 때문에 형무소의 죄수들을 보아준 줄 아나?
[이십] 동정 때문이겠지. 한 마디 할까요? 돈벌기 위해 의사가 된 주제에
[오박사] 뭣이?
[이십] 의사들치고서 나라를 위해 일 할 사람이 있소?
(오 박사가 20번에게 달려든다. 33번이 그를 가로막아 밀어버린다)
[오박사] 흥! 폭력이 나오는군
[안중팔] 오 박사. 참으세요
[이십] 박사 좋아하네
[구십구] 20번!(어깨를 잡으며) 그만해둬!
(고 여사와 이 운수가 동굴 쪽으로 가려고 한다.)
[구십구] 이것 봐요! 가긴 어딜 가요! 살기 위해 조를 짜 자는데 뭣이 나빠? (일동을 보며) 자, 좋은 의견이 있으면 말해 보시오
[이십] 우선 지도자가 있어야해
[이운수] 지도자? 왕초라고 하지.
[이십] 왕초도 좋고, 두목도 좋아. 빈정대지 마세요. 어떻습니까? 우리 99번을 뽑읍시다.
[삽십삼] 몸도 제일 빠르고 이것저것 이런 데서 사는 법에 대해서 아는 것이 많으니까 적격자지.
[이십] 그럼 다수결로 결정하기로 합시다. 99번에 반대하는 사람 물구나무 서시오
(누군가가 물구나무 서다 구른다 33번이 물구나무 서자 8번이 나무란다)
[이십]반대하는 사람이 없으니 99번이 지도자요
(죄수들 99번을 축하한다 20번이 의사를 미워함 부각 )
[안중팔] 자기네들끼리 북치고 장구치고 다하는구만 잘들 해보시게.
[이십] 그런 대답은 듣고 싶지 않아요. 여기는 안 선생이 살던 사회하고는 다릅니다.
[안중팔] 마음대로 하라니까!
[이십] 그래, 당신이 지도자요.
[구십구] 원치는 않지만 시키면 할 수 없지 뭐 하지만 조건이 있어. 내 말에 무조건 따라야해. 이의 없지? 우선 취사반이 필요해. 18번하고 여배우. 반장은 18번. 여배우는 자기의 손으로 밥을 지어 본적도 없을 거야. 다음엔 급식 반. 먹을 것을 찾는 반이야. 33번하고 저 시인그리구 오 박사, 반장은 33번. 훔치는 솜씨가 중요하니까. 다음엔 연료반 안 선생 그리고 20번 반장은 20번. 다음엔 감시반
[십팔] 감시반?
[구십구] 스물 네 시간 바다를 살펴야 해. 지나가는 배를 찾는 거야. 5번 저 며느리. 반장은 5번 그리고 청소 반. 고 여사 혼자서 하면 돼
[오박사] 흥, 반장은 너희들끼리 다 해먹는군
[구십구] 당신들 밥을 지어 봤어? 나무를 해봤어? 먹을 것을 찾아봤어? 그리구 여자들은 전부 세탁을 책임져 소장은 경찰이오. 경찰은 사회가 어떻게 되건 항상 주석 밑에서 일하면 되는 법이니까.
[소장] 99번! 자네는 인간 사는걸 장난으로 아나?
[구십구] 왜 이래? 우린 장난으로 인생을 살아 본 적이 없어. 배가 고파서 할 수 없이 도둑질을 했지. 여편네가 앓아 눕고 애들이 벌거벗고 다니기에 할 수 없이 도둑질을 했어. 그것이 장난이야? 말은 바른대로 합시다.
[삼십삼] 말이야 옳지.
[구십구] 그럼 다 끝났지? 한 시간 후에 모이기로 하지. 그 동안은 자유야. 낮잠을 자는 게 좋을 걸.
(99번이 동굴 안으로 들어간다. 33번,20번도 뒤따른다. 5번은 천막 안으로 들어간다. 18번은 그릇을 들고 나간다.)
[오박사] 미친것들! 아니 당신은 소장이 아니오? 저렇게 내버려두는 거요?
[소장] 어떻게 하면 좋겠소? 호랑이도 물에 빠지면 송사리가 시키는 대로해야 하는 겁니다. 선생님이 어떻게 해보시우. 선생님들은 저보다 훌륭한 분이 아닙니까? 인격도 있고 명성도 있고
[오박사] 흥! 당신은 저쪽 편이군요!
[소장] 나 참! (기가 막힌듯)
(잠시 침묵이 흐른다)
[이운수] 자, 그만둡시다. 바닷가에서 나가 봅시다.
(모두 일어나 나간다. 신신옥만 남는다. 5번이 천막에서 밧줄을 들고 나온다. 얽힌 밧줄을 푼다.)
{{{5번과 신신옥 테마}}}
[오번] 미안하지만 이 밧줄을 잡아주세요. 마구 얽혀 버려서
(신신옥이 가까이가 밧줄 한 끝을 잡는다.)
[신신옥] 이걸로 뭣을 하게요?
[오번] 글쎄요 용도가 생기겠지요. 배에 있던 것을 가지고 왔는데
[신신옥] 통 말씀이 안 하시더니.. 아참! 저희 정식으로 소개 못했죠? 제 이름은 신신옥 이예요 당신의 이름은 뭐죠?
[오번] 죄수 5번이요 (무뚝뚝하게)
[신신옥] 죄수번호 말고요..신신옥 같은 사회에서 쓰는 이름이요.
[오번] 그게 여기서 필요하나요,. 편하게 죄수5번이라 불러요
[신신옥] 그럼 그렇게 하죠..그런데.. 어떻게 해서 그런 옷을 입게 됐어요? (오번이 일어난다) 미안해요. 쓸데없는 질문을 해서 대학생 이라면서요?
[오번] 그랬었죠. 하~ 지금 그게 무슨 상관 있나요 학교나 여기나 숨막히고 답답한건 마찬가지죠. 그낮저나 당신은 괜찮아요? 이런곳은 처음이지 않나요? (부끄러운듯이)
[신신옥] 전 괜찮아요..그나저나 같이 온 분들이 괜찮을까요??
[오번] (발끈해서) 그게 무슨뜻이죠??
[신신옥] 아니,,그게 아니라 험악하게 살아오신 분들이니까 저희들이게 해를 끼치진 않으실런지...
[오번] (화내며) 무슨말을 그렇게 해요!(앞으로 한발짝 다가서며) 당신들이 더하면 더했지 우린 그렇지 않을꺼요!
[신신옥] (무안해하며) 미안해요. 제가 말을 잘못한거 같군요. 저희들을 잘 봐 주시면 후에 은혜는 잊지 않겠어요
[오번] 후에요? 후에라니요? 아, 저쪽 사회에 나가서요? (신신옥이 머리를 끄덕인다.) 저쪽 사회에선 자신이 있나보죠? 여기서 꼼짝 못하고 죽으면 어떡해요? 자, 됐습니다.
(5번이 천막 안으로 들어간다. 신 신옥이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일행이 나간 방향으로 퇴장한다. 뇌성이 울리며 무대가 어두워진다. 이어 안 중팔이 나와서 주위를 살피더니 천막 안으로 뛰어들어간다. 신 신옥이 뛰어 들어와 동굴 입구에서 수건으로 얼굴을 닦는다. 안 중팔이 천막에서 먹을 것을 들고 나와 씹으며 우측으로 뛰어간다. 신신옥이 그의 뒷모습을 본다. 무대가 어두워 졌다. 다시 밝아진다. (아주 어두워 졌다가 안중팔과 신신옥이 보일 정도만 밝게, 다시 암전)모두 아침 식사를 기다리고 있다. 18번이 천막에서 나와 소리지른다.)
[십팔] 경찰을 불러야겠어요!
[삼십삼] 왜?
[십팔] 도둑놈이 있어. 오늘 아침에 먹을 끼니가 없어졌어.
[소장] 그럴 리가 있나?
[십팔] 그럴 리가 있다니 까요!
[삼십팔] 혹시 짐승이 훔친게 아냐?
[십팔] 씨앗 한 알 안 남기고 깨끗이 훔쳐 갔어. 짐승이 그런 짓을 해?
(그릇을 들고 나와 보여준다.)
[오박사] 잘 찾아 보시우. 어디 있겠지
[이운수] 흥! 경찰이 책임을 져야겠군.
[소장] 왜?
[오박사] 우리 사이에 도둑놈이 있는 모양이군. 과거에 훔쳐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 아니고서는 누가 훔치겠소?
[고여사] 옳은 말이야
[구십구] 분명 누가 훔쳤어! (신신옥에게) 아가씨! 어제 감시를 했겠지요?
[신신옥] 네
[구십구] 이 천막 앞을 지날 때 아무도 없었소?
[신신옥] 아뇨
[구십구] 5번! 지금 감시중이지. 하기야 그 사람은 그럴 사람이 아니지. 자 훔친놈은 양심적으로 나와.
[고여사] 왜 나를 자꾸 보시우? 나는 동굴 속에서 나온 적이 없어요.
[이운수] 나는 줄곧 고 여사 옆에 있었어.
[구십구] 빌어먹을 것들! 훔칠 때가 따로 있지 이 판국에 훔쳐? 33번 너 아냐?
[삼십삼] 왜 이래? 구십구번 옆에서 잤는데
[구십구] 나는 저쪽에서 살 때 훔치긴 했지만 가난한 사람의 물건을 훔친 적은 없어!
[삼십삼] 나도 그래!
[안중팔] 무덤의 망주석을 훔치고서도?
[삼십삼] 가난한 집안에서 망주석 세우는 걸 봤소?
[김화자] 아우 시끄러. 구십구번, 어떻게좀 해 봐요.
[구십구] 우선 경찰이 책임을 져야해
[소장] 아니! 경찰이 그런 자질구레한 일까지 책임을 져? 정치문제라든가 국가의 중대사를 처리하기에도 힘이 드는데.
[구십구] 그건 저 쪽에서 하는 일이야. 여기선 먹는 것이 제일 중요해. 그리구 밤에는 이 천막 앞에서 자도록 해야겠어요
[소장] 나 참!
[구십구] 싫단 말이오?
[소장] 알았어
[구십구] 우리는 공동책임을 져야해. 오늘 하루는 너 나 할 것 없이 굶는 거야.
[오박사] 하루를 굶어?
[고여사] 아니, 우릴 죽일 생각예오?
[구십구] 웬 말이 많아요?
[삼십삼] 굶는 것도 좋지만 음식을 훔쳐먹는 놈은 배가 덜고플게 아냐? 훔친 놈은 괜찮구 애꿎은 우리만 고생해? 그건말도안돼!!
[김화자] 옳다구나!
[구십구] 음 그렇기도 해, 그럼 어떻게 하지? 한끼만 굶지
[신신옥] 훔친 사람이 자수라면 되잖아요?
[구십구] 그놈이 자수를 할까?
[안중팔] (분위기를 돌리려고 일부러) 이것 봐! 비행기야--- 비행기!
[구십구] 비행기?
[안중팔] 저쪽에 깨알만 하게 나타났어!
[구십구] 모두 바닷가로 나가! 입고 있는 옷을 벗어 마구 흔드는 거야!
(모두 바닷가로 나간다. 모두 소리지른다. 잠시 후 조용해지면서 안중팔이 급히 뒤를 이어 옷을 입으며 들어온다.)
[오번] 안 선생님.
[안중팔] 응?
[오번] 비행기가 어디 있어요?
[안중팔] 왜 저 쪽에 있는 걸 봤는데.
[오번] 잘못 봤어요
[안중팔] 지나간 모양이군
(사람들이 들어온다)
[구십구] (안 중팔의 상의를 입으며) 안 선생, 정신 좀 차려요! 비행기가 어디 있어?
[안중팔] 분명히 봤는데
[구십구] 그 놈의 눈깔은 가죽이 모자라 뚫어졌나?
[김화자] (18번과 옷이 바뀐 것을 알고) 어? 어? 어? 아니, 내 옷이 (18번에게) 옷이 바뀌었어요
[안중팔] 내 옷도. 하! 지도자 옷이 바뀌었는데
[구십구] 그래?
[십팔] 그까짓 옷이 문젠가? 귀찮다! 어차피 세탁도 해야 하는데.
[구십구] 그래. 그대로 입고 있어. 네 것 내 것이 어디 있어?
[김화자] 엇! 이거 내옷이잖아!! 내옷 내놔!! 이런 거지같은 옷을 입어야해?
[구십구] 거지같은옷?? 말조심해 그까짓 옷 금이 박혔니?
[김화자] 그까짓옷?? 모르나본데 너희가 사회나가서 평생 벌어도 사입을수 없는 옷이야 그런 나에게 이런 걸레같은 옷을 입어라해?? 내옷내놔!!
[구십구] 걸레같은 옷?? 그럼 우리가 걸레란 말이야?? 말을 막하는데??
[삼십삼] 우릴 뭘로 보고!!
[구십구] 다 보는 앞에서 사과해! 못해? 경찰 그 천막 안에서 몽둥이를 가져와. 빨리!
[신신옥] (김 화자에게) 미안하다고 해요.
[김화자] 뭐가요?
[신신옥] 그럴 수 밖에 없어요.
[김화자] 왜? 내가 뭘 잘못해서?
[신신옥] 여기는 여기니까요
[김화자] (모기 소리로) 미안해요
[소장] 안 들려. 크게!
[김화자] 미안해요
[구십구] 미안한 것 같지 않아. 크게!
[김화자] (화를 내서 거의 발광적으로) 미안해요! 미안해요! 미안해요! (운다. 안중팔이 데리고 나간다)
[구십구] 급식 반! 급식 반은 손들어!
(33번이 번쩍 손을 든다. 이 운수와 오 박사도 마지못해 손을 든다)
[구십구] 먹고 못 먹는 것은 급식 반에게 달렸어! 나가서 먹을 것을 구해와요. 2일분을 구해와요. 내일 것하고 도둑 맞은 오늘 것하고.
(신 신옥 만 남고 나머지는 바다로 간다. 5번이 천막에서 밧줄을 들고 나온다)
오번과 신신옥의 테마
[오번] (잠시 망설이다가) 아가씨
[신신옥] 네?
[오번] 우리 감시반이죠? 좋은 생각이 있어요. 감시는 높은 곳에서 해야해요. 형무소 감시초소도 높거든요. 그래서 이 섬에서 제일 높은 나무 위에 올라가는 겁니다. 이 밧줄을 써서 그럼 더 멀리 볼 수 있거든요.
[신신옥] 오지도 않는 배를 뭣 때문에 기다려요?
[오번] 그럴까요? 그래도 배를 놓치고 후회하기는 싫군요. 왜, 우울하시군요.
[신신옥] (돌아서면서) 저한테 신경 쓰지 마세요. (자기에게 쏠린 대화를 돌리고자) 말씀 좀 해보세요. 형무소는 왜 입학했어요?
[오번] 수업료가 무료니까요.
[신신옥] 자기의 아픈 과거를 농담처럼 말하시는군요.
[오번] 농담처럼 물은 건 누군 데요? 얘기할까요? 공부하기 싫어서 형무소에 들어왔어요.
[신신옥] 그래요? 무슨 공부를 했는데요.
[오번] 모르겠어요. 그저 고학해서 등록금을 바치다 보니, 나도 모르는 사이에 삼 학년이 됐고! 그리구 또 형무소에서 2년을 지냈고. 젊었을 때의 인생은 바쁘더군요. 그러나 오해는 마세요. 살인을 했거나 사기를 해서 걸려든 것은 아닙니다. 아가씨도 대학은 나왔습니까?
[신신옥] 맞춰보세요.
[오번] 글쎄 모르겠군요. 하기야 여자란 대학을 나오나 마나니까. 불이 나게 복습하고 지랄 나게 예습을 해서 일등만 하던 여학생을 아는데, 시집가니 그만이더군요. 시집가서 일년 지내면 평범해지고 이년 지나면 바보가 되고 삼 년 지나면 식모가 되고 그리구
[신신옥] 그만 하세요. 저는 그렇게는 안될 테니까. 모를 일이에요. 말이란 건 한마디도 안 하던 분이 말은 물론 욕까지 하니.
[오번] 미안합니다. 저 사람들하고 무슨 말을 해요. 자, 이렇게 얘기하고 있는 동안 벌써 대 여섯 척의 배가 지나갔을지도 모릅니다. 가볼까요? 여기야 제가 반장이고 명령도 할 수 있으니까.
[신신옥] (머리에 손을 올리고) 네. 복종하겠습니다. 반장님.
[오번] 흥! 기분이 좋군요. 복종을 강요당하는 것은 싫지만 복종을 요구 할 때는 통쾌한데요. 갑시다.
(5번과 신 신옥이 밧줄을 갖고 나간다. 소장이 나온다)
<<뒷부분은 어두워지고 소장 부분은 밝게>>
[소장] (관객에게) 천 여명을 통치하던 이 소장의 신세가 말이 아닙니다. 그러나 이 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로서는 지금 맡고 있는 일이 최상입니다. 20일이 지났습니다. 허기진 배를 안고 이 섬의 새 주민들은 혹시나 지나갈지도 모를 배를 기다리며 연명하고 있었습니다.
요 몇 일 사이에 이상한 일도 일어났습니다. 어느 날 밤이었습니다. 그 날은 유난히 달이 밝았습니다. 저는 99번 아닌, 주석의 명령대로 천막 앞에서 졸며 식량을 지키고 있었고, 감시반을 맡은 5번과 신신옥. 이두사람은 먼바다를 바라보며 얘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감시는 한 사람이 하기로 되어 있었는데 언제부터인가 둘이서 감시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소장이 천막 앞에서 존다. 잠시 후 동굴 안에서 {{{비명소리}}}가 나며 김 화자가 뛰어나온다. 모두 놀라 그 뒤를 따라 나온다)
[고여사] 왜 그래?
[김화자] (씩씩거리다 오열하듯 운다)
[십팔] 꿈을 꾸었나보죠?
[김화자] 꿈이 아니야. 진짜였어요. 누가 나를 겁탈하려고 했어
[고여사] 저런!
[김화자] (울면서 알아 들을수 없는 말을한다)
[오박사] 그런 야만인 같은 짓을! 김화자씨 괜찮아요?
[ ] 뭐?? 우리 화자씨가 무슨일 당했나요?
[김화자] 음..음..잠...잠...결.....
[십팔] 그래 잠결에 뭐???
[김화자] 무...무거,..운....것...
[십팔] 그래 잠결에 머??? 무거운 것이 머머?? 누가 너를 덮쳤어???남자???남자??
{{효과음콰쾅}} 남자!!
<<조명 깜박거림>>
(18번을데리고나간다 18번 오열하면서 나간다 )
[고여사] 짐승이지. 같은 가족들처럼 지내야 하는데. (99번에게) 당신은 주석이 아니오? 책임을 지고 범인을 찾아 주세요.
[이운수] 경찰은 뭣 하는 물건이야?
[소장] 나 말이오? 이 섬에 경찰은 단 한 명뿐이오. 그 한 명마저도 식량을 지키느라 정신이 없단 말이오.
[이운수] 경찰은 하나 뿐이라지만 우리의 인구에 비례하면 많은 셈이지.
[이십] 흥! 인구가 적으니까 누가 인구를 늘리려고 저 아가씨를 괴롭혔군.
[고여사] 그렇다니까! 남자란 이렇게 뻔뻔스럽다니까. 모든 남자가 다 그래요.
[안중팔] 고 여사, 말조심하세요.
[구십구] 이런 일이 자주 생길 줄 알았으면 지도자를 맡지 않았을걸. 좋아. 경찰! 천막에 들어가 몽둥이를 가져오시오.
[소장] 왜?
[구십구] 가져오라니까!
(소장 천막으로 들어간다)
[이운수] 우리 남자들을 팰 생각인가?
(소장이 몽둥이를 들고 나온다)
[구십구] 분명 남자의 짓이야. 그러나 범인은 나오지 않아. 그러니 지도자인 내가 책임을 져야해.
[이십] 뭣 때문에?
[구십구] 몇 천만 원을 훔치거나 사람을 떼죽음 시켜놓고도 사표 한 장만 던지면 무사한 그런 지도자는 싫어. 그것들 때문에 우리는 못 살았어. 나도 지도자를 그만두면 이 일은 끝나나, 싫어! 우리만은 책임을 져야해. 자, 경찰관! 나를 범인으로 알고 후려갈겨, 어서!
[소장] 할 수 없군! 미안해! (소장 99번을 내려친다)
[구십구] 힘껏!
[소장] 그래!
[구십구] 좀더!
[소장] 알았어!
(소장이 계속 패더니 몽둥이를 내던지고 돌아선다. 99번은 그대로 쓰러져 있다. 모두 숙연해진다)
<<암전 밤조명과 달>> {{{파도소리}}}
[소장] 도데체 몇일이나 지났는지 모르겠군 음식도 바닥나가는데.
[신신옥] 골짜기의 샘물도 말라가서 물도 배급제가 됐잖아요. 하루에 한끼먹던 끼니도 줄어만 가고.. 정말 배가 고파서 죽을것만 같아요
[오박사] (고개 끄덕이며 이운수를 바라보다 놀래며) 이운수씨 지금 머하는거요?
[이운수] (쭈구려앉아 병을 바다로 흘려보낸다) 내 유서요. 이바다를 따라 흘러흘러 누군가 이병을 발견하게 되면 이것을보고 나의 아름다운 생애를 길이길이 기억하겠지..
[안중팔] 자 들어갑시다 밤이 늦었소
(동굴에서 안 중팔이 나와 천막 쪽으로 걸어온다)
[안중팔] 수고하오.
[.소장] 왜 잠이 안 와요?
(안 중팔이 머리를 흔든다) 그래도 눈은 붙여야지
[안중팔] 체면이 없는데 좀 도와주시오(소장의 바지 가랑이를 잡으며) 미칠 것 같아. 배가 고파 죽겠소. 내 요구하는 것은 뭣 이든 줄 테니 먹을 것 좀 주시오. 자 좀 봐주시오. 뭣이든 요구대로 할 테니까.
[소장] (발로차며) 왜이러시오. (곰곰히 생각하다)요구가 있습니다.
[안중팔] 다 말해보시오.
[소장] 들어가 주무시오.
[안중팔] 휴 인정도 없군요. 내, 고향에 돌아가면 은혜는 잊지 않겠소. (돈은 달라는 대로 다 주겠다)
[소장] (흔들리다 단호한다) 그럴 수는 없습니다. 이것이 내 일이니까. 일생을 이렇게 살아왔소.
[소장] 선생도 그 사람들이 만든 법에 따라 살고 있지 않소? 자, 들어가시오. 우리는 이런 생활에선 속수무책이오. 만약 저 사람들이 없었다면 벌서 해골이 됬을지도 몰라요. 무리도 있지만 지금으로서는 그 사람들의 말을 따를 수밖에 없습니다.
(안중팔이 머리를 끄덕이며 들어간다. 조용한 {{{하모니카 소리}}}만 난다. 신 신옥이 나와 5번을 본다 소장은 자는 척한다. 신 신옥이 서서히 5번에게로 다가간다. {{{하모니카소리 멎는다}}} 서로의 눈을 지긋이 바라본다.)
<<오번과 신신옥의 테마>>
[신신옥] (짐짓 어색해하며) 달빛이 정말 아름다워요.
[오번] 당신의 눈이 달빛보다 더 아름다워요
[신신옥] 아이몰라(부끄러워하며)
[오번] (손을 내밀며) 아가씨 저와 춤이나 한번 추시겠습니까?
[신신옥] (손을잡고 일어서며)네?? 추..춤이요??
[오번] 이 발위로 올라오세요.
[신신옥] 우거울텐데..(좋아하며 풀짝 올라간다)
[오번 (억지로 참는듯이) 윽!!
[신신옥] (당황해하며) 죄송해요 우리서로 자리를 바꿀까요?
[오번] (신옥이보다 더 좋아하며) 그러죠!!!
(음악이 흐르자 춤을 춘다)
(두 사람은 말이 없다. 잠시 후 고 여사가 나와 두 사람을 본다. 말을 걸까 하다가 참는다. 분노와 근심이 뒤섞여 어찌할 바를 모른다. {{{하모니카소리가 멎는다}}} 5번과 신신옥이 일어나 해변으로 뛰어간다. 고 여사 그쪽으로 뛰어간다 이때 <<무대 한 쪽이 밝아지기 시작한다. 삽시간에 붉은 빛이 무대를 덮는다>>)
[신신옥] 불이예요!!
[오번] 배아닌가요?!
[신신옥] 배에요 배!
[오번] 배가 지나간다!
(5번과 신 신옥이 기쁜 나머지 껴안는다. 사람들이 모두 뛰어나온다 고 여사가 그 모습을 보고 털썩 주저앉는다. 동굴에서 사람들이 뛰어나와 해변가를 본다. 모두 소리를 지른다)
[이운수] 저기 있군! 분명히 배야. 큰 기선 같아. 불이 환한데.
[안중팔] 살았군!
(99번이 돌아서서 눈물을 닦는다)
[오박사] 구세주야!
[구십구] 5번 그리구 아가씨 수고했어!
[이운수] 분명 여기를 봤을 거야. 저렇게 불이 활활 타니. (상의를 벗어 흔들며) 여기다! 어이! 여기다!
[김화자] 난 앞으로 교회에 나갈래. 하나님은 분명히 있나봐.
[구십구] 그간 수고가 많았어요.
[이십] 어? 배가 가까이 오질 않는데? 아냐! 오히려 조금씩 멀어져 가는 것 같아.
(일순 침묵이 흐른다)
[오박사] 그런 것 같은데, 점점 불빛이 작아지는데!
[김화자] 이렇게 훤한 불을 보지 못할 리가 없어! (계속 소리지르며)여기야!!
[안줄팔] 도데체 어떻게 된 거야?
[이운수] 빌어먹을!
[삼십삼] 아니, 저 배에는 장님만 탔나!
[신신옥] (5번에게) 어떻게 된 거죠?
[오번] 바보 같은 것들. (돌을 주워 배를 향해 던지며 울먹이는 소리로) 이 병신 같은 것들
아!!
<<낮 조명>>
[김화자] (초췌해진 얼굴로 왔다갔다 거리며) 불안해..불안해!! (털썩 주저앉아 다리를 꼭안고) 이러다 정말 여기서 죽어 버리는게 아닐까요??!
[이십] 재수없는 소리하지마!!
[삼십삼] 하지만 식량도 다 바닥나고 가뭄에 물도 다 말라 버렸어 우린 끝이야!!
(안중팔과 99번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다 한숨쉰다)
[구십구] 힘도 없는데 들어갑시다.
(모두들 퇴장하며 다른 쪽에서 고여사 5번등장)
[고여사] 신옥아! 우리 %%가 죽은지도 올해로 5년이구나.. 그동안 나 같은 시어미 돌보느라 고생 많았구나
[신신옥] 네..고생.쫌 했죠
[고여사] (입 꾹 다문채) 그러니??
[신신옥] 농담이예요! 어머니! 갑자기 왜 그런 말씀하세요??
[고여사] 육지에 못 올라갈 바에야 여기에서라도 좋으니 너와 나는 하루빨리 서로 독립을 해야한다. 오랜 결혼생활은 흔히 불행을 동반하지만 짧은 결혼생활에는 행복만이 있단다.
[신신옥] 짧은 결혼 생활요?
[고여사] 우리 앞에는 며칠밖에 남아 있지 않아? 내말 알겠니?
[신신옥] 무슨 말씀을
[고여사] (5번에게) 우리 신옥이를 사랑하나?
[오번] 글쎄요
[고여사] 당장 결혼해도 좋다는 자신이 있어?
[신신옥] 어머니!
[고여사] 이제부터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은 서로 사랑해보거라!! 나는 신옥이 니가 없더라도 삼시세끼..다는 챙겨먹지 못할꺼야.. 추운겨울날 그 넓디 넓은방에 혼자 앉아 쓸쓸히 궁상떨고 있겠지..내가 어디가 아프면...누가 찾아나 줄까?? (신 신옥이 울면서 고 여사의 품에 매달린다. 5번에게) 청년의 과거는 이 애한테 들었어. 이 애는 이해가 많은 애니 당신 생각은어때요?
[오번] 고 여사님, 결혼을 하겠습니다, {{{박진영 청혼가}}}
(고 여사 머리를 끄덕인다)
[고여사] 자, 같이 가서 주석한테 허가를 받자.
[오번] 허가요?
[고여사] 그래야 되지 안겠니? 참 모를 일이야!
(세 사람 나가고 무대가 암전 되며 하루가 지났음을 상징하는 조명이 비친다. 이어 소장이 나온다)
<<소장에게 스포트라이트 뒷조명 약하게>>
[소장] (관객에게) 이리하여 이 섬에 표류한지 30일 만에 처음으로 경사가 났습니다. 젊은 남자가 결혼을 하게 됐기 때문이죠. 그러나 세상에 이렇게 불안한 결혼이 있는 줄은 몰랐습니다. 죽음을 앞둔 공포 속에서 거행되는 결혼식이었으니까요. 그래도 사람들은 허기진 배를 안고 억지 웃음을 띠며 결혼식 준비에 바빴습니다. 신부의 옷은 배의 돛대에 찢어진 채 매달려 있던 천으로 만들었고. 신랑에게는 이운수씨의 옷을 입혔죠.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신혼부부가 하룻밤을 지낼 신방인데 그래서 저 천막을 방으로 꾸며 놓기로 했습니다.
(33번이 중심이 되어 베에서 뜯어온 판자와 창문을 써서 방으로 만들고 있다. 여인들이 모포를 들고 나와 임시 카페트를 깐다. 18번이 뛰어들어온다)
[십팔] 신랑신부는 다 준비가 됐어요.
[삼십삼] 아직 호텔 방이 다 안됐는데.
[오박사] 식을 마친 다음에 하지.
[안중팔] 어떨까? 모처럼의 결혼식인데. 식이 끝나면 술이나 한 잔씩 하지.
[이운수] 그거 좋군.
[소장] (99번에게) 자, 준비 됐습니까? (김 화자에게) 카페트는 다 됐습니까?
(99번이 침울한 표정으로 정 위치에 선다. 사람들이 모인다. 고 여사는 사과상자를 안는다. 18번이 99번에게 꽃을 달아준다)
[소장] 그럼 결혼식을 시작하겠습니다. 신랑 입장.
(5번이 나와 99번 앞에 선다)
[소장] 신부입장.
(이어 신 신옥이 들어온다. 야생의 화환을 머리에 두르고 있다. 사람들이 결혼행진곡을 부른다. 김 화자가 그 앞에서 솔잎을 뿌린다. 고 여사가 일어나 눈물을 닦는다. 18번도 뒤에 서서 운다, 신 신옥이 5번 옆에 선다)
[구십구] 음, 이제 여러 어른들이 보는 앞에서 두 젊은이는 부부가 되기 위해 여기에 섰습니다. 아무도 없는 이 섬에서 그리고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이 마당에서 두 분은 결혼을 합니다. 그러나 간절히 바라고 싶습니다. (김 화자가 돌아서서 운다, 두 사람이 손을 잡는다. 99번이 손을 위에 놓는다) 하나님이 계신다면 이러한 처지에서도 결혼을 하는 두 사람을 제발 보호해 주십시오 자, 주례의 말은 끝났어, 잘 살아. (고 여사가 신 신옥을 안는다) 가만 선물교환을 잊었군. 신부는 해변가에서 캐낸 맑고 흰 조약돌을 신랑에게 선물하고 신랑은 까만 산호조각을 선물합니다. 또 한마디 (일부로 농담조로) 같이 살면서 죽겠다는 말은 하지마. 더워서 죽겠다. 기분 나빠 죽겠다. 좋아 죽겠다 이런 말은 하지마. 그러면 맞습니다 맞고요~ (웃음) (모두 웃는다) 우리도 선물을 줘야지 저 천막이오. 호텔 방으로 알고 써요. 아직 다 안 됐지만 신혼 여행에서 돌아오면 완성 될 거야. 섬을 한바퀴 돌고 와요. 그것이 신혼여행이니까.
(모두 신랑신부에게 손을 내밀어 악수를 한다. 두 사람이 손을 잡고 산으로 나간다)
[고여사] (주석에게) 수고가 많았어요.
[구십구] 주례를 처음해서 순서를 틀렸고 미안합니다.
[고여사] 별 말씀을
(오 박사가 술병을 들고 온다)
[오박사] 자, 축배요
(33번이 깡통이며 컵을 돌린다)
[삼십삼] 술 상자를 열었어.
[오박사] 자, 안중팔부터 한잔 드시오. 제가 따라드리죠
(오박사가 술을 붓는다. 99번은 잠시 망설이다가 컵을 내던지고 술병을 뺏는다)
[구십구] 안 돼 정신 나갔어? 우리는 지금 하루에 한끼도 못 먹고 있어 그런데 술을 마시자구?? 당신은 의사가 아뇨?
[오박사] 그게아니라.. 상징적으로 조금만 마시면
[구십구] 조금이 많이가 돼요. 나도 고래처럼 술을 마셨어요. 그러나 여기선 안돼요. 33번, 컵을 거두어. 그리구 이 술은 도로 넣어둬. 그리구 식이 끝났으니 각자 일을 합시다. 해변가로 내려가는 거야. 천막을 손질할 사람 몇 만 남고 모래를 파봅시다. 아직도 조개나 게가 있을 거요, 여자들은 양동이나 그릇을 가지고 나가요.
[안중팔] 자, 갑시다.
(모두 나가려고 한다. 이때 5번이 신 신옥의 손을 잡고 뛰어들어온다)
[오번] 주석! 배가 와요!
[구십구] 배?
(모두 바닷가를 본다)
[오박사] 배가 온다!
[안중팔] 이리로 막 오는데!
[삼십삼] 자 옷을 벗어 흔들어!
[안중팔] 어잇!
(모두 껴안고 춤을 춘다)
[이십] 그때 그 배가 알려 줬나봐 우리를 보고서도 사정이 있어 못 왔지만 무전을 치거나 항구에 도착해서 말을 전했음이 틀림없어!
[안중팔] 이젠 살았구나!
[구십구] 내가 뭐랬어? 참으면 된다고 했지?
[삼십삼] 끝까지 버티기를 잘했어.
[김화자] 이젠 살았어! 지도자님! 수고가 많았어요.
[십팔] 한 십분만 있으면 여기에 닿을 거야.
[구십구] 자, 안 선생. 아까 그 술병을 가져와요! 축배다! (안 중팔이 못 들은 척하고 옆으로 피한다.) 술병을 가져오라니까! 안 선생!
[안중팔[ 왜이래! 마시고 싶으면 네가 갖다 먹어.
[구십구] 뭐! 아니, 방금 전에 술을 마시고 싶다고 한 건 누군데?
[안중팔] 그때는 그때고 지금은 지금이야.
[이운수] 네가 갖다 먹어! (이 운수가 술병을 내던진다. 99번이 달려든다) 왜 이래?
[안중팔] 그 손을 놔!
(99번이 놀라 주저앉는다)
[이십] 야! 지독하군! 저런 것들을!
[오박사] 20번 이랬지? 내 떠나기 전에 묻고 싶은 말이 있어 왜 나 같은 의사를 미워했지? 생전 처음 그런 모욕을 당했네. 말해봐. 그렇잖으면 고발하겠어.
[소장] 오 박사!
[오박사] 꼭 알아야겠어요. 자 말해봐
[이십] 듣고 싶소? 우리 어머니는 병원 안에도 못 들어가고 대기실에서 돌아가셨어. 입원비를 선불하지 못해서요. 치료를 거부당했어요.
[오박사] 음 그게 내 병원은 아니었어.
(안 중팔이 바위 위에 올라선다)
[안중팔] 자, 내말 좀 들어요. 좀 있으면 우리를 구해줄 배의 선원들이 올 겁니다. 신문기자도 있을지 몰라요. 그러니 우리도 체통을 지킵시다. 무려 한달 동안을 굴치 않고 살아온 우리의 씩씩한 모습을 보입시다. 자, 각자 옷을 입어요. (모두 옷을 바꾸어 입는다) 그리구 우리 다같이 고생한 동지들! 모든 것을 잊읍시다. 여기서 지낸 악몽을 말입니다. 자질구레한 감정은 다 버립시다
(먼데서 {{{비행기 소리}}}가 난다. {{{점차 소리가 커지며 저공으로 지나간다}}})
[이운수] 신문사 비행기다!
[고여사] 신문사 비행기까지? (신신옥 곁으로 간다) 신옥아, 참 다행이다.
[신신옥] 네 정말 기뻐요.
[고여사] 조금만 늦었어도 넌 저 남자 하구 천막 안에서 잠자리를 같이 할 뻔했구나.
[신신옥] 네?
[고여사] 모든 것을 잊는 거야. 너 안 중팔 선생님의 말씀을 들었지? 여기서 있었던 모든 것을 잊어버리는 거다. 방금 있었던 결혼식두.
[신신옥] 그걸 어떻게 잊어요? 특히나 결혼식을?
[고여사] 아직 네가 제정신이 아니구나. 네 체면도 생각해라.
[신신옥] 잊는 것도 자유지만 생각하는 것도 자유 에요. 저는 그렇게는 살 수 없어요. 30일 동안의 이 귀중한 생활을 어떻게 잊어요? 모든 것이 저에겐 진실으로 받아들여졌어요.
[안중팔] 내가 관여할 바는 아니지만, 아까 그 결혼은 뭐라고 할까 장난 같아. 고 여사의 말씀을 따르도록 해요.
[신신옥] (99번에게 가까이 가서) 우리의 결혼식이 장난 같았습니까? (99번이 신 신옥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이어 고개를 옆으로 흔든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가장 아름다웠어요.
(고 여사 신 신옥의 팔을 잡는다)
[신신옥] 놓으세요! (울면서)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요? 바로 몇 분전에 있었던 일을 그 아름다웠던 시간들을 어떻게 잊어요?
[고여사] 신옥아, 집으로 가는 거다.
[신신옥] 집? 거짓에 찬 그런 집. 거짓에 찬 그런 사회에서는 못 살아요!
(고 여사가 신 신옥의 빰을 갈긴다. 신 신옥이 주저앉는다)
[오번] 지금 뭐하는 짓이에요!(5번이 신 신옥을 부축한다)
[안중팔] (고 여사에게) 참으세요. 좀 진정하면 사리를 판단할 수 있겠지요. 자, 소장 님, 떠날 준비를 합시다. 수고가 많았습니다. (배의 엔진소리가 들린다) 배가 가까이 오는군.
[소장] 자, 99번, 일어나.
[안중팔] 99번, 저 굴속에 들어가 내 가방 좀 갖다줘요. (99번 말없이 들어간다) 그리구 20번하고 33번은 저 천막을 거둬야지. 18번은 취사도구를 간직하구.
(비행기가 또 한번 저공 비행을 한다. 99번이 기방을 갖다 놓고 천막 쪽으로 간다)
[이운수] 우리 30일간을 용케 견디어냈습니다.
[오박사] 글쎄 말이외다. 그것도 죄수들 틈에서.
[오번] 죄수라..
[오박사] 저 사람들은 배가 왔다는데 기쁘지 않은 모양이지?
[고여사] 신옥아, 가자!
[안중팔] 아가씨 악몽이라고 생각해요?
[오번] 악몽이라고
[신신옥] (5번에게) 그렇게 생각해요?
[오번] (머리를 끄덕이며) 할 수 없잖아요.
[고여사] 그것 봐라. 남자란 다 그런 거야.
[이십] 저 늙은 여우같은 게!
[오박사] 시끄러워 임마!
[이십] 뭐야?
[구십구] 20번!
[안중팔] 자, 오 박사. 진정하시오. 우리는 이분들을 초대한 입장에 있습니다. (모두에게) 알겠습니까? 우리는 30일 동안 여기서 상부상조하면서 다정하게 살아온 겁니다. 자, 갑시다.
(고 여사가 신 신옥을 밀듯이 앞세워 나간다. 신 신옥이 잠시 5번을 본다. 5번은 그녀의 시선을 피한다. 모두 나가고 99번과 5번만 남는다. 99번이 5번의 어깨에 손을 얹는다)
[구십구] 자--- 저 사람들 말이 악몽에서 깨어나 현실로 돌아가잔다.
(5번이 고개를 끄덕이며 섬을 돌아보며 99번과 함께 나간다)
<<암전.>>
{{{엔딩송}}}
첫댓글 은정아 대본 앞부분에 등장인물 그런것도 있어야 할것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