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은 지 12년이 된 방 3개짜리 29평 아파트, 이곳을 ‘산뜻한 신혼집’으로 고치는 것이 결혼을 앞둔 이숙종 씨의 가장 큰 숙제였다. 인테리어 디자이너들과 동네 업자 등에게 견적을 내보았지만 비용은 예상보다 비쌌고 자신의 취향과도 꽤나 달랐다. 고심 끝에 인테리어와는 거리가 멀던 초등학교 선생님은 한 달 반 동안 관련 서적과 잡지를 탐독하고 논현동과 을지로를 돌면서 ‘모던 캐주얼’, ‘넓어 보이는 집’이라는 컨셉트에 맞는 첫 작품을 성공적으로 완성시켰다.
개성 넘치는 벽지와 가구 선택
이미지 목록 과감한 얼룩말 벽지가 시선을 잡아끄는 거실 소파대신 라운지 체어를 배치한 것이 독특하다. | 거실에서 본 주방.수납장 겸용 바(Bar)는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편리하다. | 무지주 선반은 간결하면서도 현대적인 집 분위기에 잘 어울리는 선택 |
이숙종 씨의 집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거실 벽의 거대한 얼룩말과 그 앞에 놓인 2개의 라운지 체어, 그리고 식탁 대신 놓은 바(Bar) 타입 캐비닛이다. 어디서 TV 보고 어디서 밥 먹는지, 안 물어볼 수가 없었다. “소파 대신 널찍한 라운드형 라운지 체어를 두고, 주방에도 식탁 대신 길게 바를 짜 넣어서 공간 활용도를 높였어요. 손님 치를 때는 어차피 거실에 큰 상을 꺼내게 되니까 바닥에 둘러앉죠. 라운지 체어는 여자 2명은 거뜬히 앉을 수 있을 정도로 넓어서 생각보다 편해요. 식탁이 바 타입이라 벽 보고 밥을 먹는데, 선입견과 달리 밥 차리기도 편하고 나란히 앉아 먹게 되니 더 오붓하던데요.” 거실의 얼룩말은 실사 프린트가 아니라 거대한 패턴 벽지다. 벽지 숍에서도 실제 시공 사례가 없었다며 말리던 제품이었지만 이미 블랙&화이트로 주조색을 정했던 숙종 씨에게 이보다 더 좋은 포인트 벽지는 없었다. 대신 벽지 숍 사장님의 조언에 따라 베란다 쪽 기둥에도 검은색 벽지로 부분 시공을 해 얼룩말 패턴과 연결감을 주었고, 맞은편은 화이트 벽지에 가구를 낮게 배치해 심플함을 강조했다.
컨셉트 결정부터 공사까지 두 달 반의 스케줄
이미지 목록 수납장 맨 위칸을 틔워주면 천장이 더 높아보인다. 중간엔 서랍장을 매치해 장식성과 실용성을 높였다. | 다른 공간과 달리,침실만은 포근하고 신비로운 느낌을 주는 동양적인 스타일로 꾸몄다. | 포인트 컬러인 레드와 그린이 돋보이는 침대 주변 아래로 길에 늘어지는 주명이 멋스럽다. |
인테리어 컨셉트와 대략의 컬러(블랙&화이트, 포인트로 레드&그린)를 정하면서 도배지, 타일, 제작 가구, 조명 디자인과 시공할 위치를 미리 정했다. 개조를 진행하며 가장 도움을 받았던 것은 스스로 정리한 개조 노트와 각 업체 베테랑들의 실질적인 조언이었다. 수첩에다 제멋대로 도면을 그려가며 상상 속의 가구 배치와 컬러를 눈에 보이게 정리하는 동안 공간과 색 매치에 대한 감을 얻었고, 컨셉트를 바탕으로 벽지/씽크대/가구 제작 전문가들의 ‘하라’ 혹은 ‘하지마라’는 정보를 귀담아 듣고 절충함으로써 디테일을 다듬어나갔던 것이 셀프 개조의 큰 수확이었다. 처음 계획했던 화이트 페인트를 매트한 느낌의 화이트 벽지로, 가죽 라운지 체어를 캐주얼한 회색 원단 소재로, 흰 서재장에 검은색 서랍장을 추가하고, TV 벽면에 장식적 요소의 큼직한 선반장 대신 짧은 무지주 선반과 낮은 TV장을 둔 것 모두 이들과의 대화로 얻은 결과다.
3주간의 공사 지휘는 쉽지 않았다. 같은 라인 주민들의 2/3에게 동의서를 받고, 관리실에 엘리베이터 사용료 및 공사 예치금을 지불하며 허가를 받았다. 기본 철거(1일 소요) 후 섀시와 목공 작업+전기 배선+천장형 에어컨 설치에 5일이 소요됐다. 동시다발적으로 공사가 진행된 이때가 가장 정신 없었는데 간식을 사다 나르며 인부들과 원활히 의사소통하는 것이 중요했다. 그 후 타일과 미장(1일)→주방 가구 및 붙박이장 설치(2일)→도배(2일 )→마루(1일)→조명(1일) 순으로 공사가 진행되었다. 시공 후 실제로 살아보니 아쉬움도 있다. 김치나 매운 음식들이 흰 벽지에 튈 때는 ‘바(Bar) 위의 빨간 벽지를 바싹 내려 붙일 걸’하고 생각했고, ‘꼭대기 층인데 천장을 높여볼 걸’ 싶기도 했다. 그러나 훨씬 널찍해지고 개성 넘치면서도 현란하지 않은 공간을 보며 숙종 씨는 ‘셀프 개조, 쉽지 않지만 해볼 만하다’라는 자신감을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