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도 이후 다음 목적지는 경상남도 서부의 중심지, 진주였다. 역사에 숱하게 이름을 남겨왔던 전통의
대도시로서, 한때 경상남도의 중심지로 부산을 자신의 밑에 둘 때도 있었지만 지금은 인구 35만명 가량의 조그마한 중소도시로 위상이
많이 쇠락한 편이다. 그렇지만 진주성·촉석루와 같은 유적지, 냉면· 비빔밥 같은 음식, 그리고 남강유등축제라는 행사로서 과거 경상도 4대 도시였던 명성을 잊지 않고 기리는 옛 문화가 어느 정도 남아있어, 이런 점들 덕분에 꼭 한 번쯤은 들어보게 되는 고장이다.
과거
전통도시였던 곳의 가장 큰 또 하나의 강점은 바로 교통이다. 예로부터 호남 지방으로 가는 길목이자 경상도 남서부의 중심지로서
주변 지역으로 통하는 길목이 매우 발달해 있다. 일찍이 경남선(지금의 경전선) 철도가 뚫려 경부선과 연결되었고, 해방 이후에는 이
철길이 순천으로 이어지고 곧이어 남해고속도로가 개통되어 도로교통의 시대가 열렸다. 21세기 들어와서는 대전-통영간 고속도로가
개통되고 남해고속도로가 확장되면서 주변 어느 지역이던 쭉 뻗은 고속도로를 달려갈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고속도로가 뚫리기 전엔 교통이 편리하다고만 할 수는 없는 동네였다. 구불구불 돌아가는 경전선은 서울까지 가는 데만 하루를 꼬박
소비해야 했고, 당시만 해도 비포장길이었던 3번 국도로는 한없이 계곡과 산길을 따라가야 했기에 사고의 위험이 높았다. 비록
2차선이었지만 남해고속도로의 개통은 이 일대의 혁명이나 다름없었고, 이 고속도로의 개통에 맞추어 고속버스터미널이 진주역 앞에서
영업을 시작하였다. 40년을 넘게 자리를 지켜 온 이 조그마한 터미널은 과연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고속버스터미널은
진주시내에 있기는 하지만 시외버스 쪽과는 다소 떨어져 있다. 진주 안에서 강남이라고 하는 지역, 칠암동에 속해 있다. 옛
진주역과 걸어서 5분 거리에 마주 보고 있었으며, 근처에 경남과학기술대, 경상대 칠암캠퍼스, 한국방송통신대와 고려병원, 경상대병원
등이 있어 꽤나 유동인구가 많은 곳이다.
그래서 구시가지 속에 있던 시외버스터미널 근처와는 확연히 다른
분위기를 지니고 있다. 강남이라는 이름답게 보다 현대적이고 정돈된 듯한 느낌이지만, 여전히 전신주가 설치되어 있는 등 완전하게
정비된 모습은 아니다. 진주역이 들어선 이래로 여기도 시내로 발전한 지가 어언 90여년이 넘었기 때문에, 구시가지와 신시가지의
모습이 동시에 나타나는 독특한 분위기를 띄고 있다.
이런 곳에 고속버스터미널이 자리 잡고 있다. 세워진 시기는
1973년으로 시외버스터미널과 거의 같은 시기이고, 남해고속도로와 같은 해에 태어났다. 진주 도로교통의 역사가 고스란히 스며든
건물이라는 뜻이다. 다만 시외버스보다는 보다 더 깔끔하고 세련되어 보이는데, 중간에 새로 고쳐지었는지 관리가 잘 되어서인지는 알 수
없지만 겉모습으로 볼 땐 더 늦게 만들어진 듯한 분위기를 풍긴다.
그렇다 해도 시외버스터미널과 비교했을 때의 이야기일 뿐,
여기도 전체적으로 낡고 오래된 느낌은 숨길 수가 없다. 여러 번 새로 단장한 듯 깔끔하게는 꾸며 놓았지만 세월의 흔적은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입구에는 파란색 간판이, 그 밑으로는 파란색 지붕이, 더 밑으로는 원주까지 고속버스가 개통되었다는 홍보물이 붙어
있었다.
내부의 모습은 다른 지역의 고속터미널과 크게 다르지 않으나,
대체로 인구가 진주의 절반도 안 되는 소도시의 옛날 고속터미널과 비슷해 보인다. 이런 곳들은 대개 서울 노선만을 취급하거나, 더
있어봤자 2~3개의 하루 10회 미만 노선을 가지고 있는 소규모 버스터미널이다. 하지만 진주의 경우는 사정이 다르다.
당장 매표소 위에 적힌 시간표만 보아도 굉장히 빽빽하고
충실하게 작성되어 있다. 이미 노선의 숫자와 운행 횟수에서부터 여기와 비슷하게 생긴 다른 버스터미널들을 압도하는 규모다.
직접적으로 얘기하면, 터미널이 좁다는 뜻이다. 이 많은 노선을 효율적으로 처리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럴 수밖에 없다.
40년 전에 만들어진 시스템을 지금까지 그대로 쓰고 있으니 말이다.
물론 이곳의 가장 주력 노선은 단연 서울(반포)행 노선이다.
중앙, 동양고속 공동 배차로 운영되며, 대략 20~30분 간격으로 거의 대부분의 차가 우등으로 운행된다. 첫차가 일찍 뜨는데다
심야버스까지 있어 사실상 24시간 운영하는 노선이나 마찬가지다. 시외터미널에도 서울행 버스가 있고 이쪽 노선도 엄청난 스피드와
적은 소요시간으로 알려져 있어 부산교통 계열과 상당히 힘겨운 경쟁을 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KTX 개통으로 인해 서울 가는 열차가
대폭 늘어난 탓에 양쪽 사이에 치여 이도 저도 아닌 애매한 위치에 있다.
하지만
이들만의 장점들도 만만치 않다. 개양정류장을 들림으로써 경상대에서 이용이 가능하고, 인삼랜드휴게소에서 다른 고속버스와 환승이
되면서, 첫차와 막차가 일찍 그리고 늦게 있어 상시 이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또한 서울(남부)행 시외버스를 운영하는 부산교통의
서비스 품질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고 있어 고정 수요가 탄탄한 편으로, 명실상부한 고속터미널의 입지전적인 노선이라 할 수 있다.
이외에도 동서울행 고속 노선이 하루 다섯 번 운행하며,
방문하고 얼마 뒤엔 혁신도시를 경유하는 노선이 1일 3회 생겨 선택의 폭이 더욱 넓어졌다. 주말인 금~일 시간표는 대략 15~30분 간격으로 주중과 비슷하지만, 각 날짜마다 운행하는 차들과 출발 시간이 조금씩 달라지는 미세한 차이가 있다.
헷갈리는 만큼 주말 시간표를 통일해줬으면 하지만 다를만한 이유가 분명 있을 것이다.
2015년
11월엔 원주로 가는 버스가 생기면서 드디어 진주에서도 강원도까지 한 번에 가는 노선이 생겼다. 이전에 강원도로 가려면 대전
또는 서울까지 가서 환승해야 했기에 상당수의 군인들을 포함해 진주, 강원권 사람들이 불편을 겪었는데 이제는 한시름 덜게 됐다. 용인행 노선은 신갈을 경유해서 하루 8번 다녔지만 최근에 6번으로 감차되었고, 유일하게 동부익스프레스가 공동 배차에 참여한다. 사실 여기까지만 해도 노선이
충분해 보이는데...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다. 수원, 대구, 광주, 인천, 성남,
대전, 고양 등 무려 7개의 도시로 더 연결이 되어, 총 10개의 도시와 12개의 노선이 운행을 하고 있다. 대부분은 고속터미널
단독 운행으로 시외버스와 겹치지 않으나, 서울 대구 대전 등등 정작 가장 이용객이 많고 수익률이 높은 노선들에서 시외버스와
경쟁하는 구도를 가지고 있다. 그나마 대구행의 경우 서울과 마찬가지로 시외버스와 뚜렷한 차별성을 보이는 편이다. 여기서 출발하는
노선은 서대구고속버스터미널을 거쳐 동대구터미널로 이어진다. 참고로 서대구고속버스터미널은 북구의 공단 쪽에 있는 터미널이고,
시외버스가 가는 서부정류장은 남구의 성당못 쪽에 있는 터미널이니 엄연히 다르다.
수원행
역시 주중과 주말 시간표가 다르며 금호고속과 동양고속이 공동 배차를 하며, 나머지 수도권 노선(인천, 성남, 고양)은 서울과
마찬가지로 동양, 중앙고속이 공동 배차를 하며 개양정류장, 인삼랜드 휴게소를 들른다. 광주행은 그 지역의 터줏대감인 금호고속은
참여하지 않고 중앙고속 단독으로 운행하고, 대전행의 경우 경전고속이 운영하는데다 목적지까지 같아서 사실상 시외버스 노선과 차별성이 없는데, 그 이유는 고속버스 노선이 시외버스 쪽에 흡수되어 시외버스터미널 출발 노선의 일부만이 여기를 들리기 때문이다.
이렇게까지 다양한 노선들이 한자리에 모이니 따로 존재하는 것이
당연해 보인다. 안 그래도 좁은 부지에 어느 한쪽과 통합을 하면 포화를 넘어 폭발상태에 이를 것이니 말이다. 그러나 단독 운영하는
것 자체는 이해를 한다 쳐도, 거리가 상당히 멀리 떨어진 것과 낡은 시설까지는 그냥 이해하고 넘어가기엔 많은 무리가 있다.
위에서 그렇게까지 연식이 오래된 터미널 같진 않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써놓았는데, 막상 승차장으로 나오니 그런 생각이 쏙 들어간다. ㄷ자 형태의 승차장 구조 역시 지금은 전혀 볼 수 없는
옛날 형태이기 때문이다. 현재 이런 구조가 남아있는 곳은 마산고속버스터미널을 제외하면 딱히 생각이 나지 않고, 그쪽도 낡고 오래된
시설에 비좁은 주차장 때문에 많은 논란이 있는 곳이다. 하물며 여기는 어떡하랴. 그 많은 노선을 이렇게 좁은 홈에서 다
소화하려니 체할 지경이다.
시외버스터미널과 통합하여 개양 일대로 옮긴다는 구상을
2000년대로 넘어오면서 본격적으로 하게 되었지만 아직까지도 감감무소식이다. 여기는 그나마 시외버스터미널의 문제가 너무나 심각하여
상대적으로 덜 부각이 되었지만, 그렇다고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이전 문제에 관해서 상당히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는
상황이다. 이쪽은 시외버스터미널의 문제가 어느 정도 조율이 잘 되면 언제든지 옮길 수는 있는 상황이고, 그렇다 해서 지금의 위치가
상당히 좋은 편이라 굳이 당장의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옮길 필요성을 못 느끼기 때문에 지금 이 자리를 유지하는 것이다. 그러나
다시 터미널 이전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르게 된다면, 과연 고속터미널은 무슨 입장을 내놓게 될지 사뭇 궁금해진다.
여긴 특이하게도 수도권 전철 최신판이 붙어있다. 어쩌면 수도권
일부 역보다 더 최신판인 것 같기도 하다. 왜 이게 여기 붙어있는지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겠지만 대략 짐작은 간다. 일단은 서울
가는 사람들을 위한 작은 배려의 일환이고, 더 나아가면 우리가 시외버스터미널보다 서비스가 더 좋다는 무언의 압박일지도 모르겠다.
상호 간의 견제의 의미가 없지는 않은 것 같다.
지금까지
진주의 두 버스터미널을 살펴보았다. 좀처럼 볼 수 없는 구조물 덕분에 이색적인 느낌도 있고 다양한 버스를 보는 재미도 있었지만,
현실의 문제를 생각하면 마냥 신기하고 재밌게만 볼 수는 없는 일이었다. 이런 문제가 과연 여기만 있는 것인지, 내 주변에는 이런
갈등이 없는지 다시 한번 고민하게 되는 순간이고, 평범하게만 보였던 버스터미널에 대해 새로운 눈이 열리는 것 같다. 현재의
고민과 갈등이 깊이 쌓인 이 두 버스터미널들이 어던 미래를 걸어갈지는, 오직 진주 사람들의 손에 달려 있다. 그 미래가 어떻게
변화될지 한번 기다려 보고 싶다. 분명히 좋은 방향으로 흘러간다고 믿고 있으니까.
첫댓글 시간표를 잘 살펴보면 주말 서울행이 10분간격으로 운행하는시간은 없네요.
예를들면 07:00(우등) 07:20(우등 토) 07:30(우등 금,일) 07:40(우등 토) 0800(우등)인건
시간표상에 07:20, 07:30 이 존재하지만, 토요일은 20분 간격, 금, 일요일은 30분 간격운행이고요,
다만 14:00~1500 사이 일요일엔 15분 배차는 존재하네요.
잘 읽었습니다.
첫 댓글인데 태클이라 생각지 마사고...,
님께서 올리신 인월(남원)터미널 기행기를 읽어보고, 가보고 싶다는 글을 남겼었는데,
21일 화요일에 다녀왔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말씀하신 내용대로 수정했습니다. 인월에서는 좋은 방문 하셨나요?
진주 고속터미널에 금호가 들어가는군요.
시외, 고속 모두 볼 수 있겠군요. ^^
그러게나 말입니다. ^^
진주-용인 노선은 최근에 6회인가로 감축되었습니다... 그리고 대전 노선의 경우 경전에 흡수되고 전차량 시외터미널 출발로 변경되었고 그 중 5회만 고속터미널을 경유해서 갑니다. 이 차량들은 코버스에서 조회 및 예약이 가능하구요. 사실 큰 의미가 없는게 길 건너 과기대앞으로만 가도 시외버스가 30~1시간 간격으로 운행중인지라.. 그냥 통합하는게 낫다는 생각입니다.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7.02.24 10:50
저도 통합 동감합니다
대전 노선이 아예 시외터미널 출발로 변경되었었군요! 그러면 말씀하신대로 통합을 하는게 나을것 같은데요.
진주는 고속버스 노선도 다양하군요! 진주시의 규모가 짐작이 갑니다. 또한 중앙고속,동양고속의 여러 노선 공배운영이 특징이라 할수 있겠네요.
노선이 다양하고 거의 대부분이 공동배차로 운영하니 특색이 있어서 좋더군요.
용인노선도 감축됬지만 원주노선도 2회감회되서 하루2번운행하죠~!
생기자마자 감차가 됐군요.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인천 ㅡ 진주 노선 동양.중앙이 운행하고 있는 상황에 부산교통이 인천 노선을 개통 해서 요금 인하 경쟁 하다가 부산 교통이 4회에서 2회
감회 운행중 입니다. 승객 없이 공차 운행하고
1~3명 탑승 하는 정도 입니다. 동양.중앙은 승객 많이 탑승 합니다.
처음 4회 개통해서 1회 감회하여 3회 운행하다, 다시 1회 감회하여 2회 운행하고 있습니다
말씀하신 내용대로라면 거의 폐지 직전의 상태겠군요..
수원행이 생각보다 많이 운행 하네요
창원에서 수원이13회 정도로 아는데
말이죠
수원가는 수요가 많은가 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