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오웰, <1984년> - 벽이 없는 사회의 전설
예언자의 언어는 언제나 서늘하다. 눈감을 수 없는 진실 앞에서 우리는 실어증에 걸리기도, 답답함을 느끼기도, 절망감에 빠지기도 한다. 조지 오웰이 <1984년>에서 형상화한 세계가 안겨주는 "충격과 공포"는 바로 이런 종류의 것이다.
"빅브라더"로 상징되는 처절한 전체주의 사회에서 개인은 무력하기만 하다. 오웰은 주인공 윈스턴 스미스의 저항과 파멸 과정을 묘사함으로써 절대권력의 존재와 그 작동방식을 날카롭게 드러내고 있다. 스미스를 옥죄고 있는 감시와 통제의 거미줄은 그의 생활뿐 아니라 사고와 감정마저도 지배한다. 또한 애써 권력의 두터운 각질을 뚫고 불꽃처럼 치솟아오른 개인의 성찰과 비판, 그리고 실천은 또다시 예의 거미줄에 사로잡혀 회한의 눈물만을 남긴 채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리고 만다.
한때 스페인 혁명에 열광하고 트로츠키주의자이기도 했던 오웰은 소련의 스탈린주의를 비판하기 위해 이 불길한 디스토피아를 창조했다. 하지만 왜일까, 그의 사후 50여년이 지난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다시 한번 빅브라더의 추문이 유령처럼 떠돌고 있는 이유는? 우리 사회에 빅브라더는 과연 존재하는가?
한쪽에선 "그렇지 않다"고 대답한다. 소문은 소문일 뿐이다. 이들에게 우리 사회는 여전히 개인의 자유와 인권이 보장되는 자유민주주의 사회이며 절대권력도, 감시와 통제의 그물망도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대답하는 이들도 있다. 이들은 반박한다.
"당신들은 끊임없이 "위기의 전염병"을 퍼뜨리고 있다. 당신들은 주장한다.북한은 핵무기를 이미 개발했고, 경제는 IMF 구제금융 당시보다도 악화일로를 걷고 있으며, 무절제한 낭비벽 때문에 카드 빚더미에 올라앉은 살인강도들이 선량한 시민들의 생명과 재산을 위협하고 있으며 사회를 불안감 속으로 몰아넣고 있다. 현재의 난국을 돌파하기 위해선 "국민이 대통령"이라고 생각하는 순수하고 선한 의도를 지닌 국가가 직접 국민 개개인의 사생활을 집적된 데이타베이스를 통해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전국 방방곡곡에 설치된 감시카메라가 치안을 통제하며, 실명제를 통해 누구나 자신이 내뱉은 말에 기꺼이 책임을 지도록 해서 사회의 "도덕성"을 제고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묻고 싶다. 누구를 위한 효율성이며, 질서이며, 도덕성인가?"
오웰의 작품에서 1984년의 세계는 세 개의 초강대국으로 나뉘어져 있다. 이들 초강대국간의 전쟁은 영구적인 과정이다. 대중매체를 독점하고 있는 국가권력은 방송을 통해 때론 승리의, 때론 패배의 전황을 국민들에게 지속적으로 주입한다. 영구적인 전시상태는 국가를 총동원 체제로 주조하고, 온갖 사회적 모순과 성찰의 계기는 그 애국의 용광로 속에서 형체도 없이 녹아버린다. 브론슈타인으로 상징되는 반사회적 세력을 색출하기 위해 일상적인 감시와 통제가 정당화된다. 권력은 "텔레스크린"을 통해 개인의 가장 내밀한 사적 공간에마저 감시의 손길을 뻗친다. 그 결과 개개인이 자신 외에는(어쩌면 자신도) 가족도, 연인도, 친구도, 그 누구도 믿지 못하는 상호불신의 체계가 성립한다. 이렇게 파편화된 세계에서 절대권력에 대한 비판과 저항이 존재하거나 권력에 현실적인 위협으로 성장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우리는 이미 빅브라더에 관한 뼈아픈 기억을 갖고 있다. 수십년에 걸친 군사독재는 빅브라더의 정치를 고스란히 재현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분단현실, 경제개발 등을 핑계로 독재권력은 자신의 지배를 정당화했고, 권력은 자신에 맞서는 수많은 이들의 영혼과 육체를 무참히 유린했다. "빨갱이", "남산", "블랙리스트" 등 억압과 고통으로 뒤범벅된 언어는 그 어두웠던 시대의 분비물이며, "우리가 왜 공공성의 이름 아래 권력이 구축하고 있는 국가관리 체계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는가"에 대한 생생한 역사적 증언이다. 아직은 거리에서나 볼 수 있는 폐쇄회로 카메라가 언제고 우리의 침대 머리맡에서 나의 말과 행동, 생각과 느낌마저 감시할 수 있다.
누군가 전체주의 사회를 "벽이 없는 사회"라고 불렀다. 우리에게 그런 세계는 낯설다. 스탈린주의 소련이나 북한, 또는 <1984년> 같은 상상의 세계 등 우리와는 상관없는 먼 나라의 전설로만 보인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벽이 없는 사회에서 한 시절을 보내지 않았는가? 그것도 과연 그다지 머지 않은 과거가 아니었던가? 벽이 없는 사회는 현실이었고, 여전히 현실이 되고자 꿈틀거리고 있다. 오웰은 "희망은 대중에게 있다"고 여러 번 강조했다. 그가 묘사한 스탈린주의 소련이 대중의 힘에 의해 무너졌듯이, 우리 사회에서 빅브라더의 재림에 저항할 주체도 "당신"이다. 그것이 또한 민주주의 사회의 미덕일 것이다.
^_^
첫댓글 아주 오래된 글인데..청춘의 편린들을 마주하는 시간은 언제나 애틋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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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연말 참 쉽지 않다. 이쪽 한켠은 텅 비어 있는데, 그 빈 데 너머는 가득 들어차 거칠게 끓어오른다. 숨 좀 쉬어야지. 오늘이나 내일 연락할게^^
짐승의 애인이라 들었는데 언제 함 뵈야죠,1984를 먼저 못보고 하루키의 IQ84를 봤는데요, 얼른 들어 봐야겠네요,
네. 즐거운 크리스마스 보내세요^^
타인의 빛의 글은 단단하고 야무진 타일 상자 같아요.
아주 오래 전엔 그랬을지도..지금은 말단 공무원에 불과한지라..즐거운 크리스마스 보내세요^^
올해..동물농장만 읽고, 이건 읽다가 포기한 책이었는데요..
다시 읽어봐야겠습니다^^* 타인의빛 님 잘 읽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