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가 여호와의 영광을 보리라
출애굽기 16:1-12
옛날에는 어린 아이는 엄마 젖을 먹고 자랐습니다. 엄마가 없으면 어린 아이는 젖을 먹지 못해 살 수 없었습니다. 엄마가 들에 나가 일하면 아이를 업고 엄마가 일하는 논밭까지 가서 젖을 먹였습니다. 혹 이웃에 젖먹는 아이가 있으면 그 아이의 젖을 얻어 먹이기기도 했습니다. 이것을 동냥젖이라고 합니다. 그때는 어린 아이에게는 엄마가 제일이였습니다. 엄마만 있으면 아이는 걱정 없습니다. 그러나 엄마가 눈앞에 보이지 않으면 아이는 불안하여 엄마를 찾습니다. 배고파 우는 아이를 엄마 외에 그 누구도 해결해 줄 수가 없습니다. 울다 지쳐 잠이 들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요즘 아이들은 엄마가 없어도 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우윳병만 있으면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젖을 먹이려고 엄마가 있는 곳까지 업고 가지도 않습니다. 엄마가 없어도 아이는 걱정없이 키울 수 있습니다. 요즘 아이들은 엄마가 있으면 좋고, 없어도 별로 찾지 않습니다. 우유를 먹고 자란 아이는 엄마의 사랑도 모르고 엄마의 귀중함도 모릅니다. 그러나 엄마 젖을 먹고 자란 아이는 엄마의 사랑을 알뿐 아니라 엄마를 절대적인 존재로 알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온 후 둘째 달 십오일에 신 광야로 들어서게 되었습니다(1). 애굽의 라암셋을 떠난 날이 첫째 달 십오일이였으므로(민33:3) 출애굽한 지 꼭 한 달 만에 신 광야에 들어선 것입니다. 그동안 홍해를 건넜고, 마라에서 쓴 물도 단물로 변하여 마시는 체험도 했습니다. 엘림에 도착하여 물샘 열둘과 일흔 그루의 종려나무 그늘 아래 장막을 치고 그 동안의 피곤을 풀고 잘 쉬었습니다. 신 광야로 들어서게 되므로 광야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지금부터 광야에서 먹을 떡과 마실 물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먹을 것과 마실 물이 바닥이 난 것입니다. 그 동안 무엇을 먹고 마셨을까요. 우리는 하루를 어디를 가도 먹고 마실 것을 준비를 합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한 달 동안 무엇을 먹고 마셨는가를 찾아 보았습니다.
애굽에서 마지막 날 밤에 양을 잡아 그 피는 물설주에 바르고 고기는 불에 구워 무교병과 함께 먹으며 유월절을 지켰습니다. 이때 애굽 사람들 집에는 장자 죽음의 재앙으로 왕궁에서부터 종들의 집에 이르기까지 통곡을 하였습니다. 바로 왕은 더 이상 견딜 수 없어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떠나라고 했습니다. 애굽 사람들은 이스라엘 백성을 재촉하여 속히 내 보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발교되지 못한 반죽 담은 그릇을 옷에 싸서 메고 나왔습니다(출12:34). 한 달 동안 그때 가지고 나온 발교되지 못한 반죽으로 무교병을 구워 먹었습니다(출12:39).
그래서 무교병을 ‘고난의 떡’(신16:3)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물은 마라에서 쓴 물을 단물로 만들어 마셨고 또 엘림에서 열둘의 샘물을 마셨습니다. 이렇게 해서 한 달 동안 지내 오다 이제 가져온 떡도 없고 광야에는 마실 물도 없었습니다. 백성들은 먹고 마실 물이 없으므로 모세와 아론을 원망한 것입니다.
배고프면 가장 많이 생각나는 것이 무엇입니까? 지난 날 배부르게 먹었던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백성들은 모세와 아론에게 “우리가 애굽 땅에서 고기 가마 곁에 앉아 있던 때와 떡을 배불리 먹던 때에 여호와의 손에 죽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너희가 이 광야로 우리를 인도해 내어 이 온 회중이 주려 죽게 하는도다”(3)라고 말했습니다. 애굽에서 종 노릇 하며 고생했던 것은 생각하지 않고 배부르게 먹었던 애굽의 가마 곁을 생각한 것입니다.
‘원망’이란 ‘수군거리며 불평하는 것’ 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기회만 있으면 불평과 원망을 했습니다. 모세와 아론을 보고 원망을 하지만 사실은 하나님께 하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백성들의 원망의 소리를 다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원망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화를 내지 않으시고 오히려 ‘너희가 여호와의 영광을 보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7절 말씀에 “아침에 너희가 여호와의 영광을 보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너희가 자기를 향하여 원망함을 들으셨음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원망하는 소리를 들으셨으면 책망을 하시든지 아니면 벌을 내리시든지 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여호와의 영광을 보여 주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이 말씀을 가지고 한참 고민을 했습니다. 원망하는 그들에게 오히려 ‘여호와의 영광을 보여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때 이스라엘 백성들의 하나님에 대한 신앙은 마치 젖먹는 어린 아이와 같습니다. 애굽에서 하나님을 모르고 애굽의 신을 섬겼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애굽에서 불러내어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섬기도록 하였습니다. 물론 홍해를 갈라지게 하는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 했습니다. 그렇지만 아직도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것은 어린애와 같습니다. 그래서 광야에서 먹을 것과 마실 물이 없으므로 모세와 아론을 원망을 해도 책망하지 않으시고 ‘여호와의 영광을 보리리라’고 하시며 영광을 보여 주셨습니다.
어린 아이가 배가 고프면 악을 쓰고 웁니다. 배고파 악을 쓰고 운다고 해서 그 아이를 때리고 나무라지 않습니다. 오히려 불쌍해서 ‘조금만 참으면 엄마가 온다’고 하며 달랩니다. 배고파 우는 아이를 달래는 것처럼 하나님은 원망하는 백성들에게 책망하지 않으시고 여호와의 영광을 보여 주시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앞에 두고 뒤에 달려오는 바로의 군대를 보고 모세를 원망했습니다. 그때도 백성들의 원망을 하나님은 듣고 책망하지 않았습니다. 모세는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출12:13)고 외쳤습니다. 그리고 홍해를 갈라지는 기적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을 무사히 홍해를 건너게 해 주셨고 따라오는 바로의 군대는 모조리 바다에 빠져 죽게 하심으로 ‘여호와의 구원’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홍해를 앞에 두고 원망하는 백성들에게 ‘여호와의 구원을 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신 광야에서 먹을 양식과 마실 물이 없어 원망하는 백성들에게는 ‘여호와의 영광보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원망’은 하나님에 대한 불평이기 때문에 합당하는 것은 아닙니다. 원망하는 것은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불평하는 큰 잘못이 됩니다. 그러나 진퇴양란의 위기를 당했을 때와 배고파 죽게 되었을 때 원망하는 것을 하나님은 들으시고 오히려 그들에게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을 깨닫도록 영광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여호와의 영광을 보여 주셨습니다. 모세는 아론에게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말하여 여호와께 가까이 나아오라’(9)고 하여 온 백성들이 나와 광야를 바라보았습니다. 그때 ‘여호와의 영광이 구름 속에 나타났습니다’(10). 여호와의 영광을 원망하는 백성들에게 보여 주셨습니다.
구름 속에 나타난 여호와의 영광은 어떠했는지에 대해서는 분명히 알 수 없지만 주석가는 ‘구름을 해치고 쏟아져 내리는 섬광 같은 모습으로서 여호와의 위엄을 드러내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아무튼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이 자기들과 함께 하심을 확신할 수 있는 어떤 이상을 보여 주신 것으로 이해를 합니다. 광야에서 먹고 마실 것이 없어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믿음을 가질 수 있도록 확인을 시켜 준 것입니다.
배고프고 목말라 원망하는 백성들에게 “보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서 양식을 비 같이 내리리니 백성이 나가서 일용할 것을 날마다. 거둘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4). 하나님께서 해가 질 때는 고기를 먹고 아침에는 떡을 배부르게 먹고 ‘여호와가 이스라엘의 하나님인 줄을 알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12).
말씀하신 대로 저녁이 되었을 때 메추라기가 날아와서 진 주위에 내렸습니다. 그리고 아침에는 이슬이 내려 마르니까 작고 둥근 서리 같은 것이 되었습니다. 백성들은 ‘이것이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백성들은 아침마다 하늘로부터 비 같이 내리는 것을 보고 너무나도 신기해서 ‘이것이 무엇이냐’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무엇이냐’는 말이 곧 히브리 말은 ‘만나’라고 합니다. 모세는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어 먹게 하신 양식이라’고 하였습니다(15). 그래서 그날 이후로 가나안에 들어가는 날까지 40년을 만나와 메추라기를 먹을 수 있도록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백성들에게 만나를 날마다 거둘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많이 거둔 자도 남음이 없고 적게 거둔 자도 부족함이 없이 먹을 만큼만 거두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많이 거두어 먹고 남아 아침까지 두었더니 벌레가 생기고 썩어 냄새가 나서 먹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여섯째 날에는 이레째 날 먹을 것까지 거두라고 하셨습니다. 엿새 동안은 매일 거두지만 이레째 되는 날 안식일은 거두지 못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여섯째 날에 거둔 것은 다음 날에 냄새도 나지 않고 벌레도 생기지 않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백성들 중에는 여섯째 날에 이틀 양식을 거두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레째 날 아침에 만나를 거두러 나갔다가 거두지를 못하므로 그들은 굶어야 했습니다.
열흘이나 한 달 먹을 것을 한꺼번에 거두면 날마다 거두러 나가는 수고를 하지 않아도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게 하지 않고 날마다 거두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지혜가 있습니다.
어린 아이가 한꺼번에 이틀이나 사흘 먹을 젖을 다 먹을 수 있다면 엄마도 수월하고 아이도 자주 배고픈 괴로움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이는 배부르게 젖을 먹어도 반나절 정도 지나면 또 배고파 엄마를 찾아야 합니다. 만약 이틀이나 사흘만에 한 번씩 젖을 먹어도 된다면 그동안 엄마를 찾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면 엄마를 잊을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한 달 먹을 것을 거두어 쌓아 놓고 먹을 수 있도록 하셨다면 한 달 동안은 하나님을 찾지 않을 것입니다. 날마다 거둘 수 있도록 하신 것은 날마다 하늘 양식을 기다리므로 해서 날마다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광야에서 날마다 하나님이 주시는 만나를 먹으므로 하나님의 은혜를 날마다 잊지 않고 감사할 수 있도록 하신 것입니다.
우리나라가 해방 후 그리고 전쟁으로 폐허가 되어 먹을 것이 없을 때 성도들은 날마다 하나님께 부르짖고 기도를 했습니다. 그래서 세계 어느 나라에도 없는 새벽기도를 하게 된 것입니다. 한국 교회의 새벽기도는 날마다 하나님을 찾는 것입니다. 날마다 기도하지 않으면 날마다 도와주시는 하나님이심을 알지 못하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날마다 광야에서 만나를 거둔 것처럼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날마다 받았습니다. 그래서 한국 교회는 크게 부흥하고 백성들은 복을 받았습니다.
이제 먹고 사는 문제가 어렵지 않으니까 날마다 하나님을 찾지 않습니다. 바쁘게 세상을 살다가 주일이 되면 습관적으로 교회에 나와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하나님과의 관계가 자꾸 멀어집니다. 하나님께 구하지 않아도 별 문제가 없이 잘 살고 있기 때문에 날마다 기도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교회와 성도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날마다 만나를 거두웠던 것처럼 날마다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를 사모해야 합니다.
오늘 우리는 맥추감사절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매년 맥추절을 지키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농사하지 않았음에도 맥추절을 지키라고 하셨습니다. 애굽에서 유월절을 지키고 출애굽하여 50일이 지나서 광야에서 맥추절을 지켰습니다. 그래서 칠칠절 또는 오순절이라고 합니다. 오순절은 성령강림하신 날입니다. 예수님께서 유월절 제물이 되셔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후 50일이 되는 날 제자들이 모인 마가 요한의 다락방에 성령님이 강림하셨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성령 충만함을 받았습니다. 그로 인하여 교회가 세워지고 오늘까지 왔습니다.
금년 한 해도 벌써 반년이 지났습니다. 그동안 지켜 주신 은혜를 감사하여야 합니다. 일용할 양식을 주셔서 어려움 없이 지내 온 것을 감사해야 합니다. 맥추절을 감사하며 지킬 때 성령 충만함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하나님의 은혜로 복된 삶을 살 수 있도록 지켜 주실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하며 영광을 돌리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