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의 대표적 산을 꼽으라면 금정산, 황령산, 장산을 흔히 꼽는다. 이 세 산 중에 금정산은 말할 필요도 없이 부산의 대표적인 산이라 할 수 있고, 장산과 황령산은 각각 해운대와 부산 진구의 대표적인 산이다. 이 중에서 금정산과 장산은 부산의 중심지에서 다소 외곽에 있는 반면, 황령산은 도심의 한 가운데에 버티고 있어 부산 어디를 가도 이 황령산을 쉽사리 볼 수 있다.
▲ 마하사 입구의 미니 폭포
ⓒ2005 김대갑
이 황령산의 서북쪽 여러 산봉우리 중 하나를 금련산이라고 부르는데,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금빛 연꽃산이란 뜻이다. 우리나라 산천에는 연꽃과 관련된 산명이 많은데 이는 산봉우리 형상이 연꽃봉오리처럼 둥근 양감과 부드러운 생명감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금련산은 연제구에 속하는 산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산중에는 범어사에 버금가는 역사를 가진 마하사란 절이 고고한 자태를 뽐내며 자리잡고 있다. 마하사의 마하(Maha)는 산스크리트로서 그 뜻은 '훌륭한', '존귀한', '위대한"이란 뜻이다. 결국 마하사란 이름을 글자 그대로 풀이하면 '훌륭한 사찰'이란 뜻이다. 예로부터 이 마하사가 위치한 지형은 이른바 금학이 알을 품는 금학포란(金鶴包卵)의 형세라고 하여 절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 따뜻한 기운이 절로 넘친다고 전해온다.
▲ 절의 중심 대웅전
ⓒ2005 김대갑
마하사의 창건 연대에 대해서는 정확한 기록이 없다. 다만 지난 1965년~1970년 대대적인 중창불사를 단행하던 중 대웅전 건물에서 상량문이 발견되었는데, 그 상량문에서 마하사를 아도화상(阿道和尙)이 창건했다는 기록이 있었다고 하여 마하사의 창건시기를 신라 내물왕대로 추측할 뿐이라고 한다.
무엇보다도 이 마하사에는 16나한과 관련된 재미있는 전설이 하나 있으며, 실제로 마하사에는 16나한을 모신 나한전이 대웅전 옆에 소담스럽게 자리잡고 있다. 이 전설은 부산의 민간설화를 이야기할 때 반드시 거론될 정도로 흥미롭고 신비한 이야기이다.
▲ 16나한을 모신 곳
ⓒ2005 김대갑
선조 초엽의 어느 해 겨울이었다. 마하사의 공양 중이 늦잠을 자는 바람에 화로의 불씨가 꺼져버려 절 안이 냉골이 되고 말았다. 마침 그 날은 동짓날이었고 부처님에게 팥죽을 쑤어 공양을 해야 했다. 그러나 불덩이라곤 찾아 볼 수 없어 공양 중은 할 수 없이 황령산 봉수대에 가서 불씨를 얻어 와야 했다. 그는 우선 팥을 씻어 솥에다 넣고는 부랴부랴 봉수대로 올라가서 봉화군에게 불씨를 좀 달라고 하였다.
▲ 아라한이여, 무에 그리 즐겁습니까.
ⓒ2005 김대갑
그런데 봉화군 말이 조금 전에 마하사에서 왔다는 동자승에게 불씨를 주었으며, 마침 동짓날인지라 봉수대에서 쑨 팥죽을 조금 나누어 주었다는 것이었다. 절에는 동자승이 없고 더군다나 불씨를 얻으러 보낸 적도 없었던 지라 이상하게 여긴 공양 중은 마하사로 황급히 돌아갔다. 그리고는 부엌으로 가보았는데, 아궁이에서 불이 활활 타오르고 있는 게 아닌가? 이것 참 신기한 일이라며 의아하게 생각한 공양 중은 마침 잘 됐다 싶어 그 불로 동지팥죽을 맛있게 끊였다.
팥죽을 다 끊인 공양 중은 정성스럽게 마련한 팥죽 그릇을 들고 나한전에 공양하러 들어갔는데, 오른쪽에서 세 번째에 있는 나한의 입술에 팥죽이 조금 묻어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제야 공양 중은 나한님이 절에 불이 없는 것을 아시고 동자승으로 화하여 봉수대에 가서 불씨를 얻어 온 것을 알게 되었다.
▲ 마하사 전경. 계단 위 건물은 삼성각
ⓒ2005 김대갑
빙그레 웃음을 자아내게 하는 재치 만점의 전설이라 아니 할 수 없다. 나한이 동자승으로 화하였다는 설정도 재미있거니와 그 동자승이 팥죽을 얻어먹었다는 대목에선 순진무구한 마음이 느껴지기도 한다. 더 재미있는 것은 이 나한의 입술에 얼마 전까지만 해도 동지 팥죽이 남아 있었다는 것이다. 물론 지금은 그 흔적을 찾아 볼 수 없다. 마하사에는 이외에도 '참새를 쫓아낸 나한'과 '소리나지 않는 금구'에 얽힌 전설도 있다고 한다.
▲ 천왕문과 범종각이 이층을 이루고 있다.
ⓒ2005 김대갑
마하사가 위치한 연제구는 수영구과 가까운 곳에 있다. 예로부터 이 수영구에는 '수영팔경'이라는 절경이 있었다고 한다. 그 '수영팔경' 중의 하나가 '연산모종'이라 하여 금련산에서 들려오는 종소리라는 뜻이다. 원래 금련산에는 마하사·반야암·바라밀다사 등 세 개의 사찰이 있었는데, 지금은 마하사만 남아 있고, 반야암과 바라밀다사는 마하사 입구의 맞은편 언덕에 흔적만 남아 있다. 연산모종은 해질녘에 이곳 마하사에서 울려퍼지는 은은한 범종소리를 지칭하는 것이며, 이 범종소리를 수영에서 들을 때면 해탈득도의 여운으로 받아 들여진다고 한다.
멀리서 들려오는 청각을 하나의 景으로 삼은 옛사람들의 낭만과 나한님의 기지가 번뜩이는 마하사에서 잠시 속세의 연을 끊는 것도 의미있는 템플스테이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