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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종착역 13 (2019 사토 아이코)
13, 글 쓰는 일만이 내 인생의 전부
(대담자 구도 미요코: 논픽션 작가)
(93세 부인공론 2017년 7월 25일호)
13-1 피도 눈물도 없어졌다?
구도 : 선생님 얼마 전에 치아 수술을 하셨다면서요?
사토 : 입원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어려운 발치라고 해서요. 간호사로부터 수술 후에는 출혈이 심하니까 휴지를 한 박스 준비해 두라고 했는데 피가 별로 안 나왔어요. 아흔이나 되면 이제 피도 눈물도 메말라 가나 봐요.
구도: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웃음). 수술이 끝나고 바로 퇴원하셨다니 역시 선생님은 대단하시다고 생각했습니다. 글쓰는 일은 상당한 육체노동으로 생각하는데 지금도 매일 쓰고 계십니까?
사토 : 하루에 세 시간 정도입니다만.
구도: 세 시간이나 쓰나요? 대단하시네요...
사토 : 젊었을 때는 낮에는 5시간, 그리고 밤 작업도 있었어요. 지금은 노쇄해서 불가능하지만.
구도 : 이전에 선생님은 "나는 글쓰는 일에 대해 끈질기다"고 말씀하셨지요. 대담 등의 일을 함께 했습니다만, 선생님은 정말 여러번 수정을 하셨습니다.
사토: 이 표현으로 자신이 생각하는 것이 정확하게 표현되고 있는지 그리고 정확하게 전달되고 있는지그것이 저한테는 가장 큰 문제이기 때문이거든요.
구도: 그 자세에 감동했습니다.
사토 : 옛날에는 머리에 번뜩 문장이 떠올라 쓰는 손이 따라가지 못하는 시기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생각이 떠올라 쓰기는 쓰는데 다시 읽으면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고쳐 쓴 것을 다음 날 읽으면 또 마음에 안 들어요. 원고를 잘못 쓴 것이 산더미처럼 되는 거예요.
구도 : 그 잘못 쓴 것도 머릿속에 들어 계시는군요.
사토 : 네. "일주일 전에 쓴 것이 더 좋았다" 라며 산더미 같이 버린 원고지를 다시 찾기도 하지요.
구도 : 그렇게까지 집중하고 계시는군요. 아침에 일어나서 먼저 머리에 떠오르는 것은 원고인가요?
사토 : 그날 할 일, 글쓰는 일을 먼저 생각합니다.
구도 : 그 점이 저 같은 범인과는 다른 점입니다. 매일 그만큼 장시간 쓰시면 피곤하실 것 같습니다.
사토 : 물론 피곤하지요. 어깨도 결리고. 하지만 저는 낮잠은 잘 자지 않는 성격입니다. 글쓰기를 마치면 대개 저녁시간이 되니까 크래식이나 비틀즈 같은 거 들으면서 저녁준비를 하지요.
구도: 식사를 직접 준비하시는군요.
사토: 기분 전환도 되고. 어떻게 보면, 요리도 창의적인 작업이겠죠. 없는 것을 만들어내는 기쁨도 있고 비교적 좋아합니다.
구도: 어떤 것을 만드시나요?
사토: 별거 아닙니다. 말하자면 반찬 종류죠. 화이트 소스 만드는 건 비교적 좋아합니다. 스튜나 크림 고로케 같은 것을 만들기도 해요.
구도 : 소스도 직접 만드시는 건가요?
사토 : 옛날에는 직접 만들 수밖에 없었어요. 요즘은 만들어도 잘 먹지 못하니까 2층 딸 가족에게 억지로 먹입니다.
13-2 소설을 쓰는 것은 자신을 표현하는 것.
구도: 혹시 "글쓰기가 이제 싫증이 났다" 고 생각한 적은 없으신가요?
사토: 쓰는 것을 그만두면, 달리 할 일이 없어요. 아니 할 일이라기보다는, 할 수 있는 게 없어요.
구도: 선생님은 지금 사후의 세계를 소재로 한 논픽션을 쓰고 계신다고 들었습니다만.
사토: 논픽션을 쓴다는 것은 힘든 작업이라고 늘 생각하고 있어요. 소설은 픽션이기 때문에 얼마든지 가공할 수 있지만 논픽션은 사실을 마음대로 바꿀 수 없으니까요. 논픽션이 전문인 구도 씨는 정말 힘들 거라고 생각해요.
구도 : 논픽션은 객관적 사실이 가장 중요하지만, 선생님이 지금 쓰고 계신 주제가 너무 어려운 것 같습니다. 아무도 모르는, 사후의 일을 쓰려고 하시니까요.
사토 : 구도 씨는 대상을 철저히 파악하는 자세가 있군요.
구도 : 우에사카 후유코(*上坂冬子 1930~2009 논픽션 작가) 씨가 말씀하셨습니다만, 논픽션이라는 것은 취재 상대에게 입을 열게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어떻게든 상대방을 물고 늘어지곤 합니다.
사토: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소설은 누구나 쓸 수 있지만.
구도: 가끔 제1급 소재를 접할 수 있는 행운을 잡을 때가 있어도 소설로는 필력이 모자라서 쓸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실을 바탕으로 논픽션으로 제대로 기록해 두는 것을 더 선호하고 있습니다. 때로는 쓰기가 주저스러울 때도 있지만 활자로 기록해 두지 않으면 세월 속에서 사라져 버릴 것이 안타까운 마음에 기록해 두곤합니다.
사토: 논픽션에는 자신의 가치관은 없지요. 그게 픽션과의 가장 큰 차이점이겠죠. 예를 들어 사이고 다카모리(*西郷隆盛 1828~1877 정치가 군인)의 소설을 쓴다면, 그 작가는 사이고 다카모리를 쓰는 것으로 결국 자신의 가치관을 말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게 소설이거든요.
구도 : 선생님은 오랜 작가 생활을 하면서, 자신을 고난에 빠뜨린 전남편 다바타 무기히코(*田畑麦彦 1928~ 2008 소설가)에 대해 몇 번인가 쓰셨더군요. "고난이 끝니자 날은 저물고"에는 남편에 대한 분노가 넘쳤습니다. 하지만 인생의 마지막 소설로 자리매김해 쓴 "만종(晩鐘)"에서는, 같은 남편에 대해 썼지만 어조가 다르게 분노의 감정은 그다지 보이지 않았습니다.
사토 : 그것은 인간은 성장하는 것이기 때문인가 봅니다. "고난이 끝니자 날은 저물고"는 마흔세 살에 쓴 것이지만, "만종"은 아흔 가까이 되어서 쓴 것이니까요.
구도: 그러한 심경의 변화를 인간의 성장이라는 식으로 느끼고 계십니까?
사토 : 네, 젊었을 때는 사람을 보는 눈이 현실적이고 신념도 강하고요. 나이가 들면 사람을 보는 시야도 넓어지고, 자신을 객관시할 수 있게 되니까요.
13-3 문체란 호흡이다
구도 : 저는 선생님의 전남편을 좀처럼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만, 그는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고 그를 위해 금전적인 도움을 주는 사람도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사토 : 그는 다른 사람의 비판은 일절 하지 않고 매우 관용적인 남자였습니다. 무슨 일이든 너그러웠습니다. 그리고 낙천적인 사람이었어요. 편안함을 남에게 준다고나 할까. 나 같은 경우도 그 편안함에 마음이 끌렸나 봐요. 그런데 그런 방심을 틈타 결과적으로 남을 속이게 된 것 같습니다. 사업이 잘못되어 관용적인 사기꾼이 되어 간 것입니다. 그게 이해하기 어려운 점이에요.
구도: 전남편은 미남이었나요?
사토: 아니, 평범했어요.
구도: 선생님과는 어떻게 함께하게 되셨나요?
사토 : 원래 저는 문학을 좋아해서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소설 쓰는 방법 같은 것은 몰랐습니다. 그래서 그에게 여러 가지를 배웠거든요. 그런 점에서 나에게 필요한 남자였지요. 나의 글을 다른 사람들이 아무리 폄하해도 그가 칭찬해 주면 그만인 그런 시기가 있었어요. 작가가 될 수 있었던 건
그이 덕분이었습니다. 그래서 빚을 대신 짊어진 것도...
구도: 옛날 이야기에 나오는 "학의 은혜보답" 같은 거군요.
사토 : 그런 마음이 있었어요. 소설을 쓰기 시작했을 무렵, 기타하라 다케오(北原武夫 1907~1973 소설가) 씨로부더 "아직 아이코 씨에게는 문체(文体)가 없어요"라고 자주 지적을 받곤 했는데 "다바타(전 남편)군은 문체가 있다"고 말했어요. 그 무렵에는 문체라는 말을 들어도 무슨 말인지 몰랐습니다만.
구도 : 제가 캐나다의 대학에 다닐 때 영문학 선생님이 "문체란 오리지널리티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자기만 쓸 수 있는 글이라고. 문체를 만든다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만....
사토 : 저는 문체란 의식적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호흡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쓰고 쓰고 쓰다 보면 자연스럽게 생기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쿠도 : 호흡인가요? 그것 재미있는 표현이네요.
사토 : 저는 이부세 마스지(*井伏 鱒二 1989~ 1993 소설가) 씨를 매우 존경하고 신처럼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구도: 그의 작품인 "도롱뇽"이나 "요배대장(遥拝隊長)" 등을 저도 너무 좋아합니다.
사토 : 저는 그런 소설을 쓰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이부세 씨의 문체를 흉내내어 쓰고 있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미시마 유키오(三島由紀夫 1925~1970 소설가) 씨나 혜밍웨이 등 저가 좋아하는 작가의 문체를 흉내내어 섰습니다. 질리면 다음 작가로 넘어갔습니다. 그러면 여러 가지 문체(文体)가 자기 안에서 믹스가 돼서.
구도 : 그것이 트레이닝이 되어 작가로서의 "근육"이 붙어 사토 선생님 고유의 문체라는 것이 생겼군요. 여류 작가 중에 영향을 받은 분이 계신가요?
사토: 영국의 버지니아 울프. 그 사람의 영향도 받았습니다. 제 소설은 설명이 없어요. "만종" 때도 전 남편의 언동만 적을 뿐 거기에 대한 작가의 해석은 쓰지 않으려고 노력했습니다. 그건 울프의 영향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구도: 소설이라는 것은 설명으로 되는 것이 아니고, 설명없이 독자를 끌어들여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확실히 '만종(晩鐘)'을 읽고 있으면 눈앞에 등장인물들이 다가와 이들에 의해 이야기 속으로 끌려 들어가게 됩니다.
13-4 쓰고 싶어서 써왔을 따름이다
구도 : 같은 세대를 살았던 작가님들은 점점 돌아가신 분이 많아졌군요. 지금 선생님과 같은 세대 분은 세토우치 쟈쿠쵸(瀬戸内寂聴 1922~2021 소설가)선생님과.......
사토 : 그리고, 쓰무라 세츠코(津村節子 1928~소설가) 씨군요.
구도: 같은 시대를 살아온 분들이 점점 사라지는 속에, 자신의 작품을 남겨야 한다는 초조함 같은 것은없습니까?
사토 : 없습니다. 대체로 저 같은 경우는 대단한 작가가 아니니까요. 훌륭한 작가님이 돌아가셔서 어쩌다보니 지금의 위치에 이르렀을 뿐이에요. 남겨야겠다는 그런 당치도 않은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구도: 그렇지 않습니다. (웃음) 글을 쓰시는 분들은 누구나 그렇겠지만 "내가 좋은 작품을 썼다" 는 것을 본인은 좀처럼 모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사토 : 좋은 작품이란 어떤 것인지 아직도 모르고 있습니다. 저는 제가 쓰고 싶다고 생각한 것이 제대로 쓰였는지, 정확하게 쓰였는지, 관심은 그것뿐입니다.
구도 : 생각한대로 쓰였는가 하고 관심을 가지는 것은 당연히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독자가 돈을 내고 사 줄 수 있을까 하는 불안은 없었습니까?
사토 : 독자들은 자기 마음에 따라 사고 있는 것이니까, 나는 별로 신경쓰지 않습니다. 빵가게 같은 것이 아니니까요. 빵가게는 팔리지 않으면 곤란하지만, 소설의 밑천은 원고지와 펜뿐이기 때문에 별로 걱정하지 않습니다. 곤란한 건 출판사이지요.
구도: (웃음) 역시 대단하십니다. 저는 아직 그 영역에는 도달하지 못했는데요. 한편으로는 독자가 무엇을 원하는지를 생각하면서 쓰는 작가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토: 나는, 그냥 쓰고 싶고 쓸 필요가 있기 때문에 쓰고 있을 뿐입니다. 읽어주는 사람이 있으면 '아, 고맙다'고 생각하지만 읽히지 않는다고 실망하지는 않습니다.
구도 : '만종'이나 사토 가문의 혈통에 대해 쓴 '혈맥' 등에서 남편이나 가족 그리고 자신을 드러내 오셨습니다만, 쓰시면서 주저하거나 하지는 않았습니까?
사토 : 단지 '쓰고 싶다'는 작가로서의 욕구때문이었습니다. 사토 가문의 내력을 어떻게 생각하는가는 그기에 등장하는 사람들을 통하여 알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할 뿐입다. 그게 다예요.
구도 : 이 정도의 작품을 쓰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렸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만종'은 전남편과의 관계를 그렸다고는 하지만 나아가 '남자와 여자' 간의 얘기가 아닌가요.
사토 : 맞아요. 그기에 쓰여진 것은 '인간에 관한 것' 입니다.
구도 : 저의 어머니는 다이쇼 11년(*1922년 사토와 동연배)생이었는데, 다이쇼 시대의 사람에게는 이후 세대와는 조금 다른 남녀관이 있는 것 같습니다. 애정 따위는 아주 없어져도 헤어진 남편과 거리에서 우연히 만주치면 '저 사람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하는 정도는 생각은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것은 발끝에 돌멩이가 걸리면 무심코 그 돌을 보게 되는 정도의 기분으로. 선생님은 '만종'에서 '아, 그(*전남편)는 죽어버렸나'라고 표현하고 있었는데, 그 홀가분해 하는 느낌에서 다이쇼 태생의 강인함이 보였습니다. 죄송합니다만 저의 경우에도 어머니가 아버지를 항상 매몰차게 내치고 있었기 때문에 그런생각이 들었습니다.
사토 : 남편이라고 생각하면 화가 나지요. 남이면 화날 일이 없지요. 하지만 남편으로서가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보게 되면 애욕이나 손득을 초월한 시각으로 보게 되지요. 그 소설은 거기에 기초를 두고 쓴 것같은 생각이 듭니다.
구도: 아마 그 사람 때문에 화를 내거나 미워하는 시기는 끝났고 "아, 그 사람 덕분에 훌륭한 인생이었다"고 절실히 생각하고 계신 것 같습니다. 인생의 끝에는 그런 기분이 드는 거구나라는 생각을하게 되었습니다. 사토 아이코의 문학에는 그러한 마음이 그려져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사토 : 남편에 대해 몇 번이나 썼지만, 결국 몇 번을 써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인간을 이해하려고 해도 모르는 것이 당연합니다. 자기 자신에 대한 것도 모르고 있으니까요. '그는 이렇게 살았다'고 하는 사실만 있을 뿐 거기에는 선도 악도 없거든요. 살아오느라다 그렇게 수고하셨다는 생각만 남을 뿐입니다.
(93세 부인공론 2017년 7월 25일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