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메트로의 “우대권입니다”
전 대 열
한국정치평론가협회장
대도시의 교통수단으로 가장 많이 애용되는 것 중의 하나가 지하철이다. 대중교통의 총아로 불려지는 지하철은 도심의 교통체증 없이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시민의 발이다. 시내버스나 택시는 지상에서 지하로 오르내리는 불편은 없지만 트래픽에 한번 걸리면 시간 가는 줄 모르게 기다려야만 한다. 더구나 시내버스는 시간이 지체되더라도 정액요금만 내면 그뿐이지만 택시는 다르다.
거리계산으로 요금이 나오는 미터제지만 시간제도 겸행하고 있어 차가 밀리는 시간대에는 엉뚱한 요금이 추가된다. 빨리 가긴 해야 되는데 차는 한없이 밀려있고 미터기 넘어가는 소리는 왜 그렇게 크게 들리는지 가슴이 덜컹 내려앉는다. 할 수 없이 중간에 내려 지하철로 바꿔 타는 수도 흔하다. 지하철이 생기기 전까지는 시내버스의 독무대였다. 예쁜 아가씨들이 단정하게 제복을 입고 차장노릇을 하면서 출퇴근 시간에는 힘껏 안으로 밀어 넣는 기술과 힘이 혀를 내두를 만했다.
서울 지하철은 벌써 30년을 훌쩍 넘겼고 부산 인천 대구 광주 등 대도시에도 지하철이 건설되어 시민들의 교통이용에 큰 힘이 되고 있다. 건설과정에서 크고 작은 사고들이 잇달았지만 큰 토목공사에는 항상 뒤따르는 위험이 있게 마련이다. 지하철 운행 중 가장 비극적인 사고는 아마도 대구지하철 화재사고일 것이다. 한 사람의 정신이상자가 저지른 방화로 인하여 수많은 시민이 희생된 것은 지금 생각해도 안타깝기 그지없다.
화재당시 어마두지하다가 더 큰 사고로 발전할 수밖에 없었던 지하철본부 측의 허술한 대응은 두고두고 시민들의 지탄을 받아야 했다. 물론 사고는 불의에 발생한다. 전동차의 시트 등 내부 장식품을 모두 불연재로 교체하고 있는 것은 미연에 사고를 방지하기 위한 관계기관의 노력으로 보인다. 지하철을 이용하는 시민들의 자세도 과거에 비하면 매우 좋아졌다. 지하철 측의 꾸준한 홍보와 계도 덕분이다.
우선 경노석에 앉는 젊은이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음식물을 반입하여 우적우적 씹어 먹으며 냄새를 풍기는 일, 개구쟁이 어린아이를 방치하는 젊은 부부들, 휴대폰으로 악다구니를 쓰는 사람, 경노석에 앉아 술주정 부리는 노인, 만원 지하철 속에서 특정종교를 강요하는 혐오스런 광경들이 아직도 목격되지만 참을 수 없을 정도는 아니다. 다만 경제위기가 닥친 이후 잡상인들이 부쩍 늘어났다.
모든 사람이 다 성인군자가 될 수 없는 것처럼 지하철을 이용하는 시민들이 스스로 알아서 기초예의를 지키는 것만이 바람직한 개선책이라고 생각된다. 이처럼 다양한 지하철 풍경 속에서 서울 메트로는 그동안 사용해 오던 종이 우대권을 카드 우대권으로 바꿔주고 있다. 원래 우대권제도란 국가유공자와 65세 이상의 노인인구에게 지하철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도록 배려한 제도다.
우대권 제도가 시행되면서 지하철을 이용하는 노인인구가 많아진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 때문에 지하철 적자가 늘어나고 적자운영의 원인인 것처럼 한 때 잘못 알려진 일이 있다. 서울 메트로 측이 이를 홍보에 이용하여 우대권 폐지를 획책했다가 호된 여론의 역풍을 맞기도 했다. 그런데 이번에 1회용 종이 우대권을 카드로 교체함으로서 불필요한 인력손실과 종이소비 등을 줄인 것은 매우 잘 한 일이다.
많은 탑승객들이 모두 카드를 사용한다. 들어갈 때나 나올 때나 저장되어 있는 요금만 남아있으면 소리 없이 문이 열린다. 기계 고장으로 삐 소리가 나면 다른 게이트로 가면 된다. 그런데 우대권은 다르다. 카드를 대면 전혀 달갑지 않은 소리가 들린다. 캄캄한 밤중에 등골이 오싹할 정도로 무덤에서 울려나오는 여자귀신의 목소리도 이보다 더 기분 나쁘진 않을 것이다.
“우대권입니다” 단순하기 짝이 없는 이 외마디 목소리는 왜 입력된 것일까. “당신은 지금 공짜로 지하철을 타고 있습니다.”라고 말하고 싶은 것을 겨우 그 정도로 순화한 말이 아닐까. 우대권 제도는 경노사상과 국가유공에 대한 일종의 보상이다. 은퇴 후 일정한 수입이 없는 어르신들의 출입을 조금이라도 자유롭게 해주겠다는 정부의 편의제공일 뿐이다. 사회적 역할과 국가적 공로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다.
그렇다면 당연히 “감사합니다.” 또는 “건강하십시오” 정도의 인사말이 예의다. 서울 메트로 측에서는 부정 사용자 단속용으로 “우대권입니다”라고 노무현 정부처럼 대못을 박았는지 몰라도 이는 사용자들의 자존심에 상처를 주고 불쾌감을 증진시킬 뿐이다. 초중고교에서 영세민 자녀들의 무료급식 신청을 공개리에 받았다가 모두 기피했다는 보도도 보지 못했단 말인가. 개인이나, 단체나 모두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는 역지사지(易地思之)가 기본적 예의임을 깨달아야 한다. 쓰다듬고 어루만져주는 것이 각박함을 푸는 지름길이다.
첫댓글 서울 메트로측은 경로 우대자들에게 자존심에 상처나 불쾌감을 주지 않도록 덕담의 인사말을 사용할 것이며 부정사용자에 대해서는 선거관리위원회처럼 50배의 벌금을 물리는 방안을 검토 해서 근절 시켜야 할 것입니다.좋은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