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어를 수년간 공부해온 세 남자들은 “처음부터 제?/b> “아직까지 중국 전략을 수집해 놓지 않은 회사는 글로벌 전략의 실현을 포기한 것과 마찬가지”라는 제너럴모터스(GM) 릭 웨고너 회장의 말은 비단 기업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개인도 마찬가지다. 글로벌시대를 대비하는 ‘선견지명파’들은 최근 국내에 불어닥친 중국 열풍 이전부터 차근차근 중국어를 공부해왔다.
중국어를 수년간 공부해온 이들은 기자의 주선으로 5일 서울 강남의 한 중국음식점에서 처음 만났지만 중국어라는 거대한 산을 등반하고 있다는 공통점으로 금세 허물없는 친구가 됐다. 이들의 중국어 수련기를 들어본다.
●배움의 시작
이현구:대학(서울대 산업공학과 92학번) 다닐 때 일본어능력시험 1급 자격증을 땄어요. 군대를 카투사(KATUSA)로 다녀왔기 때문에 영어도 큰 불편함없이 했죠. 곰곰이 생각했어요. 누구나 구사하는 영어와 일본어로는 부족하다고. 21세기에 중국어를 못하는 것은 지금 40, 50대가 영어를 잘 못하는 것처럼 처량할 것이라고. 그래서 휴학을 하고 98년 9월부터 1년 동안 중국 베이징(北京) 제2외국어대등에서 어학연수를 했어요.
이춘근:군대 가기 전까지 대학(연세대 신문방송학과 94학번) 학점이 형편 없었어요. 제대 후 뭔가 나만의 무기를 만들어야겠다고 판단해 궁여지책으로 시작한 것이 중국어예요. 3학년으로 복학한 뒤 99년 1월부터 2000년 6월까지 1년반 동안 매일 새벽 중국어학원을 다녔어요. 하루 한시간 수업, 한시간 복습, 한시간 예습 이렇게 세시간씩 투자했어요.
유정훈:중국어는 혼자 공부하기 힘든 언어예요. 잘 하는 사람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하죠. 대학(한양대 중어중문학과 93학번) 선배들이 엄격하게 발음 교정을 해 준 게 지금도 도움이 돼요.
●처음부터 발음을 확실히 잡아라
이현구:중국어는 처음 배울 때부터 발음을 확실히 잡아야 해요. 베이징 제2외국어대 인근의 방송전문대학인 광바오(廣報)대학 아나운서과를 무작정 찾아가 중국어 개인교습을 해줄 여학생을 구했어요. 1주일에 3번 만나 2시간씩(시간당 10위안·약 1500원) 2개월을 공부하니 정확한 발음이 자연스럽게 몸에 뱄어요.
이춘근:학원 수업을 빼놓지 않고 녹음해 10번 이상 반복해서 들었어요. 학원 수업을 녹음하면 강사의 정확한 발음과 학생들의 틀린 발음이 확연히 구분되죠. 발음을 잘 하는 학생이 청취력도 좋아요.
이현구:베이징위옌학원(北京語言學院)에서 만든 ‘팅허수어(聽和設)’란 교재로 공부했어요. 생활언어가 자세히 소개돼 있어 유용하죠. 책을 보지 않고 테이프를 3번 들은 뒤, 책을 보면서 다시 한번 들었어요. 그런 다음 입으로 직접 따라 말하는 과정을 10번 이상 반복했어요.
유정훈:고등학교 때 제2외국어로 중국어를 공부했던 친구들이 오히려 대학에서 어려움을 겪는 것을 봤어요. 처음에 나쁜 발음을 익히면 나중에 고치기 어렵죠. 특히 한국인들은 한자를 보고 대충 추측해 발음하는 경향이 있어요. 중국어를 회화테이프로 독학하는 방법은 꼭 말리고 싶네요.
●가능하면 중국을 직접 체험하라
이현구:중국어를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중국에 갔기 때문에 첫 학기 수업 자체의 효과는 별로 없었어요. 두 번째 학기에 중국 내 외국인 대상 사설학원인 ‘지구촌어학원’에 다니면서 중국어 실력이 눈에 띄게 향상됐어요. 외국인들에게 중국어를 집중훈련시키는 곳이었어요. 원하는 시간에 단계별로 배울 수 있는 학원 강의는 가격이 저렴하면서도 내용이 충실했죠. 중국인 친구와 월세 아파트를 빌려 함께 생활했어요.
이춘근:1년반 동안 한국에서 중국어학원을 다닌 뒤 휴학하고 2000년 9월 난징(南京)사범대로 6개월간 어학연수를 갔어요. 난징 사투리가 심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상인들을 제외하고는 표준어를 사용해요. 오전에는 중국어 수업을 듣고, 오후에는 난징사범대 저널리즘 전공 학생들의 수업을 청강했어요. 제 전공 내용과 같아 중국어를 이해하기 쉬웠어요. 혼자서 중국 전역을 여행한 것도 좋은 경험이 됐어요. 신장(新疆)에서 베이징까지 48시간 동안 기차를 타고 여행할 때는 기차 안 중국인들과 계속 대화해 그들의 집안 속사정까지 훤히 알게 됐다니까요. 단 2개월이라도 중국 현지에서 부닥치면 중국어가 확 늘어요.
유정훈:99년 겨울에 중국에 가서 한달동안 베이징 지구촌어학원을 다녔어요. 중국어를 전혀 모르고 중국에 가는 것과 한국에서 중국어 기초를 닦고 중국에 가는 것, 두가지 방법 중에 어느 쪽이 더 바람직하다고 단정하기는 어려워요. 한국에서 미리 배우면 기초가 탄탄할 수 있지만 자칫 발음이 부정확할 수 있거든요. 가장 중요한 것은 어디서든 집중해서 중국어를 공부하는 언어환경을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전중련(전국 중국어 동학연합회, www.chinanara.com)’이란 중국어 동아리의 토요 스터디에 참여해 중국어를 꾸준히 공부하고 있어요.
●중국어의 효용
이현구:대학을 졸업하고 중국을 시장으로 한 인터넷 마작게임 사업에 뛰어든 적이 있어요. 중국 어학연수를 마치고 귀국한 이후에는 중국어 공부를 하지 않아 말을 많이 잊었다고 생각했는데, 중국 가서 반나절 정도 지내면 중국어가 튀어나오더라고요. 중국인과 비즈니스할 때 중국어로 말할 수 있다는 것은 상당히 힘이 돼요. 일본인에게 일본어 대신 영어로 말하는 것이 더 호감을 주는 것과는 대조적이죠.
이춘근:방송사 안에서 중국인 스포츠선수 이름을 한글로 표기하는 것은 당연히 제 몫이죠. 어느 방송사보다도 정확하다고 자부할 수 있어요(웃음).
유정훈:회사 내에서 ‘중국통’으로 불리고 있어요. 회사를 방문한 중국인 바이어들에게 중국어 속담을 섞어 말하면 금세 부드러운 분위기가 되죠. 협상 파트너 회사의 직원이 직접 중국어를 하면 통역보다 친밀감을 줘요.
●느린 것은 괜찮다, 멈추지 마라
유정훈:대학을 졸업한 이후에도 꾸준히 중국어학원에서 중국어를 공부하고 있어요. 지난해에는 중국어능력시험인 HSK(한어수평고시) 8급 자격증도 땄어요. 요즘 국내 기업체 중에는 HSK 8급 이상의 중국어 실력을 요구하는 곳이 늘어나고 있어요.
이춘근:중국의 신문, 방송을 접하면 흥미를 잃지 않고 중국 현실에 대한 감각을 유지할 수 있어요. 인터넷으로 들을 수 있는 중국 국영라디오방송의 심야 음악프로그램은 발음좋은 여자 아나운서가 천천히 남녀의 사랑 이야기를 낭독하기 때문에 즐겨 들어요.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대비해 중국어학원도 얼마 전부터 다시 다니고 있고요.
이현구:중국어를 배울 때에는 외국어를 하나 더 배운다는 안이한 자세로는 부족할 것 같아요. 열정과 인내가 필요하죠. 중국을 향한 전세계의 관심은 이제 생존의 문제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