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온 수도회 / 시온 기사단 / 메로빙거 왕조의 혈통 역사와인물
출처 천국 비밀 | 주의 종
원문 http://blog.naver.com/pts9228/60006922910
<시온 마을의 풍경>
시온 수도회의 존재에 대한 사실상의 증거 대부분은 파리 국립박물관에 있다.
(파리 국립박물관은 34개 정도 되는데 어떤 박물관을 말하는 건지 모르겠네요.
아마도 루브르 박물관을 지칭하는 게 아닐까 합니다.)
여러 연구가가 말하듯 파리 국립박물관은 시온 수도회와 관련해 상당히 다루기 어려운
문서를 입수했다고 한다. 이러한 주장에 따르면 적어도 프랑스 국립도서관의 관리자
상당수가 모두 시온 수도회와 관련이 있다는 말인 듯하다. 1950년대부터 시온 수도회는
아리송하고 흥미로운 정보들을 파리 국립도서관에 남겨놓기를 즐겼고
연구가들은 이 자료를 찾아냈다.
특히 배전트, 레이, 링컨은 1982년 <성혈, 성배 Holy Blood, Holy Grail>에서
메로빙거 왕조의 혈통에 대해 쓰고 있을때 두 가지 흥미로운 문서를 손에 넣는다.
하나는 수수께끼 같은 비밀문서인데 이상하게도 주기적으로 입수된 문서였다.
두번 째 문서는 <붉은 뱀 Le Serpent Rouge>이라는 작품이다.
이 작품에는 메로빙거 왕조의 가계도와 생 쉴피스 성당의 지하 설계도, 그리고 12궁도의 궁과
관련된 13개의 시가 있다. (전갈자리와 궁수자리 사이에 있는 13번째 궁인 뱀주인 자리가 포함
된다.) 이 문서들을 쓴 것으로 추정된 사람들(4명 모두)은 모두 알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숨을
거뒀다.
시온 수도회, 혹은 불어로 '프리외르 드 시옹(Prieuré de Sion)은 궁극적으로 신비학이나
그노시스파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노시스파란 이집트의 현자인 오르무스가 서기 46년에
이끌었던 단체다. 오르무스는 또한 시온 수도회가 1188년에 채택한 또 하나의 이름으로
그 당시 시온 수도회는 '시온 기사단'(혹은 시온 교단이라고도 한다)에서 이름을 바꿨다.
이 당시 시온 수도회는 스스로를 '장미십자단'이라고 했는데 이는 사실 시온 수도회가
처음에는 장미십자회원으로 출발했다는 사실을 나타낸다.
중세 시대까지는 시온과 관련된 조직은 역사가들에게 알려져 있지 않았다. 스테네이의 오르발
대수도원 '사타니쿰(Satanicum)'은 북부 프랑스의 아르텐에 위치해 있으며 1070년 이탈리아의
칼라브리아 출신의 수도사들이 설립했다. 이 수도사 단체는 메로빙거의 우르수스 왕자가
이끌고 있었는데 우르수스 왕자는 다고베르트 2세의 증손자인 시지스베르트 6세라는 소문이
있다. 수도사들은 시온 기사단의 토대를 세웠으며 1099년에 고드프루아 드 부이용의 기사단과
함께 흡수되었다. 이 해에 고드프루아 드 부이용은 예루살렘을 탈환했다.
단순히 로렌의 공작이 아니었다.
다고베르트 2세의 후손인 그는 메로빙거 가문의 후손으로서 합당한 왕이었다.
스테네이는 메로빙거 왕조의 두 수도 중 하나였다. 스테네이는 성스런 우에브르 숲 근처에
있었는데 이 숲에서 다고베르트 2세가 암살되었다. 다고베르트 2세는 679년 12월 23일 사냥을
한 후 나무 밑에서 잠을 자다가 눈을 찔려 죽었다. 다고베르트 궁정 행정관인 난쟁이 페팽
(소 페팽이라고도 한다)의 명령에 따라 다고베르트 2세의 대자(代子)가 다고베르트 2세를
암살한 듯하다.
시온 수도회의 목적은 언제나 다고베르트 2세가 암살된 이후 상속권을 잃은 메로빙거 왕조와
혈통을 유럽 왕조에 부활시키는 일인 것 같다. 결국 메로빙거 왕족은 다양한 정치 협약과
혼인을 통해 여러 귀족과 왕가를 포섭한 듯하다. 블랑슈포르, 기소르, 생클레르, 몽테스키외,
몽페자, 포에르, 뤼이지냥, 플랑타르, 합스부르크 로렌 가문이 여기에 속한다.
당시 기록을 보면 시온 수도회의 본부는 '시온 산의 노트르담 대수도원'이라고 분명히 나와
있다. 시온 산의 노트르담 대수도원은 예루살렘의 남쪽에 있다. 시온 산의 노르트담 대수도원
은 비잔틴 바실리카 폐허 위헤 세워졌으며 요새를 잘 구축해놓았다. <성경 연금술(Biblical
Archaeology> 잡지의 1990년도에 실린 기사 내용에 따르면 시온 산은 예루살렘의 에비온파의
본부인 듯하다. 예수를 따르던 에비온파는 사도 바울로가 아니라 예수의 형제인 야고보를
그리스도 교회의 정당한 지도자라고 생각했다.
<다빈치 코드>에서 랭던은 시온 수도회가 성스런 여성을 잘 정리해 놓은 문서를 보유하고
있고 막달라 마리아를 섬긴다고 주장하지만 이 주장은 그리 확실한 것 같지 않다.
시온 수도회는 막달라 마리아를 예수의 아내로 여겼으며 여성성의 상징으로 봤다.
잡지 <다고베르트의 복수>에서 트레이시 트와이먼은 다음과 같이 기술한다.
여러 성배 연구자들은 막달라 마리아를 일종의 여성 영웅으로 보며 카톨릭 교회가 막달라
마리아의 여성성이 가지는 힘을 두려워해 막달라 마리아를 '성경에서 제외시켰다' 고 말한다.
하지만 막달라 마리아나 교회 교부들 중 누구도 이런 식으로 생각을 하거나 상상해본 적이
없다. 막달라 마리아가 교회에 위협이 되었던 이유는 여성이어서가 아니라 예수 아이의
어머니, 즉 예수의 왕실 가문과 고귀한 혈통을 상속받는 아이의 어머니였기 때문이다.
이 상속자들은 모든 권리에 따라 예수의 교회뿐만 아니라 예루살렘의 왕권을 물려받아야 했기
때문이었다. (몇몇 상속자들이 보기에 예루살렘에서의 왕권은 전세계를 지배하는 패권임에
틀림없었다.) 상속자들이 이런 주장을 한다면 세상을 종교적으로 그리고 세속적으로 지배하고
싶어하는 교회에게는 커다란 위협이 아닐 수 없었다. 예수의 자식들만 없다면 카톨릭 교회는
왕을 만들 수 있는 권리를 가질 수 있었다.
고드프루아 드 부이용은 자신이 성배 가족의 일원임을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메로빙거 왕조의
후손이자 실제로 예루살렘의 왕이 조상이기 때문에 자신의 가문은 다윗왕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었다. 그는 예루살렘을 탈환한 후 템플 기사단을 만들었다. 팔레스타인과 연결된 다른
그리스도교도 군인이 세 명 있었지만 고드프루아는 자신이 예루살렘의 왕으로 선출되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어쨋든 그는 떠나기 전에 가지고 있던 것을 모두 팔았고 자신이 하려는
일은 평생 예루살렘에서 머무는 것이라고 당당히 밝혔다. 하지만 그는 '왕'이란 칭호를 거절
했고 단순히 '성소의 수호자'란 칭호를 받아들였다.
배전트, 레이, 링컨, 이 세작가들은 칼라브리아의 수도승들이 예루살렘까지 고드프루아와 함께
간 비군사적 고문단이라고 주장한다. 이 수도승들은 사실 아무런 설명 없이 오르발 대수도원에
서 사라졌다. 또한 <성혈, 성배>의 작가들은 바로 이 수도승들이 예루살렘의 왕을 선출했다고
본다.
---------<다빈치 코드의 진실> 中에서...--------
[출처] [펌] 시온 수도회 / 시온 기사단 / 메로빙거 왕조의 혈통|작성자 꿈꾸는자